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82)
“정말요……?”
은지가 놀라며 묻자, 매니저는 2층 옥탑방을 올려다보며 답했다.
“예. 저 옥탑방 안에 방 두 개 있죠?”
“와, 네. 맞아요.”
“큰 창문이 방 사이즈에 비해서 째매난 거 하나랑, 작지만 창이 커서 해가 잘 드는 방 하나.”
너무 정확해서 소름이 다 돋았다.
“그 큰 방은 은지 양이 오늘 문제 맞힌 막내들이 쓰던 방이고, 작은 방이 행님들이 쓰신 방이었어요.”
“와, 진짜요?”
“예. 아, 작은 방 방바닥에 보면 행님들이 대표님 몰래 단 거 먹고 싶다고 라이터로 달고나 해 먹다가 태워 먹은 자국 있을걸요.”
“어. 맞아요. 와, 너무 신기해.”
놀랄 수밖에…….
매니저님 말 그대로 지금 방바닥 창문 아래에는 담뱃불이 튄 자국처럼 장판에 그을린 자국이 하나 있다.
그게 미워 보여서 지금은 일부러 넓은 카펫 같은 것으로 가려 둔 상태였는데!
그게 최태현 선배와 지예찬 선배가 달고나를 만들어 먹던 자국이라니.
지금껏 미워 보였던 자국이 새롭게 느껴진다.
꼭 전설 같은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묘한 기분이었다.
“대표님이 저 옥탑에 월세방 하나 구해다가 다섯을 먹여 살리다시피 밀어 줬었거든요.”
이건 대표님한테도 들은 적 없던,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우리와 비슷한 이야기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매니저님은 언제부터 같이 다니셨길래 이런 것까지 다 아시는 거예요?”
“대표님이랑 만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예찬이 행님이랑 오래 알았거든요.”
“아하.”
“중간에 내가 지방으로 내려가 살아서. 대신 연락을 많이 했었어요.”
“아―. 그러면 여기를 본 건…….”
“한 번씩 서울 놀러 오면 그때 이제 여기 한 번씩 들러가, 행님 방에서 멤버들이랑 같이 놀고 그랬죠.”
“대표님이랑도 친했겠네요.”
“하하하, 반대였죠. 오히려 얼굴도 모르던 사이였어요.”
“어, 그래요?”
“예. 맨날 없다고 갔다고 연락받으면 놀러 가고 해가.”
“아하.”
“하하, 그래서 코사인 녹음하러 왔을 때도, 누구시냐 했는데 그분이라 해서 놀랐었죠.”
코사인 녹음하러 왔을 때…….
이은호와 대표님이 방문했던 그때를 말씀하시나 보다.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당시에는 선배님과 함께할 기회를 얻은 이은호가 부러웠었다.
‘이젠 아니지만.’
작은 기회에 연연하기보다 앞을 보고 있다.
이은호와 같이 하다 보면 그런 기회야, 수도 없이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왠지 그런 믿음과 자신감이 있었다.
후웅.
골목에 불어오는 바람이 으스스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아이고, 추브라.”
이야기하다 보니 꽤 쌀쌀한 기운이 뒤늦게 몰려왔다.
“가수가 감기 걸리면 클나니까 얼른 들어가세요.”
매니저님은 닿기 힘들 것 같은 양어깨를 가까스로 문지르며 말했다.
그 모습이 왠지 커다란 곰이 생각나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하. 매니저님, 먼저 들어가세요. 오늘 데려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별말씀을. 참, 은호는 2층까지 옮겨 드릴까?”
매니저님이 마치 짐짝을 보듯 여전히 잠든 채 퍼져 있는 이은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많이 피곤했던 걸까.
밖에서 이렇게까지 안 일어나는 이은호는 또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은지는 은호를 흘기던 눈을 돌리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괘안습니까?”
“네. 이 인간 정도는 혼자서도 가뿐하게 옮길 수 있어요.”
매니저님은 알겠다며 간단히 인사 후 골목을 떠났다.
* * *
‘억.’
나는 그렇게 매니저님을 보낸 뒤, 정확히 계단 하나에 발을 올린 순간.
매니저님 도움을 받지 않은 몇 분 전의 나를 원망했다.
‘술은 얼마 처먹지도 않았으면서 대체 왜 이렇게 무거워!’
몇 차례 더 시도해 봤지만, 으윽.
겨우 네 칸을 오르고 포기를 선언했다
“일어나, 이은호.”
도저히 이건 무리다.
이은호를 깨우기 전에 계단에 앉혔다.
그리고 양손을 들어 이은호 양쪽 뺨을 짝!
“일어나!”
짝!
“일어나라고!”
“…….”
짜악!
“야, 이 우럭 새끼야! 일어―.”
“아파, 아파! X발! ―어!”
아직 술이 다 깬 건 아닌지, 은호는 눈이 풀린 채 으르렁거렸다.
“일어났으면 니 발로 걸어 올라가.”
“뭘 올라가라는 거야.”
흐리멍덩한 반쯤 뜬 눈으로 은호는 계단을 돌아봤다.
“뭐야. 나 왜 여기 있어.”
“한 대 더 치면 안 되냐. 아깐 혹시 몰라서 살살 쳤는데.”
“……하지 마. 허엉. 살점 떨어지는 줄 알았어.”
은호가 양 뺨을 감싸 쥐며 웅얼거리자, 은지는 극도의 혐오 어린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귀여운 척하시는 거세요? 설마?”
“뭔 헛소리야아.”
대답과 달리, 은호는 여전히 꽃받침을 한 채 투덜거렸다.
그래. 취객이랑 싸워 봐야 내 감정만 낭비지.
은지는 자신을 달래며 나름대로 부드럽게 말했다.
“잘 거면 집에 가서 자라고. 일어나서 올라가. 오빠 무거워서 그래.”
“웨뿨, 뮈궈워숴 귀뤠. 흥, 지는. 코끼리 같은 게.”
“……뒤질래?”
“아니, 너―도 내가 업어 준 적 있는데 그때 기억은 못 하고 너무하네―에.”
“야, 야, 야야야야!”
은호가 투덜거리며 일어난 그때였다.
이은호는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계단 아래로 꼬꾸라질 뻔했다.
이 미친 X이!
‘하, 씨.’
난 바닥에 나뒹구는 내 심장을 다시 끼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업혀! 업히라고, X발!”
하나밖에 없는 같은 핏줄 새끼가 술 처먹고 대가리 깨지는 꼴도 그다지 보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다.
딱히 업어 줄 생각은 없었는데 이러니 업어 줄 수밖에…….
계단에 버티며 쪼그려 앉자, 묵직한 큰 덩치가 등에 업혔다.
“흐흐, 결국 해 줄 거면서.”
저 입이라도 닥치고 있으면 좋겠다.
“안 닥치면 그냥 혼자 올라가다 대가리 깨지는 거 방치해 버린다.”
이건 업은 게 아니라 목에 걸었다고 하는 편이 더 맞는 모습이었다.
힘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힘없는 취객은 업힌 게 아니라 단순히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끄아아악, X발!”
계단에 다 올라오자마자 옥탑방까지 채 다섯 걸음도 남지 않은 바닥에 이은호를 버렸다.
내 나름대로 최선은 다해 줬다.
적어도 이 다섯 걸음 정도는 제 발로 걸어오겠지.
쾅!
은지는 현관문을 열고 먼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알루미늄 갈색 문이 시끄러운 소릴 내며 열렸다.
‘목말라!’
터질 것 같은 갈증 때문에 난 곧장 냉장고부터 열었다.
벌컥벌컥 생수를 병째로 절반을 비워 내고 나니 좀 살 것 같아진 그때였다.
“와아, 별이다. 벼―얼.”
열린 문밖에서 들린 여전히 바닥에 뻗어 있는 이은호 목소리에 겨우 채운 수분이 머리 스팀으로 증발하는 것 같았다.
뒷골이 뻐근해졌다.
“2층까지 데려와 줬으면 집구석에는 니 발로 걸어 들어와, 이 미친 취객 새끼야!”
* * *
눈에 직선으로 내리쬐는 밝은 빛에 눈이 떠졌다.
“어…….”
눈을 뜨니 보이는 건 익숙한 천장이지만 내 방은 아니다.
머리를 들자, 뇌가 욱신거리는 통증이 일었다.
가게에서 대표님이 소주잔을 줘서 한 잔을 마셨고…….
‘어…….’
그리고 이은지가 선배님들하고 무슨 게임을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이후에는…….
뭔가 계단에서 이은지한테 짜증을 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으, 윽.”
몸을 일으키자 숙취와 함께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근육통이 몰려왔다.
고작 소주 한 잔에…….
왠지 여러모로 현자 타임이 온다.
내가 있는 곳은 현관문 앞이었다.
‘나 왜 방이 아니라 여기서 자고 있는 거지?’
의문을 해결하려 이은지 방을 돌아봤다.
쟤는 알 테니까.
“야, 이은지.”
버릇처럼 이은지 방을 확인하려던 그때였다.
후두둑.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 걸음을 뗀 순간 바닥에 웬 검댕 같은 먼지가 우수수 쏟아졌다.
왠지 익숙한 검댕과 페인트 껍질들.
순간 머릿속에 수십 개의 물음표가 생겼다.
“야, 은지야.”
“어…….”
이은지는 더 자려고 해도 버릇처럼 눈이 떠져 버렸는지, 왠지 지쳐 보이는 부스스한 모습으로 방을 나왔다.
“나 어제 뭔…….”
나 어제 무슨 짓 했어?
……라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이은지 표정이 살벌하다 못해서 진심으로 무서웠다.
‘방금 ‘어제’라고 말했니? 니가? 감히?’
……라고 이은지가 눈빛으로 말을 하고 있다.
“미안, 내가, 어, 음. 무슨 짓을 했구나.”
이은지 눈빛에 민망하긴 하지만 진심으로 쫄았다.
무서웠다.
“……씻고 라면이나 끓여. 뒤질 거 같으니까.”
“근데 넌 어제 술 안 마셨…… 어, 우, 우리 동생님께서 라면이 먹고 싶으시구나. 잠깐만…….”
와.
나 방금 귀신보다 더 무서운 걸 본 것 같다.
도망에 가까운 속도로 난 욕실에 튀어 들어왔다.
옷을 다 벗고 보니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상상도 안 될 정도로 상의는 등이, 바지는 전부 꼬질꼬질하기 그지없다.
“옥상 바닥에서 구르기라도 했나…….”
거울을 보니 옷 못지않게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도 몰골이 꼬질꼬질하긴 마찬가지였다.
스프레이로 고정된 머리 곳곳에 이상한 찌꺼기 같은 것들이 콕콕 박혀선.
거지도 이런 상거지가 따로 없다.
‘샤워해야겠다.’
조금 아래쪽에 달린 수도꼭지를 돌리려고 허리를 숙인 그때였다.
「“안 닥치면 그냥 혼자 올라가다 대가리 깨지는 거 방치해 버린다.”」
「“흐흐, 결국 해 줄 거면서.”」
흠칫.
‘이게, 뭐지?’
내 기억인데, 제발 내 기억이 아니었으면 좋겠는 기억들이…….
온다.
내가 넘어질 뻔했고, 이은지가 그런 나를 업었다.
이은지한테 업어 달라고 떼(?)를 쓰고 이 징그러운 꽃받침을 하는 기억은 뭘까.
「“와아, 별이다. 벼―얼.”」
……어제, 내가 진짜 미쳤나 보다.
차라리 미친 거였으면 좋겠다.
「“2층까지 데려와 줬으면 집구석에는 니 발로 걸어 들어와, 이 미친 취객 새끼야!!!”」
완벽한 퍼즐 조각은 아닌 거 같은데, 일단 중요한 문제들은 다 떠오른 것 같다.
그래서 문제였다.
샤워하는 내내 물을 잠그고 싶지 않았다.
욕실에서 나가기가 무섭다.
차라리 기억이 없었으면 뻔뻔했을 텐데, 쪽팔려 죽겠다.
샤워가 끝나 수건으로 몸을 닦던 그때였다.
“이은호, 안 나와?”
“어, 어어. 나가. 잠깐만.”
대충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오자, 이은지가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허리에 손을 낀 채 욕실을 보고 있다.
“왜? 화장실 급했니? 급하면 얼른 들어가.”
“아니, 안 급해.”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는데 이은지 표정은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은호.”
내 이름 부르지 마.
부탁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숨이 턱턱 막혀 온다.
“어제 기억나, 안 나.”
“…….”
따라오는 이은지 눈을 피했다.
“나나 보다?”
“다는, 아니고, 계단만.”
“그래. 그 X랄을 하고 양심이 있으면 기억이 나야지.”
이은지가 웃었다.
저렇게 살벌하게 노려볼 거면 차라리 정색하는 게 덜 무서울 것 같다.
“물어볼 거 있는데.”
“뭐.”
“가게에서 있었던 일은 기억나는 거 없냐.”
가게?
나 가게에서도 사고 쳤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가게는 이은지만 있던 게 아니다 보니 더 긴장된다.
“왜?”
조심스럽게 묻자, 이은지는 날 빤히 보기만 할 뿐이었다.
“왜 나 뭐 사고 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