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78)
“와, 내가 누나야?”
“네.”
“몇 살인데요?”
“저 18살이요.”
은지는 평소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있다 보니 ‘누나’라는 호칭이 꽤 마음에 든 듯했다.
“오늘 학교는 갔어?”
“오늘 학교 쉬는 날이라 온 거예요.”
“오! 좋겠다.”
“안 좋아요. 학교 재미없는데.”
“헤헤. 다닐 수 있다는 게 좋은 거지.”
바가지 머리가 특징인 학생은 무뚝뚝한 말투로 말을 하면서도 은지를 반짝이는 눈으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알았는지, 남학생은 은지의 살짝 어두워진 표정을 보고 물었다.
“누나는 학교에 못 갔었어요?”
“음, 비밀. 자! 이리 와. 옆에서 같이 찍자!”
은지는 조금 쓸쓸한 분위기의 미소를 띠며 남학생의 손을 이끌었다.
남학생은 부끄러운 듯 귀가 새빨개진 채 은지 옆에 앉아 손가락으로 V를 그렸다.
찰칵.
“감사합니다.”
사진을 찍은 후, 학생은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이은지는 웃으며 빵과 우유를 주섬주섬 챙겨 남학생에게 건넸다.
“누나가 만드는 다음 노래 기대하고 있어요.”
빵을 받던 남자애는 그렇게 말하고선 고개를 푹 숙인 채 도망치듯 멀어졌다.
은지는 조금 놀란 듯하다가도 그 행동이 귀여워서 이내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은지 언니! 저도 사진 찍어 줘요!”
“언……니요?”
귀여운 남학생이 지나간 뒤.
은지에게 다음에 다가온 사람은 척 봐도 20대는 넘어 보이는 연륜이 느껴지는 여자분이었다.
“와, 제가 언니 맞아요?”
“나이는 내가 더 많지만 예쁘고 잘생기면 다 언니지!”
“하핫, 그런 게 어딨어요!”
“여기!”
은지가 의심하며 추궁하자, 그는 호쾌하게 웃더니 장난을 더하며 답했다.
은지가 웃자, 그는 은지가 웃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제 휴대폰을 내밀었다.
“나도 아까 꼬마 친구처럼 사진 찍어 줄 수 있어요?”
“당연하죠! 얼른 와요. 사진만 찍어 주면 돼요?”
“어? 다른 것도 가능해요?”
“네! 제가 해 줄 수 있는 거면 뭐든지요.”
“오, 그럼…….”
은지가 웃으며 답하자, 그는 장난스레 은지의 어깨를 툭 치더니 눈꼬리를 늘이며 물었다.
“이따 여기 근처에 맛있는 닭발집 있는데 같이 한잔하러 콜?”
“콜! 단!”
“단?”
“언니가 여기 우리 코디 언니랑 매니저 오빠 떨궈 주면 바로 GO!”
“오, 진짜? 딱 기다려!”
“하하하.”
팬 역시 진심은 아니었기에 에둘러 말하는 거절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여전히 밝았다.
반면, 화기애애한 분위기인 은지네와 달리 은호가 앉아 있는 곳은 어딘가 고요하면서도 공기는 후끈한 느낌이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저, 이, 이지민이요.”
우물쭈물한 걸음으로 은호 앞에 있던 팬은 질문에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오, 우리랑 성이 같네요. 어디서 왔어요?”
“저, 수, 수원에서 왔어요.”
“어! 나 수원역에서 공연한 적 있었는데.”
“네! 저, 저 그날 소식을 늦게 봐서 놓쳤었는데…….”
“그래도 오늘 이렇게 봤으니까 다행이다. 지민 씨, 오늘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마워요.”
은호가 웃으며 눈을 맞추자, 지민은 곧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저, 저, 오빠.”
“네. 말해요.”
“지, 진짜 죄송한데요…….”
“죄송해? 안 죄송해하면 들어 줄게요.”
“그, 그럼 안 죄송한데요!”
“하하하하. 네. 말해 줘요. 죄송하다고 하면서까지 이야기하려던 게 뭘까.”
“저, 저 한 번만 안아 주시면 안 될까요?”
지민은 엄청난 용기를 낸 듯 손끝까지 붉어진 상태였다.
은호는 잠시 놀란 듯하더니, 곧 뒤에 나눠 주기 위해 미리 들고 있던 빵을 주섬주섬 다시 봉투에 담아 넣었다.
정리를 다 한 후에는 활짝 팔을 벌리며 말했다.
“자.”
“세상에. 꺄악! 감사합니다!”
지민은 입을 틀어막더니 이 기회를 놓칠까 비명인지 인사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은호에게 달려들었다.
폭 안겨 든 팬을 힘을 실어 꽉 안아 주던 그때.
고개를 돌리자 이쪽과 마찬가지로, 은지 역시 한 어린 여학생을 강하게 포옹해 주던 중이었다.
똑같은 포즈로 서로 시선이 맞자 오랜만에 은호와 은지는 진심으로 행복에 겨워 웃으며 바라봤다.
깜짝 팬 미팅은 빵을 나눠 주는 내내 한 명 한 명 인사와 사진을 모두 찍었다.
아침부터 방송에 온 기운을 쏟았지만 그 피곤함을 잊을 정도로 좋은 시간이었다.
빵을 다 나눠 준 시점엔 벌써 두 시간 하고도 30분이 더 흘러 있었다.
‘곧 출발해야 할 시간이에요.’
내내 둘을 보고 있던 현우는 휴대폰을 살피며 슬슬 가야 한다는 신호를 은호에게 보냈다.
“이제 가 봐야 한대요.”
은호도 가기 싫은 건 마찬가지였는지 이야기를 전하는 목소리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팬들에게는 은호보다도 큰 아쉬운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더 있고 싶은데.”
은지의 투정에 은호는 눈치껏 현우가 있는 곳에 고개를 까딱였다.
‘분명 대표님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형님이 말씀하시는 걸 거야.’
짧은 행동에 담기에는 분명 긴 이야기였다.
하지만 은지는 눈치껏 대표님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달은 모양인 듯 아쉬운 한숨을 흘리며 말했다.
“아쉽지만 다음에 또 봐요. 꼭!”
“얼른 다음 곡 준비해서 이런 기회 더 자주 만들어 볼게요. 오늘은 은지가 몰래 질러 버린 거지만…….”
“나만 믿어요! 내가 더 자주 지를게요!”
와아아!
은지가 외치자 팬들이 환호하며 응원했다.
현우와 슬기는 동시에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이마를 짚었다.
그래도 진심으로 기분이 나쁜 건 아닌 듯, 두 사람 모두 표정만큼은 여전히 기분 좋은 미소가 있는 채였다.
“오늘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했고―.”
은호는 괜스레 아쉬운 마음에 객쩍은 이야기라도 꺼내며 시간을 더 벌어 봤다.
하지만 그마저도 채 몇 분을 넘기진 못했다.
이젠 정말 가야 할 때가 돼서 차로 향하는 동안.
“기다릴게요!”
“흐어어엉.”
“사랑해요!”
따라오는 팬 중에서는 아쉬움에 우는 사람도 있었고, 사랑한다며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시간 늦었으니까 얼른 들어가요! 조심히 잘 들어가고 잘 간 사람들은 이팬(E-FAN)에 글 올려서 잘 도착했다고 해 줘야 해요!”
“네!”
“안녕!”
은지는 팬들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창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은호는 은지처럼 소리는 치지 않았지만, 최대한 목을 빼며 팬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팬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이야기할 땐 괜찮더니 뒤늦게 헤어지고 나자 터져 버린 걸까.
“와 준 게 너무 감사해서 내가 선물해 주고 싶어서 불렀던 건데.”
은지는 빵을 나눠 주면서 어느새 품 안에 한가득 쌓인 수많은 편지와 여러 인형, 플래카드들을 내려 보며 울적하게 읊조렸다.
“얼른 녹음하고 신곡 내자. 우리 만들어 둔 거 많잖아.”
“끄― 흑, 으엉.”
“못생겼다.”
우는 건지 대답인지 모를 소리에 은호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하자, 퍽!
은지의 신경질 섞인 주먹이 날아왔다.
“끅. 뭐래, 우럭 새끼가.”
“하하하.”
내려 찍힌 어깨를 움켜쥐면서도 은호는 계속 웃고 있었다.
“질질 짜는 거나 끊고 말해.”
“X발, 안 끊어지는 걸 어쩌라고.”
“어유. 개못생겼다.”
“몰라. X발. 오늘 X나 행복했는데 어쩌라고. 끅, X발. 허어엉.”
은지는 오늘 받은 선물에 얼굴을 파묻은 채 흐느꼈다.
“행복하다면서 말은 험하네. 좀 곱게 말해.”
“그냥, 허엉. 좋다는 걸로는, 헝, 뭔가. 있잖아.”
“모자란다고?”
은지는 대답 대신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울지는 않았지만, 마음만큼은 은지와 같은 듯.
은호 역시 받은 편지를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한 장 한 장 조심히 펼쳐 읽고 있었다.
“그래도 팬분들 중에선 네가 그렇게 욕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고치는 게 좋지 않겠냐.”
“그건…….”
“그건 뭐.”
“아니야. 응. 고쳐야겠네.”
“내가 수십 번 말했을 땐 듣는 척도 않더니, 인제 와서?”
“그건 너니까.”
눈물 자국을 무심하게 닦아 낸 은지는 ‘뭐 그런 당연한 말을 하냐’는 듯 정색하며 대답했다.
우는 동안 번진 화장을 간단히 고치는 내내 투덕거리는 건 멈추질 않았다.
“하여간 또라이.”
“누가 누구한테 또라이래. 우럭같이 생긴 놈이.”
“응. 호박 대가리야, 너보단 내가 정상이거든.”
“응. 아니야, 우럭 대가리야.”
휴우…….
유치하게 투덕거리는 둘의 싸움을 가만히 듣고 있던 조수석에 앉은 슬기와 운전 중이던 현우.
두 사람은 푹 웃음이 섞인 복잡한 한숨을 내쉬다 시선이 맞았다.
‘그동안 혼자서 고생 많으셨겠어요.’
‘힘드시죠. 고생 많으셨습니다.’
둘은 서로의 고생을 애잔한 미소로 위로하며 인사를 대신했다.
* * *
뒤풀이
“근데요. 언니, 오빠, 우리 어디 가고 있는 거예요?”
잠시 후.
은지는 은호가 대표님이 연락했을 거라며 눈치를 줘서 그렇게 추측했을 뿐.
지금 어딜 이렇게 가고 있는 건지, 왜 가는지를 물어보질 않았다는 걸 뒤늦게 떠올리며 물었다.
은호는 예상 가는 곳이 있는 듯 당황한 은지의 질문을 무시하며 선물로 받은 편지를 소중하게 겹겹이 품에 안은 채 창가에 머리를 기댔다.
“뭐야. 왜 다 나만 따돌려? 어디 가는데!”
한참 투덜거리던 은지는 잠시 후.
팬들이 준 인형을 가지고 지금 상황을 표현한 인형극을 하며 불만을 표현했다.
“너만 빼고 우리는 다 알지뤙.”
“왜! 나한테도 이야기해 줘!”
“쉬른뒈, 쉬른뒈.”
사실 슬기나 현우는 처음엔 이야기해 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삐친 은지는 반응이 귀여워서 왠지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도 조용히 은호를 따라 말을 아꼈다.
“진짜 치사하다. 끝까지 아무도 말 안 해 줄 거예요? 사실 다 모르지?”
“아니지. 모르면 매니저 오빠가 이렇게 운전해서 어디를 갈 리가 없잖아.”
“흐음, 이 길은, 내가 아는 길이야. 졸면서 다녀서 띄엄띄엄 기억나긴 하지만 분명히 오가며 본 적 있어. 그럼 내가 아는 곳에 가겠지? 그럼 어디지?”
은지는 인형극을 하다가 언제부턴가 홀로 추리물을 찍었다.
“풋.”
가만히 듣던 슬기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
“뭐야. 언니, 뭔데요! 왜 웃어!”
황급히 손을 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표현했지만, 은지의 의심은 이제 확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근데 오빠는 왜 내비게이션도 안 찍고 가는 거예요?”
“나, 알았어. 이거 이 길은 익숙해. 우리가 아는 곳에 가고 있어. 아닌가?”
은지의 이유 없는 확신은, 운전에 집중하려던 현우가 은지의 조잘거리는 이야기를 듣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면서 금방 깨졌다.
“어? 여긴 처음 보는 길인데. 거기가 아니면 뭐지?”
대체 어디를 생각한 걸까.
“진짜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현우는 익숙하게 다시 원래 길을 찾긴 했지만 얼떨결에 은지를 더 미궁 속으로 빠트린 것 같았다.
“설마! 헐, 지금 매니저 오빠도 그냥 일단 달리고 있는 건가?”
“맞네. 이거네!”
“나 놀리려고 태운 거죠! 이거 몰래카메라죠!”
오, 꽤 정답에 근접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차 안의 누구 하나 은지에게 속 시원하게 답해 줄 생각은 없었다.
“다 딱 걸렸어.”
“나 이거 몰래카메라인 거 딱 알았어!”
“나 알았다니까?”
“……왜 다 짠 듯이 아무 말도 안 하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