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79)
현우와 슬기는 다시 소심하게 쭈그러지는 은지를 귀엽게 생각하며 속으로 웃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이 차 안에서 이런 은지를 귀찮게 여기는 단 한 사람.
“아, 이은호! 말 좀 해 줘! 뭔데!”
하아…….
은호는 오래 참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가방을 뒤적이며 조용히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 한 동글한 도넛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야― 압. 잉거 멍대(이거 뭔데)!”
도넛을 은지 입안에 쑥 밀어 넣은 은호는 언제 움직였냐는 양 다시 창에 머리를 기대며 눈을 감았다.
은지는 황당한 눈으로 은호를 빤히 노려보다 입속에 들어찬 퍽퍽한 도넛을 씹었다.
“음? 음! 으음!”
의문을 띠던 은지의 표정이 곧 휴지처럼 구겨졌다.
지금껏 굳어 있던 은호의 입꼬리가 이제야 즐겁다는 듯 늘어졌다.
은지의 입에 밀어 넣은 건 대표님이 직접 구웠다며 은호에게만 특별히 챙겨 준 프로틴 도넛이었다.
설탕 제로, 밀가루 대신 프로틴 가루.
즉, 맛없다.
그것도 엄청.
대표님 표 도넛 맛은…….
냉정하게 말하면, 화장실 휴지를 돌돌 뭉쳐 입에 넣고 씹어도 그것보단 맛있을 정도였다.
덕분에 차 안은 한동안 조용했다.
‘은호가 아무리 장난이 심해도…….’
‘못 먹는 걸 먹이진 않으셨겠지…….’
슬기와 현우는 은호를 믿었기에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야, 이거 막 가루 같은 게 씹히는 것 같은데. 이 인간 나한테 대체 뭘 준 거야!’
침에 젖어 점점 부풀어 오르는 입안에 들어찬 이상한 무언가.
은지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뱉을 만한 비닐 같은 것을 찾기 위해 바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 *
차 안은 분주한 은지 탓에 조용하면서도 시끄러웠다.
그래도 그동안 묵묵히 제 갈 길을 달린 차는 도착지인 인적이 드문 한 식당의 주차장에 들어섰다.
현우는 주차를 위해 기어를 R에 맞췄는데, 그때였다.
딸깍.
은지는 급하게 안전띠를 풀며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하.’
그런 와중에도 팬들이 준 선물들은 조심스럽게 제 의자에 놓는 모습은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퉤! 캬학! 퉤! 으웨에엑! 뭐야, 이거 도대체가!”
“왜.”
하수구에 캭캭거리며 입속의 것을 게워 내던 은지에게 은호가 여유롭게 다가가며 물었다.
“왜? 왜에?”
진심으로 열 받은 듯 은지는 안 그래도 살벌한 눈을 더 무섭게 치켜뜨며 은호를 쏘아붙였다.
“이 X친 새끼야, 장난을 쳐도 X발 사람이 처먹을 수 있는 걸 먹여야지! 나한테 뭘 처먹인 거야, 퉤! 이 X같은―.”
은호는 은지의 쏟아 뱉다시피 하는 욕지거리에도 미동이 없었다.
한창 욕을 하던 은지는 왠지 조용한 은호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멈췄다.
“……뭐야. 너 뭐 숨기고 있어. 뭔데.”
은지가 묻자, 은호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숨길 게 뭐가 있겠니, 동생아.”
“숨기고 있잖아. 착한 척 역겹게 눈웃음치지 말고 말해. 이 쓰레기 같은 거 뭔데.”
“쓰레기? 이야, 그렇게 말해도 돼?”
“쓰레기지, X발.”
“진짜로?”
“어! 이게 그러면 사람이 처먹는 음식이냐? 어릴 때 먹었던 상한 빵도 X발 이것보단 괜찮았어.”
“오호, 그랬구나. 근데, 은지야.”
“뭐, 왜. 뭔데.”
“그거 대표님이 나 준 거였어. 그것도 직접 구워서.”
“이―…… 어?”
은지는 화를 내며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방금까지 입속의 것을 털어 댔던 하수구를 돌아봤다.
가만히 하수구를 보고 있는 은지의 표정은 방금까지 열을 내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분했다.
은호는 오히려 그런 반응에 당황하며 은지를 가만히 쳐다봤다.
‘뭐지. 너무 충격이라 말을 잃었나.’
그 정도의 맛이긴 했지만…….
은지는 대뜸 조용히 한숨만 쉴 뿐 평소 하던 ‘미친’ 같은 욕조차 하지 않은 채 몸을 돌렸다.
슬기와 현우가 있는 방향이었다.
슬기와 현우 옆에 선 은지는 결의에 차 있었다.
앞으로 대표님이 직접 했다는 건 절대로, 한 번 더 죽게 된대도 입도 안 댄다.
‘아니. 대표님이 요리한다고 하면, X발 난 그냥 도망칠 거야.’
* * *
‘그런데, 여기는…….’
정신이 들고 나서 뒤늦게 도착한 건물을 보니, 여긴 평범한 식당이었다.
다만 익숙한 차와 투명한 창 너머로 익숙한 얼굴들이 많은 것 같은데…….
‘어?’
은지는 창 너머로 사람들을 살피던 중 익숙한 얼굴에 눈을 빛냈다.
박 대표 앞에 나란히 앉은 사람들.
“저기, 토, 톡…….”
은지가 말을 떨며 손가락을 뻗은 그때.
“야, 야야, 야!”
은호가 황급히 달려오더니 뻗어 있는 은지의 손을 붙잡아 검지를 접었다.
“선배님한테 손가락질을 하면 어쩌냐!”
평소였다면 붙잡힌 손부터 떨쳐 내고 소리쳤을 은지는 톡신을 보고 놀라 커다래진 눈으로 은호를 돌아봤다.
“알고 있었어?”
‘이 식당에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냐’
‘이 식당에 선배님들이 계실 걸 알고 있었냐’
……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은 질문이었다.
은호는 눈치껏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첫 데뷔였으니까. 대충은.”
“왜 말 안 해 줬어!”
은지가 원망하며 소리치자, 은호는 그제야 쥐고 있던 은지 손을 털어 내며 말했다.
“나도 확실한 건 아니었거든.”
“회귀했다면서 이런 것도 모르냐!”
“……이, 이런 상황은 없었거든!”
“와, 이은호 쓸모없어.”
“이게, 진짜 오빠한테.”
“아무튼! 확실한 건 아니었다는 건 뭔 말인데 그래서.”
“뒤풀이하지 않을까 예상을 한 거고, 여기에 선배님들이 오실 줄은 나도 몰랐다고. 됐냐, 호박아.”
은지와 한참 투닥거리던 그때였다.
은호는 잠시 돌아본 창 너머에서 이쪽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던 누군가와 정확히 눈이 마주쳤다.
박 대표의 맞은편 자리.
곁에는 톡신 멤버들인지, 익숙한 얼굴들 사이에 있는 지예찬이었다.
30대 후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안에 맑은 피부.
멤버들 사이에 있는 지예찬은 제일 막내라고 해도 믿을 법했지만, 그는 가장 맏형이자 톡신의 리더인 사람이었다.
‘은호야, 얼른 들어와.’
목소리는 창문 너머라 들리지 않지만 입 모양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은호는 대답 대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왜 선배님이 너한테만 인사해! 나는!”
“켁.”
은지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대뜸 은호의 멱살을 틀어쥐며 물었다.
누구 동생인지, 악력 하나는 더럽게 강하다.
“선배도 호박은 눈에 안 보이시나 보네. 하하.”
은호가 히죽 웃으며 장난치자 은지는 심술이 들끓는지 장난처럼 쥐고 있던 은호의 멱살을 진심을 담아 짤짤 흔들어 댔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둘의 장난은 여기서 멈춰야 했다.
“이놈들아! 안 들어오냐!!!”
은호도 은지도 흠칫 놀라며 다시 가게의 창 너머를 돌아봤다.
‘얼마나 크게 소리치신 거야…….’
분명 지예찬 선배님과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데, 대표님의 목소리는 유리창을 뚫고 들렸을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혹 착각인가 했지만 착각은 아닌 듯 고깃집에 있는 다른 손님들도 단체로 대표님을 빤히 보고 있다.
“이 꼴통들! 도착했으면 바로 들어와야 할 거 아니야. 거기서 또! 아주 그냥, 또! 싸우고 있어! 또!”
평소에 잔소리를 길게 하시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큰 소리를 내시는 분은 아니다 싶더라니.
가게에 들어서자 대표님이 오늘 따라 다른 이유를 바로 알았다.
“요요요요, 내 새끼들.”
대표님은 벌써 상당히 취기가 오른 모습이었다.
‘……?’
그사이 은호는 은근슬쩍 위치를 바꾸는 은지를 흘겨봤다.
갑자기 왜 자리를…….
의심할 때 피하든지 했어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자, 자! 집중! N.R.Y 엔터! 테인먼트! 박창석이 인사드립니다! 얘들이! 어! 내 자식들이다! 이 말이야!”
비틀거리며 다가온 박 대표는 은호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불안하다.’
꼭 이런 순간의 불길한 직감은 항상 맞더라니, 박 대표는 잠시 후.
번쩍!
은호의 양쪽 팔목을 붙잡아 들었다.
“하하하하핰! 핰핰핰!”
이은지라도 안 웃었다면 조금 괜찮았을 것 같은데. 아니, 적어도 얼굴이라도 가릴 수 있었으면―.
하, X발. 그냥 안 괜찮은 것 같다.
넓은 가게 중간에 서서 대표님께 붙잡힌 채 만세 하고 있는 자세는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깐다고 해도 괜찮지 못했다.
“요 이쁜 것들! 하하하! 잘 봐주십시오! 잘 부탁합니다!”
하지 마. 하지 마요. 제발, 대표님!
망할! 다시 대머리나 돼 버려라!
만세까지는 양반이었다.
은호는 여전히 박 대표에게 붙잡힌 팔목을 천장에 뻗은 채로 ‘짝짝짝짝짝’ 크게 박수를 쳤다.
힘으로 버텼음에도 불구하고, 망할.
오랜 헬스로 다져진 몸은 반짝 관리한 몸으로 절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캬핰핰핰핰!”
은지는 웃다 못해서 이젠 숨이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가게에 쏟아진 웃음소리는 내 몸속 혈액들을 발광하게 만들기엔 아주 충분했다.
얼굴이 불타다 못해 폭발할 것 같았으니까!
대표님을 원망하는 것도 잠시.
다행히 인사를 마치자 가게는 다시 테이블 내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데 바빠졌다.
그나마 천만다행히, 식당은 오늘 대표님이 통째로 빌린 건지 대표님의 지인과 현, 옛 동료들이 모인 모양이다.
“억지로 모르는 사람들한테 벌써 인사할 필요 없으니까 편한 데서 밥 먹어. 고생했는데 든든하게 먹고 내일부터는 다음 앨범 또 열심히 해야지.”
“네!”
“네…….”
탁탁!
대표님은 술기운 탓인지 평소보다 강하게 등을 두드린 후 자리로 돌아가셨다.
평소에는 힘 조절을 많이 하시는 건지, 툭 치는 순간 난 내장에서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괜히 폼으로 집 안에 헬스장을 차린 분은 아니라는 걸 실감한 순간이었다.
‘나도, 풀 업이랑 딥스 더 늘려야겠다…….’
방금 겪은 수치를 떠올리며 난 조용히 PT 일정표에 없던 횟수를 상상으로 채워 넣었다.
* * *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고, 내면의 평화를 찾으며 우린 같이 주변을 둘러봤다.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아는 얼굴들도 적잖게 있었다.
은지의 작곡 스승님인 배진수 작곡가님과 보컬 트레이너 이하늘, 댄스 트레이너 이구름 선생님.
이구름 선생님의 주변엔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같이 무대를 섰던 클라우드 멤버들이 함께였다.
‘저기로 가면 되겠…….’
클라우드 팀원들이 모여 있는 자리로 가려다 흠칫 발길을 멈췄다.
듀오 쇼케이스 날의 뒤풀이 후가 떠오른 탓이었다.
에나―오별님― 누님이 들고 있는 소주병 외에도 누님의 테이블에는 벌써 적지 않은 빈 병이 쌓여 있었다.
분명 취하고도 남을 양인 건 확실했다.
술버릇이 절대 착하진 않던 분이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며 눈을 굴리던 그때였다.
에나 누님이 갑자기 누군가에게 헤드록을 걸었다.
‘아.’
‘저런.’
이은지와 난 누님의 팔 사이로 보이는 정수리를 애잔한 눈으로 바라봤다.
정수리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저렇게까지 발버둥을 치며 싸울 사람은 하나뿐이었으니까.
‘아이고, 달님아.’
‘쟤는 왜 항상 저렇게 될 거 알면서 언니한테 까부냐.’
분명 재미는 있을 것 같은데, 왠지.
재미는 잠깐이고 피곤함이 더 길어질 것 같은 테이블이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그때였다.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