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95)
조광수가 내 책상에 걸터앉은 채 컴퍼스를 이용해서 낙서를 하고 있다.
저 컴퍼스도 심지어 앞자리에 있던 애의 필통에 있던 거라 본인 것은 아니었다.
“야, 돈 좀 있냐?”
“없는데.”
“킥. 하긴 거지새끼한테 뭘 바라냐. X발.”
“아, 너 나보다 거지야?”
조광수의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가만히 듣다가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조광수가 황당한 눈을 하며 이쪽을 돌아봤다.
“뭐?”
“아. 아니었어? 아니면 미안하고.”
“이 X새끼가 오냐오냐해 줬더니 돌았나.”
“난 또 거지한테 돈 뜯어야 할 정도로 돈이 없어서 이러는 건가 싶었지.”
오냐오냐는 언제 해 줬다고.
그때 당시 나는 돌려 말하는 재주가 부족했다.
고로 일부러 열 받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다.
“하, X발.”
조광수는 이마에 핏줄이 돋은 채 컴퍼스를 책상에 찍었다.
그 순간.
와, 교실에 파도라도 치는 줄 알았다.
입 안이 얼얼할 정도로 뺨이 아려 왔다.
“X새끼야, 다시 말해 봐.”
“나보다 거지니까 나한테까지 돈 뜯어 내려는 거냐고.”
짜악!
뺨을 내려치는 소리에 교실이 얼어붙었다.
“다시.”
“나보다 거지니까. 나한테 돈 뜯어 내려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몇 번을 때리든 난 똑같이 같은 말을 읊어 줬다.
“야, 야. 광수야, 쌤 와.”
계속 ‘다시’를 묻던 조광수 손이 멈췄을 땐 복도에 선생님 그림자가 보일쯤이었다.
“넌 X발 앞으로 조심해라.”
조광수는 뺨을 툭툭 치며 자리를 떠났다.
입안이 찢어진 건지 피 맛이 진하게 돌았다.
뺨은 그사이 심하게 부은 듯 무게감이 느껴졌다.
“나 보건실 다녀올게. 이야기 좀 부탁해.”
“으, 응.”
컴퍼스를 빼앗겼던 같은 반 앞자리 애한테 부탁하면서 나는 교실을 나왔다.
“거기! 너 이리 와. 곧 수업인데 어디 가?”
“뺨이 찢어져서 보건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아, 그래. 가 봐라.”
선생님한테 뺨을 보이자, 선생님은 얼른 가 보라며 손짓했다.
조광수는 이미 두 차례 학폭위 자리에 선 적이 있는, 이미 이력이 있는 놈이었다.
하지만 두 차례 모두 ‘장난’이라는 같잖은 이유로 무산됐다.
지금은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이 시기는 2010년.
내가 다니는 시골 촌구석의 이 학교는 학폭위가 있어도 제 기능을 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2차 피해에 당연하다는 듯 방치되던 그런 곳.
학폭위 역시 교장과 구성원 선생님들의 재량 따라 주무르기가 십상이었고, 모두가 다 보는 앞에서 가해자가 묵사발을 내도 그놈의 ‘장난’이라는 핑계와 돈 몇 푼이면 무산됐다.
‘싸우면서 크는 거지’라는 위원회 교사의 말 한마디면 신고조차 들어 먹지 않던 야만의 끝자락.
거기에서 ‘보호자가 없는’ 나 같은 존재는 그런 놈들에게 장난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귀찮아지는 건 질색이라, 나만 참으면 괜찮겠지.
몇 년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까맣게 모른 채, 그땐 그렇게 생각했었다.
* * *
중학교 3학년.
우린 서로가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수녀님도 그렇고 선생님들도 그렇고 주변에서 죄다 닮았다고 한마디씩 던지던 그 무렵.
이은지는 내가 있던 이 똥통 같던 중학교에 따라서 입학했다.
한동안 조용했던 조광수가 또 들이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야, 걸베이! 1학년 애 중에 너랑 똑같이 생긴 X 있던데, 너 동생 있었냐?”
쟤 거지래.
고아원에서 학교 다닌다더라.
그 외 등등.
무수히 많은 내 소문이 이놈 때문에 전교에 퍼져 있었다.
괜히 이은지까지 얹어져 봐야 좋을 일은 없을 테니까 난 입을 다물었다.
“…….”
이젠 내 반응이 익숙해진 건지 조광수는 괜히 내 뒤통수를 툭 친 후 교실을 떠났다.
괜히 귀찮은 일에 얽힐까 봐 대답하지 않은 거였는데, 이러나저러나 일이 생길 거였다면 그냥 말을 할 걸 그랬나.
조광수는 며칠 뒤 이은지의 반을 찾은 듯, 1학년 교실에 찾아갔다.
문제는 이은지는 나같이 귀찮은 걸 그냥 무시하는 애가 아니었다는 거다.
14살의 이은지는 광견병 걸린 개처럼 아직 사회화가 덜 되어 있던 시기였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조광수는 나를 대하던 그대로 이은지 앞에서 입을 놀렸다.
* * *
쾅!
1학년 교실에 조광수와 그 무리들이 들이닥치며 소리쳤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올라온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은 조광수를 무리를 동그래진 눈으로 바라봤다.
조광수는 괜히 턱을 좌우로 움직이며 입술을 괴상하게 뒤틀었다.
멋있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조광수는 본인 나름 분위기를 잡으며 물었다.
“뭘 꼬라봐, X발. 얼라들은 존말할 때 눈 깔고 있어라―. 자, 여기서 끌베이 동생 X 손!”
거지(끌베이) 동생이라는 말에는 누구 하나 손드는 사람이 없었다.
“여기 이은호 새끼 동생 없어?”
“난데.”
“오, 뭐야. 이은호랑 똑같이 거러지 같이 생긴 줄 알았더만 넌 반반하네?”
은호 이름이 똑바로 나왔을 때.
가운데 줄의 가장 마지막 자리에서 은지가 당당히 손을 들며 대답했다.
은호보다는 훨씬 날카롭게 찢어진 눈매와 척 봐도 한 성깔 하는 것 같은 날 선 목소리.
‘이쪽도 무섭긴 한데…….’
같은 반 1학년 아이들은 조광수를 바라보다 은지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여기가 더 무서워.’
외모로 보자면 조광수보다는 은지가 더 흔히 말하는, 사납게 보이는 외모였다.
하지만 그런 1학년 아이들과 다르게 조광수는 ‘이은호 동생’이라는 이유로 은지를 하찮게 내려다보며 물었다.
“니가 이은호 동생이냐?”
“맞다고 방금 말했는데. 빙시 같아 가지고 귀도 안 좋으신가 봐.”
“이 X발 X이 말하는 거 봐라? 이은호 금마는 X나 잡아떼더니, 동생 맞네. 말하는 거 X 같은 꼬라지가 똑―같구만.”
조광수는 같이 끌고 온 제 무리와 함께 시끄럽게 웃어 대며 말했다.
은지는 그런 조광수 나름의 위협에 오히려 입꼬리를 올리며 따라 웃었다.
반대로 웃음기 하나 없이 동그랗게 뜬 눈은 커다란 크기만큼 살벌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야, 니 오라비가 내 발닦개인 건 아냐?”
조광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 우리 은호 손 좀 봐줘야겠네. 행님한테 거짓말을 다 하고.”
수치스럽게 하려는 목적이 목적이었겠지만 문제는 은지가 ‘발닦개’가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은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은 3학년이면서 형이라니?’
다행이라면 눈치껏 조광수 말이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척 봐도 X만 해 보이는게…….’
판단은 끝났으니 이젠 깔 시간이었다.
“손을 봐? 니가 뭔데?”
은지는 여전히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활짝 웃으며 조광수를 노려봤다.
“와, 하하. 아, 우리 끌베이 공주님.”
“이은지라는 내 이름 있으니까 니 X대로 공주니, 뭐니, X랄 싸지 말지.”
“X발 째깐한 X이 성깔 있네?”
“응. 내가 한 성깔 해.”
“하하, 아― 네 오빠 꼽주니까 빡쳤구나? 어? 빡치냐고―. X발 X아.”
조광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은지의 머리를 검지로 쿡쿡 찍어 댔다.
은지는 입꼬리 한 번 흔들리지 않은 채 여전히 활짝 웃었다.
“응. 빡쳐, 이 X새끼야.”
“이 X만 한 얼라가.”
“내가? X랄 개똥을 싸네.”
은지는 눈썹을 뒤틀며 온 안면 이용해 조광수를 보기 좋게 비웃어 보였다.
앉은키가 선키에 비해서 작은 은지는 조광수를 위해 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 말했다.
“어떻게 봐도 내가 니 X만 해 뵈진 않는데.”
조광수의 시선이 은지의 머리를 따라 높아졌다.
조광수의 키는 172cm다.
반면 은지의 키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173cm를 도달해 있었다.
일어선 은지의 키가 본인과 정확히 눈을 마주치는 위치까지 올지는 몰랐는지 조광수는 잠시 당황한 듯 동공이 흔들렸다.
뒤에 딸린 제 무리와 1학년들의 시선.
조광수는 여기서 밀리면 ‘개쪽’이라는 예감에 겨우 냉정을 되찾았다.
“야, 거―.”
“하이고야.”
버럭 소리치려던 조광수 입을 틀어막고 은지는 보기 좋게 웃으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코를 틀어막으며 손을 저었다.
“니 아가리가 불쌍타. 부탁인데, X발 그 하수구 똥내 나는 그 주둥이 좀 닥치라. 양치 좀 단디 하고 다니세요. X발 아가리 똥내가 엔간해야지!”
“푸, 큽.”
교실이 웅성거렸다.
막힘없이 내뱉는 은지의 찰떡같은 쫄깃한 말투에 1학년 교실 아이들이 키득거렸다.
조광수는 당황한 눈으로 제 무리를 힐끗 봤다.
조광수 무리 역시 다를 건 없는지, 몇몇은 고개를 돌린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이 X새끼가!”
은지는 와중에 크게 뜬 눈을 단 한 번도 끔뻑이지 않은 채 조광수를 몰았다.
이대로 물러나면 진짜 개망신이다!
느낌이 왔는지 조광수는 손을 들었다.
“이런 X은 처맞아야 정신을―.”
“야! 하수구 주둥이! 닥치고 들어. X발, 내 말 아직 안 끝났으니까.”
은지는 가볍게 조광수 손목을 붙잡아 꺾으며 소리쳤다.
“아아아아!”
손목과 팔꿈치가 분리될 것 같은 통증도 통증이었지만, 버럭 소리쳐 커진 은지의 성량이 조광수의 고막을 울렸다.
찌릿한 이명에 조광수는 본능적으로 한 귀를 틀어막았다.
“고작 두 살 많다고 같잖은 새끼가 있는 척하는 것도 꼴사운데 얼굴까지 X 대가리 같이 생겨서 걸거치지 말고, 그 X 대가리랑 XX이랑 같이 뭉개 버리기 전에 존말할 때 우리 교실에서 꺼져, 이 X새끼야.”
은지는 쌍욕을 폭포처럼 쏟아 낸 뒤, 꺾고 있던 조광수 팔을 강하게 밀쳤다.
쿠당탕!
조광수는 다시 일어나는 게 쪽팔릴 만큼 큰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X발. 야, 너 후회하지 마라.”
“후회?”
조광수는 일부러 태연하게 일어나서 옷을 털며 말했다.
하지만 그 순간.
“에비!”
은지가 손을 들며 장난처럼 한 위협에 조광수가 움찔했다.
“하하하핰. 안 때려, X신아. 이 X랄 하면서 후회는 염병.”
은지가 큰 소리를 내며 웃자, 1학년 교실 아이들이 단체로 키득거렸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조광수가 끌고 온 무리는 터질 것 같은 웃음을 꾹꾹 눌러 참으며 수치심에 붉어진 조광수를 끌고 1학년 교실을 나왔다.
“X발, 야. 놔 봐. 놔 보라고!”
“야, 야. 그 정도만 해.”
다시 들어가서 은지를 한 대라도 쳐 보려던 조광수한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찬 복도 바닥에 덩그러니 앉아 있던 조광수는 밟히다 못해 짓이겨진 자존심 때문인지 발이 떨어지질 않는 것 같았다.
하늘도 그다지 조광수의 편은 아닌 듯, 조광수 무리는 1학년 담임 선생님과 맞닥뜨렸다.
“너희 누구야!”
“야, 째!”
“광수! 미안!”
조광수는 무리에서 보기 좋게 버려졌다.
“선생님! 저 사람이에요!”
“닌 3학년이 돼서 1학년 교실에서 뭐 하는 짓거리고!”
조광수는 1학년 담임 선생님이 든 사랑의 매로 1학년 교실 복도 앞에 엎드려 뻗은 채 엉덩이를 맞았다.
수치심이 최고치에 다다른 경험이었다.
“이 X발 새끼야!”
그리고 조광수가 교실로 돌아온 그 순간.
은지한테 당한 수치심은 그대로 교실 책상에 엎어져 있던 은호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아.”
가만히 앉아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은호는 천천히 고개를 들다 조광수 얼굴을 보자마자 한숨을 먼저 내쉬었다.
“X발, 너도 내가 우습지? X새끼야.”
“어.”
대답은 속으로 삼켰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입 밖으로 나와 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