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85화 (85/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85)

[지지님과 랑이님의 신곡 대기 D+1]

[랑이님 가사 쓰신다고 하던데 신곡에서 드디어 볼 수 있겠죠?]

랑이님, 지지님.

예전엔 단순히 ‘지지’, ‘랑이’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유독 ‘랑이님, 지지님’이라며 이렇게들 많이 부르시는 것 같았다.

보통 어리면 ‘XX아’, 많으면 ‘XX 언니, 누나, XX 오빠, 형’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회귀 전 내 팬분들도, 이은지의 팬분들도 이런 호칭은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왜지……?’

호기심은 다행히 나랑 같은 생각을 한 새로 유입된 팬분의 게시글로 해결됐다.

「제가 입덕한 지 이제 2일 차라서 그런데

왜 다들 은호 오빠랑 언니한테 랑이님 지지님처럼 님을 붙여요?

이거 혹시 그래야만 하는 법칙 같은 건가요?

혹시나 그런 거라면 죄송해요. 제가 잘 몰라서 여쭤봐요.」

└ 환영해요!

└ 이거 저도 궁금했던 부분인데 왜 그렇게 부르는 거예요?

└ 은지 여신님 은호 남신님을 오그라든다고 줄였다고도 하던데용.

└ 저도 그냥 다른 분들이 쓰시길래 따라 쓰다 보니 익숙해져 버렸어요 ㅋㅋㅋ

└ 그러게요? 저도 갑자기 랑이님! 지지님! 이러고 있어요. 어느새 ㅋㅋㅋㅋ

그냥 누가 처음에 그렇게 불렀고 따라서 쓰다 보니 익숙해져 버렸다는 게 결론인가 보다.

은지 여신님, 은호 남신님을 줄였다는 건 일부러 모른 척 넘겼다.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저건, 좀, 그래…….

[막방 겨우 하루 지났는데 벌써 랑이님 지지님 보고 싶어 ㅠㅠ]

[랑이님 지지님 잘 지내고 있죠? 저는 기다리고 있어요….]

하나씩 귀여운 게시글을 읽는 내내 답글을 남길까 말까.

[저도 좋았어요]

[오래 안 기다리시도록 금방 돌아올게요]

[방송 날 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응원해 주시는 모습 보면서 큰 힘 얻었어요!]

[저도 사랑합니다.]

이렇게 다 하나하나, 마음 같으면 전부 다 답을 달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님 왈.

답을 받기 위해 EG 포인트를 써 가며 글을 남기는 팬분들의 노력의 가치가 줄어든단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 버린 이상 차마 달 수가 없었다.

연락을 주시는 분들은 나라는 사람한테 답 받기 위해서 열심히 포인트를 모아서 연락해 주시는 걸 텐데, 그 가치를 떨어뜨려 버리는 건 그것대로 속상하니까.

수십 차례 고민하다가 난 소심하게 ‘좋아요♥’ 버튼만 눌렀다.

어느새 게시판을 쭉 훑자 대부분 게시글에 모두 ‘♥’가 달렸다.

‘어플, 제안하기를 잘했다.’

이렇게 보니까 조금 뿌듯한 것 같기도.

그사이 이은지도 나랑 똑같은 행동을 하는 건지, [♥]의 개수가 아래 글부터 새로 고침을 할 때마다 하나씩 늘어나며 올라가는 게 눈에 보였다.

‘대표님이 쉬라며 그렇게 잔소리를 하셨지만…….’

아마 이럴 걸 알기 때문에 잔소리를 하셨던 것 같다. 하하.

하지만 이렇게까지 팬분들이 응원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 왠지 쉬는 시간이 아까운걸.

♪♬♪♪ ♪♬♪

오늘도 결국 이은지는 건반 앞에 앉았고, 나는 노트를 펼쳤다.

왠지 대표님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려 가는 게 떠오르지만, 애써 모른 척 난 노트로 눈을 돌렸다.

* * *

결과적으로, 톡신과의 피처링은 소원 5개를 소모하기로 했음에도 1차가 엎어졌다.

지예찬 선배는 현재 본인이 대표인 기획사 소속이기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아직 TaKa 엔터테인먼트에 엮인 다른 멤버들이었다.

TaKa 대표님의 반대가 굉장히 심했다.

멤버들 역시 반발했지만, TaKa는 단호하게 반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쪽엔 그 TaKa를 성장시킨 사람이 있었다.

“집이요……?”

“그래. 가서 담판 짓고 왔다! 내가 TaKa에 해 준 게 얼마나 많은데 우리 애들한테 이 정도쯤은―.”

우리 대표님은 TaKa에서 반대라는 통보를 받은 바로 당일…….

TaKa 엔터테인먼트 대표님의 집으로 직접 찾아갔다.

그리고 그 집 거실에 눌러앉아, 유명한 박창석 영웅담의 시작부터 끝까지 2시간.

영웅담 이야기가 끝난 뒤에는 잔소리 폭탄 약 6시간을 거하게 터뜨리고 왔다며 전했다.

‘와. 8시간……?’

‘……끔찍해.’

길게 하실 수 있다고 생각은 했다지만, 6시간씩이나 잔소리를 할 수 있다니…….

그날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린 왠지 TaKa 대표님에게 남모를 동료애와 애잔한 마음을 느꼈다.

그래도 잔소리의 효과는 확실했던 걸까.

“TaKa 대표가 피처링을 승인했다.”

“오오!”

“거기에 톡신 멤버들 뮤직비디오까지 촬영 참여 허락해 준단다.”

“대박,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러게. 이렇게 해 줄 테니까 대표님한테 제발 다시는 찾아오지 말아 달라는 뇌물 같은 거 아니에요?”

“이놈들이!”

결과물에 뿌듯해하시던 대표님께 찬물을 끼얹은 벌로 이은지랑 난 나란히 꿀밤을 맞았다.

얼얼한 통증이 남은 머리는 여전히 아팠지만, 동시에 앞으로 일어날 일이 설레서 실실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게 좋냐?”

“그럼요.”

“당연히 좋죠.”

“선배들이랑 같이하는 만큼 더 열심히 해라. 톡신 팬들한테 미움 안 받게.”

“네.”

“네!”

“작업도. 선배들 따라가다가 바보같이 예전처럼 너희 색 잃지 말고.”

“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안 잃어요.”

“맞아. 다 집어삼켜 버려야지.”

“그래. 난 내 새끼들 항상 믿고 있다. 알지?”

“네!”

“네.”

이은지는 눈을 빛냈다.

페이옵에게 시달리며 똑바로 목소리를 못 내던 그때를 겪은 이후.

이은지와 난 때론 욕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야 대표님의 말대로 우리 색을 잃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그러니 절대로 두 번 다시 우리가 목소리를 빼앗길 일은 없다.

이은지와 지예찬 선배님이 곡을 조금 더 다듬는 작업을 하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러 3월의 첫 주가 찾아왔다.

지예찬 선배님이 보낸 두 곡의 가사가 완성된 것도 그쯤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완성했네.”

“소스 같은 건 선배님이 자세하게 잘 잡아 주셔서 편하게 썼습니다.”

“이게 편하게 썼다라, 대단한데…….”

오랜만에 찾아뵌 선배의 작업실에서 시험의 시간이 찾아왔다.

지예찬 선배는 가사지를 한참 읽더니 잠시 후 손가락으로 OK를 만들어 보였다.

이걸로 가자는 이야기였다.

긴장 때문에 욱신거리기까지 하던 목과 어깨가 선배가 만든 OK에 곧바로 힘이 풀렸다.

“와, 다행이다.”

“왜, 깔까 봐 걱정했어?”

“걱정만 했을까 봐요. 혹시 몰라서 플랜 C까지 준비해 놨어요.”

“진짜? 아, 아깝다. 그런 줄 알았으면 까고 C까지 다 볼걸.”

“그러실 것 같아서 말 안 했죠.”

“궁금한데.”

“안 돼요. 이건 저희 E-UNG 다음 앨범에 넣을 겁니다―.”

선배는 장난으로 노트를 뺏을 듯 팔을 뻗었다.

“햐, 안 되네.”

다행히 빼앗기기는커녕 닿지도 않았다.

“가사 고칠 부분은 녹음 들어가 봐야 제대로 확인할 수 있겠지?”

“제가 은지랑 집에서 간이로 녹음하면서 맞춰 봤을 땐 딱히 없긴 했는데, 혹시나 녹음하면서 안 맞는 곳 있으면 그때그때 잡아 볼게요.”

“그래. 느낌 좋다. 마침 며칠 전에 세션 녹음도 끝났는데, 보컬 녹음 날짜만 잡고 가면 되겠어.”

“네.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 선배님들 스케줄에 맞춰서 녹음 최대한 빠르게 잡아 주세요.”

“그래. 너희면 굳이 녹음을 미룰 이유도 없으니까.”

선배는 가사지 두 장을 파일에 챙겨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는 내가 애들하고 이야기해서 일정 정하는 대로 연락할게.”

“네!”

“수고 많았어.”

“선배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때, 지예찬 선배는 고개를 저었다.

혹시 내 인사에 문제가 있었나 했지만, 다행히 걱정했던 문제는 아니었다.

“나야 이 두 곡만 한다지만, 너희는 여섯 곡이잖아. 고생은 너희가 많지. 컨디션은 괜찮겠어?”

“충분해요. 오히려 요즘 이은지랑 저랑 녹음할 수 있다고 신나서 하고 있습니다.”

“타고났네. 타고났어. 그래. 팀장님한테 오늘도 녹음 있다고 들었는데, 얼른 돌아가 봐.”

“네!”

선배의 인사에 맞춰 숙일 수 있는 깊이만큼 허리를 숙인 후 고개를 들고 작업실을 나왔다.

지예찬 선배는 조심히 가라며 작업실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손을 흔드셨다.

선배네 회사 복도로 나오자, 입구 앞에 앉아 있던 영희 형님과 눈이 마주쳤다.

예상보다 일찍 나왔는지, 형님은 드시던 뻥튀기 봉지에서 새 뻥튀기 하나를 주시며 물었다.

“벌써 가는 거야?”

“네. 녹음 전에 잠깐 들른 거라…….”

“같이 밥 먹고 가나 했는데 아쉽네. 조심히 들어가.”

“예! 형님도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영희 형님은 내 인사에 자신의 손이 들어가 있는 뻥튀기 봉지를 보더니 갸웃거리며 물었다.

“너 혹시 나 다이어트 하라고 압박하는 거?”

“하하하하. 아뇨. 나중에 식사하실 거잖아요. 그때 인사를 미리 한 거죠.”

“스읍, 뭐지. 분명히 방금 나 놀린 것 같은데.”

“에이, 아닙니다.”

“그래―. 믿는다잉?”

“하하. 전 이만, 녹음 있어서 바로 가 보겠습니다.”

“그려, 잘 드가―.”

사실 장난친 거 맞는데, 괜히 뒤탈 생길까 봐.

받은 뻥튀기를 입에 물고 선배네 회사 건물에서 도망치듯 빠르게 달려 나왔다.

* * *

스튜디오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각.

이은지와 녹음을 위해 잠옷에 가까운 후줄근한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녹음이라고 거창하게 말했지만, 이젠 멀리 갈 필요가 없었다.

3월 초에 완공된 1층!

이젠 바로 1층에 부자 대표님이 우리만을 위한 작업실을 장만해 주셨으니까!

작업실이 생긴 이후, 이은지의 작업 능률은 안 그래도 빨랐는데 날개 돋친 듯 더 빨라졌다.

덕분에 내 머리가 열심히 일하는 중이다.

콰강!

2층 기숙사의 알루미늄 문을 닫자, 이은지가 살살 닫았음에도 바람에 밀린 듯 문이 시끄럽게 닫혔다.

“살살 좀 닫아!”

“바람 때문이거든!”

“구라 치시네.”

“아, 진짜야!”

알고는 있지만 저렇게 까부는 이은지가 재미있어서 일부러 더 시비를 걸었다.

“으, 추워. 이은호, 넌 안 춥냐?”

“아니. 추워. 추운데 너처럼 춥다고 호들갑 떨면 더 추워서 참는 거지.”

바디 프로필 촬영이라도 하듯 난 어깨를 펼치며 가슴과 목을 뻗었다.

“어우, X랄. 아우! 니가 침팬지라도 돼?”

“…….”

“하긴, 얼굴은 침팬지네.”

이은지는 그 모습이 꼴 보기 싫은 듯 앓는 소리를 내며 시비를 걸었다.

난 그런 이은지를 가만히 지켜보며 생각했다.

침팬지라, 그거 괜찮네.

침팬지를 보고 싶어 하는, 아끼는 동생을 위해 리얼리티를 살려, 주걱턱까지 만들며 침팬지 자세로 이은지한테 돌진했다.

“우! 우우! 우!”

“아악! 아아아악! 하지 마!”

커헉.

“하지 마. 징그럽다고! 미친 X끼야!”

너무 가까이 다가간 건 내 판단 오류였다.

이은지의 힘 실은 정권 지르기에 정확히 복부를 맞았다.

순간 피라도 토할 것 같았는데, 다행히 나온 건 침뿐이었다.

한바탕 시끄럽게 놀았더니 배가 고팠다.

“야, 녹음 전에 집 앞에 김밥 헤븐에서 김밥이나 사 오자.”

“귀찮은데, 진 사람이 사 오기. 가위―.”

“X랄 말고 안 오면 저녁에 니 방 앞에서 가위 들고 귀신 부르는 주문 외울 거.”

“아, 그게 뭐야!”

“안 가? 진짜?”

“……누가 안 간대? 하지 마라, 그딴 짓.”

하라고 해도 안 할 생각이지만 일부러 대답은 안 했다.

이 아까운 방법을 버리기엔 인간적으로 이은지한테 효과가 너무 좋은걸.

골목에는 찬바람이 숭숭 불었다.

“잠바나 가지고 나올걸.”

“그러게. 갑자기 날이 다시 추워지네.”

“으, 가지러 가기도 귀찮다. 후딱 사고 작업실 돌아가자.”

며칠 따뜻해지는가 싶더니 날이 갑자기 추워진 2015년 3월 10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