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87)
그동안 은호는 작은 김치전 하나를 나눠 먹기 위해 절반으로 가르고 있었다.
옆에 가위도 놓여 있었지만, 일부러 젓가락을 이용해서 대충 잘랐다.
본 목적은 대충 갈라 더 큰 조각을 자신이 먹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은지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두 조각으로 가른 순간, 은호가 큰 조각을 집어 가던 그때.
은지는 은호가 집어 가려던 타이밍에 정확히 큰 조각을 빼내며 곧장 제 입속으로 골인시켰다.
눈 뜨고 당한 은호가 싸늘한 눈으로 은지를 노려봤다.
박 대표가 여전히 이야기하고 있는 터라 차마 입 밖으로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너…….’
‘흐흐, 아―. 불만이시면 빨리 드셨어야지.’
‘후회하지 마라.’
‘후회는 너나 하지 마세요.’
식탁 위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다음 목표는 동그랑땡과 분홍 소시지였지만 당연히 귀함의 순위는 진짜 고기로 만들어진 동그랑땡이 우세했다.
은호가 동그랑땡 하나를 집어 입안에 넣은 순간.
은지는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리더니 순식간에 동그랑땡 두 개를 단번에 제 입에 밀어 넣었다.
“물론 너희도 지원해 준 나한테 감사하다는 마음쯤은 가지고 있을 텐―.”
“야, 그건 아니지!”
타이밍이 조금 나빴던 게 문제였다.
“……저-어는 잠시만 화장실 다녀올게요!”
“아…….”
테이블에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다.
은지는 진작 눈치를 채고 벌떡 일어나 자리를 비웠다.
그사이 두 개 남은 동그랑땡은 또 언제 먹은 건지, 다섯 개 중 네 개를 혼자 다 먹어 버린 후였다.
은호는 허망한 눈으로 화장실로 도망치는 은지를 좇았다.
“저, 제가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고, 은지…….”
은지가 동그랑땡을 두 개나 한 번에 먹어서 나온 이야기였다.
……라고 박 대표에게 설명하려니 은호는 이건 또 이것대로 허무한 기분이라 차마 말을 끝까지 이어 갈 수가 없었다.
“……먹자.”
“……네.”
때마침 김치찌개가 넘칠 듯 끓었다.
박 대표는 불을 낮추며 은호에게 가장 큰 고기 한 점을 건넸다.
“많이 먹어라.”
“……네. 감사합니다.”
“그래.”
이후에 이은지가 슬슬 눈치를 보며 자리에 돌아왔다.
동그랑땡과 어색했던 분위기에 대한 복수는 김치찌개에 들어 있는 고기를 박 대표와 함께 독식하는 것으로 끝냈다.
불만은 많았지만, 은지는 차마 박 대표 눈치가 보여서 식사가 끝날 때까지 한마디 불만도 못 꺼냈다.
식사는 시작 때와는 반대로 조용한 분위기에서 마무리됐다.
“오늘은 시간도 늦었으니까 올라가 봐.”
“네.”
“대표님도 얼른 가요.”
“내가 갔다고 해서 다시 1층으로 가지 말고.”
은호와 은지는 싱긋 비슷하게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아꼈다.
“잠은 집에 가서 똑바로 자.”
“네!”
“네.”
적어도 자기 전까지는 녹음해도 된다는 허락으로 받아들인 듯 은호와 은지는 미묘하게 기뻐 보이는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박 대표가 구사옥을 떠나, 바로 앞 신사옥이 된 오피스텔로 향했다.
박 대표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나서야 은호와 은지는 1층 현관문을 열었다.
박 대표는 이 청개구리 같은 녀석들이 곱게 말을 들을 리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불안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럼 그렇지.’라며 넘길 수 있는 문제였다.
‘적어도 밥은 제대로 먹였으니까.’
박 대표는 은호와 은지를 잘 알았다.
두 사람이 식곤증이 심하다는 것 역시도.
그로부터 한 시간 뒤, 눈이 다 풀린 은호와 은지는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1층 현관을 나왔다.
둘은 박 대표의 예상 그대로 금방 2층으로 향했다.
* * *
곧 있을 E-UNG과 톡신 멤버들의 녹음을 앞두고 지예찬은 가사지를 넣은 파일을 다시 열었다.
‘현명이라…….’
지예찬은 읊조리며 가사를 읽었다.
하여간 신기한 녀석들이다.
‘우리 애들 옛 눈빛이 생각나기도 하고…….’
결과물을 보면 흐뭇하기도 하고 신경 쓰이기도 했다가 결국엔 마음에 들었다.
기대된다.
이 꼬맹이들이 우리를 이용해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왔습니다.”
“왔어.”
“응. 다 왔구나.”
가사를 살피며 나눠진 파트를 확인하던 그때.
때맞춰 영희를 뒤따라 막내 셋과 최태현이 뒤따라 들어왔다.
“어, 후배님들은 아직 안 왔어요?”
“응. 녹음하고 있으면 곧 올 거야. 일부러 너희는 한 시간 일찍 불렀으니까.”
“왜요?”
이번 소원 사건을 만든 ‘진짜’ 주동자인 주송민이 물었다.
“왜긴, 이야기할 게 있어서 그러지.”
“뭔데?”
“어떤 거요?”
“이거. 은호가 가져온 가사야. 은지 양 픽으로 현이가 들어가고, 내 픽으로 태현이가 들어가기로 했어. 현이랑 태현이는 미리 가이드 보내 줬었는데, 들어 봤지?”
“네.”
“어.”
본인 이름이 나오자 오현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어? 그럼 저희는 왜 불렀어요, 형.”
서승연이 물었다.
녹음을 최태현과 오현만 들어간다면 자신들은 오늘 올 이유가 없었으니까.
“녹음 때 보고 현이 컨디션이 별로다 싶으면 송민이나 승연이 중 한 명으로 체인지할 거거든. 그러니까 가사는 셋 다 봐 둬.”
막내 라인이 나란히 의자에 앉자 지예찬은 미리 복사해 둔 가사지를 하얀 대리석 테이블 위에 놓아 두며 말했다.
“선배가 돼서 적어도 신인들한테 실력으로 망신은 당하면 안 되잖아. 그렇지?”
“에이, 그래도 신인이랑 비교를―.”
“농담 아니야.”
서승연이 말하자 지예찬은 여전히 친절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대화를 가만히 듣던 최태현은 느릿하게 대리석 테이블에 걸터앉으며 예찬에게 물었다.
“잘하나 봐, 걔들.”
“코사인 녹음 때랑 이응이들 데뷔곡 이름이 듀오였던가?”
“어. 맞아. 듀오.”
“그거 녹음할 때 여기서 했거든.”
“잘했어?”
“엄~청. 그때만 해도 막내 라인급이었는데, 이젠 더 잘하겠지?”
지예찬은 일부러 고의적인 의문을 띠며 유독 오현을 쳐다봤다.
오현은 일찍이 ‘Co_Sign’ 쇼케이스 당시 사회를 봐주면서 은호의 실력을 직접 봤었다.
예찬의 대답에 최태현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처럼 어린 친구들하고 비교당하면 민망하잖아. 이젠 경력도 있는데.”
지예찬의 마지막 도발이 스위치가 된 듯.
막내 라인 세 사람의 눈에 이채가 깃들었다.
오현을 시작으로 주송민과 서승연은 조용히 손을 뻗었다.
테이블에 놓인 가사지가 한 장씩 사라졌다.
“잘 썼네요.”
조금 전까지 밝았던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서승연이 날카로운 눈으로 가사지를 훑으며 말했다.
“걔가 나한테 이걸 주면서 이렇게 말하더라.”
“…….”
“‘편하게 썼다.’라고.”
“대단하네.”
오현의 주먹이 테이블 아래에서 강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번엔 잘하자, 현아.”
지예찬의 목소리는 기대감 때문일까.
평소보다 오히려 밝은 분위기였다.
* * *
지예찬 선배님네 스튜디오.
오늘로 꼬박 네 번째 방문이라 처음과 비교하면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섰다.
한편으로는 선배님들과 함께하는 녹음이라 들뜬 기분도 컸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응. 이응이들 왔어?”
하지만 막상 들어선 스튜디오에는 진지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예찬 선배의 밝은 인사에 안 그래도 무겁던 공기가 더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려요!”
이런 분위기는 눈치를 챘다는 걸 눈에 띄게 드러내는 건 옳지 못했다.
오히려 모른 척 나만이라도 알아서 잘 피해 가는 편이 낫지.
적어도 내 경험상에서는 그랬다.
‘이은호, 분위기 좀 무겁지 않아?’
이은지도 비슷하게 위화감이 느껴지는 분위기를 눈치챈 듯 슬쩍 어깨를 밀며 조용히 물었다.
난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다시 모른 척 입꼬리를 올려 가식적인 미소를 유지했다.
주변을 둘러봤을 때, 공기가 무거운 원인은 오현, 주송민, 서승연, 이 세 선배님의 진지한 분위기 때문인 것 같았다.
세 분은 뚫어지라 내가 만들어 온 가사지를 보고 있었다.
뒤풀이 때랑은 전혀 다른 분위기.
하지만 공과 사를 구별하는 것 같은 선배님들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멋있게 느껴졌다.
“시작은, 우리 작사가님이 먼저 들어갈까?”
“어, 제―. 예!”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부탁해.”
“네.”
갑자기 들어온 선배의 제안에 당황한 나머지 어떻게 대답했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녹음실 안에서 익숙한 헤드셋을 귀에 얹고 있었다.
“후.”
대선배님 앞에서 실수할 수는 없으니까.
심호흡 후 집중하려던 그때였다.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토크 백 눌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이은호.”
“늣! 어. 왜.”
선배인 줄 알았는데 은지였다.
‘네!’라고 대답하려다, 훅 힘이 풀리면서 이상한 소리를 또 냈다.
은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곧장 본론을 말했다.
“이거 다음엔 바로 내가 들어갈 거니까 내 건 남겨.”
“알았어.”
“예―압.”
큼큼.
물을 조금 머금고 간단히 입가심하며 입안 전체를 적셨다.
♩♩♩♩
느린 심벌 사운드가 노래의 시작을 알리자, 뒤따라 윌리저 피아노 연주가 이어졌다.
가사를 쓰는 내내 몇 번이나 들었던 도입부였다.
이은지와 선배님이 하실 파트는 괜히 내가 얹는 것보다 온전히 이은지 것으로 두기로 하며 벌스 A의 첫 번째 파트를 지나쳤다.
두둥두둥.
심벌의 리드에 맞춰 조금 더 화려한 효과가 들어간 808 베이스가 더해진 리듬을 감상하며 다가온 벌스 A의 두 번째 파트.
하나, 둘.
차츰 내 파트가 다가오고 있을 때, 클릭 트랙에 맞춰 박자를 세며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노래를 시작했다.
내 머리 위 춤추는 Three monkeys
저녁이 곧 내게 인사를 할 거야
이곳은 은지 파트라 리듬만 타며 간단히 넘겼다.
다시 돌아온 내 차례.
Hear no evil 목소리를 들었다면 귀를 막아
See no evil 그 녀석이 보였다면 눈을 감아
Speak no evil 혹여라도 소릴 낼까 입을 가려
‘Hear no evil’, ‘See no evil’, ‘Speak no evil’은 최태현 선배님을 상상하고 쓴 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내가 하니 왠지 평범한 느낌이 들어 아쉽기만 했다.
이 가사는 처음엔 톡신 선배님들을 떠올리며 쓴 가사였다.
TaKa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간 이후 선배님들의 길도 결코 탄탄대로는 아니었다고 들었다.
출발 지점은 비록 같지 않지만, 선배님들의 고생 중 일부는 나 역시도 경험해 본 상처였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그룹, 톡신.
데뷔 전 연습 기간의 고생.
늦은 데뷔로 인해 외모에 대한 비난.
다른 어린 그룹에 비해 많은 나이와 실력 비교로 받은 악플들까지.
‘아마 내가 알지 못하는 것 또한 무수하겠지.’
선배님들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강제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무너지려 할 때도 몇 번이나 버텨서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었다.
Three wise monkeys
현명한 원숭이가 손을 내밀어
잡아선 안 될 손을 잡아
혹시 모르잖아 괜찮을 거야
정답일지는 모르지만, 당시의 판단이 현명했던 것이길.
아픈, 아플, 아팠던 이들을 위한 위로 곡인 이 곡의 제목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