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80)
인혁 형이 고민하는 날 위해 팔을 높이 들어 X를 표시해 주고 있었다.
저건 ‘살고 싶으면 지금은 오지 마!’라는 신호였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테이블을 물색했다.
클라우드 멤버들하고의 식사는 일찌감치 마음을 접고 다른 테이블을 돌아봤다.
‘아는 사람이 있나…….’
그렇게 둘러보던 그때, 눈을 돌린 다른 테이블에는 익숙한 큰 등판이 보였다.
‘저 큰 어깨는…….’
톡신 멤버들이 모여 있는 바로 옆 테이블에 오태진 기사님과 철수 PD님.
큰 덩치와 험악한 외모지만 꽃꽂이가 취미인 반전 매력을 가진 영희 형님이 있었다.
같이 고깃집을 가본 경험으로, 형님과 같은 테이블에서 먹을 땐 큰 장점이 있었다.
바로 고기가 절대 타지 않을뿐더러 줄지 않는다는 것.
“저기 가자.”
“어디?”
“저기.”
난 이은지를 이끌고 형님네 테이블로 다가갔다.
“오! 박수 짝짝이!”
“하하하하.”
영희 형님은 이쪽을 돌아보더니 두꺼운 손으로 내가 대표님에게 붙잡혀서 강제로 쳤던 천장 박수를 따라 쳤다.
“이렇게 다시 보네. 첫 활동 고생 많았어요.”
확 수치스럽던 조금 전 일이 떠올라서 다른 자리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철수 PD님이 재빠르게 이은지를 옆자리에 앉히면서 나도 따라서 앉게 됐다.
“이모! 여기 공깃밥 두 개랑 삼겹살 4인분 추가요!”
영희 형님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마지막 무대라는 생각에 아침부터 내내 입에 댄 거라고는 생수뿐.
“많이 먹어!”
치이이익.
영희 형님이 숙달된 손길로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딱 먹기 좋게 고기가 익을 무렵에는 나랑 이은지 앞에 된장찌개와 함께 밥이 놓였다.
뚝―.
머릿속의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배가 더 불러서 더는 못 먹겠다 싶을 즈음이었다.
나는 물론 이은지 앞에 놓인 밥공기와 불판 위에도 무엇 하나 남은 것이 없었다.
“은호야, 은지야!”
“네?”
“식사는 다 했어?”
“네!”
“그럼 이리 좀 와 봐라.”
대표님의 부름에 바로 옆 테이블로 다가가자, 대표님은 옆에 의자 두 개를 끌어왔다.
“안녕하십니까! E-U.N.G 이은호.”
“이은지입니다!”
대선배 격인 톡신 선배님들께 먼저 인사하자, 톡신 선배님들은 하나같이 “됐어, 됐어.”라며 앉으라는 손짓을 보였다.
자리에 앉자, 우리가 밥을 먹는 동안에도 오가는 술잔은 여전했던 걸까.
대표님은 우리가 막 가게에 들어섰을 때보다 얼굴이 더 붉어져 있었다.
“자, 주인공이 왔으니까 다시 말해 봐라!”
“팀장님, 나 못 믿어? 도망 안 친다니까요. 하하.”
“에이, 그래도 장본인들이 들어야 할 것 아니냐.”
“몰래 전달해 달라니까. 눈앞에서 까이면 내가 너무 민망하잖아요.”
대표님과 예찬 선배가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은지랑 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두 사람을 번갈아 보기만 하던 그때였다.
예찬 선배님의 시선이 대표님에서 갑자기 이쪽으로 옮겨 왔다.
“은지 씨가 작곡이고, 은호 씨가 작사라고 했었지?”
“맞습니다, 선배님.”
“그럼 은지 씨한테 먼저 물어봐야겠네.”
이은지는 고개를 들더니 눈을 반짝였다.
“내가 곡 주는 거, 은지 씨는 어떻게 생각해?”
“……곡이요?”
“응.”
“선배님이 만드신……?”
“응. 둘이 내 녹음실에 온 날 며칠 내내 생각나서 두 곡 정도 만들어 둔 게 있거든. 그걸 선물로 주고 싶은데―.”
솔직히 바로 ‘감사합니다’라며 인사할 줄 알았다.
상대가 이은지라는 걸 깜박했다면 말이다.
“들어 볼 수 있어요?”
“하하하하하!”
대표님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큰 웃음을 터뜨렸고, 난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다 급하게 대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 동생이…….”
“아니야, 아니야. 하하하. 박 팀장님 말대로 재미있는 친구 맞네. 아.”
선배가 대표님이랑 가까운 사이라 천만다행이었다.
“내가 내일 내로 은호한테 보내 줄게요. 둘이 같이 들어 보고 마음에 들면 픽스해 줘.”
“네!”
이은지는 마냥 헤실거리며 대답했다.
난 이은지와 그런 이은지를 웃으면서 보고 있는 선배를 바라보다 이해하기를 포기하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하필 돌아본 곳이 막 입 안에 한 잔을 털어 넣고 있던 대표님이었던 게 문제였다.
“자.”
“예?”
“한잔해야지.”
나도 마시고 싶다는 걸로 이해한 걸까.
대표님은 순식간에 내 손에 작은 소주잔을 쥐여 주고 잔을 채웠다.
“자, 짜안―!”
“짜, 짜안.”
대표님의 ‘짠’에 홀린 듯 난 얼떨결에 입안에 소주 한 잔을 털어 넣었다.
오랜만에 대표님과 술잔을 기울이는 거라 조금 기대되는 것도 없진 않았다.
문제는 원래도 대표님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내 주량이 무대를 마친 뒤 피곤한 컨디션과의 합작으로 엄청나게 낮아졌다는 것.
가득 차지도 않은 소주 한 잔을 입안에 털어 넣은 것을 끝으로.
내 정신은 내 의지를 무시하고 가출해 버렸다.
* * *
“하하하. 우리 은호씨 술 엄청 약하네!”
박 대표의 얼굴에 또렷한 장난기가 드러났다.
“잘됐어. 방송에서 실수 안 하려면 이럴 때 잘 배워야 하지 않겠냐. 하하.”
“배워요? 두 사람 성인 아니었어요?”
“성인은 맞아. 올해 스물둘. 스물.”
톡신 멤버들은 소주 한 잔 이후부터 말이 없는 은호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은호 씨가 스물둘? 92? 아니지…… 93인가?”
“맞아. 그럼 은지 씨는 95겠네.”
“네. 맞아요. 95 돼지띠.”
“와, 어리다. 어려. 크, 20대가 좋지.”
하하하하.
톡신 멤버들이 웃으며 농담처럼 ‘20대가 좋지’라며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였다.
은지는 진심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선배님들도 20대 아녜요?”
“푸하!”
소주잔을 기울이던 박 대표는 은지 질문에 따라 웃음이 터진 듯 황급히 입을 가렸다.
“아, 이거 진심으로 고맙다. 하하하.”
“와, 나 앞으로 이제 20대라고 하고 다녀야지.”
“사기죄로 잡혀 간다.”
“……은지 씨가 20대 아니냐고 해 버려서 이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박도 못 하겠어.”
박 대표뿐만 아니라 톡신의 다섯 멤버들도 자지러지게 웃고 있었다.
“아니에요?”
“응. 우리 다 30대야. 막내는 만으로 29이긴 하지만.”
그 틈에 톡신 멤버 중 가장 순한 이미지인 서승연이 은지에게 조금 발그레해진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은지 씨, 은지 씨.”
“네?”
“우리랑 게임 하나 할래?”
“게임이요?”
“응.”
“걔들이랑 게임 하면 위험할 텐데.”
박 대표는 어느새 술기운이 가신 듯 입 주변을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에헤이, 팀장님은 빠져 있어!”
“저놈 저거 이제 머리 컸다고, 이놈이.”
서승연은 투덜거리는 박 대표를 무시하고 은지에게 말을 계속 이었다.
“은지 씨가 우리랑 게임에서 이기면, 음. 우리가 한 명씩 쳐서 은지 씨 소원 5번 들어줄게.”
“소원이요?”
“다섯 번?”
은지와 박 대표가 동시에 물었다.
“아 물론, 박 팀장님은 빠지고 E-UNG 팀만요.”
“쯧, 자식새끼들 다 키워 봐야 소용없다더니.”
“하하하. 그래서 은지 씨, 해 볼래요? 강요는 안 할 테니까.”
박 대표가 혀를 차는 동안.
톡신 멤버들도 서승연의 제안에 불만은 없는지 하나같이 은지의 대답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제가 지면요?”
“이응 팀이 지면, 두 사람 쳐서 소원 두 번 어때? 아무리 봐도 그쪽 이득인데.”
“오, 이거 안 하면 진―짜 아까울 텐데.”
“돈 주고도 못 사는 기회지.”
“이은호, 들었지.”
와중에 은호는 취기에 정신을 못 차리는 중인 듯 여전히 머―엉하게 다 탄 찌꺼기들만 뒹굴고 있는 불판을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은지는 은호의 눈앞에 손을 휘휘 젓다 손을 털었다.
‘어떻게 이은호 지식에 기대 볼까 했는데.’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세상에.’
술이 약한 건 알고 있었지만 고작 소주 한 잔에 갈 줄이야.
“벌써 갔네.”
“세상에, 고작 한 잔에?”
“사납게 생겨서 애기네, 애기.”
“하하하하하.”
톡신 멤버들도, 박 대표도 놀라며 취한 은호를 구경했다.
그것도 잠시, 은지는 고민하다 물었다.
“그, 게임은 어떤 걸로 하실 건데요?”
“은지 씨, 우리 나이 모르지.”
“네.”
“그럼 누가 제일 어린지도 모르겠네?”
“네.”
“하하, 솔직한 거 되게 마음에 드네.”
하나라도 예의상 핑계를 붙일 만도 하건만, 당돌하게 대답하는 은지를 보며 서승연이 만족스레 웃었다.
“이게 힌트야. 힌트는 줬으니까, 게임 할 거야? 말 거야?”
“좋아요. 할게요.”
대 선배의 소원 5개.
선배의 말마따나 돈으로 쳐도 환산하기 힘들 정도로 귀한 기회다.
“자, 그럼 게임은 여기서 가장 막내가 누구일까요?”
“그러니까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이요?”
“은지야.”
“어어어! 박 팀장님 조용! 힌트 받으면 다 취소.”
기회를 놓치기 아쉬웠던 박 대표가 힌트를 주려다 딱 걸렸다.
어떻게 알았는지, 어느새 끼어든 오현이 박 대표를 막으며 외쳤다.
박 대표는 손가락을 튕기며 아깝다는 ‘쯧’ 소리를 냈다.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
“응.”
은지는 진지하게 한 사람씩 인상을 살폈다.
톡신의 노래와 멤버 이름까지는 알지만 나이나 이들의 성격까지 세세히 알고 있지는 않았다.
즉,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으음, 일단…….’
리더로 유명한 지예찬 선배는 제외다.
외모는 가장 어려 보이지만, 톡신이 막내가 리더라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이어서 최태현 선배도 제외.
지예찬 선배와 함께 족히 20년 이상을 같이한 동갑내기 친구라고 들었다.
‘대선배의 소원권이다……. 심지어 5개!’
얻게 된다면 두세 개는 지금 준비하는 앨범에 피처링을 부탁드릴 생각이었다.
톡신의 피처링이라니, 벌써 편곡할 생각에 기분이 붕 떠올라 간다.
은지는 들뜬 기분을 진정시키며 다시 집중했다.
‘일단 얻어야지 녹음도 한다.’
은호에게 혹여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도움은 무슨’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을 보자, 멍―하니 불판만 보던 이은호는 어느새 꾸벅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은지는 은호의 도움을 포기하고 다시 집중했다.
그럼, 남은 건 게임을 제안한 서승연 선배와 장난기가 많아 보이는 오현 선배.
마지막으로 굉장히 평범한 분위기의 주승민 선배.
‘승연 선배. 척 봤을 땐 순한 이미지이긴 하지만 막내가 이런 게임을 제안할까?’
서승연 선배의 확률이 낮아졌다.
오현 선배가 히죽이며 이쪽을 보고 웃는다.
주승민 선배는 휴대폰을 보고 있다.
그때 고민하는 순간, 생생한 목소리가 귓가에 어른거렸다.
「“우리 팀 막내들이 후배들만 보면 우릴 걸고 내기를 해. 하하, 타짜들이 따로 없어.”」
낯설지 않은 다정한 목소리였다.
「“오, 막내가 누군데요?”」
동시에 누군가에게 다시 묻는 내 목소리도.
‘뭐지?’
이건 설마…….
목소리의 주인공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은호 잔다. 팀장님, 이응이 매니저 어딨어요?”
방금 들렸던 목소리와 같은 목소리.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 자리엔 지예찬 선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