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77화 (77/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77)

“어, 대표님! 언제 오셨어요.”

“휴, 방금.”

다음 앨범 작업 준비로 정신없이 미팅하러 다니던 박 대표는 다행히 생방송 전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잘할 수 있지?”

“그럼요. 몇 번이나 섰는데.”

“긴장은 이제 안 돼?”

“아쉽기만 하죠.”

“아쉬울 게 뭐 있어. 앞으로는 더 바빠질 텐데.”

그동안 뭘 했는지도 모를 만큼 빠르게 흐른 시간이 아쉬우면서도 뒤에 든든하게 준비된 다음에 발표할 곡들을 생각하면 설렌다.

첫 무대는 기억이 뚝 끊긴 것처럼 섰던 무대였다.

하지만 이은지한테 회귀를 들킨, 아니, 밝힌 뒤 이후의 무대는 온전히 내 것이 됐다.

“화이팅!”

“마지막까지 잘하자!”

무대로 향하는 문으로 향하던 그때.

뒤를 돌아보자 지금까지 몇 개월간 함께 노력해 온 클라우드 팀.

로아 누님, 에나―오별님― 누님, 현지, 미은이, 인혁 형, 영국 형, 정민이, 달님이.

모두가 같이 따라오고 있었다.

“끄으으으, 아! 아자!”

옆에는 곧 있을 공연에 설레는지 기지개를 켜며 몸을 풀고 있는 이은지까지.

“아쉽냐?”

시선을 마주친 이은지가 헤실거리며 물었다.

“당연히 아쉽지.”

“얼른 다음 곡으로 또 무대에 서자.”

“그래.”

맞는 말이었다.

어서 다음 곡으로 이 무대에 돌아오고 싶다.

“EUNG 올라갈게요!”

“네!”

스태프가 무대 위로 가라며 신호를 보냈다.

우렁찬 스태프의 외침에 떨리던 심장이 순간 멎은 느낌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발걸음은 제 할 일을 알고 있다는 듯 걸었다.

무대가 가까워질수록 익숙함에 잠시 식었던 심장이 다시 떨려 온다.

무대에 오르며 앞을 돌아본 그 순간.

밝은 조명에도 불구하고 눈에 읽히는 글씨들을 보며 심장은 다른 의미로 격하게 떨렸다.

「♥E-UNG♥」

「너만 보여! 이은호!」

「ㅇㅇㅇㅇㅇㅇㅇㅇㅇ」

「이은지 사랑해」

「이응이 최고야」

휴대폰에 전광판을 띄운 팬부터 손수 만든 듯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팬들.

첫 무대 때에는 있는지조차 몰랐던 우리 팬들이 이젠 눈에 보인다.

타 팬들에 비해 여전히 인원수는 현저하게 적다.

과거에 비해서도 수만큼은 적었지만, 그분들을 향한 이 감사함과 애정만큼은 변함없다.

―꺄아아아악!!!

팬들의 함성이 홀을 무너뜨릴 것처럼 강렬하게 다가왔다.

실제로는 빈약했을지언정 적어도 우리에겐 어떤 환호성보다도 행복에 겨운 소리였다.

지예찬 선배님의 쇼케이스에 참여했을 때.

날 제발 봐 달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무대를 했던 그때부터 마치 파노라마처럼 기억들이 흘러간다.

이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그럴까.

왠지 기분이 뭉클했다.

옆을 돌아보자 이은지는 이미 고개를 치켜들며 애써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기다릴게요!”

우리 팬분인지, 단 한 사람의 외침이 비명 같은 함성을 뚫고 우리에게 닿았다.

“기다릴게!”

“기다릴게요!”

그 한 명을 시작으로 기다린다는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나 포인트 다 모아가! 금방 연락할게! 은호 오빠!”

“나도 모았어! 언니! 딱 기다려!”

“파하핫.”

“푸하하, 아씨힝.”

그 찰나는 행복한 기분이 긴장을 집어삼키는 순간이었다.

이 함성은 온전히 우리 E-UNG를 향한 소리였다.

옆을 보자 이은지 눈이 조명에 과하게 반짝거리는 걸 보니 눈물이 흐르기 직전인 모양이다.

하지만 감동했다고 무대를 망칠 순 없으니까.

이은지와 난 웃으며 준비 자세를 잡았다.

대형이 갖춰진 뒤.

수없이 반복해서 듣고 연습했던 익숙한 드럼과 와글 베이스 연주가 시작됐다.

<듀오>의 인트로였다.

나 꿈을 꿨는데, 네가 사라진 꿈이었어

왠지 이상해

공간이 고요해

벌스에 들어서자, 거대한 스크린에 커다란 달과 잠잠한 호수 배경이 펼쳐졌다.

뮤직비디오와 비슷한 그 풍경이었다.

아 이런, 현실이 닥쳐와

문득 돌아본 옆이 비어 있네

안무에 맞춰 이은지와 시선을 마주치자 기분이 미묘했다.

몇 번이나 같은 노래에 맞춰 비슷한 무대를 했는데 오늘따라 이렇게 같이 호흡을 맞추고 있다는 게 왠지 낯설어서.

신기한 기분이었다.

꿈인 줄 알았는데

꿈이길 바랐는데

이 문 너머의 넌, 왜 대답이 없을까

주마등처럼 지금껏 있었던 일들이 흘렀다.

은지가 세상을 떠나고, 추모를 위해 방문한 벚나무 아래.

지금 기숙사에서 눈을 뜨고, 이번엔 이은지한테 잘해 주려고 했다가 도리어 욕만 먹었던 일.

그날이 떠올라서 웃자, 이은지는 내가 왜 웃는지도 모르면서 실실 따라 웃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아도, 우린 항상 함께였어

손을 맞잡고, 죽음에 맞서 왔어

온갖 생각으로 어지러워진 머리와 다르게 몸은 모든 걸 기억하고 스스로 리듬에 따라 발을 옮겼다.

이은지의 손끝을 잡고, 클라우드 댄스팀이 표현한 악몽을 흐트러뜨렸다.

그런데, 오늘 넌 왜 말이 없어

클라우드 댄스 팀을 조종하던 손끝은 이은지랑 등을 맞대며 멈췄다.

아 이런, 현실이 닥쳐와

이은지가 눈을 가린 순간, 우린 익숙한 호흡에 맞춰 위치를 바꿨다.

찾은 방 안이 비어 있네

손가락을 갈라내 눈을 드러낸 그 순간.

우릴 응원하는 팬들이 다시 한 번 눈에 들었다.

꿈인 줄 알았는데

꿈이길 바랐는데

정말 꿈만 같다.

마냥 지금 이대로 행복에 겨운 채 있고 싶은데.

꼭 곧 깰 것 같은 꿈처럼 왠지 모르게 불안한 기분도 함께였다.

‘내가 알던 시간이랑은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다시 돌아온 훅을 부르는 동안.

새삼 시간의 차이가 훅 피부로 느껴졌다.

얼굴조차 마주하지 못하던 대선배였던 지예찬 선배 노래에도, 심지어 선배의 쇼케이스도 참여해 봤다.

이은지가 혼자 참여했던 OST는 우리가 함께하게 됐고, 그 곡으로 공연까지 치러봤다.

팬분께 선물도 받아 봤고…….

‘한 사람은 이젠 직원이 되긴 했지만, 하하.’

첫 만남의 슬기 씨를 떠올리자 픽 웃음이 흘렀다.

여기까지 오기가 마냥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이은지는 제 길을 찾아가듯 몇 번이나 완성에 가까웠던 곡을 엎길 반복하며, 페이옵에게 시달리면서 고생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린 이 ‘듀오’로 이렇게 데뷔를 해냈다.

이은지의 작곡 실력은 앞으로 더 더 큰 빛을 보게 될 거다.

‘넌 원래 그랬던 녀석이고, 그 위가 잘 어울리는 녀석이니까.’

조명이 뜨거워서 격한 안무를 따라 땀방울이 튀었다.

오늘 이 자리에 서기 위해 다 같이 숨 막히게 연습에 매진했던 매일.

이은지는 와이셔츠의 한쪽 팔이 빠지기 직전까지 흘러내린 것도 모른 채 무대에 집중하고 있었다.

쿵쿵

브리지를 알리는, 주먹으로 문을 내리치듯 강하게 때리는 베이스 드럼.

항상 돌아오던 ‘왜?’라던 대답이 들리지 않아

슬퍼, 여기 조용히 비어 버린 방 안이 고요해

쿵쿵

이은지 파트가 끝난 뒤.

다시 이어진 베이스 드럼은 내 차례를 알렸다.

문을 열어 주던 다정한 네 손이 보이질 않아

울어

항상 짝이던 우리 것이 하나만 남았네

안무와 노래에 집중하며 동시에 노련하게 카메라 또한 놓치지 않았다.

한 컷조차 놓치지 않도록, 때로는 다음 켜질 곳을 예상하고서 그쪽을 먼저 보며 카메라를 좇았다.

「“됐다. 됐어. 내가 차라리 방송국에 독을 풀지.”」

기억 속 깊이 파묻혀서 잊고 있던 대표님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망할 사랑 노래도 절대 못할 줄 알았는데 우린 결국에는 하게 됐다.

시간을 돌고 돌아 대표님은 결국 처음 뜻을 이뤄, 방송국에 우리라는 독을 풀었다.

찬 바람 부는 옥탑방

여기 홀로 달을 바라봐

기분 좋을 만큼 딱딱 떨어지는 꽉 짜인 군무를 마무리하며 난 이은지 손을 잡았다.

엔딩을 위해서였다.

* * *

‘나온다. 나온다! 연습할 때만 기겁했던 그 포즈!’

주연은 은호와 은지가 투덕거리며 싸웠던 초기 안무 영상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었다.

길거리에서 봤던 첫 무대도 좋기는 했지만, 스포트라이트 아래의 이응은 원래부터 제 자리처럼 그곳에 있어야 할 사람들인 것 같았다.

끄으으!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주연은 들고 있는 ‘「♥E-UNG♥」’ 플래카드를 물어뜯으며 입을 틀어막았다.

놓친 무대들이 아쉬웠지만, 주연은 관계자인 친구―슬기― 찬스 덕분에 이 마지막 무대만큼은 직접 맨눈으로 볼 수 있었다.

네가 오기를 바라서, 꿈을 꾸기를 바라며

은지의 허리가 왈츠를 추듯 유연하게 꺾이며 빙글 돌았다.

거기 그대로

노래가 끝나기 직전.

은지의 손이 은호의 옷깃이 구겨질 정도로 강하게 틀어쥐었다.

불안정한 자세의 은지를 은호는 여유롭게 웃으며 등을 받친 뒤 몸을 뉘었다.

여기 그대로

노래의 아웃트로를 끝으로.

고요했던 홀에 파도처럼 함성이 몰아쳤다.

와아아아!

은호와 은지는 흐르는 땀방울을 둔 채, 카메라를 노려보며 거친 호흡을 내쉬었다.

컷이 떨어지자 은호는 은지를 당기며 똑바로 일으켰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은호와 은지는 한곳에 몰려 있는 팬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 *

「오늘 공방에 찾아와 주신 분들! 퇴근하기 전에 대표님 몰래 저랑 만날래요? 장소는―.」

무대가 끝난 뒤,

‘E-FAN’ 어플에 이은지는 몰래 글을 하나 올렸다.

처음에 그 글을 발견한 건 나였다.

그리고…….

“나도 갈래.”

“엥.”

나는 이은지를 따라 공범이 됐다.

‘나도 팬분들과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으니까.’

작전을 위해 우린 형님과 슬기 씨를 떨어뜨리려고 다양한 짓을 했다.

“저! 화, 화장실 다녀올게요!”

“어딜! 은지 님! 같이 가야죠.”

“하하, 어, 언니…….”

이은지는 화장실을 가는 척 몰래 빠져나가 볼 심산이었지만 슬기 씨가 무섭게 따라붙었다.

“아. 형님, 저 대기실에 뭐 좀 두고 와서 다녀올게요. 이은지 데리고 먼저 가 계십쇼.”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같이 가면 되는걸. 멀지도 않은데.”

이은지한테 슬기 씨가 있었다면 나한테는 현우 형님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슬기 씨와 현우 형님의 생글거리는 표정에서 대표님 표정이 겹쳐 보인 건 기분 탓일까.

“빵이 좋겠죠?”

“……네.”

결과적으로 우리의 노력은 실패했다.

‘몰래’라고 말했지만 아무래도 대표님은 다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이렇게 다 같이 우린 방송국 인근 빵집으로 이동했다.

“이걸로 계산하십시오.”

그러나 대표님도 우리가 팬분들께 보이는 애정 표현을 막을 생각은 없는 듯.

사비로 빵을 사려고 하자, 형님이 조용히 익숙한 법인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쪽!

이은지가 형님께 법인 카드를 받아 들더니 입을 맞추며 활짝 웃었다.

‘오, holy shit.’

나는 앞으로 저 검은 법인 카드에 손을 댈 수 없게 됐다.

이은지는 법인 카드로 푸짐하게 쌓인 빵을 결제했다.

우리는 결국 형님과 슬기씨와 다 함께 품 안에 한 아름 빵과 음료수를 싸 들고 E-FAN에 업로드했던 그 약속 장소로 향했다.

“죄송합니다. 많이 늦었죠.”

“더 일찍 오고 싶었는데, 미안해요!”

“오래 기다렸어요?”

꺄아아아악!

사람이 엄청 많지도 않은데 환호성만큼은 수백 명이 부럽지 않았다.

우린 모인 팬들에게 각자 빵과 음료수를 나눠 줬다.

“누나, 저 사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리고 어쩌다 보니 그게 우리의 첫 팬 미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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