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83)
“아니, 딱히.”
하.
바짝 당겨 있던 어깨 근육이 그제야 탁 풀어졌다.
“뭐 물어보려고 뜸을 그렇게 길게 들이는데.”
“사고는 아니고, 내가 톡신 선배님들한테 다섯 번 소원 빌 기회를 얻었거든.”
“엉……?”
이건 또 뭔 소리래냐.
황당해하고 있는 나한테 이은지는 차근차근 처음부터 설명했다.
그러니까.
은지한테 선배님이 게임을 하자고 했고, 그 게임은 ‘톡신의 막내를 맞혀라!’였다.
그리고 이은지는 그걸 맞혔다……라고.
“어떻게?”
톡신의 막내는 정확히 말하자면 없다.
오현, 주송민, 서승연 선배님들은 셋 다 동갑이니까.
하지만 이은지는 분명 회귀 전에도 선배들의 나이를 모르고 나중에서야 들었다.
「“이은호! 나 오늘 예찬 선배한테 톡신에 예찬 선배랑 태현 선배님 말고는 다 동갑이라는 얘기 들었는데, 너도 알고 있었어?”」
지예찬 선배와 친해진 이후.
질투심에 젖어 시큰둥한 나한테 이은지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며 신나게 떠들었다.
그건 적어도 내 데뷔 이후였으니 지금보다 2년은 지나고 나서였던 것 같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어? 음. 이거, 좀, 믿기 힘들 거 같은데…….”
왜 이렇게 뜸을 들이나 싶던 그때였다.
―꼬르르륵.
―꼬록.
같은 핏줄 아니랄까.
동시에 배에서 난 민망한 소리에 이야기 흐름이 뚝 끊어졌다.
“라면부터 먼저 끓이자.”
“어제 일 알고 있다고 했으니까 양심이 있으면 니가 끓여.”
“당연한 거 아니냐. 일단 계속 이야기는 해 봐. 듣고 있으니까.”
“어, 음. 좀 이상한 이야기인데.”
“믿기 힘드니 뭐니 그만하고 일단 말해 봐.”
주방으로 향한 난 찬장 깊숙이 팔을 집어넣으며 구석에 박아 둔 라면 두 봉지를 꺼냈다.
활동 내내 관리를 위해 참아 왔으니까 오늘만큼은 괜찮겠지.
냄비에 물을 올리는 동안, 이은지는 할 말을 정리라도 하고 있는지 내내 조용했다.
“말 안 해?”
“아니. 음…….”
“왜. 뭔데.”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앉는 건 또 애매해서 싱크대에 기댄 채 몸을 돌렸다.
이은지를 돌아보자, 이은지는 미간에 엄지를 댄 채 버린 휴지처럼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그게, 좀 미친 X 같잖아.”
“언제는 아니었다고.”
“닥쳐.”
“그렇게 치면 내가 더 심한 거 아니냐?”
“왜.”
“회귀를 했느니 뭐니 할 때 내가 더 미친X으로 보였을 거 아냐.”
“뭐, 잠깐은 그랬지.”
“잠깐은 그랬다니, 너무하네.”
“솔직히 바로 믿기엔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
“그래, 그래. 나도 똑같으니까 그냥 말해. 너도 나 한 번 믿어 줬으니까 나도 한 번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도 믿어 줄 테니까.”
은지는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너도 별거 아닌 걸로 거짓말할 사람은 아니잖아.”
“오…… 쫌 감동이다?”
“X랄.”
“열심히 키운 보람이 있네!”
“니가 나를 언제 키웠다고.”
“히히.”
좀 민망하다.
라면 봉지를 뜯으며 괜히 이쪽을 빤히 보는 이은지 시선을 피했다.
“예찬 선배가 나한테 이야기해 줬어.”
“어제 가게에서 말하는 거지?”
설마, 그때를 말할 리는 없으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이은지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럼 다른 사람이 전해 줬다는 거야?”
“아니. 그땐 아무도 안 도와줬어.”
“그러면 뭐야.”
“다른 시간이라고 해야 하나…….”
“다른 시간? 자세하게 말해 봐.”
“되게 말도 안 되는 거 같은데―.”
“내가 회귀했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일단 말하라고.”
은지는 책상다리를 풀더니 무릎을 턱 밑으로 끌어오며 이야기를 이었다.
“나 왠지 이은호 네가 왔다는 그 당시 일들을 종종 꿈으로 꾸는 거 같아. 아닌가?”
“꾸는 거 같으면 꾸는 거지 ‘아닌가?’는 뭐야. 애매하게.”
“그게, 꿈일 때가 대부분이었는데, 가게에서는 갑자기 엄청 생생하게 들렸거든.”
“언제부터?”
“그…… 검은 고양이가 2층에 있었던 날 있잖아.”
“……어.”
창백한 이은지가 보였던 그날.
상당히 충격받았던 탓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날 중 하나였다.
“그날 이후에 내가 그 고양이가 되는 꿈을 꿨다가, 나중에는 고양이를 보는 꿈을 꿨고―.”
이은지는 믿기 힘든 이야기를 이어 갔다.
본인이 죽던 날의 꿈을 꿨었으며, 꿈을 정리하자면 자신이 ‘‘창백한 이은지’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거짓말이 아닌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은지는 내가 항상 읽었던 이은지의 일기장 페이지를 들먹였다.
이은지 일기장 중에서도 수십 수백 번을 읽었던 페이지였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그 페이지 내용이 이은지 입에서 나온 순간.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맞았을 때, 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있을 때면 나는 창백한 이은지한테 말을 걸고 무너지기를 반복했었다.
「“약속은 지켜야지.”」
「“내가 죽어도 너는 살아야지, 망할 새끼야.”」
차마 그 일기장에 적힌 살라는 그 말이 걸려서 죽을 용기도 못 가졌다.
이은지는 모든 걸 봤다고 말했다.
내가 창백한 이은지 환상을 없애기 위해 했었던 모든 행동들까지 다 봤다고.
“조금 미안하기도 했어. 내가 있는 게 그렇게 싫은가 싶어서.”
“네 말은, 하. 잠시만.”
이렇게 폭탄처럼.
이런 이야기가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터라 충격을 이겨 내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괴롭던 그게 진짜로 이은지였다고 하니 혼란스럽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고.
나조차 정형할 수 없는 내 머릿속이 어지럽다.
그동안 라면을 끓이기 위해 올려 둔 물이 끓었다.
“라면이나 마저 끓여 줘. 나 배고파.”
“……어.”
이은지는 별생각 없는지 대자로 뻗어 누우며 말했다.
태연해 보이는 이은지를 따라서 아무렇지 않은 척 라면을 끓였다.
시끄러운 머릿속과 다르게 집 안에는 라면이 부글거리며 끓는 소리와 면을 뒤적이는 젓가락질 소리만 맴돌았다.
“야, 이은지.”
“어.”
다시 말꼬가 트인 건 라면을 다 끓인 후 상 위에 놓을 때였다.
이은지는 대답만 할 뿐, 시선은 여전히 라면에 고정돼 있었다.
“너 그럼 그 사람도 기억나냐?”
“오, 내 말 진짜 믿어 주나 보네?”
“증거랍시고 온갖 것들을 다 말했는데 어떻게 안 믿냐.”
이은지가 히죽이며 웃었다.
“다행이다. 미친 X 안 돼서.”
“참, 나. 그래서 그 사람도 기억나?”
“그 사람이 누군데?”
“에이슬.”
“에이슬? 그게 누, 아!”
후르르르릅.
‘아!’까지 했으면 말부터 먼저 할 것이지.
은지는 제 밥그릇에 덜어 간 면을 흡입하는 데 집중했다.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해서 일단 기다려 줬다.
나도 그동안 한 젓가락은 먹었다.
다른 것보다 국물이 더 절실해서 면보다는 국물에 집중했다.
한참 뒤, 이은지는 입에 있는 면발을 다 삼키고 말을 이었다.
“그날 숍에서 넘어질 뻔했던 귀여운 사람 말하는 거지? 니가 반했던.”
“반했다니, 뭔. 아니거든.”
“에이.”
조금 전까지 무겁던 분위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평소대로 돌아왔다.
“근데 그 사람은 갑자기 왜?”
후르르릅.
“그 사람 나랑 뭐…….”
후르릅.
“있었어?”
후룩.
“먹거나 말하거나 하나만 하지.”
“니가 물었잖아.”
“예. 에이슬이랑 너랑 뭐가 있긴 있었지. X나 많이.”
“뭐, 어떤 거?”
어떤 거라.
머릿속에는 노래 빼고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는데…….
정작 생각했던 것 중에서 입 밖으로 꺼낸 이야기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냥. 노래 같은 거.”
“오.”
대충 둘러대며 이야기를 피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은지는 이거에 대해선 모르는 게 나을 테니까.
난 주제나 돌리려고 일부러 시비를 걸었다.
“왜 너만 처먹냐.”
“어제 그 고생했는데 이야기 좀 해 줬다고 벌써 잊었어?”
“……드십시오.”
얻은 건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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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작업한다.”
“예. 그러십시오~.”
라면을 다 먹은 은지는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원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쪽이 설거지를 하는 법이지만, 오늘만큼은 잘못이 있는 내가 설거지까지 감당했다.
♬테이블 위 한 송이
오늘따라 붉어 보여♬
설거지를 막 끝내고 냄비를 엎어 놓던 그때.
기다렸다는 듯 지예찬 선배님한테 전화가 왔다.
♪♬♪♬♬
전화를 받자, 작업 중에 전화하신 건지 전화 너머로 낯선 멜로디가 들렸다.
“여보세요.”
“어. 은호야, 바쁘니.”
“아뇨. 마침 딱 할 일 다 끝냈습니다.”
방금 씻어서 엎어 둔 냄비에서 물이 뚝뚝 흐르는 걸 보며 대답했다.
“어제 내가 두 곡 준다던 거 기억하지?”
“네.”
“다행이네. 혹시 취해서 잊었으면 이 곡들을 어쩌나 했는데―.”
“하하…… 전에도 보셨잖아요. 저 술 약한 거…….”
“그러게. 코사인 작업할 때, 내 단골 양념 갈빗집 맞지.”
“네. 거기 맞아요.”
“하긴 그때도 너 종일 먹었던 게 소주 반잔이었지. 솔직히 그땐 취한 거 장난인 줄 알았어.”
그때 내 나름 많이 먹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결국엔 소주 반잔이었나 보다.
“이번에 보셨으니 아시겠네요…….”
“하하하, 엄청 잘 알아 버렸지. 아무튼 술은 됐고, 어제 말한 두 곡 지금 보내려고 하는데 메일이 편할까, 깨톡이 편할까?”
“깨톡이 편하긴 한데, 메일로 보내 주세요. 은지가 듣는 거에 예민해서 그쪽이 더 편할 거라…….”
“그래. 그럼 전에 코사인 작업하던 메일로 지금 보내 둘게.”
“네.”
바로 전송하시는 건지, 기계식 키보드의 짤깍거림이 전화 너머로 들렸다.
“은지 양한테 잘 부탁한다고 전해 줘.”
“에이, 이은지가 선배님한테 잘 부탁드려야죠. 감사합니다, 선배님.”
“감사는 지금 말고 픽스되면 그때 받을게.”
“으음, 네. 알겠습니다. 하하.”
이은지가 어떤 대답을 내릴지 몰라서 난 차마 꼭 될 거라는 등.
이런 빈말을 입에 올리는 게 쉽지 않았다.
선배가 전할 말은 그것뿐이었는지 고생하라는 인사를 끝으로 금방 통화를 끝냈다.
똑똑.
“야.”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은지 방문을 두드렸다.
“그냥 들어와.”
이은지 대답에 문을 열자, 다행히 요즘은 조금이나마 치우고는 있는지 예전보다는 깨끗한 돼지우리가 보였다.
발에 걸리는 빗과 화장품 빈 음료수 통 같은 것들을 대충 발로 옆에 밀어 두며 이은지한테 다가갔다.
“선배님이 메일로 어제 말씀하셨던 거 보내셨대.”
“오. 들어 보자. 휴대폰은 싫은데 컴퓨터로 틀어도 돼?”
“어. 받은 메일 로그인해 줄게.”
“아이디 말해.”
……이건 생각 못 했는데?
“내가 칠 테니까. 키보드만 내놔 봐.”
“아, 그냥 말해. 선 짧아.”
“내가 쳐 준다고. 아이디 말하기 좀 그래.”
“뭘 별걸 다 그렇대. 그냥 말해.”
“아, 내가 휴대폰으로 보내 줄 테니까 그거 들어. 그럼.”
“그냥 말해! 애도 아니고 왜 이상한 고집을 부리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지!
……라고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재촉하는 이은지 눈빛에 못 이겨서 난 결국 내 초록창 ID를 입에 올렸다.
“하, X발. 좀믐음움…….”
나름 용기를 내서 말했건만, 이은지는 신경질적으로 압박해 왔다.
“……뭐? 안 들려. 똑바로 다시 말해. 옹알대지 말고.”
“영어로 존멋 은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