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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84화 (84/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84)

이미 입에 올린 이상 더 뺄 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나도 따라서 홧김에 내질렀다.

“영어로 존멋 은호라고!”

아이디를 들은 이은지는 ‘이 새끼 뭐지?’ 하는 얼굴이다.

내가 X발 이 아이디를 이은지 앞에서 입에 올리게 될 줄이야.

“아……. 존멋 은홐구나. 응. 음.”

방금 뭔가 삑사리가 난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래서 말하기 싫어허헠흐핰핰핰!!!”

하, 이럴 줄 알았다.

빵 터지다 못해 이은지는 폭발했다.

이은지가 웃는 동안 얼굴을 식히려고 마른세수라도 해 봤지만 식기는커녕 손까지 뜨거워졌다.

“X발. 그래서 내가 친다고 했잖아…… 망할.”

X나 쪽팔리네.

“핰핰핰핰핰!!! 커헠! 콜록! 콜록!”

“그만 처웃어! 사레까지 들리고 X랄 한다. 아이고…….”

이은지가 웃는 소리 때문에 얼굴에 피가 쏠린 건지 귀에서 이명이 들렸다.

이은지는 계속 웃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소리로 웃더니, 이젠 의자 위에서 말라비틀어진 오징어처럼 말려들어 간다.

“허, 하, 하아…… 힘들다.”

“그렇게 처웃었으니까 당연히 힘이 들겠지, 멍청아.”

그러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어이가 없어서 이젠 내가 실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족히 몇 분은 지나고 나서야 이은지는 웃음을 멈췄고, 난 뜨거워진 얼굴을 식힐 수 있었다.

그제야 우린 지예찬 선배가 보낸 곡을 들어 볼 수 있었다.

* * *

♩♩♩♩

느린 심벌 사운드로 시작된 인트로.

뒤로 따라오는 로즈(Rhodes) 피아노와 비슷한 분위기의 건반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로즈보다는 좀 가벼운 느낌인데. 윌리저(Wurlitzer) 피아노인가?’

몽환이면서도 무겁지 않은 인트로가 지나고, 윌리저 피아노가 사라지기 전.

드이이익.

빈 곳에 들어찬, 무언가가 리버브된 소리 이후 808 베이스를 시작으로 노래는 첫 벌스가 시작됐다.

낯선 심벌이 리드하는 리듬에 익숙한 808 베이스의 울리는 묵직한 비트가 얹혔다.

808 베이스가 연주하는 리듬은 듀오의 훅을 떠오르게 하면서도 새로운 매력이 있었다.

깔끔하게 완성된 트랙 위로 지예찬 선배의 노련한 목소리가 더해졌다.

단순한 트랙에 선배의 목소리가 멜로디로 얹혔다.

외계어에 가까운 웅얼거림이지만 이건 가사를 쓰는 입장에선 가장 큰 힌트였다.

검은 화면에 비쳐 보이는 이은지는 극도로 집중한 듯 눈조차 깜박이지 않았다.

너무 몰입하고 있기에 검은 화면에 뭐라도 있나 싶어 확인해 봤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검은 화면뿐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이은지랑 난 잠시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난 나대로.

‘어떤 주제를 잡고 가야 할까.’

‘어떤 가사를 넣어야 잘 어울리게 이 멜로디를 살릴 수 있을까.’

이은지는 이은지대로 또 이 곡에 대해 느낀 점이 있는 듯. 선배가 보낸 첫 곡이 끝난 뒤에도 우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첫 곡이 끝나고 잠시 후에 이은지가 물었다.

“두 번째 곡도 있다고 했지.”

“어. 틀까?”

“응.”

두 번째로 선배가 보내 준 곡은 첫 곡과는 또 다른 분위기인 잔잔한 발라드였다.

이번 역시 베이스는 익숙한 808 베이스와 스냅이 주가 되었다.

특징이라면 훅에서 통통 튀는 재미있는 카우벨 사운드가 더해져 있었다.

그리고 벌스가 시작되고 거기에 얹어진 선배의 멜로디를 들은 순간.

이은지랑 난 동시에 서로를 돌아봤다.

“오, 이거!”

“이거. 딱 선배님 곡인데?”

“이거 딱 선배님들 하고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은 느낌이지?”

“어! 맞아! 소원 어차피 두 개 정도는 선배님들한테 피처링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잘됐다.”

소원 두 개를 피처링에 쓰려고 한다고?

못 들었던 이야기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굳이 그럴 필요 있어?”

“왜?”

“일단 하나로 톡신 선배님들하고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하면 되잖아.”

“오?”

“그러고 안 된다고 하면 소원 여러 개 걸어 보고, 그래도 안 된다고 하면 그때 개인당 하나씩 쓰면 되지.”

“오, 개천잰데?”

“하! 이게 니 오빠다.”

“칭찬 한 번 해 줬다고 좋단다. 존멋 은호홐홐.”

“아이디 가지고 그만 놀려라.”

“알았어. 알았어.”

꼬맹이 달래듯 토닥거리는 이은지 손이 짜증 나서 힘껏 쳐 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곡은 픽스했다고 말해?”

“일단 대표님한테도 보내야지.”

“아, 참. 그래.”

그렇네. 대표님을 잊었다.

현재 앨범 들어갈 곡 결정권은 프로듀서인 대표님이 가지고 있다.

이은지와 내 호불호 의견이 대표님의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치긴 하지만, 결정 자체는 대표님의 허락이 필요한 문제였다.

“전화해 볼게.”

“잠깐만!”

대표님께 전화를 걸려던 그때, 이은지가 벌떡 의자에서 일어났다.

“왜?”

“나 재밌는 생각 들었어.”

“뭐.”

“대표님한테 선배님이 만든 곡인 거 숨기고.”

“야, 그건 불법이야.”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 인간아!”

“뭐.”

“평소에 보내던 것처럼 깨톡으로 무작정 보내 보자고.”

“그게 그거 아니야?”

“곡을 날름한다는 게 아니라 몰래카메라 해 보자고, 대표님한테!”

“아…… 흠.”

안된다고 하려다 나도 대표님 반응이 궁금해져서 OK 했다.

[나 ― 대표님 노래 확인 요함]

[E-UNG Version1.mp3]

[E-UNG Version2.mp3]

전송하고, 읽은 표시가 사라진 후 우린 대표님 답을 기다렸다.

3분, 5분, 10분.

시간은 계속 흐르고, 기대하던 기분은 어느새 지루함으로 바뀌었다.

휴대폰만 빤히 보고 있던 이은지는 흥미를 잃은 듯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난 이은지 방바닥에 드러누운 채 이은지가 쌓아 가는 리듬을 듣고 있으니 서서히 눈이 감겨 왔다.

―깨똑.

왔다!

번쩍 상체를 일으킨 순간.

이은지는 녹음 버튼을 끄고 이쪽을 돌아봤다.

“뭐라셔?”

“하하.”

웃음이 나왔다.

[대표님 ― (OK 중인 입술 퉁퉁이 이모티콘)

― 톡신 피처링 들어가면 최고일 거 같은데?

― 은지한테

― 어제 얻은 소원권

― 쓰면 안 되냐고 물어봐]

완벽히 똑같은 생각이었다.

“그러시다는데.”

“이제 선배님이 보내 주신 곡이라고 해 봐.”

이은지 말을 따라 ‘이거 사실은―’까지 쓴 그때였다.

[대표님 ― 그런데 이거 왜 예찬이 냄새가 폴폴 나냐]

돌아온 답은 보니 딱히 긴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나 ― 선배님이 보내 주신 곡이 맞으니까요]

[대표님 ― 어쩐지 구성이 예찬이 느낌이더라]

구성이?

크게 놓고 보자면 내가 들었을 때, 선배님은 ‘듀오’에서 영감을 받은 듯.

첫 곡의 분위기는 지금 이은지가 만들어 낸 곡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나마 두 번째가 차이가 있긴 했지만, 뭐랄까.

은지의 곡이 조금 더 자유롭다?

딱 이 정도의 차이만 있었다.

[ ― 은지는 딱히 훅을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고 그냥 좋은 곡을 만드니까]

대표님의 이야기도 결과적으로는 나와 비슷했다.

[ ― 예찬이는 애가 능글맞아서 노래도 그래]

[나 ― 어떤 부분이요?]

[대표님 ― 은지는 보통 하나씩 쌓아 가면서 느낌대로 악기를 써 보고 이리저리 만져 보면서 트랙을 만들잖아?]

[나 ― 네]

[대표님 ― 예찬이는 훅을 정하고 본인이 알고 있는 레시피에 맞춰서 리드를 구성하는 식으로 트랙을 짜 내려가]

[나 ― 아하]

신기한 정도 외에는 그다지 큰 감흥은 없었다.

나는 작곡을 잘하는 타입이 애초에 아니다 보니, 뭐랄까.

‘교과서만 보고 공부해서 1등 했어요.’라고 하는 천재.

‘하던대로 하다 보니 됐어요.’라고 하는 천재.

‘둘의 차이점을 말해 보자면 이렇다’라고 말씀하시는 정도로만 와닿았다.

지예찬 선배도 데뷔 전부터 본인이 작곡을 해 왔으니, 비교 불가한 천재들인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한편, 이런 나랑은 달리 은지는 큰 감명이라도 받은 듯 ‘헉’ 숨을 들이켰다.

“왜?”

호기심에 물어봤지만, 은지는 벌써 골똘하게 제 세상에 빠진 듯 대답이 없었다.

그동안 나는 결정 내린 것을 대표님에게 전달했다.

[나 ― 은지 소원권 이야기 들었어요]

[대표님 ― 오 그래?]

[나 ― 네

― 이은지는 노래 듣기 전부터 선배님들 피처링하는 거에 두 개 정도는 쓰겠다고 했었어요.]

[대표님 ― 좋네. 내가 2개 걸고 톡신 애들 다 끌고 와 보마]

[나 ― 역시 대표님 ㅋㅋㅋㅋ

―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 그래 예찬이한테는 은호 네가 연락할 거니?]

[나 ― 네 인사도 할 겸 제가 전할게요]

[대표님 ― 그래 쉬는 날인데

― 오래 잠도 많이 자고 푹 쉬어]

좋아하는 걸 하는 것도 쉬는 거니까. 노래 듣고 가사 쓰는 일도 쉬는 것에 속하는 거겠지?

……라고 생각한 순간, 눈치 빠른 대표님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답을 보냈다.

[ ― 넌 작사 노트 펴지 말라는 소리야

― 은지도 컴퓨터 끄고 오늘은 머리도 귀도 다 휴식하라고 해

― 때로는 쉬어 줘야지

― 머리가 더 잘 돌아가고 귀도―]

우수수 쏟아지는 짧은 깨톡창을 보는데, 왜 대표님이 잔소리하실 때 목소리가 들리는 걸까.

[ ― 너희는 내가 이렇게

― 열심히 엄지손가락 아파 가면서

― 이야기를 해도 들어 먹지를 않으니까

― 이놈들아

― 그러니까―]

깨톡, 깨깨톡, 깨톡, 깨톡, 깨톡.

길다.

스크롤을 세 번은 휙휙 넘겨야 할 만큼 긴 잔소리가 쏟아졌다.

[ ― 은지는 또

― 지겹다~~

― 또 잔소리

―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

이야, 대표님.

우리를 굉장히 잘 알고 있다.

마침 이은지는 어느새 연달아 울리는 ‘깨톡’ 소리에 생각에서 벗어났는지 질린다는 눈으로 내 휴대폰을 보고 있던 타이밍이었다.

그래도 전화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깨톡은 적어도 화면에 무언가가 줄줄이 올라와도 안 보면 그만이니까.

♬내 느낌이 경고해

아직 네가 오기 전인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이런 내 생각을 이미 간파했다는 듯 때마침 대표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니가 받을래?”

이은지한테 애처로운 눈길을 보내 봤지만, 일말의 고민 없이 은지는 고개를 저었다.

“니 폰임.”

“…….”

왜 하필 내 휴대폰일까.

“네, 대표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잔소리가 이어졌다.

대표님, 살려 줘요.

‘제발, 그만…….’

대표님의 통화는 장장 한 시간이나 이어졌다.

이은지가 영상통화로 컴퓨터를 끄는 것까지 확인시켜 드린 후에야 통화가 끊겼다.

통화를 끊고 나니 작곡이나 작사는커녕 무엇 하나 건들기가 힘들 정도로 기운이 다 빠졌다.

겨우 기운을 다시 내서 선배님한테 픽스 사실을 알리기 위해 통화를 걸었지만, 바쁘신 건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럴 때 손이 가는 건 당연히 E-FAN 어플이었다.

잔소리로 혼란스러워진 정신을 힐링할 겸 어플에 접속했다.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겠다고 약속을 했었으니까.

늦게나마 어제 게시글을 먼저 확인했다.

[집 도착했어요! 지지 님! >< + 막방 후기]

[저도 도착! 아 오늘 행복했다♥]

[지지 님한테 안겨서 사진 찍었어요! 갸악]

[랑이 님 후기♥]

다행히 팬분들은 나쁜 일 없이 다들 잘 들어가신 것 같았다.

귀여운 팬분들의 글을 보며 힐링 주사를 제대로 맞았다.

‘그나저나 슬기 씨도 그랬는데 왜 대부분 우리 팬분들은 이은지랑 날 ‘랑이님, 지지님’이라고 ‘님’자를 붙여서 부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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