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75)
“은지가 1층 철거된 게 무서웠는지 겁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랬어?”
대표님은 은지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런 와중에도 무서워했다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지 이은지는 한참 동안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까딱였다.
“저래서 제가 장난 좀 쳤던 거예요. 싸운 건 아녜요.”
“그러냐?”
대표님은 아직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이은지를 돌아보며 또 한 번 물었다.
이은지는 입을 삐죽인 오리주둥이를 하며 ‘끄덕끄덕’을 반복했다.
‘오, 성공인가?’
이은지의 대답에 대표님의 화난 표정이 풀어졌다.
“하루도 안 싸우면 입에 가시라도 돋냐, 이 녀석들아. 너희는―.”
결과적으로는, 표정이 바뀐 게 잔소리 면제권은 아니었나 보다.
대표님은 무섭던 표정이 화난 표정 정도로만 풀어졌다.
고장 난 가로등이 깜빡거리는 골목길.
구사옥이 된 문 없는 대문 앞.
‘대표님…… 오랫동안 랩 하기, 말하기 같은 대회 있으면 거기서 1등 하시지 않을까.’
약 30분이 넘어가도록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끊김 한 번 없는 긴 잔소리가 쏟아졌다.
이은지도 오늘 이후로 귀신보다 무서운 것이 대표님의 잔소리로 바뀌기라도 한 걸까.
처음 봤을 때 만해도 못 들어가겠다며 고래고래 소리까지 쳐 가며 날 불렀으면서…….
지금 이은지는 당장이라도 튀어 들어가고 싶은 듯 간절하게 대문 너머 1층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대표님의 잔소리 폭탄의 효과는 확실했다.
작사를 맡은 이래 이렇게 곧바로 잠든 게 얼마 만인지, 불면증에는 특효약이었지만 자주 듣고 싶진 않았다.
오랜만에 개운한 아침을 맞으며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고 준비를 했다.
쾅쾅.
오늘 일정을 가기 전에 촬영이 있다더니 그래서 현우 형님이 조금 일찍 오신 모양이다.
난 젖은 머리를 대충 수건으로 닦아 내며 문을 열었다.
“어……?”
당연히 형님만 있을 줄 알았는데 문 앞에서는 두 사람이 있었다.
며칠 전에 새로 뽑았다던 일곱 명의 직원 중 한 명인 듯했지만 왠지 익숙한 사람이었다.
“저―.”
이야기를 꺼내려던 그때였다.
쿵!
집을 울리는 큰 소리에 형님은 눈치껏 이은지가 깨면서 난 소리인 걸 짐작한 것 같았다.
반면, 오늘 처음 오신 손님께선 이런 큰 소리가 낯선지 조금 당황한 눈으로 이은지 방문을 바라봤다.
‘이분한테는 조금 충격일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쾅. 파가각!
곧이어 커다란 게 떨어지는 소리부터 무언가가 엎어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매일 저런 소리가 나는데도 쟤 방에는 뭐가 있길래 더 부서질 게 남은 걸까.’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달칵.
시끌벅적하던 것도 잠시, 이은지의 방문 손잡이가 돌아간다.
은호는 걱정스럽게 오늘 새로 오신 손님 쪽을 돌아봤다.
‘괜찮……겠지.’
문이 열리고, 목이 늘어난 티와 왠지 천이 닳아 버린 느낌의 반바지.
항상 그렇듯 검은 긴 머리가 산발이 되어 있는 귀신 몰골.
오늘 처음 오신 손님에게 보이기엔 부끄러운 몰골인 내 동생 이은지가 거실로 나왔다.
매일 아침 보는 몰골이라 나는 괜찮다.
형님도 괜찮은 것 같았다.
‘오늘 처음 오신 손님은…….’
시선을 조금 아래로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손님은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황인 듯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제 동생이, 음…….”
쉴드를 쳐 주려고 했는데 할 말이 없다.
형님도 같은 마음이었던 걸까.
도움을 청하며 형님과 눈을 마주치자, 형님도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들썩이실 뿐이었다.
“하, X발. 또 깨졌어.”
이마를 짚었다.
‘아이고.’
한숨이 터져 나온다.
저거, 왜 잠결에 욕하는 건 몇 번을 지적해도 고쳐지지 않을까.
이은지는 오늘도 뭔가를 밟은 듯 발바닥에 붙은 부서진 플라스틱 찌꺼기를 대충 털어 내며 미적미적 화장실로 향했다.
은호를 포함한 셋은 욕실로 향하는 은지를 빤히 바라봤다.
마치 미어캣 세 마리처럼 셋의 고개가 똑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이동했다.
달깍.
은지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글 때까지 셋의 시선은 내내 은지를 봤다.
화장실 문이 닫힌 뒤.
은호는 문 앞에 선 두 사람을 돌아보며 물었다.
“일단 들어오실래요? 아무래도 좀 걸릴 것 같은데.”
경험에서 우러나온 제안이었다.
‘족히 20분은 걸릴 테니까.’
현우는 익숙하다는 듯 은호의 안내에 곧바로 안으로 들어왔다.
반면 함께 온 손님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은호를 빤히 봤다.
‘제가 여기 있어도 괜찮은 건가요?’라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은지가 좀, 준비 시간이 필요해요.”
이 이상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일은 잘한다’라고 핑계라도 댈 텐데…….
다행히 형님과 손님은 안내를 따라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내부를 신기한 눈으로 두리번거리는 손님을 가만히 지켜보던 은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슬기 씨는 CK 뮤직 라이프 매거진에서 일하시던 거 아니셨어요?”
“와, 대박. 제 이름을 아세요?”
슬기는 진심을 화들짝 놀라며 은호를 돌아봤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은 잘 외워서.”
은호가 태연하게 웃으며 말하자, 슬기는 조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제가 CK에서 일하던 건 어떻게 아셨어요?”
“아, 그건. 저희가 홍대에서 버스킹 쇼케이스 했던 날―.”
“아, 주연이가 보내 준 덕분에 영상 잘 봤어요. 그 자리에 못 간 게 얼마나 아까웠는지.”
“하하,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그때 무대 전에 주연 씨를 마주쳤었거든요.”
“오, 쭈를요?”
“네.”
‘쭈’라는 별명이 귀여워서 은호가 피식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주연 씨가 언뜻 CK에 관한 이야기를 흘렸다.
그리고 뮤직 라이프 2월호에 실린 글을 읽으며 ‘슬기 씨가 아닐까?’ 생각했었다며 은호가 말하자, 슬기는 놀라는 것도 잠시.
곧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오, 눈썰미가 굉장히 좋으시네요.”
“그거 칭찬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거죠?”
“그럼요.”
솨아.
때마침 욕실에서 들린 샤워기 물소리에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은호는 잠시 침묵하다 어색해진 분위기도 깰 겸 궁금한 부분을 물었다.
“그래서 슬기 씨는 어쩌다 여기 오신 거예요?”
“후후, 이응이 좋아서 왔죠.”
“에이.”
은호는 슬기를 의미심장하게 보며 웃었다.
“저희가 아니라 은지가 좋아서 오셨으면서.”
“와, 맞아요.”
“아니라고 해 주시길 바랐는데, 하하.”
은호가 씁쓸하게 웃자 슬기도 절반은 장난이라며 웃음을 흘렸다.
“어쩐지, 칼럼에 엄청 티가 나게 쓰셨더라고요.”
“어머, 그 정도였나요?”
“네. 꼭 은지 파트에서만 애정이 엄청나던데요.”
“제 애정이 ‘조금’ 엄청나긴 하죠.”
“그래도 CK 정도면 놓치기 아까울 대기업이었을 텐데.”
슬기는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CK 뮤직 라이프는 폐부가 일찍 결정됐었거든요.”
“아.”
“당연히 부서 해체 이야기도 확정됐고, 저 포함해서 직원이 다섯도 안 남아서─.”
큰 회사이기에 수익이 되지 않는 것은 버린다.
앞서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눴던 주제였고 답을 알고 있기에, 묵묵히 슬기 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남들은 대기업이라는데, 솔직히 전 딱히 그쪽에 욕심도 없어서. 그냥 좋아하는 일이나 하려고 관뒀어요.”
슬기는 민망한 듯 눈치를 보면서도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참, 너무 늦게 하는 것 같은데, 음…….”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슬기는 예를 갖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려요. 오늘부터 두 분의 의상과 메이크업을 담당할 주슬기라고 합니다.”
“에디터가 아니라, 코디―라는 말씀이신 거죠?”
은호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슬기는 여유롭게 웃으며 의문에 답했다.
“네. 사실 이쪽이 더 전문 분야거든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은호는 조금 놀란 눈으로 슬기를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벌컥!
욕실 문이 열렸다.
“아, 좀 살겠다! 어?”
낯선 사람이 있다는 걸 방금 알았는지, 은지는 슬기를 보며 욕실에서 나오는 것도 잊은 채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려 댔다.
딱 봐도 ‘알 것 같은데, 어디였지?’ 하는 얼굴이다.
“투웨니스 라이브 바.”
“어! 어! 맞아! 어! 와, 대박!”
“슬기 씨.”
“아! 맞아! 그때 그, 긴 머리 그! 머리 묶은 이은호 팬이었던 그 언니랑 같이 온 가죽 언니! 나한테 귀걸이도 선물 줬던! 맞지!”
놀란 건 알겠는데.
‘얘는 무슨 목청이…….’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줄 알았다.
같은 피가 섞였는데 쟤한테 목에 대한 좋은 유전자만 몰려 있기라도 한 걸까.
참고로 방금의 힌트는 이은지를 위한 게 아니라 슬기 씨를 위한 서비스였다.
‘근데 가죽 언니는 또 뭐야.’
은호는 그날을 생각하다 은지와 비슷한 의상 취향이었던 슬기를 떠올리며 ‘아’ 소리를 흘렸다.
그날 가죽으로 된 뭔가를 입고 있던 것 같긴 했는데…….
얼굴은 잘 기억하는 대신, 난 의상이라던가 그쪽으로는 조금 둔한 편이었다.
아마 이쪽은 이은지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반가워요. 앞으로 은지 님과 함께할 주슬기라고 해요.”
“와! 잘 부탁드려요!”
은지 님?
나는 조금 당황스러운 눈으로 슬기 씨를 돌아봤다.
호칭도 호칭이었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도도한 분위기였던 그녀의 목소리가 이은지 한정으로만 톤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어, 음, 슬기 씨? 언니?”
어떻게 불러야 할지를 고민하듯 이은지가 갸웃거리며 슬기 씨에게 물었다.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 주세요.”
“네! 언니! 잘 부탁드려요!”
은지가 슬기 씨를 반기며 웃자, 이걸로 확실했다.
칼럼에서도 느꼈지만 슬기 씨의 ‘최애’는 역시 이은지다.
조금 전 나랑 이야기하던 때랑은 분위기는 물론, 슬기 씨의 눈빛에 깃든 애정의 크기가 완전히 달랐으니까.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고, 슬기 씨는 잠시 나갔다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슬기 씨는 왠지 엄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손에는 엄청난 장비 가방과 함께였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은호 님 먼저 메이크업 들어갈게요. 지지 님은…….”
“지지요?”
지지?
이은지가 되물은 그때, 나도 따라서 낯선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아니. 으, 은지 님은 이거랑 이것 중에 어떤 의상이 좋으세요?”
슬기 씨도 실수였는지 당황한 듯 말을 더듬으며 은지한테 옷을 내밀었다.
“어! 저, 이거요!”
이은지가 고른 옷은 옆에 있는 것보다 왠지 천이 적은 것처럼 보였다.
왠지 불안한 기분이 드는데.
그동안 슬기 씨는 중지에는 쿠션 퍼프를, 그 외 각 손가락에는 다양한 브러시들을 장착했다.
“자, 그럼 은호 님!”
“네?”
“시작할게요.”
이은지가 제 방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난 슬기 씨의 화려한 손놀림에 얼굴을 맡겼다.
눈과 얼굴에 쏟아지는 손길 탓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달깍, 부스럭.
이은지는 그사이 옷을 다 갈아입은 듯, 방문을 열고 나온 소리가 들렸다.
“언니, 어때요?”
“와, 너무 잘 어울리세요!”
“그죠? 보자마자 내 옷인 것 같았어! 엄청 마음에 들어요.”
눈을 감은 상태라 보이지 않는 난 도대체 무슨 옷이기에 저러는지 궁금했다.
그것도 잠시.
눈을 떴을 때 난 ‘차라리 보지 말걸’이라며 진심으로 후회했다.
잠시 후, 은호는 진심으로 화난 듯 큰 소리를 내며 소리쳤다.
“내가 얼마나 X같으면 이러겠냐. 아무리 비즈니스라도 안무할 때 맨살 닿는 건 싫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