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76)
안녕, 듀오
은호와 은지를 만나기 하루 전.
다음 날에 입을 은지의 의상을 두고 박 대표와 슬기는 진지하게 고민에 잠겨 있었다.
“분명히 은지는 이걸 고르고, 둘이 엄청나게 치고받고 싸울 텐데…….”
“이런 걸로 싸움을…….”
음.
슬기는 말을 아꼈다.
아직 NRY 엔터테인먼트에 들어온 지 며칠 되지 않았다.
하지만 팬으로서 두 사람의 브이로그는 전 편을 모두 두 번 이상은 돌려 봤었다.
그 덕에 은호와 은지의 성격은 잘 알고 있었다.
“그땐 이걸 쓰자.”
“네.”
“일단 처음부터 ‘이게’ 있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고, 은지가 이걸 골랐을 때 은호가 싫다고 한다면 그때 꺼내서 보여 줘.”
“네.”
“참, 그리고 이 옷 이야기할 때, 꼭 ‘대표님이 입으라고 했다’라고 붙여야 한다.”
“네!”
슬기는 마지막 문장에 궁금증은 있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현재.
은호는 메이크업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고 싶었다.
은호는 일단 진정하지 않으면 쌍욕부터 나갈 것 같았는지, ‘후’ 깊은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입을 열었다.
“야, 과해. 아까 다른 옷 있잖아. 그거 입자, 제발.”
“이게 뭐가 과해!”
“아니. 하.”
대표님의 예상 그대로의 상황이 펼쳐졌다.
‘대표님이 두 분을 굉장히 잘 알고 계시는구나…….’
슬기는 대표에게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은지의 옷은 딱 붙는 반소매 크롭 티에 허리가 시원하게 드러난 상의였다.
박 대표는 은지가 평소 루즈 핏을 선호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평소라면 다른 의상을 고르겠지만…….’
최근 열심히 관리한 은지는 몸매에 자신감이 크게 붙었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엔 짧고 시원한 다른 의상을 고르지 않을까 예상한 것이다.
박 대표의 높은 적중률은 아니나 다를까, 적중했다.
은호는 한차례 깊이 숨을 내쉬며 은지에게 차분히 상황 설명을 이어 갔다.
“이은지, 너 무대 누구랑 올라가.”
“너.”
“그래. 나지. 그럼 너 우리 안무 모르냐?”
“알지.”
“근데 괜찮다고?”
“어!”
“……아니야. 내가 아니야.”
“아, 왜! 예쁘기만 한데!”
은호는 메이크업을 망칠까, 대신 관자놀이를 누르며 숨을 골랐다.
은호와는 다른 이유였지만, 은지는 ‘예쁜데 왜 X랄이냐’며 그쪽으로 뿔이 나 있었다.
벽을 보고 대화하듯 비슷한 말다툼이 반복됐다.
결국 참다못한 은호가 폭발했고, 그 순간 이후로 두 사람은 진심으로 이를 갈며 다퉜다.
“아니, X발. 옷이 예쁘면 뭐 해. 니가 호박 같은데!”
“뭐? 이 우럭 새끼가 말하는 꼬라지 봐라?”
“내가 얼마나 거지 같으면 이러겠냐고! 나 안 이러는 거 니가 더 잘 알잖아!”
“그러니까 평소에는 별문제 없던 놈이 왜 오늘 X랄이냐고!”
“야, 아무리 비즈니스라도 안무할 때 니 살 닿는 건 싫어! 집중 다 깨져!”
“나도 닿는 거 X같기는 마찬가지거든!”
한참 투덕거리고 싸울 때.
이런 순간이 올 줄 예상했던 슬기는 상황이 닥쳤을 때 대표님과 미리 정해 둔 비장의 무기를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의외의 복병은 둘의 ‘진짜’ 싸움이 생각보다 더 살벌했다는 게 문제였다.
“그만! 그만! 얘들아!”
“왜 그 배 다 드러난 옷을 고집하냐고!”
“아!!! 이거 입고 싶으니까!”
“다음에 살 안 닿는 안무할 때 입으면 되잖아!”
“싫어! 오늘 입을 거야!”
오죽했으면 현우조차 둘을 못 말릴 정도로 난리가 따로 없었다.
그때, 현우는 슬기가 들고 있던 겉옷으로 눈을 돌렸다.
“코디님.”
“네……?”
홀린 듯 둘의 싸움을 보고 있던 슬기는 현우의 부름에 당황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거 은지 의상에 같이 걸칠 겉옷인 거죠?”
“……네.”
슬기는 들고 있던 옷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흰 바탕에 검은 얼룩 프린트가 되어 있는 넉넉한 핏의 인조 퍼 재킷이었다.
“제가 건네줘도 될까요?”
“네. 부,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현우는 슬기에게 재킷을 건네받았다.
재킷을 받아 들었을 때 인조라고는 하나 꼭 진짜 같은 부드러운 느낌에 잠시 흠칫했다.
펄럭.
현우는 조용히 퍼 재킷을 은호와 은지 사이에서 펼쳐 둘의 시선을 막았다.
‘노, 놀라라.’
둘의 부리부리한 눈빛을 받은 현우는, 찰나였지만 강한 눈빛에 흠칫했다.
“매니저 오빠?”
“……죄송합니다.”
다행히 계속 과열되던 두 사람의 싸움은 시선이 막히면서 이성이 돌아온 듯 금세 멈췄다.
은지는 현우가 들고 있던 퍼 재킷에 관심을 보였다.
반면 은호는 이성이 돌아왔는지 조금 전까지의 상황이 부끄러워 눈도 못 마주치겠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거, 은지 님 의상에 같이.”
아.
「“이 옷 이야기할 때, 꼭 ‘대표님이 입으라고 했다’라고 붙여야 한다.”」
슬기는 뒤늦게 박 대표의 당부를 떠올리며 말했다.
“……대표님이 말씀하셨었어요.”
그 당부를 왜 붙였는지 슬기는 두 사람의 표정을 보자 알았다.
슬기를 돌아보는 두 사람의 눈빛에는 놀람과 동시에 굉장한 공포감이 어렸다.
은호는 현우에게 재킷을 받자, 은지에게 던지듯 건넸다.
“입어, 무조건.”
“……응.”
은호의 말에는 ‘대표님 명령이니까’라는 말이 숨어 있었다.
숨은 뜻을 은지도 알고는 있는지, 조금 전까지 으르렁거리며 싸우던 남매가 맞나 싶을 정도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 도대체 어떻게…….’
사람한테 이런 말을 쓰긴 조금 그렇지만, 이건 정말 잘 ‘길들인’ 수준이었다.
은지는 박 대표의 명령도 명령이었지만 의상 자체도 꽤 마음에 든 듯 입고 난 뒤에는 순한 양처럼 얌전해졌다.
“죄송합니다. 슬기씨.”
“괜찮아요.”
“처음 같이 일하게 된 건데, 이런 꼴부터 보여서…….”
은호 또한 메이크업과 의상을 입는 내내 슬기에게 계속 사과하기 바빴다.
* * *
[E-UNG ― 'DUO(듀오)' Special dance video ★매우 중요★ 쿠키 영상 있음]
대표님은 미리 준비하고 있었는지, 영상을 촬영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오튜브에 댄스 영상 하나가 업로드됐다.
댄스 영상이 끝나고 잠시 후.
검은 셔츠에 리본 초크를 한 은호와 딱 붙는 반소매 검은 크롭 티에 얼룩 무늬 퍼를 걸친 은지가 인사를 하며 화면에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E-U.N.G!
―E.U.N.G!
어딘가 어긋난 호흡이었지만 은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뻔뻔히 인사를 이어 나갔다.
―이응의 이은호.
―이은지입니다!
와아아!
화면 앞에선 새로운 직원들이 모여서 손을 뻗으며 소리를 질렀다.
여느 콘서트만큼 넘치진 않았지만, 적어도 화면 속에는 가득 들어찰 정도의 환호성이었다.
―오늘 저희 대표님이 사고를 하나 치셨습니다.
―흩어진 이응의 팬들을 한곳에 모으시겠다고, 짜잔.
화면에 [E-FAN]의 어플 하나뿐인 휴대폰이 비쳤다.
은호와 은지는 번갈아 가며 E-FAN 어플의 기능을 소개했다.
출석 기능부터 미니 게임과 굿즈 및 앨범이 나온다면 시리얼 번호로 등록 후 인증이 편리해진 것까지.
E.G 포인트를 모으면 참여할 수 있는 여러 서비스도 함께 홍보를 이어 갔다.
―앞으로는 E-FAN에서 우리 더 많이 이야기 나눠요!
―여러분의 연락 항상 기다리고 있을게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영상은 E-FAN 어플을 소개 후, 은호와 은지의 간단한 인사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어수선했던 영상치고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흩어져 있던 여러 팬 카페도, 카페의 존재조차 모르던 오튜브의 구독자까지.
어플의 다운로드 수는 순식간에 천 명을 넘어갔다.
초기에는 대부분 오튜브를 통해 직접 영상을 보고 유입된 인원들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러 팬 카페에서 이야기가 돌았는지, 이후에는 소개를 받고 다운로드를 한 인원도 적잖이 많아졌다.
E-FAN 어플은 현재까지는 나온 굿즈가 없는 탓에 출석과 미니 게임.
오튜브에 업로드하지 못했던 은지의 작곡하는 모습 외 다양한 비공개 영상들을 감상할 수 있는 메뉴 정도만 구현 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꽃이 튀고 있는 곳은 ‘자유 게시판’이었다.
* * *
2월 중순에 데뷔 이후, 곧 3월을 앞둔 어느 날.
MJC ‘쇼! 뮤직센터’ 대기실.
“와. 이은지, 이거 봤냐?”
“뭐. 또 자유 게시판이야?”
“어. 재밌어. 아무튼, 너 팬분들 사이에서 네 별명이 지지인 거 알고 있었냐?”
거울 앞에 앉아 휴대폰을 보던 은호는 다른 의자에 반쯤 널브러진 은지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아. 언니 처음 만난 날, 지지라고 했던 게 내 별명이었어?”
“어. 근데 그거 이유가 뭔지 알아?”
“뭔데?”
“니 방이 ‘지지해서’래.”
은지의 표정이 굳어졌다.
“구라 치지 마!”
“내놔! 인마! 하하하.”
은지는 은호의 휴대폰을 빼앗으며 방금 은호가 읽은 게시글을 확인해 봤다.
“진짜네.”
“내가 이걸로 왜 거짓말을 하겠냐.”
“매일 쓸데없는 걸로 하잖아.”
“그건 그래.”
은호는 순식간에 은지 손에서 휴대폰을 빼내며 말했다.
“그럼 오빠는 뭔데.”
“난 랑이래.”
“왜 랑이야?”
“대표님 타이거 타령했을 때.”
“아. 설마, 싫어해서?”
“어. 그래서래.”
“뭐야. 나도 타이거 시리즈 싫었어! 나도 랑이 할래! 난 왜 지지야!”
“아, 역시. 호랑이가 아무리 싫어도 지지보단 낫지.”
은호가 키득거리며 웃자 은지는 해탈한 듯 털썩 의자에 앉았다.
은호는 그 모습을 보며 방금 떠올렸다는 듯 일부러 손뼉까지 치며 과장된 목소리로 외쳤다.
“아! 참.”
“또 뭐.”
은지는 그 모습이 불쾌하기만 한 듯 미간을 구기며 은호를 노려봤다.
“그, 오튜브 영상에 대표님 고양이 사진 나온 횟수가 네 방 더러움 상태 측정기래.”
“아, 그게 뭐야!”
“그러게 방 좀 치우고 살라니까.”
“하, 앀. 짜증 나. 앀.”
여전히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은지도 어이가 없었는지 졌다는 듯 픽 웃음을 터뜨렸다.
은지는 첫날에는 신기해하며 온종일 어플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SNS를 드문드문 해 왔기 때문일까.
은지는 며칠이 흐르자 버릇처럼 들여다보는 정도로 정착하게 됐다.
반면.
지금껏 오튜브 채널의 댓글만 이따금 봤던, SNS는 회귀 전 악플로 인해 이번엔 가입조차 하지 않았던 은호.
은호에게는 이런 밝은 분위기의 반응이 신세계였는지 생전 처음 겪어 보는 관심을 마음껏 즐겼다.
팬들의 힘인지, 덕분에 최근 은호가 쓰는 가사 또한 어딘가 밝은 분위기를 풍겼다.
동시에 언제 이 행복이 깨질지 몰라서 두려워하는 모습 또한 은호의 가사에 그대로 스며들어 있었다.
―다음 무대는!
모니터링을 위해 준비된 TV 속 목소리에 은호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MC가 낯선 그룹의 차례를 알렸다.
한참 떠들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러간 모양이다.
은호와 은지는 슬슬 때가 됐다는 듯 단장을 마치고 대기실을 떠날 채비를 마쳤다.
화면에서는 다른 그룹을 말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E-UNG이 슬슬 준비해야 한다는 알림이기도 했다.
“EUNG! 준비해 주세요!”
“네. 바로 갑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듯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태프가 대기실에 들어서며 외쳤다.
기다렸다는 듯 은호가 대답하며 은지와 함께 대기실을 나섰다.
미리 착용하고 있던 인 이어 너머로 앞서 무대를 하는 선배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그간 데뷔 이후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렀다.
‘듀오’로 여러 방송사에서 무대도 했고 바쁘게 행사도 뛰어 봤다.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듀오’의 마지막 공개방송 일정을 소화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