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91)
“원홀, 홀인원, 이응은 내 블랙홀이니까 블랙홀. 하하하. 갑자기 왜 ‘이슬’에서 ‘홀’로 빠지셨어. 부모님, 이지온, 호빵펀치? 호빵펀치요? 이건 왜―.”
이은지가 채팅을 읽어 내려가던 그때였다.
“어!”
“깜짝이야. 왜?”
내 눈에 띈 멀쩡하고 괜찮고 좋은 이름!
“2%, 이지온 저거 둘 다 좋다.”
한참 별난 이름들 틈에서 ‘이지온’을 썼던 팬분이 이어서 이유를 외쳤다.
[E-UNG를 보면 팬심이 쉽게 켜지니까! 이지온! 사랑해! 이응!]
‘이지온’을 외친 팬분의 해석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우~~~~~우~~~~]
[재미없어~~~~~]
하지만 아쉽게도 이름을 가질 팬분들의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오히려 ‘응가’가 더 반응이 좋을 정도로…….
제발, 이러지 말라니까.
‘우리 응가들―.’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다시 돌려봐도 이건 아니다.
이후에도 채팅창에는 멈추지 않고 수많은 제안이 쏟아졌다.
“이빨 요정? 왜 이빨 요정이에요?”
[시비 걸면 앞니 터는 여동생이라서]
“하하하하, 아, 그거 맞지.”
이은지는 어이가 없어서 터졌고, 난 진심으로 크게 웃었다.
[응답]
[이하]
[이후]
수많은 괜찮은 이름들이 나왔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점점 산으로 가는 이름들.
특히 다시 등장한 그놈에 ‘응가’는 일부러 못 본 척 눈을 돌렸다.
그때였다.
‘이지온’ 이후, ‘이유 없는 알흠다움’이 등장했다.
[이유 없는 알흠다움?]
[줄여서 ER?]
[이룸 EROOM]
[어! ER이면 응급실?]
오, 괜찮은데?
슬슬 멀쩡하고 괜찮은 이름들이 나오던 그때였다.
[2프로]
[E퍼센트]
[2% 응을 기울인 느낌으로 %]
지금까지 나온 반응이 좋았던 이름들을 모아 투표를 진행했다.
“응아 귀엽잖아!”
“제발 닥, 조용해. 팬분들 부추기지 마.”
나는 제발 저 망할 ‘응아’만 아니면 다 좋았다.
하지만 이은지는 끝까지 본인이 제시했던 ‘응아’를 밀었고 덕분에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다.
너무 치열해서 난 무교임에도 불구하고 촬영 중에 무릎 꿇고 기도까지 올렸다.
“하하핰핰핰핰, 여러분! 이은호 지금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어요옼홐핰핰!”
이은지와 직원들까지도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눈물 나게 웃었다.
[3]
[2]
[1]
결과표가 하얗게 불태워졌다.
불태우고 싶었다.
내가 처음에 고른 ‘이지온’은 진작에 떨어졌고, 마지막 결승전까지 남은 건 ‘2%’와 ‘응아’였다.
1:1로 맞붙은 게 하필 이은지가 지지하고 제시했다던 ‘응아’였기 때문일까.
‘응아’만큼은 싫다던 60% 사람들은 어떻게든 ‘E%’에 더 많은 투표를 던졌다.
난 조금 희망을 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응급실’을 부르짖었으니까.
[잠시 후 결과가 발표됩니다.]
[1. E%: 52.1%]
[2. 응아: 47.9%]
살았다.
살았어!
4%를 조금 넘는 간발의 차이였다.
“우리 이! 퍼(E%) 님들!!!”
경상도 출신이라 그런가, 2와 E의 억양 차이가 확실했다.
은호가 신나서 만세를 부르며 카메라로 달려갔다.
이은지는 천천히 흘러내리며 땅을 짚고 좌절했다.
꼭 추억의 ‘OTL’이 된 것 같았다.
“일어나, 이은지. 인사해 달라잖아.”
아, 기분이 너무 좋다.
이은지가 비척거리며 겨우 일어나서 채팅창을 확인하자, 채팅창은 아니나 다를까.
‘ㅋㅋㅋㅋㅋ’로 도배가 되어 있다.
“얼른, 우리 이퍼 님들 해 줘.”
“우리 이…….”
이은지의 갈 곳을 읽은 손은 어정쩡하게 테이블 위에 얹어졌다.
“우리 2%들…….”
“2말고 E퍼잖아.”
“아, 윗지방에서는 비슷하거든!”
“그래. 뭐든 니가 말한 그거보단 낫지.”
응아보단 나으니 E%든 2%든 뭐든 만족한다.
“이퍼 님들, 정말 이름에 불만 없어요……?”
[네]
[네!]
[응급실도 괜찮았는데]
[넼ㅋㅋㅋㅋㅋ]
[네]
[싫어ㅠㅠㅠ 응아가 더 귀여워]
[ㅔ]
[ㄴㅔ]
아주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네!’, ‘ㅋㅋㅋㅋ’거리는 채팅들.
빠르게 사라지는 싫다는 채팅과 다른 제안이 더 마음에 든다던 내용이 눈에 띄었지만.
다수결의 세계는 냉정했다.
“2%들…….”
“E% 님들.”
일부러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분들’이라고 부른 건데 채팅창은 다른 의미로 격하게 불타올랐다.
“우리 이퍼들, 이퍼들. 부르다 보니까 입에 붙는 것 같기도 하고…….”
“이은지.”
“왜…….”
“채팅창 봐.”
이은지 부름에 고개를 들자, 채팅창에는 또 한 번 격한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프로 사랑해 해 줘!]
[이퍼 사랑해 해 줘요!]
[E% 사랑한다고 해 줘!!!]
[2% 더 사랑해 해 줘!!!]
[사랑해 해 줘!!!]
우리 팬들, 왜인지 압박에 도가 텄다.
갑자기 사랑한다고 해 달라니, 이건 좀 민망한데.
“얼른 해!”
“넌 안 하냐?”
“우리 이퍼 사랑해!”
일부러 부른 건데, 이은지는 오히려 이때를 노린 듯이 팬 네임이 채택되지 않아 삐진 건 잊어버린 것처럼 활기차게 머리 위로 큰 하트까지 만들며 외쳤다.
‘쟤는 저걸 어떻게 저렇게 쉽게 할까.’
경이로운 눈으로 이은지를 보고 있자, 이은지가 갸웃거리며 이쪽을 돌아봤다.
“이은호, 너도 해! 우리 이퍼들 안 사랑하냐?”
“사랑하지. 사랑하는데…….”
“기다리시잖아.”
이은지 재촉에 못 이겨 난 겨우 입을 열었다.
“우리 이퍼들…… 사랑해.”
은호의 귀가 곧 불이라도 붙을 것처럼 새빨갰다.
“한 번 더! 안 들린대!”
“이퍼들, 사랑해.”
“한 번 더!”
“E%, 사랑해! 망할! 넌 그만해!”
“하하하하핰. 사랑해, 우리 이퍼들!”
이은지가 뒤따라 소리쳤다.
이제 채팅창이 아니라 내 얼굴에 불붙은 것 같다.
그렇게 E-UNG의 팬 네임은 E%로 결정됐다.
* * *
민망한 고백 시간이 지나고, 이어서 요즘 유행이라는 먹방을 진행하기 위해 직원들이 분주해졌다.
은지가 팬들에게 메뉴를 본인이 먹고 싶은 ‘즉석 떡볶이’로 유도하면서 문제가 됐다.
잠시 후 부탄가스가 연결된 버너가 테이블에 놓이고, 회사 앞 마트에서 방금 막 사 온 듯한 떡볶이 재료들이 준비됐다.
물론 직원들의 준비는 정확히 ‘사 오는 것’까지만이었고, 재료 손질과 요리를 하는 건 우리 일이었다.
거기에 우리의 의상이 흰 와이셔츠에 검은 슬랙스인 모X미룩 패션이었기에 흰 셔츠를 보호하기 위해 직원들은 철저하게 앞치마까지 사 왔다.
“가위바위보?”
“콜.”
할 일과 앞치마는 가위바위보로 고르기로 했다.
첫 가위바위보는 앞치마 디자인 결정전.
나는 신중해졌다.
깍지를 끼고 보이지도 않는 틈새로 뭐라도 알아보려 애썼다.
신중할 수밖에…….
앞치마는 깔끔한 남색 한 벌과 죽은 빛깔의 핑크색 바탕에 곳곳에 자수로 새겨진 꽃들이 가득한 한 벌이 있었다.
꽃에 둘러싸이는 건 내 방 벽 하나면 충분하다.
“가위바위보!”
내가 주먹을 내민 그 순간.
이은지가 보자기를 내밀었다.
“아싸!”
환호하는 은지를 보며 생각했다.
아직은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야, 분홍색 이쁘다.”
“응―. 그럼 너 입으세요. 호호. 난 남색!”
재수 없는 이은지의 웃음소리와 함께 분홍색 꽃무늬 자수 앞치마가 품 안에 들어왔다.
속상하긴 했지만, 다행히 막상 입고 보니 나쁘지 않았다.
“이번엔 할 일이지?”
“어.”
“어떤 걸로 나눌 거야?”
“떡 떼는 거랑 재료 씻어 오는 거 하고, 칼질하면서 재료 준비.”
“오케이. 이거 내가 무조건 이길걸.”
“헛소리하고 있네.”
말은 그렇게 했는데 왠지 이은지 웃음이 불길하다.
“가위바위보!”
“따흣, 씨.”
은호는 가위를 만든 손을 움켜쥐며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하하. 봐, 내가 이긴다니까?”
“말도 안 돼!”
“응. 말 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채팅창을 돌아보자, 거기에 패배의 이유가 있었다.
[랑이는 오튜브 영상에서도 그랬는데 두 번째에 항상 가위 내네 ㅋㅋㅋㅋ]
[그러넼ㅋㅋㅋㅋㅋ]
[가위 랑이~~~~]
“제가 두 번째에 가위를 낸다고요?”
“아! 그거를 말해 주면 어떡해요!”
처음 알았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거 같은데!
“너!”
“아, 한 10년은 더 우려먹을 수 있었는데, 까비.”
“야, 치사하게!”
한참을 투덕거리다 점점 싸움이 격해져 가자 참다못한 대표님이 슬쩍 카메라를 가리고 다가왔다.
대표님이 지나치며 카메라 밖으로 다시 나가는 동안.
어째선지 채팅창에는 ‘오! 빛창석! 실물 등장!’이라며 대표님을 환영하는 듯한 채팅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나랑 이은지는 대표님의 꿀밤이 스치고 간 이마가 얼얼했다.
“나 칼질할래. 채소 씻기 싫어.”
“야채…….”
“또 시작이야. 야채랑 채소 한 번만 더 우려먹으면 야채건 채소건 니 입에 다 넣어 버릴 줄 알아!”
농담이 아닌지 이은지는 웃으며 대파 한 묶음을 손에 쥐었다.
왠지 진심으로 저 흙 묻은 대파들을 내 입에 어떻게든 밀어 넣을 것 같은 눈빛이었다.
좀 움찔하긴 했다.
내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하자, 이은지는 조용히 나를 노려보며 손등에 핏줄이 돋아날 만큼 대파를 움켜쥐었다.
“씨, 씻어 오라며. 대파 줘.”
난 더 놀리려다가 그냥 입을 닫았다.
……생 대파는 싫으니까.
다시 차분해진 분위기 속에서 난 다른 서브용 카메라를 든 직원과 함께 세면대로 향했다.
다 씻고 돌아왔을 때, 난 가만히 이은지가 썰어 둔 도마 위에 놓인 것들을 빤히 바라봤다.
먼저 썰고 있던 건 어묵이었는데 하나같이 영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야, 싹― 다 조사놨네.”
은호가 돌아오자마자 던진 말에 채팅창도 뒤집혔다.
팬들 눈에도 불편했던 부분이었는지, 은호의 한마디에 사이다 폭죽을 터뜨리며 큰 호응을 보였다.
“어지간히 못 해야지. 그냥 칼 내려놔라.”
“아, 왜―에.”
왜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너의 눈이 참으로 대단하구나.
이은지 손에 썰린 어묵들은 썰린 게 아니라 난도질을 당한 수준.
“내놔. 야채는 내가 이미 다 씻었으니까 넌 떡이나 떼.”
“넴.”
은지는 못 했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지 ‘왜―에’라고 대답하던 것과는 달리 군말 없이 칼을 건네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다다다다닥.
빠르게 파와 야채들을 썰고 갖가지 재료를 정리한 뒤, 대충 고추장과 설탕 간장 등 양념들을 섞어 뚝딱 즉석 떡볶이 양념을 만들었다.
[와]
[랑이 칼질도 잘해!!!]
[멋있어 ㅠㅠㅠ]
“나도 잘했눈뒈…….”
채팅을 보며 뭐가 또 그렇게 못마땅한 건지, 은지는 입술이 댓 발 나온 채 투덜거렸다.
그런 이은지를 뒤로하고 난 대충 냄비에 재료를 다 때려 넣으며 “끝!”을 외쳤다.
이젠 끓는 것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랑이는 어떻게 요리를 잘해?]
“내가 요리를 잘하는 거 같아요?”
[응]
[ㅇㅇㅇㅇ]
[잘하는 거 같은데!]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요리하는 건 뭐랄까.
‘생존형……이지?’
어딘가에 팔거나 내어 보일 정도도 아닐뿐더러 흔히 집밥이라고 하는 건강하게 맛있다는 요리와도 거리가 있다.
그냥 먹었던 맛을 기억하고 복구한 정도?
게다가 복잡한 과정은 귀찮아서 대부분 생략하다 보니 때때로 중요한 부분을 빼먹는 경우도 잦다.
예를 들어, 두 달 전 떡국 국물만 해도 고명만 보기 좋게 올렸을 뿐.
사실은 다X다를 왕창 풀은 MSG 국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