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88화 (88/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88)

앞서 같은 후렴구가 지나고, 노래는 어느새 브리지 구간으로 이어졌다.

이어지던 심벌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808 베이스는 둥둥거림만 남아 노래를 이끌었다.

지예찬 선배님 곡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악기가 쓰이지 않아 목소리가 그 악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쁘게 말하면 리듬만 들으면 심심하다는 말이지만, 반대로 보자면 목소리를 살리기엔 좋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다룰 수 있는 악기는 없는 대신, 목소리 하나는 잘 다룰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하나둘.

클릭 트랙의 탁탁 두 번째 소리에 맞춰 사라졌던 심벌이 친구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드럼이 더해져 훨씬 화려해진 클라이맥스가 이어졌다.

척은 못난 면을 감춰 주지만 완벽하진 못해

처음엔 선배님들을 생각하며 쓴 가사였다.

근데 1절을 보니, 어째서 나도 공감이 되는 건지 생각해 봤다.

나 역시 회귀 전 이를 악물고 1등을 못 해도 실력만은 인정받으며 자리를 잡았었다.

얕은 막이 부서지면 파편들이 너를 향해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져라.

흔히들 그렇게 말을 하는데, 돌을 던지는 사람 중 제 죄를 아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그 돌을 던지는 것은 과연 죄가 되지 않는 걸까.

내뱉고 써 내려간 모든 것은 남는다.

‘그리고 나한테도 남았지.’

욕받이가 되었던 그 시절, 나는 웃었다.

‘그놈들은 내가 망가지기를 누구보다 바라던 놈들이었으니까. 그게 재미였으니까.’

그들을 용서했느냐를 묻는다면, 나는 이은지가 아니라서 차마 그러지는 못하겠더라.

이은지처럼 누군가를 쉽게 용서하기엔 내 속에 쌓인 것이 많아서.

빌고 비는 그들을 몰았다.

그랬는데, 죗값을 먹이면서 난 세상에 ‘독한 놈’이 되었다.

왜 받을 죗값을 먹인 건데 내가 독한 것이 된 걸까.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입을 가려도

살면서 진심으로 사람을 대한 건 이은지가 유일했다.

상대를 의심하고 친절에도 마음을 놓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좋은 척, 즐거운 척 연기를 해 왔다.

그랬는데 연기를 할수록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고, 그 상처는 부메랑처럼 나한테 돌아왔다.

들었던 것이 보았던 것이 말했던 것이

그런데, 이런 ‘척’으로 쌓인 것 외에도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일은 꽤 흔한 일이었다.

이은지와 나도 데뷔 이전부터 같은 학교 동창생에게.

때로는 사람들에게, 가족이라는 존재들에게, 흔히들 부모라는 그 사람에게.

굳이 악플러가 아니어도 많이 아팠었으니까.

때로는 호의로, 부담돼서, 누군가는 자신도 맞았으니 너도 맞아야 한다는 이기심으로, 단순한 재미로, 실수로. 이유는 어떻게든 붙일 수 있는 것이다.

내 머리 위 춤추는 Three monkeys

저녁이 곧 너에게 인사하겠지

그런데 과연 내가 피해자이기만 할까.

결론적으로 우린 서로에게 욕이라는 돌을, 무시라는 돌을, 폭력이라는 돌을 던지고 맞기를 반복하고 있지 않을까.

나 역시 내가 상처받은 만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에게 돌을 던지지 않았을까.

Three wise monkeys

현명한 원숭이가 손을 내밀어

한순간 너는 손을 붙잡아

괜찮아질 거야 그럴 거라 헛되게 믿어

입도, 손도 조심하고 배려하며 살자고 나도 100% 옳은 사람은 아니니까.

여전히 어떤 행동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모르지만 조심하며 살면 현명하게 살 수 있겠지.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만들면 나도 덜 아플 수 있지 않을까.

현명한 원숭이가 손을 내밀어

혹시 모르잖아 괜찮을 거야

미안해

사실 난 괜찮지 않아

나는 아팠다.

우리는 아팠다.

아픔이 아픔인지 모를 만큼 아팠고 아프다.

권선징악을 믿기엔 세상엔 너무 많은 사람이 있고, 그중 절대 악도 누군가한테는 좋은 사람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들 역시 적어도 자신이 뱉고 쓴 것에 대한 대가를 언젠간 치를 테니까.

질투하고 시기하고만 살기엔 우린 이미 가진 짐이 많기만 하니까.

그래서 는 위로곡이다.

조금이라도 오가는 돌이 적도록 우리 조금만 현명하게 행동하자고.

누군가로 인해 아플, 아팠을 이들을 위해.

나로 인해 아플, 아팠을 이들을 위해.

너로 인해 아팠던, 아플 나를 위해.

* * *

톡신 멤버들은 처음엔 은호가 왜 노래를 시작하지 않는지를 궁금해했다.

“제가 제 차례는 남겨 달라고 했어요.”

은지의 설명에 이해는 했다.

다만 흐르는 시간에 왠지 갑갑해지는 기분은 떨쳐 낼 수 없었다.

내 머리 위 춤추는 Three monkeys

그러다 잠시 후, 은호가 노래를 시작하자 지예찬은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그동안 막내 라인들은 가사지로 눈을 옮겼다.

어디부터 시작하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막내 라인과 최태현은 기대가 컸던 탓일까.

오히려 처음 듣게 된 은호의 노래는 평범했다.

처음에는 그랬다.

한 소절.

한 소절.

그러나 한지의 중앙에 떨어진 먹물 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씩 더해지자, 한지에 퍼져 나가던 먹물은 어느새 한지를 뚫고 바닥을 적셨다.

2절을 넘어갈 무렵엔 평범이니 뭐니 그런 판단이 무의미했다.

누구 하나 침 한 번 삼키지 못할 정도로 바짝 긴장한 상태였으니까.

「“현이 컨디션이 별로다 싶으면 송민이나 승연이 중 한 명으로 체인지할 거거든. 그러니까 가사는 셋 다 봐 둬.”」

한편, 오현은 노래를 들으며 왠지 지예찬에 대한 여러 생각이 가득 차올랐다.

곧 내 차례이기 때문일까.

본인 역시 ‘왜지?’라며 되묻고 있던 그때.

오현에게 필요했던 답은 은호가 노래로 돌려줬다.

현명한 원숭이가 손을 내밀어

혹시 모르잖아 괜찮을 거야

미안해

사실 난 괜찮지 않아

아…….

「“선배가 돼서 적어도 신인들한테 실력으로 망신은 당하면 안 되잖아. 그렇지?”」 //기울임

나는 괜찮다고 다독이며 속에 걸리는 말들이 있어도 삼키고 넘어갔다.

리더니까.

우리를 책임지고 빼냈고, 이젠 이 자리까지 올려 준 사람이니까.

10년이 넘는 시간을 그랬다.

「“솔로곡을 받고 싶다고? 현이 가사 쓸 수 있던가? 너랑 어울리는 곡이 하나 있긴 한데, 너 가사 쓸 수 있어? 못 쓰면 내가 써 줄까?”」

곡은 받았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아니! ‘아프다고 외쳐 봐야 들어 주지 않―아, 내 한 몸 불 질러 불꽃이 피어올―라’라고! 현아, 이게 힘들어?”」

내 싱글곡 ‘시스투스’를 녹음하던 그때.

「“저번엔 잘했었잖아. 왜 이번엔 이렇게 못해.”」

나는 결국 형이 지적하던 부분을 녹음이 끝날 때까지 못 고쳤다.

실수했던 부분은 기계로도 만지지 않고 그대로 마스터링까지 진행했다.

「“하, 실제로 못 부를 거라면 어쩔 수 없지.”」

형의 제안이었다.

그렇게 내 욕심에 제작된 ‘시스투스’는 팬들이 꼭 들어야 할 곡 리스트들을 나열할 때 단 한 번도 언급이 없었다.

나쁜 쪽으로도 그랬고, 좋은 쪽으로도 나오질 않았다.

「“넌 애가 예민해서 그래. 뭘 그렇게 신경 써. 잘 팔렸으면 됐지.”」

넌지시 내가 틀린 거냐는 물음에 TaKa 대표님은 그렇게 말했다.

「“넌 가끔 형이 별생각 없이 던진 말에 너무 크게 의미를 부여하는 거 같다. 끌고 가지 말고 녹음실 일은 녹음실에만 두고 잊어.”」

예찬 형이 했던 말들이 종종 생각난다는 이야기에 승연이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고, 예찬 형과는 ‘시스투스’ 녹음 이후 우린 조금 껄끄러운 사이가 됐다.

진작 말을 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거리감이 느껴지진 않았을까.

이제 와서 이야기를 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버렸다.

「“엄~청. 그때만 해도 막내 라인급이었는데, 이젠 더 잘하겠지?”」

이은호.

얘가 제대로 노래하는 모습은 일전에 형의 Co-Sign 쇼케이스에서 사회를 서 주면서 본 적 있었다.

인정은 하지만…….

나도 제대로 한다면 저 정도는 할 수 있는데.

후배한테 질투하기는, 병X 같이.

질투하는 내 모습이 역겹기도 하면서, 저 녀석처럼 형한테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잘한다.’, ‘잘했다.’ 그 짧은 칭찬을 듣고 싶었다.

* * *

“선배님!”

오현이 이러저러한 생각에 뭉개져 가던 그때였다.

은지가 그런 오현을 돌아봤다.

소파에 앉아 죄라도 지은 듯 고개를 푹 숙인 선배의 모습.

‘왜 저러시지?’

의문은 생겼지만, 단순히 ‘머리 아프고 싶지 않다’라는 이유로 고민은 버려 버렸다.

그리고 평소대로 직구를 던졌다.

“개인적으로 쫌 설레네요.”

“응?”

오현은 갑자기 다가온 은지를 당황스러운 눈으로 돌아봤다.

“그, 저, 제가 오현 선배님 솔로곡을 많이 좋아했거든요.”

“어? 내 거?”

“네!”

“설마 ‘시스투스’ 말하는 건 아니지?”

“맞는데요? ‘아프다고 외쳐 봐야 들어 주지 않아, 내 한 몸 불 질러 불꽃이 피어올라’ 이거요!”

은지는 태연하게 오현의 솔로곡을 흥얼거렸다.

별것 아닌 한 소절이었지만 오현 본인에게 다가온 의미는 달랐다.

“그걸…….”

“은지 양.”

“네!”

지예찬이 부르자, 오현은 흠칫하며 입을 닫았다.

오현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때마침 은호의 차례가 끝났는지, 은지가 들어갈 차례였다.

지예찬 역시 그런 오현을 씁쓸하게 바라보다 다시 녹음실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은지는 녹음실에 들어선 뒤, 준비가 끝났다는 듯 손으로 OK를 만들어 보였다.

타이밍에 맞춰 지예찬은 트랙을 재생했다.

은지는 가사를 이미 다 외워 버린 듯 눈을 감은 채 몰입했다.

의미 없이 던진 한마디가 줄이 되어 그를 얽매여

이 한마디가 네 숨통을 죌까 언젠간 내 목을 죄일까

은지가 박자를 절더니 디렉팅을 보고 있던 지예찬에게 기도하는 듯 사죄하는 손을 보였다.

지예찬은 차분히 트랙을 멈추고 토크 백을 누르며 은지에게 물었다.

“다시 갈게.”

“네! 죄송해요!”

“괜찮아. 괜찮아. 은지 양 노래 한 번 더 들을 수 있고 좋아. 기왕이면 벌스 처음부터 다시 가자.”

“네! 죄송합니다!”

지예찬이 친절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뒤편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오현은 차마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왜 이렇게 자잘한 실수를 할까, 현아.”」

자신이 녹음할 때와는 다른 온도인 예찬의 대답 때문이었다.

언젠간 내 목을 죌까

웃으며 네가 날리는 비수가 두려워서 나는 웃어

울기를 바랄 너를 위해 입꼬리를 끌어 올려

이번엔 성공적으로 마치고, 은지는 헤드셋에 흘러나오는 앞서 녹음한 은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내 머리 위 춤추는 Three monkeys)

What are you doing now?

(저녁이 곧 내게 인사할 거야)

두 번째 차례엔 은지는 실수 한번 없이 두 번째 벌스까지 이어 갔다.

너를 안단 쉽게 뱉은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이 한마디가 내 숨통을 죌까 언젠간 네 목을 죌까

너한텐 모든 일이 쉽겠지 네 일이 아니니까

너는 울어 내 생각 없는 한마디에 무너져서

지예찬은 손뼉까지 치며 은지의 실력에 찬사를 보냈다.

Hear no evil

See no evil

Speak no evil

Three wise monkeys

이어서 노래의 포인트가 될 굵직한 동굴 보이스를 살린 비교적 짧은 최태현의 녹음이 끝났다.

이어서 오현의 차례가 왔다.

“현아,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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