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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93화 (93/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93)

펑펑 울던 시간이 끝나고, 즉석 떡볶이는 그동안 살짝 물이 부족한 정도로 졸아 버렸다.

그래도 때려 넣은 MSG 덕분에 맛 하나는 기가 막혔다.

식사하는 동안에도 글씨만 올라가는 채팅창일 뿐인데, 왜일까.

그게 꼭 북적북적한 듣기 좋은 소음 같았다.

가족 같은 사람들이 두런두런 모여서 다 함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하고 있는 기분이다.

이런 훈훈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밥에 눈이 먼 은지는 말수가 없다.

눈에 불을 켠 채 묵묵히 입에 어묵을 밀어 넣기 바빠서 말을 할 틈이 나질 않았다.

은지가 열심히 어묵을 건져 먹던 그동안 채팅창을 상대하는 건 상대적으로 음식 욕심이 덜한 은호의 역할이었다.

[지지 언니 남친 있어요?]

“은지한테 남친이요? 그 말은, 얘가 있을 거 같아서 물어본 거죠?”

그때였다.

은지는 갑자기 할 말이라도 있었는지 입술을 세 배는 빠르게 오물오물하더니 ‘꿀꺽!’ 급하게 넘긴 후 입을 열었다.

“나! 애인 없어! 나 데려갈 사람?”

은지가 이렇게 말하면 한 명이라도 ‘저요!’가 나올 법하건만, 꼭 짜고 맞춘 것처럼 채팅창에는 ‘ㅎㅎ’만 도배됐다.

“하하하. 이야, 채팅창 조용해진 거 봐라.”

이퍼들은 은근히 짓궂은 면이 있었다.

그리고 이게 마냥 ‘좋다’, ‘사랑한다’라고 하는 것보다 더 가까운 사이 같아서 즐겁기도 했다.

[랑이는 여자 친구 있어? 아니면 있었던 적은?]

“에이, 난 나쁜 놈이라 연애 같은 거 안 해.”

“……우럭 같은 새끼가 X랄하고 자빠졌네.”

은호에게만 들릴 정도로 중얼거린 은지.

은호는 은지를 웃으며 돌아봤다.

“말, 좀.”

“니가 그딴 X소리를 하지 말았어야지. ‘냬는 놔뿐 눰이롸 연얘 같튼 거 안 훼.’, 풉.”

이은지가 과장하며 따라 하는데 내가 했던 말이긴 해서 민망해졌다.

내가 저렇게까지 말한 것 같진 않은데…….

“……미안하다.”

가까이 들이미는 호박 머리를 밀어내며 사과하자, 꺅꺅거리던 채팅창은 다른 의미로 난리가 났다.

‘풉, 이은호가 나쁜 남자라니.’

속은 놀림에 가까운 웃음이 터졌지만, 은지도 사실 궁금하긴 했다.

‘하긴 이은호 회귀 전에 여자친구가 있었다고 했었지.’

심지어 같은 연예인!

피 섞인 인간의 연애사까지는 궁금하지 않지만, 적어도 연예인이라고 하니까.

‘누군지 궁금하긴 하다. 그때가 2018년이었던가…….’

본인 스스로 나쁜 놈이라고 하는 것도 그 여자 친구하고의 일 때문에 한 소리일까.

하지만 지금은 카메라 앞이니까.

‘절대 말해 줄 리가 없겠지.’

은지는 ‘방송이 끝나면 그때 물어봐야겠다’라며 앞 접시에 건지던 어묵을 마저 건졌다.

찰싹!

“아!”

바쁘게 젓가락질을 하던 그때였다.

등짝에 떨어진 아린 통증에 은지가 신경질적으로 휙 은호를 돌아봤다.

“아, 왜!”

“내가 떡이랑 양배추랑 파도 먹으라고 말했지.”

“아! 누가 안 먹는데?”

“같이 먹으라고! 같이! 니 앞 접시를 봐라. 아주 그냥, 안 그래도 다 조사놓은 어묵만 뒤지게 올려놨네!”

“아! 알아서 먹을게! 좀!”

“카메라 앞이면 적어도 더 골고루 먹어야지. 여기서도 편식을 하면 너는―!”

“아악! 내가 알아서 먹을 거야!”

시끄러운 테이블과 다르게 채팅창 반응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어머니]

[지지 엄마 랑잌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이해는 되지 않지만…….

오히려 좋아하는 쪽에 더 가까워 보였다.

* * *

잔소리가 반찬으로 곁들여진 식사 시간이 끝나고, 이젠 뭘 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였다.

[이지 포인트 열심히 모으고 있는데 우리 굿즈는 언제 나왕]

[맞아]

[우리 이퍼라고 이름도 생겼는데!]

[우리도 굿즈 내줘]

[굿즈굿즈굿즈굿즈굿즈]

굿즈 이야기는 대표님한테 여쭤봐야 할 것 같은데.

그때 마침 대표님도 같이 채팅창을 보고 있었는지 조용히 팔을 들어 커다란 ‘O’를 만들어 보였다.

난 다시 카메라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퍼 님들은 어떤 굿즈 원하세요?”

에코 백, 슬로건, 머그 컵, 포토 카드, 브로마이드, 무드 등, 쿠션, 핸드폰 케이스, 텀블러, 교통 카드, 키링, 로고 팔찌, 목걸이, 귀걸이, 등신대, 우산, 가방, 후드 티, 무지 티, 스티커, 방향제, 피규어, 달력, 앨범, 응원봉.

채팅창에 속도 제한을 걸어 놨음에도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는 굿즈 목록들.

대표님은 눈을 빛내며 목록을 하나하나 체크해 뒀다.

앨범과 응원봉이 가장 마지막에 쓰인 채팅이기 때문이었을까.

[오. 응원봉 좋다!]

[응원봉!]

[봉!]

팬들의 반응이 유독 응원봉에서 뜨거웠다.

“응원봉이라, 우리가 만드는 것도 괜찮을 것 같―.”

슬쩍 던져 본 농담이었는데, 이때다 싶었는지 또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뭘 가지고 오는 건가 싶어서 고개를 뻗어 보는데.

‘회사에 와이패드가 몇 개나 있는 거야?’

잠시 후 이은지와 내 앞에 직원들이 챙겨 온 와이패드가 각각 놓였다.

그림판인 건지 우리가 직접 그릴 수 있는 창도 띄워져 있었다.

“그리라는 건가요?”

‘맞는다’라는 듯, 직원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 역시 의욕을 보이는 모습을 보니, 오늘 팬 네임을 정한 김에 겸사겸사 응원봉 디자인까지 다 뽑아 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채팅창 반응이 뜨거웠다.

“뭐 하지…….”

고민하는 나와 달리, 이은지는 일단 팬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슥슥 그린 그림을 보는데…….

“와, 진짜 못 그렸다.”

팔각형의 유리판에 둘러싸인 E-UNG 로고가 들어 있는 응원봉인 것 같았다.

“끝!”

“진짜?”

저렇게 허접스럽게?

뒷말은 차마 카메라 앞이라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직원은 은지가 그린 그림을 카메라에 비추며 채팅창에 알렸다.

[1번……입니다.]

난 저렇게는 안 해야지.

‘이응, 이응이라…….’

한참 고민한 뒤 늦게나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은지랑 다르게 한글 자음 ‘ㅇ’ 안에 우리 로고가 그려진 봉을 그렸다.

[뭘 그리는 거지?]

[동그라미?]

유리판 안에 가둬진 느낌을 살리기 위해 하늘색으로 찍찍 그은 그때였다.

“오. 이거 빛나면 이쁠 거 같다.”

“빛난다고?”

“줘 봐.”

이은지는 내 패드를 가지고 가더니 ‘여기 빛나게!’라며 멋대로 글씨를 써 넣었다.

그리고 팬들에게 공개된 내 2번 응원봉.

[2번입니다.]

이은지가 그린 1번 봉보다는 괜찮았는지, 직원 역시 공지로 왠지 찝찝하던 점들을 뺀 채로 번호를 알렸다.

[아 이응이다!]

[ㅇㅇㅇㅇㅇㅇ]

[저게 제일 큰 특징이긴 하지ㅋㅋㅋㅋ]

[귀엽다!]

* * *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은호와 은지는 채팅창 반응을 보는 것도 잊은 채 3번 응원봉 디자인 그리기에 푹 빠져 있었다.

“이거, 로고 말고 우리 E-FAN 어플 접속할 때 나오는 이름 마크 있잖아.”

“아. 어. 어어. 뭔지 알겠다.”

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여기 넣는 거 어때? 그리고 로고는 없으면 아쉬우니까 버튼에 넣고…….”

“오, 좋다. 좋다!”

“화살표 빨간색으로 다시 그려 줘.”

“왜?”

“왠지 빛나는 거 표현한 흰 부분 때문에 흰 화살표가 잘 안 보이는 것 같잖아.”

은지가 갸웃거리기만 하자, 은호는 패드를 가져와서 직접 수정했다.

“이은호, 이은호.”

“왜.”

“이거 E-UNG 글씨를 거울로 하는 건 어때? 양면으로!”

“거울? 왜?”

“응! 빛이 반사돼서 더 잘 보이지 않을까?”

은지의 말을 따라 은호는 일단 글씨를 쓴 후 빨간색으로 바꿔서 화살표를 그려 넣었다.

[스케치북 붙잡고 이야기하는 우리 애들 같다 ㅋㅋㅋㅋㅋ]

[ㅋㅋㅋㅋ 귀여워라ㅋㅋㅋㅋ]

[랑이는 지지가 가져가면 불만 없이 그냥 주네ㅋㅋㅋ]

둘은 한참을 조잘거리며 그림을 그리더니, 잠시 후 2번과 비슷하지만 무언가 많이 추가된 3번을 가지고 왔다.

[3번입니다.]

팬들에게 보이자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가듯.

슬슬 정리하는 모습이 보이자 응원봉에 대한 다양한 조언들이 쏟아졌다.

그때, 시끌시끌한 채팅방은 단번에 조용하게 만든 건 대표님이 띄운 공지였다.

[NRY 대표 박창석입니다]

[와아아아!]

[오오오]

[빛창석 대표님이다!]

[오늘 E-UNG가 직접 그린 응원봉은 며칠 뒤에 있을 톡신과 생방송 날 해당 사진들을]

[설마?]

[혹시?]

[설마설마!]

[실물로 제작하여 E% 여러분께 보여 드리겠습니다.]

[와아아아!!!]

[대박!]

[투표는 그날 공개와 함께 진행할 예정이니, E-UNG와 톡신이 함께할 생방송 날.]

[꼭 투표까지 함께해 주시기를 이 박창석이 E%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네!!!]

[네]

[넹]

[ㄴㅔ]

[이상 NRY 대표 박창석이었습니다.]

채팅창의 반응은 열렬했다.

“이걸 실물로, 가능해요?”

“충분해.”

박 대표는 여유롭게 손가락으로 OK를 만들어 보이며 윙크를 곁들였다.

소름 돋는 박 대표의 죽음의 윙크는 뒤로하고, 은호와 은지도 기대를 드러냈다.

팬들뿐만 아니라 그림이 실물이 된다는 건 본인들 역시 설레는 일인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응원봉 디자인 예고가 끝나고.

시간을 보자 벌써 방송을 진행한 지 4시간째.

여전히 즐겁기는 했지만, 오랜 방송 시간 탓에 이제 은호도 은지도 아주 조금 지친 기색이 드러나 보였다.

박 대표도 끝이 왔음을 알았는지 슬슬 방송을 종료하기 위해 정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자,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여러분 듣고 싶은 노래 있어요?”

[듀오!]

[라스트 데이!]

[라데!]

[라스트요!]

“라스트 데이가 더 많으니까 엔딩곡은 라스트 데이로 할게요.”

마침 아쉬운 기분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싶던 그때였다.

[이제 방종인 건가요?ㅠㅠ]

[ㅠㅠㅠㅠ 아쉬워요.]

씁쓸한 채팅들이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끝이 아니니까.

“아쉽지만 우리 며칠 뒤에 또 만날 테니까 그때 또 와 줘요, 여러분.”

“맞아. 참, 아니지. 앞으로는 우리 이퍼 님들이라고 해야지.”

“그러네. 그때 또 만나요, 이퍼 님들.”

오늘 방송 수고 많으셨다는 인사부터, 이렇게 깜짝 방송으로 보게 돼서 행복했다는 등 생방송의 끝을 앞두고 가슴 찡한 인사들이 쏟아졌다.

그동안 은지는 직원이 건네주는 기타를 받아 들었고, 은호는 하나하나의 인사가 소중한 나머지.

한 글자라도 놓칠까.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키릭―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며 외치던 Last Day

문지르는 다가오는 한 걸음에 숨이 막혀 와

은지가 연주와 함께 먼저 노래를 시작하고, 은호 또한 뒤따르며 코러스를 쌓았다.

[)) ㅠㅠㅠㅠㅠ]

[((]

[))]

[((]

채팅창에는 울음과 함께 팔을 흔드는 듯한 물결들이 일었다.

아프게 하지 말아

위한다면 움직이지 말아

“하하.”

그 모습에 은지는 노래하다 눈물 때문에 울컥하면서도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날을 기억해

우리가 처음 사랑을 속삭인 Last Day

은호도 따라 웃다가 차례가 돌아오자 입가에 미소만 머금은 채 노래를 이어 갔다.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며 외치던 Last Day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며 외치던 그 Last Day)

그 Last Day

(그 Last Day)

은지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는지, 평소 잘 하지 않던 애드리브까지 넣으며 화려한 마무리를 마쳤다.

기타의 울림이 멎은 후, 은호와 은지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울음바다가 된 채팅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인사했다.

“이퍼들, 다음엔 ‘Wise’ 기념 방송 날 만나요.”

“안녕.”

인사를 끝으로 화면은 언제 방송했냐는 양 검게 변했다.

채팅창 또한 ‘ㅠㅠㅠ그날 꼭 볼게요ㅠ’라는 한 팬의 마지막 채팅을 끝으로 멈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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