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86)
은지와 은호는 꼬박 이틀째 녹음을 강행하는 중이었다.
잠을 자기는 한 걸까.
오늘 한 작업 시간만 10시간이 넘었다.
아마 곧 20시간이 다 돼 가지 않을까.
이 녀석들은 녹음만 들어가면 시간이 가는 걸 모르는 건지, 밥도 안 먹고 녹음에만 미쳐있다.
박 대표는 결국 하루가 넘어서자 걱정이 돼서 작업실을 찾았다.
박 대표는 손에는 버릇처럼 오튜브와 E-FAN에 업로드할 영상 촬영을 위해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오. 이렇게 쓰이고 있는 걸 보니까 또 다른 느낌이구나.’
박 대표는 공사가 끝난 뒤에는 두 번째로 방문한 작업실이었다.
“어, 오셨어요?”
“난 신경 쓰지 마. 일단 하던 건 마저 하고 이야기하자.”
“네―.”
박 대표가 들어서자, 은지는 꾸벅 고갯짓으로 인사 후 진행하던 녹음은 계속 이어 갔다.
기존 사옥에도 작업실이 있기는 했었다.
작업실이라기엔 좁은 방구석에 조잡하게 즐비한 건반과 마이크.
그리고 이것저것 악기들이 놓여 있긴 했지만…….
관리가 안 된 탓에 실제로 사용하기엔 준비 과정이 필요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그때에는 나름 ‘스튜디오’라고 불렀던 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공사를 하면서 못 쓰게 된 악기는 버리고 너저분한 작업실을 싹 정리했다.
박 대표가 사용하던 대표실을 비우게 되면서 붙어 있던 가벽을 터 버리고 거기에 좋은 방음 부스를 추가했다.
집의 절반을 사용한 덕에 두꺼운 방음 부스가 들어섰음에도 공간은 여전히 널찍하게 여유가 있었다.
눈이 피로하지 않도록 은은한 간접 등과 분위기를 살릴 포인트 조명들.
거기에 중요한 기기들과 컴퓨터가 들어오고 필요한 악기들까지 세팅을 마치자 이젠 여느 고급 스튜디오가 부럽지 않은 곳이 탄생했다.
‘버리지 않길 잘했네.’
은지가 앉은 뒤편, 박 대표는 구석에 놓인 익숙한 기존 대표실 소파에 앉았다.
사무실에 놓여 있을 땐 편하긴 했지만, 디자인이 너무 낡아서 참 못나 보였던 소파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두운 벽 색과 간접 등 아래에 놓이자 어째선지 레트로 분위기가 넉넉한 ‘느낌 있는’ 소파로 탈바꿈되었다.
“이은호, 하이로 더블링 쌓아 줘.”
“따로 에드립 없이?”
“어.”
“그냥 깔끔하게. 곡 자체가 뭔가, 그 알잖아.”
“오냐.”
……알아들은 거야? 대체 뭘?
그 알잖아.
고작 그 네 글자로 무언가 전달이 되긴 한 건지, 은호는 알았다며 바로 다시 녹음을 이어 갔다.
촬영하면서 작업하는 두 사람을 구경하던 박 대표는 보면 볼수록 둘의 녹음 과정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꼬박 하룻밤을 새워 가며 여러 곡을 계―속 녹음한다.
‘얘들은 목이 쇠로 만들어졌나?’
신기하리만큼 무리 없이 잘 진행하고 있다는 게 대단하긴 했다.
한편, 같이 일을 하는 동업자로서는 피곤한 녀석들이 아닐까.
‘하긴, 이런 녀석들에게 어떤 작업자가 맞겠어.’
수많은 인맥을 뒤져 봐도 은호와 은지는 서로가 아니고서야 힘들 것 같다.
I would do the same again
고여 있는 마음이 놓아지지 않으니까
은지는 토크 백을 눌러 은호에게 바로 다음 파트를 이어 가겠다며 전했다.
“바로 가자.”
“어.”
잠깐 끊어 가는 타이밍에 은호는 틈틈이 물을 마시며 목을 적셔 줬다.
“하이 갈 건데 찍어도 돼?”
“풀린 지 한참이긴 한데, 바로 클라이맥스 가려고?”
“왜, 힘들어?”
“자연스럽게 올리기를 원하는 거 아냐?”
“맞지.”
“그럼 싸비부터 틀어 줘. 힘들어. 준비는 해야 할 거 아냐.”
“엄살은.”
엄살이라니, 이 정도로 했으면 힘든 게 당연하지.
박 대표는 두 사람을 말릴까 잠시 고민했지만, 일단은 약속대로 기다리기로 했다.
투덜거리긴 해도 은지는 은호의 부탁대로 후렴부터 트랙을 재생했다.
그 시절 미련했던 서로가
거칠었던 어린 숨과 흔적뿐인 가치가
하나, 둘.
리듬을 타던 은호는 이어지는 클라이맥스에 원음보다 족히 두 키 높은 코러스를 여유롭게 쌓았다.
악몽조차 되지 못한 기억이 더는 널 시리게 하지 않게
두 번 놓지 않을게 다신 잃지 않을게
하여간 잘 데려왔어.
편안하게 끌어올린 은호의 시원한 코러스는 듣는 사람의 속을 후련하게 만들어 준다.
잘하는 데다 열심히 하는 자식들의 모습을 어느 누가 미워할 수 있을까.
박 대표는 흐뭇한 눈길로 둘을 바라봤다.
“오케이. 이건 이제 됐고, 보자…….”
은지는 화면에 여러 창을 띄워 여러 높낮이의 네모 칸을 빠르게 다듬었다.
바쁘게 무언가를 만지는가 싶더니, 반복되던 구간의 노래 분위기가 미묘하게 틀어졌다.
물론 좋은 쪽으로.
한참을 만지던 은지는 드디어 원하는 모양새를 찾은 듯 만족스럽게 웃으며 토크 백을 눌렀다.
“됐어. 나머지는 나중에 쌤이랑 같이 만질 거니까. 다른 걸로 넘어가자.”
“그래.”
가만히 녹음을 지켜보던 박 대표는 ‘다른 걸로 넘어가자’라는 말에 얼굴에 핀 흐뭇했던 미소가 사라졌다.
‘이놈들이 또…….’
박 대표가 직접 작업실을 찾아온 건 이것 때문이었다.
“은지야, 휴식도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니.”
“그래도 한 십 분만 더 하면…….”
“십 분이 한 시간이 되고, 한 시간이 열 시간이 되고 그렇게 된 게 지금 아니냐.”
“그건 그렇지만, 딱 십 분만요…….”
“너희 밥은 먹었지?”
“……아마도요?”
이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박 대표는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작업실 이용 규칙 3번.”
“식사 시간과 휴식 시간 지키기…….”
“저거 안 지키면 출입 금지 시간 만들어 버린다고 했는데, 그렇게 할까?”
“아니요…….”
은호는 두툼한 방음 부스 안에 있다 보니 바깥소리가 전혀 안 들리는 듯.
밖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갸웃거리고 있었다.
은지가 토크 백에 손을 올리자 기다렸다는 듯 눈썹을 들썩이며 미묘하게 기뻐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은호, 대표님이 밥 먹고 하래.”
은지보다 살짝 처진 눈꼬리 때문일까.
은지의 말을 듣고 표정 변화가 크지 않은 은호의 얼굴에 미묘하게 실망한 기색이 비쳤다.
‘노래하는 게 저리 좋을까.’
살짝 마음이 약해질 뻔했지만 밥은 먹어야 하기에 박 대표는 강경함을 유지했다.
세상에 아티스트를 일하지 못하게 만드는 대표가 어디 있겠냐만, 여러 팀을 키워 봤어도 은호와 은지는 그 정도가 심했다.
일도 어지간히 해야 하는 건데, 이 녀석들은 심각한 일 중독이라 오히려 말려야 평균치를 찾을 지경이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너희 밥은 언제 먹었어.”
은호가 녹음실에서 나오자 박 대표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박 대표는 어두운 벽에 붙어 있는 ‘규칙’ 포스터에 손을 뻗었다.
「하나, 물은 밥이 아니다.
둘, 작업실에서 싸우지 말 것.
셋, 식사 시간과 휴식 시간 지키기.
‧
‧ 」
은호와 은지의 눈이 바쁘게 이리저리 굴러 다닌다.
“물은 밥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었다.”
이놈들이.
설마 해서 써 둔 첫 규칙이건만.
둘의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로 물을 밥 먹은 걸로 치려고 한 것 같았다.
“언제 먹었어.”
“…….”
“…….”
둘만의 소통법이라도 있는 걸까.
은호와 은지는 서로에게 곁눈질을 보내다 눈이 마주치자, 은호는 눈썹 하나를 들썩였고 은지는 티 나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따로 불러서 묻기 전에 눈으로 말 맞추지 마라.”
하여간 방심할 수가 없다.
둘은 평소 치고받고 싸우기도 하고, 장난칠 때 외에는 대화가 전혀 없어 서로에게 관심도 없는 것 같지만, 똑 닮은 얼굴처럼 생각도 비슷한 건지 의외로 눈으로 대화를 할 때가 많았다.
특히 잘못했을 때!
이 녀석들의 ‘무언의 소통’에 당한 것만 몇 번인지.
이 녀석들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그 소통법에 몇 차례 속은 적도 많았던 덕분에 박 대표는 눈치채고 그 ‘무언의 소통’을 막으며 물었다.
“아마 녹음 들어가기 전에 대충 먹었던 것 같습니다.”
“‘어제’라는 말이네?”
“어제…… 저녁에 김밥 헤븐에서 김밥 한 줄 먹었습니다.”
피할 수는 없었는지, 은지가 눈치를 보는 동안 은호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혹시 지금까지 먹은 게 물밖에 없는 건 아니겠지.”
“……물만 마셨습니다.”
“당 안 떨어지더냐?”
“젊은 게 좋더라고요.”
뭔, 저게 무슨.
박 대표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은호의 본인보다 10년은 족히 더 먹은, 괴상한 아저씨 말투에서 한숨의 길이가 1초 이상 길어졌다.
은호와 은지가 녹음에 들어간 게 어제 저녁.
그리고 장장 열여덟 시간이 지난 지금은 바깥에 해가 아주 쨍쨍하게 떴다.
아침을 넘어서 곧 점심이라는 말이다.
“나와.”
“……네.”
“네.”
이 녀석들, 그래도 과했다는 걸 알고는 있구나.
박 대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실상은 잔소리 폭탄을 받을까 얌전히 따라 나간 것뿐이었다.
밖으로 나온 박 대표는 은호와 은지를 데리고 제대로 된 식사를 위해 근처 백반집으로 향했다.
“너희 나랑 계약 당시에 했던 말 기억나냐.”
“계약 당시요?”
“약간……?”
은호는 회귀를 겪은 기간을 합치면 족히 10년이 가까웠다.
심지어 회귀 직전만 해도 머릿속에 떠올리던 거라고는 이은지랑 노래뿐.
“너희가 나한테 말했지 겨울엔 따뜻하지도 여름엔 시원하지 않아도 되니까 상한 밥만 안 먹게 해 달라고.”
“와, 누가요?”
“은호, 네가 그랬었잖아.”
“저도 뭐라고 하지 않았어요?”
“은지, 넌 밥만 안 굶게 해 줘도 감지덕지한다고 했었지.”
“맹랑하네요.”
“맹랑했지. 그때 생각하면…….”
박 대표는 예전을 추억하는 듯 잠시 생각에 잠긴 눈을 했다.
“내가 고양이 키우는 거 알지.”
“네. 두 마리인가, 세 마리 키우시는 거 같던데.”
“맞아. 근데 우리 집 애들도 다 길 고양이 출신인데, 너희가 딱 걔들 처음 거뒀을 때랑 행동이 또―옥같았어.”
“하하.”
은지가 웃자, 박 대표가 따라 웃었다.
경계심은 많지만, 또 사람을 미워하진 않는다.
가진 것도 없건만, 은호와 은지는 오히려 그렇기에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아이들이었다.
그동안 테이블에는 돼지고기와 버섯, 두부가 푸짐하게 들어간 김치찌개가 놓였다.
싱싱한 버섯 상태를 보니 조금 더 끓일 시간이 필요했다.
이어서 손님이 꽤 있는 탓인지, 뒤늦게 테이블에 많은 반찬이 깔렸다.
은호와 은지는 젓가락을 들어 사과 조각이 보이는 과일 샐러드로 동시에 손을 뻗었다.
“집에 있는 고양이들보다 너희가 더 길 고양이 같았는데…….”
박 대표가 추억에 잠겨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은호와 은지는 이야기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젓가락을 바쁘게 놀리는 데 바빴다.
순식간에 과일 샐러드 속 사과는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고 마카로니와 옥수수만 뒹굴었다.
음식이 입에 들어오니 뒤늦게 배고픔이 몰려오는 듯.
은호와 은지의 젓가락은 샐러드 다음 자연스레 작은 김치전으로 옮겨졌다.
“그랬던 너희가 이렇게 자라서…….”
“…….”
“하하. 사실 여전히 사납고 정신없는 건 똑같지만, 너희 일할 때 보면 그래도 그간 열심히 한 게 눈에 보여서 아비라도 된 것처럼 뿌듯하기도 하고…….”
박 대표는 여전히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하지만 이미 박 대표의 이야기는 은호와 은지의 관심사에선 벗어난 듯, 둘의 시선은 테이블에 놓인 김치전에 고정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