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89)
“현아, 믿고 있다.”
툭 던진 지예찬의 눈길에 오현은 흠칫 어깨가 오므라들었다.
하지만 오현이 자신감 없는 걸음으로 녹음실에 들어서기 전.
기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빈말이 아니었던 듯.
은지는 오현의 솔로곡 ‘시스투스’를 좋아했다는 호들갑과 함께, 은호의 멱살을 잡아 머리칼이 휘날릴 정도로 흔들어 대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대박대박대박!”
“아, 왜 이래!”
“갸악, 너 알잖아. 나 오현 선배님 시스투스 좋아하던 거!”
“그건 아는데, 좀 얌전히―. 망할! 억! 놔! 좀!”
은지의 힘은 절대 약하지 않다.
174cm라는 남성 평균에 가까운 키.
먹는 걸 좋아하는 만큼 확실한 관리를 위해 은호보다 더 길고 격한 운동까지.
그래서 은호는 은지의 손을 떨쳐 내기 위해 진심으로 힘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떼어 내기가 힘들었다.
은호가 겨우 은지를 떼어 냈을 때, 지예찬은 흥미롭다는 듯 은지에게 물었다.
은호는 구겨진 옷을 정리하며 폭 한숨을 내쉬었다.
“은지 양, 현이 좋아해?”
“네! 오현 선배님 시스투스가 저 최애곡이거든요.”
“그래? 현이 싱글을 좋다고 말해 준 사람은 처음이네.”
지예찬의 차분한 설명에 녹음실로 들어가려던 오현은 왠지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됐다.
불편했지만 차마 반박할 수 없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그때, 은지가 입을 열었다.
“그래요?”
“응. 시스투스가 반응이 크게 없던 곡이거든.”
“어? ‘시스투스’ 스트리밍 순위는 꽤 오래 유지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니었어요?”
“TaKa에서는 팬들의 반응을 많이 보는데, 성적치고는 ‘시스투스’가 언급은 적었다는 말이야.”
“으움, 직접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큰 반응이 없다는 건―.”
“이은지.”
은호는 슬그머니 조용히 경고 의미를 담아 은지를 불렀다.
“그만.”
“아―.”
지예찬은 은호와 은지에게 친절했지만 가요계에서는 인정받는 대선배였다.
이점을 유의하던 은호와 달리, 은지는 뒤늦게 아슬하게 선을 타고 있다는 걸 깨달은 듯.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괜찮아.”
지예찬은 오히려 기분 좋은 듯 미소 띠며 흥미 어린 눈으로 은지를 빤히 바라봤다.
“그만큼 현이 곡을 좋아해 줬다는 거겠지. 괜찮으니까 고개 들어도 돼.”
은지는 다시 자리에 앉던 그때, 마침 녹음실에 들어가려던 오현과 눈이 마주쳤다.
오현은 씁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그대로 몸을 돌렸다.
은지가 말없이 들어가 버린 오현을 빤히 보자, 대각선 자리에 앉아 있던 서승연이 대변하듯 입을 열었다.
“쑥스러운가 봐.”
“혹시 제 얘기가 기분 나쁘셔서 그런…….”
“전혀. 오히려 좋았을걸.”
“그래요?”
“응.”
“‘시스투스’는 현이가 처음 욕심내서 해 본 도전이었거든.”
은지가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린 그때, 서승연은 지예찬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은 너희가 있어서 조금 나은 것 같지만, 평소 형은 녹음 때 굉장히 날카롭거든.”
“아…….”
“시스투스 녹음 때, 의식 못 하고 툭툭 말해서 상처 많이 받았지.”
둘 다.
서승연은 뒷말을 묵음으로 아꼈다.
그사이 녹음이 시작된 듯 스피커를 통해 인트로를 알리는 심벌 소리가 흘러나왔다.
의미 없이 던진 한마디가 줄이 되어 그를 얽메어
이 한마디가 네 숨통을 죌까 언젠간 내 목을 죌까
* * *
녹음은 여유롭게 이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몰랐지만, 지예찬은 내내 놀란 눈으로 오현을 빤히 보고 있었다.
‘자기 팬이 있어서?’
현은 평소 녹음실에만 들어서면 소심하게 움츠러든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예찬은 이 점이 크게 못마땅했고, 반항심에 욱해서라도 큰 소리를 내보길 바랐었다.
‘힘내. 응원할게. 잘하고 있어.’
이런 좋은 말은 거리감이 있는 사람들한테는 참 쉬웠다.
하지만 가족 같은 팀에게 하기엔 괜히 낯간지러웠기 때문일까.
괜히 좋게 응원할 수 있을 때도 ‘잘하자. 망신 안 당하게 잘해야지.’ 이런 부정적인 말만 던져 댔다.
그런데 그럴수록 현이는 작아졌다.
정확히는 ‘시스투스’를 녹음하던 그 무렵부터였던가.
지예찬은 해야 할 말만 전하는 정도에 그쳤다.
「“직접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큰 반응이 없다는 건―.”」
은지 양의 말이 맞다.
콘서트에 오지 않는다고, 딱히 게시판에 글을 안 올린다고 해서 우리 포션―톡신의 팬클럽―이 팬이 아닌 건 아니니까.
현이의 노래도 결과 자체는 나쁘지 않았었다.
아니, 오히려 성적만 보자면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차라리 현이가 기운이 없을 때 그냥 지나가는 말로라도 괜찮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Hear no evil
See no evil
Speak no evil
현이의 녹음이 지나고, 뒤이어 트랙에 먼저 녹음된 은호의 노래가 이어졌다.
지예찬은 씁쓸한 눈으로 턱을 괴며 오현이 녹음하는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평소 채찍질로 오현의 능력이 95%가 발휘되었다면, 오늘의 오현은 110%였다.
현명한 원숭이가 손을 내밀어
혹시 모르잖아 괜찮을 거야
미안해
사실 난 괜찮지 않아
지예찬은 깨달음을 얻은 눈으로 오현을 보며 웃었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같이한 것 같은데.’
현은 오늘에서야 처음 녹음실에 섰던 그때처럼 자신감 있는 모습이었다.
녹음이 끝나고, 지예찬은 토크 백을 누르며 입을 열었다.
“잘하네. 잘했다, 현아. 잘했어.”
녹음을 마치고 나면 오현은 항상 굳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오늘 오현은 조금 놀란 듯 창 너머를 보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생방송
「E-UNG와 TOXIN의 합작!
디지털 싱글 !
공개 기념 생방송이 진행됩니다!」
한동안 은호와 은지의 과거 영상과 녹음하는 모습만 올라오던 E-FAN에 새 공지가 떠올랐다.
“뜨겁네요.”
“뜨겁죠. 뜨거울 수밖에요. 얼마나 설레는데.”
은호가 놀란 눈으로 게시판을 읽어 내릴 때.
슬기는 은지의 머리를 매만지며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언니도 저희 팬이었다고 했었잖아요.”
“팬이었는 게 아니라, 아직도 팬이거든요. 제 애정을 과거로 밀어 내지 마요.”
“어, 그, 그런 건 아닌데…….”
슬기의 장난에 은지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는지 입술을 앙다물어 버렸다.
“헤헤, 장난이에요. 왜요?”
“…….”
“궁금한 거 있어요?”
“…….”
“우리 은지 님께서 무엇이 그렇게 궁금하셔서 물어보셨을까? 이야기해 주시면 안 될까요?”
뾰로통해진 은지를 보며 슬기는 애정이 어린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한 번으로는 풀리지 않자, 슬기는 재차 물으며 은지의 입이 열리도록 만들었다.
“그, 있잖아요.”
“네―.”
“다른 팬들은 팬 네임이라고 하나, 그런 거 있잖아요.”
“오. 안 그래도 저희는 언제 생기나 했는데, 생각해 둔 거 있어요?”
“으음. 우리 팀 이름이 이응이니까, 응아? 응이?”
“…….”
은지 머리를 정리하던 슬기의 손길이 멈췄다.
“별로예요?”
“네.”
은지가 묻자, 슬기는 일말의 고민 없이 답했다.
“그러면, 으음…….”
다시 고민에 빠진 은지.
슬기는 은지를 웃으며 보고 있긴 하지만, ‘응아’에 받은 충격 때문일까.
불안한 마음이 불길처럼 점점 커졌다.
“은지 님.”
“네?”
“스트리밍 날 그냥 팬분들께 여쭤보는 건 어때요?”
또 이상한 팬 네임이 나오기 전에 사전 차단을 위해 아무렇게나 던져 본 말이었는데, 그때였다.
“오, 슬기 씨! 그거 괜찮네!”
슬기의 의견에 답을 한 건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박 대표였다.
“굳이 스트리밍 날까지 기다릴 거 있나? 그날은 우리 애들 팬 말고도 톡신 팬들도 오잖아.”
“그, 그렇죠?”
“흠, 그럼 오늘. 은지야, 어떠냐.”
“뭐, 뭐가요?”
“어차피 홍보용 영상 촬영하려던 건데, 기능 테스트 겸 시험 삼아 생방 켜 보자고.”
“예? 에? 이렇게요? 갑자기요?”
“갑자기라니, 얘는, 하하. 언제는 갑자기가 아닌 적이 있었다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박 대표를 은지가 황당한 눈으로 보던 그때였다.
짤랑―.
갑자기 들린 종소리에 셋의 시선이 동시에 입구로 향했다.
“왜, 왜 그렇게 봐.”
촬영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돌아온 은호는 자기를 빤히 보는 시선에 당황했다.
“이은호.”
“왜.”
“대표님이 오늘 생방하재.”
“뭐?”
은호는 막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보다 더 황당한 눈으로 박 대표를 돌아봤다.
박 대표는 조용히 엄지를 치켜든 채 웃고 있었다.
“진짜요?”
“안 될 게 뭐 있냐.”
“아니, 그건 그런데, 너무 갑작스러운 것 같은데…….”
“그래서, 싫어?”
“아뇨 싫지는 않은데 생방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지 정도는…….”
“아까 슬기 씨가 말했는데, 너희 오늘 생방하면서 팬명 정해 와라.”
“팬명이요?”
“그래. 톡신한테는 ‘포션’이라고 팬들한테 이름 있잖아.”
“음. 하긴, 선배님하고 같이 방송할 때도 저희 팬들을 따로 칭하는 호칭 있으면 좋을 거 같으니까……. 네. 할게요.”
은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리고 은호가 ‘OK’한 순간, 갑자기 결정된 생방송에 뒤집힌 건 직원들이었다.
본래 준비된 건 짧은 홍보 영상을 촬영하기 위한 새하얀 벽과 장비들뿐이었으니까.
이대로도 괜찮다는 박 대표를 밀어내고 오히려 NRY의 직원들이 더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무것도 없던 세트장엔 깔끔한 책장과 인형 등 나름 인테리어가 갖춰졌고, 혹여나 방송 도중 배터리가 모자랄까 예비용 카메라가 추가로 설치되었다.
추가로 배터리와 멀티탭 등 철저한 준비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방송국 세트장이 부럽지 않은 공간이 완성됐다.
“어디서 이런 분들을 모셔 왔어요……?”
이 과정을 실시간으로 감상한 은호는 감탄을 아끼지 않으며 박 대표를 돌아봤다.
박 대표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내, 내가 인재들이 많다고 했었잖니…….”
태연한 척을 했지만, 박 대표도 직원들의 행동력에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잠시 후, E-FAN에는 공지글이 하나 올라갔다.
* * *
[[공지 사항] 30분 뒤, 오후 7시! E-UNG의 깜짝 생방송이 켜질 예정입니다!]
「E-UNG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께!
오늘 생방송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E-FAN을 이용해 주시는 E-UNG의 팬 네임을 정할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아이디어가 채택된 분께는 감사를 위해 ‘E-UNG의 포토 카드’와 ‘문화 상품권’을 선물로 보내 드릴 예정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리며, 오늘 오는 7시에 만나요!
―NRY 엔터테인먼트 일동 올림
P.S 은지 曰, 응아나 응이는 별로일까요?」
└[설마 응아가 팬명?]
└[안 돼 (단호)]
└[아이고 지지 님….]
└[문상 됐고 포토 카드!!! 포카!!! 가지고 싶어!!!]
└[저 응아 들은 랑이 님 반응이 어땠을까]
└[나만 괜찮다고 생각한 거야?]
└[응. 너만…….]
└[응아는…… 너무 부끄러울 거 같은데]
└[나 응아 소속이야!]
└[ㅠㅠㅠㅠ아니야… 이건 아닌 거 같애]
└[앜ㅋㅋㅋㅋㅋㅋ]
└[지지 님 미안해요 이건…]
└[이건 아니얔ㅋㅋㅋㅋㅋ]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응아 안 되려고 7시에 알람 맞춰 놨다 ㅋㅋㄱ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