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92)
그래도.
“칭찬 고마워요. 이……퍼들.”
아직은 입에 올릴 적마다 민망해서 일부러라도 더 자주 부르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요리 질문을 시작으로 즉석 떡볶이가 끓는 그동안 채팅창에선 여러 질문이 올라왔다.
마침 비어 있는 시간도 있겠다.
궁금한 점이 많았는지 팬 아니, 이퍼들의 질문에 편하게 답하며 시간을 보냈다.
[톡신이랑은 어떻게 알게 됐어요?]
“대표님이 듀오가 끝난 뒤에 뒤풀이 자리를 만들었는데 그때 선배님들이 계셨어요.”
“참, 그날 이은호는 예전에 지예찬 선배님하고 곡을 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만나자마자 인사를 나눌 정도의 사이는 돼 보였어요!”
내기에 관한 이야기는 선배들님과 이야기를 해 봐야 하는 문제 같으니까.
우린 눈치껏 딱 여기까지만 밝혔다.
[지지랑 랑이, 프로필에 나이가 없던데 몇 살이에요?]
“저는 20살! 이은호는 22살!”
“프로필에 우리 나이가 없나? 없어요?”
대표님한테 고개를 내밀며 묻자, 나중에 공개될 것 같아서 일부러 올려 두지 않았다며 웃었다.
‘신비주의?’
뭐, 그런 콘셉트인가 했는데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냥…….
깜빡 잊으셨다고 했다.
워낙 혼자서 하는 일이 많으셨기 때문에 이해는 했다.
“지지는 왜 랑이한테 반말해? 내 맘!”
“쟤 성인 되고 나서 머리 컸다고 지가 원하는 거 있을 때만 오빠라고 그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채팅창에 웃음이 이어졌다.
“지지랑 랑이의 고향은 어디야? 으음, 거기가 산골 쪽이라 헷갈리는데. 아마 대구 근처였던가? 맞지?”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좀 더 위였나, 아래였나.”
“헤헤. 어릴 때 올라와서 정확한 지명은 헷갈려요.”
당시는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대부분이라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주제였다.
그건 이은지도 마찬가지였는지 더 긴말은 하고 싶지 않은 듯 웃으며 이야기를 재빠르게 넘겼다.
“경상도구나. 어쩐지 사투리가 들리는 거 같았는데 그래서 말투가 그랬구나. 저희 말투에 티가 나요?”
[네]
[ㅔ]
[억양이 특이해요!]
[ㄴㅔ]
티가 나는 건 확실한 듯, 인정한다는 댓글이 무수하게 줄지어 이어졌다.
[은호랑 은지는 부모님이 되게 좋아하시겠다.]
고향에 이어서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별명으로 가득한 와중에 이름이 있어서 더 눈에 띄었다.
하지만 아직도 마주하기엔 힘든 이야기인 걸까.
이은지와 난 한마음처럼 모른 척 그 채팅을 넘겼다.
“키가 엄청 커 보이는데 지지 키가 몇이야? 173에서 4 사이? 아마 그럴 거예요!”
“우와! 크다―아, 이은지 크죠. 옆에서 보면 머리도 커요. 하하.”
“죽을래?”
“왜. 외국에선 머리 크다는 말이 칭찬이래.”
“……진짜?”
“어. 근데 넌 예외지.”
은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농담인지 아닌지를 가리고 있는 동안.
채팅에는 ‘ㅋㅋㅋㅋㅋ’ 하는 웃음 외에도 혼란스러워하는 이은지를 귀여워하는 반응도 많았다.
인정하긴 싫지만 이렇게 멍청해 보일 땐 웃기긴 하다.
[나랑 비슷하다!]
“오, 나랑 비슷한 사람도 있구나! 반가워!”
놀림이라는 걸 눈치챘을 땐, 이은지는 다시 채팅이나 읽으며 나를 무시했다.
‘전에 기억이 있다고 했던 것 때문인가.’
진행하는 동안 왠지 회귀 전 이은지의 노련한 부분이 종종 보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다.
“랑이 님은 키 몇이에요? 랑이는 키 몇이야? 이은호, 너 키 몇이냬!”
이은지의 키를 알아내더니 이젠 내가 궁금한 걸까.
채팅에 갑자기 내 키를 알려 달라는 질문들이 줄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예전에 쟀을 땐, 181인가, 2인가 했었어. 커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비슷하지 않을까.”
대충 이 정도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나만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내 대답이 무섭게 갑자기 직원들이 분주해졌다.
또 뭐를 챙겨 오시려고 그러시나 가만히 보고 있던 그때였다.
잠시 어딘가 사라졌던 직원분의 손에 줄자가 들린 채 다시 돌아오는 게 보였다.
“지금 재 보라고요?”
줄자를 가지고 오는 걸 보며 묻자, 직원들은 단체로 짜고 맞춘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
[와!]
채팅창을 보니, 환영하는 분위기.
직원분들은 카메라 앞에 비치기 싫은 듯 이은지한테 줄자를 내밀었다.
내가 서 있는 동안 이은지는 키를 재는데…….
“백, 팔십, 삼, 점…….”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될까.
그냥 한 번에 말하면 될 걸 자릿수마다 뚝뚝 끊어 읽는 이은지 때문이었다.
“……칠!”
“아, 좀! 바로 말하면 되지 왜 이렇게 오래 걸려.”
“그럼 니가 숫자를 가르쳐 주던가.”
“배웠잖아!”
“아늬, 이 쬐매난 걸, 어? 쫙 땡겨서 보는데 니 눈깔엔 이게 잘 보이냐? 어?”
“멍청이냐? 키 쟀으면 손가락으로 짚어서 편하게 들고 확인하면 되잖아.”
“아니―.”
이은지는 반박하려다 내 말 그대로 행동을 해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오, 그러네.”
“아오, 이 빡 대가리.”
“와…… 이은호, 천잰데?”
“너 빼고 세상 사람 전체가 다 알던 거다.”
“아, 이렇게 보면 되는구나.”
이은지가 다시 한 번 감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헛웃음이 터졌다.
“하여튼 183.7이라네요. 키 컸네.”
결과를 다시 이야기하며 채팅창을 돌아보자, 채팅창에는 또 ‘ㅋㅋㅋㅋ’들이 도배되고 있었다.
‘이은지 바보짓이 웃기긴 하지.’
조금 전 일을 다시 생각해도 또 한 번 피식 웃음이 터졌다.
이번엔 내가 이은지 키를 쟀다.
이 바보보다는 훨씬 빠르게 확인했고 이은지 키는 본인이 말한 그대로 ‘173.7’이었다.
은지는 초등학교 6학년 이후 갑자기 나보다 커지기 시작하더니 졸업 때 이미 170을 넘겼었다.
나는 이은지랑 다르게 160대 초반이었고,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 점점 급격하게 커졌던 걸로 기억한다.
‘부모라는 작자들이 참 싫기는 하지만…….’
키는 선천적인 문제라던데, 이것만큼은 고마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큰 덕분에 어디 가서 무시는 당하지 않았으니까.
깜짝 신체검사 이후, 다시 질문 타임이 이어지던 그때였다.
[언니 ㅠㅠ 저 요즘 학교 선배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요.]
[언니는 이럴 때 스트레스 어떻게 풀어요? ㅠㅠㅠ]
“풉, 하하.”
“왜 웃어.”
“아니, 저 질문 때문에.”
“뭐.”
이은지는 뒤늦게 질문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내 쪽을 황당하다는 듯 봤다가 다시 카메라를 돌아봤다.
“쓰레기 밟아요.”
[?]
[?]
[???]
[?]
“왜? 진짠데?”
“하하하하핰. 갈고리 수집가다. 갈고리 수집가.”
무수하게 이어지는 물음표들이 웃겼다.
“어허, 갈고리 펴세요!”
[!]
[!!!]
[!]
세상에.
이은지가 외치자 이퍼 님들은 일제히 이번엔 물음표―?―가 펼쳐진 느낌표―!―를 줄지어 치기 시작했다.
‘귀여워.’
뭐, 이은지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맞는 말이긴 한데 이렇게 말해 버리면 꼭 쓰레기를 때려서 처리한다는 것 같다는 게 문제였다.
“쓰레기를 밟는다고만 하면 때리는 거 같지 않냐.”
“아.”
내가 설명을 해 주고 나서야 이은지는 그제야 이상한 부분을 깨달은 듯 상세하게 설명을 보탰다.
“이게, 분리수거장을 가면 라벨을 안 벗기고 버린 페트병이 많아요.”
[????]
“그거 분리수거가 안 되거든요! 그래서 그거 라벨을 다 벗기고 뚜껑을 살짝 연 후에 공기가 들어가게 해 준 뒤에 다 밟아요!”
문제는,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그게 더 이상한 게 문제였다.
[되게 자연 친화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이네요?]
“맞아요! 여러분도 해 봐요. 꼭 스트레스가 때문이 아니라도 생각보다 시원하기도 하니까. 재활용할 때, 라벨이 붙은 건 일반 쓰레기로 다시 선별돼서 버려진다고 하거든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 웃음이 나면서도 왠지 처음에 이 이야기를 그대로 이은지한테 해 줬던 아저씨가 생각났다.
‘빵집 아저씨,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실까.’
이름도 성도 모르고 그냥 ‘빵 아저씨’라고 불렀던, 어린 우리를 구해 줬던 영웅.
더러운 꼬맹이들이 돌아다니면 당연히 신고는 들어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릴 위해 나온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땐 그들이 너무 무서웠다.
아무것도 모르던 꼬맹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린 겁에 질렸고, 구조의 손길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더 깊이 숨어 버렸다.
「“너희는 잡히면 살던 곳으로 돌아가게 될 텐데. 뜨잉, 쯧.”」 //기울임
들키면 혹시나 그 집에 알려지지 않을까.
그 사람한테 다시 붙잡히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우리를 숨겨 준 건, 우리를 이해하는 같은 신세의 노숙자들이었다.
사실, 어쩌면 그들이 더 겁을 준 탓에 더더욱 숨어 산 것도 있었다.
‘그게 더 해가 된 건지 득이 된 건지는…….’
그땐 참 감사했는데, 솔직히 아저씨를 만난 이후인 지금은 잘 모르겠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는 조금은 사람답게 이은지는 아이답게 보낼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결국엔 지옥 같던 거기에 돌아가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땐 그래도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았다.
이은지랑 난 그림자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었었다.
저녁에 나갔다가 새벽에 집이라 부르는 허름한 폐허로 돌아오는 길 고양이 같은 삶.
아는 것이라고는 서로가 지은 이름과 도망치는 것과 숨는 것.
훔쳐서라도 먹고 살아가야만 했던 생존 본능뿐인 시절.
분명 부모가 있었음에도, 난 지금껏 우리의 존재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처음 알게 됐었다.
주민등록번호의 유무 역시 빵집 아저씨가 우릴 신고한 덕에 알 수 있었고, ‘이은지’와 ‘이은호’라는 우리 이름이 이 나라에 새겨진 건 결국 부모가 아닌 빵 아저씨 덕분이었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우리 같은 놈들을 받아 주는 곳이 이 나라에 있다는 것도.
우리가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도.
교복을 입어 볼 수 있던 것도.
모두 아저씨가 지원해 줬고, 세심하게 알려 줬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질 좋은 플라스틱이 많아야 선별해서 쪼가리로 만든 후에, 끅―. 이걸 재활용해서, 흐윽…….”
이은지는 설명하다 보니 감정이 격해진 듯 조금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난 다른 말 대신 이은지 등을 툭툭 쳤다.
토닥이는 것치고는 강했지만, ‘카메라 앞이니까’ 정신 차리라는 의미도 더해진 손길이었다.
‘네가 말했었잖아. 카메라 앞에서는 웃으라고.’
이은지는 살짝 맺힌 눈물을 닦아 내며 말을 이었다.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 헤헤. 미안해요.”
[울지마 ㅠㅠㅠ]
[지지 왜 우러ㅠㅠㅠㅠ]
[ㅠㅠㅠㅠㅠ]
새삼, 채팅을 읽으며 이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이런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해서 이 어플을 깔았고, 이 방송에 들어왔다.
어릴 적 지나가는 길에 TV 너머로 봤던 빛나는 아이돌들.
사랑받는 연예인들.
멋지고 예쁘고 좋은 것들을 걸치고 카메라 앞에 비치던 그 사람들.
새삼스럽지만…….
‘아.’
난 이미 내가 바랐던 그 존재가 되어 있구나.
실감이 났다.
“우리 이퍼들, 많이 사랑해.”
“푸하.”
이은지가 울먹이면서 말해 같이 울컥하던 그때, ‘이퍼’라는 팬명 덕분에 웃음이 터졌다.
이퍼들.
[랑이도 해 줘]
[랑이는!]
[은호도!]
[은호 님도 해 줘요!]
채팅의 재촉에 못 이겨, 난 뭉클한 기분에 눈가에 맺힌 눈물을 대충 슥 닦아 내며 입을 열었다.
“나도, 이퍼 님들 많이 사랑해요.”
조금 잠겨 있긴 했지만, 어느 때보다 행복에 겨운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