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73)
‘그나저나 그 쌍둥이 같던 두 사람이 E-UNG 남매라고…….’
매니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옆에 더 정신없는 사람이 있는 탓에 오래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싸인 받아 둘걸. 사진이라도 찍을걸…….”
“얼른 연습해서 데뷔 먼저 해야지.”
“언니, 나 데뷔하면 그때 두 분이랑 막…….”
에이슬은 은호와 은지를 따라 하듯 두 사람의 날카로운 표정을 흉내 냈다.
“어머, 우리 이응 왔어?”
우리 이응…….
“이슬이도 잘 지냈어?”
“여기 내 작업실이야!”
“우와 작업실 넓다! 대단해!”
“후후~ 너희만 좋다면 내 작업실 언제든 와도 좋아.”
너희…….
“정말? 우와!”
“그리고 이건 내 앨범! 내가 사인도 넣어 놨어!”
“와, 이슬아! 참, 우리도 널 위해 준비했어! 자, 우리 앨범이야.”
“끼야악. 어떡해. 너무 좋아!”
매니저는 에이슬의 원맨쇼를 가만히 지켜보더니 작업실을 소개하는 중간부터는 황당을 넘어 혼이 탈탈 털린 듯했다.
이걸, 뭐부터 잡아야 할까.
일단 E-UNG은 에이슬의 선배다.
여기선 몇 개월 차이로도 선후배가 갈리는 바닥이니까.
이건 생각보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게다가 무엇보다 에이슬은 현재 18살.
결론적으로 E-UNG는 성인으로 알고 있으니 E-UNG의 허락이 없는 한, 그녀는 말을 놓을 수 없는.
아니, 말을 놓아서는 안 되는 그런 관계다.
그 외에도 짚어 줄 곳은 넘치도록 많지만, 이게 너무 많으면 또 뭐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아찔해져서 입이 안 열린다.
에이슬이 환상에 젖어 있는 그동안.
매니저는 오른손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하, 세상에 생각만 해도 좋아. 언니, 나 얼른 데뷔할래!”
“으응……. 그러기 위해서 너도 얼른 녹음 잘 해내고, 얘들처럼 명곡 하나 내자.”
“응!”
에이슬이 눈을 빛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에이슬의 활기찬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매니저는 왠지 모를 불안함만 더 커졌다.
‘설마, 엮이는 일이 생기진 않겠지.’
설사 엮이더라도 그때 내가 잡아 주면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걸 훗날 매니저는 실제로 땅을 치며 후회했다.
그런 그녀의 불안한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하하하. 언니, 이것 봐. 이 호박이 은지 언니고 은지 언니가 들고 있는 물고기 같은 게 은호 오빠래. 둘이 왜 이렇게 귀엽게 놀고 난리래!”
그사이 에이슬은 처음엔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E-UNG의 브이로그 영상을 전부 정주행하는 중이었다.
* * *
과거 ‘NRY 엔터테인먼트’였던 현재 ‘E.G해’ 오튜브 채널은 한동안 바쁜 일정에 고요했었다.
떡밥이 없는 탓일까.
E-UNG의 팬 카페 또한 최근 며칠 동안 출석 체크 외에는 종종 올라오는 방송 중 캡처 사진, 행사에서 촬영된 사진과 영상 정도.
오튜브 영상 속 은호와 은지의 일상으로 떠들썩하던 초기와는 아무래도 비교가 많이 되는 분위기였다.
그랬던 채널에 한 영상이 업로드되면서 오랜만에 팬 카페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E-UNG ― 'DUO(듀오)' Special dance video ★매우 중요★ 쿠키 영상]
―자매님들, 형제님들, 우리 랑이랑 지지 보셨습니까.
└ 보았습니다.
└ 앞으로 청바지는 지지만 입게 강력하게 법으로 제정해야 합니다.
└ 인정입니다.
└ 주책 진짴ㅋㅋㅋㅋㅋㅋ 미쳤냐곸ㅋㅋㅋㅋㅋㅋㅋ
└ ㅋㄱㅋㅋㅋㅋㄲㄱㅋㅋㅋㄱ
―오늘 올라온 영상 너무 이쁘더라
└ 지지 이뻤지….
└ 뭔 소리야 랑이 셔츠 말하는 건데
└ 아 그건 인정이지ㅋㅋㅋㅋㅋ
└ ㄹㅇㅋㅋ
―우리 이응이 코디 누구냐
└ ? 코디 아직 없을걸? 왜?
└ 잘하셨다고 절 받으셔야 해서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전화해서 물어봤는데 아직 없대!
└ ㅋㅋㅋㅋㅋㅋㄱㅋㅋㅋㅋㄱㅋㄱ ㅁㅊ 그걸 전화를 해 봤어?
└ 없어? 그럼 어쩔 수 없지. 사방으로 절하고 와야겠다.
└ 지금 은호랑 은지 코디는 대표님이 직접 한대!
└ 미쳤다. 대표님이 제일 만능이야…….
―대표님 성함은 앞으로 금강석이다.
다이아몬드 손을 가지셨으니까.
└ 진짜 창석 씨 최고야 ㅠㅠㅠㅠ
└ 이쯤 되면 대표님도 우리랑 같이 덕질 중이다 인정?
└ 인정 ㅋㅋㅋㅋㅋㅋ
―랑이 단추 절반 없앤 검은 와이셔츠랑 지지 검은 프릴 끈 나시 쩔어.
나 앞으로 좋아하는 색 블랙이다.
└ 진심. 블랙이 잘 어울리는 남매 1위 상 줘야 해 ㅠㅠㅠ
└ 지지한테 청바지에 부츠 코디 누구야 ㅡㅡ
└ 대표님이 직접 한다고 그러던데. 근데 넌 왜 그렇게 화가 났어ㅋㅋㅋㅋㅋ
└ 화가 안 나게 생겼어? 왜 저걸로 왜 공방 안 뛰어?
내 새끼들 이렇게 이뻐요!!! 자랑해 줘야 하는데!!!
왜 안 뛰어!!! 대표님이 직접 해? 그럼 당장 저걸로 공방 뛰어 줘요! 창석 씨!!
└ㅋㅋㅋㅋㅋㅋㅋㄱ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ㅋㅋㅋㅋ
―와 지지랑 랑이랑 운동 되게 열심히 하나 봐.
└ 예전에 영상 보면 지지는 매일 한 시간 필라테스하고 일주일에 4번 PT 받는대.
└ 랑이는?
└ 더 운동하기 귀찮다고 식단을 더 조절한대.
└ 랑이답다ㅋㅋㄱㅋㅋㅋㅋ
└ 어쩐지 지지 나시 입고 팔 터는데 살이 하나도 안 흔들리더라. 대단하네.
―저기 님들아… 아까부터 이야기하는 랑이랑 지지가 누구예요?
└ 은지 > 지지
└ 은호 > 호 > 호랑이 > 랑이
―지지가 왜 은지야?
└ 나도 궁금했어. 왜 지지야?
└ 방이 지지하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엌ㅋㅋ
└ ㅋㅋㅋㅋㅋ아,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넼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창석 씨네 고양이 사진 횟수가 지지 방 상태 게이지 측정기라며?
└ 일단 몇 점 만점이 기준이야?
└ 최대로 나온 게 한 영상에 12장이래 ㅋㅋ
―근데 은호는 왜 랑이야?
└ 대표님 피셜로 E-UNG 팀명이 원래 타이거 어쩌고 될 뻔했는데 은호가 엄청 싫어했대
└ 응. 그래서 왜 랑이인데?
└ 은호가 엄청 싫어했다니까?
└ 응? 싫어한다는데 왜 랑이냐니까?
└ 싫어하니까라고!
└ ????? 뭐야? 나만 이해 못 해?
└ 랑이가 매일 지지 뜬금없이 괴롭혀
└ 지지도 랑이 놀리잖아.
└ 아 알았다.
‘지지’는 ‘은호 팬들’이 지은 ‘은지 애칭’이고
‘랑이’는 ‘은지 팬들’이 지은 ‘은호 애칭’인 거구나!
└ 그걸 이제 알았구나
└ 진짜 그 가수에 그 팬이넼ㅋㅋㅋㅋㅋㅋㅋㅋ
―몇 주 만에 올라온 영상인데 여기에 싫어요 한 개?
이거 누구냐.
내가 살인은 처음이라 좀 떨리네….
└ 진정해ㅋㅋㅋㅋ 친구야ㅋㅋㅋ
―님들아 여기서 뭐 해요.
└ 왜영??
└ 이사 준비해야죠.
└ 무슨 이사?
└ (링크)
[E-UNG - 'DUO(듀오)' Special dance video ★매우 중요★ 쿠키 영상 있음]
└ 선생님, 당장 가셔서 쿠키 영상 보고 오세요.
└ 미쳤다. 나 아직 보던 중이었는데 대박! 우리 이제 대통합하는 거야?
└ 헐 NRY 대표님 최고야!
└ 어플 아이디어 낸 거 우리 랑이래!
└ 랑이 팬들 생각해 주는 거 최고다 진짜 ㅠㅠㅠㅠ
* * *
E-FAN
팬 카페에 이런 뜨거운 반응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
은호와 은지는 박 대표의 부름에 스케줄을 가기 전 1층으로 내려왔다.
오랜만에 들어선 박 대표의 사무실은 여전했다.
하지만 부자라던 김철수 PD님의 이야기를 들은 탓일까.
동네 백수 같던 대표님의 수수한 차림이 이젠 절약처럼 보이고, 또래분들에 비해 넓은 어깨와 잘 잡힌 근육들이 눈에 띄었다.
“뭘 그리 빤히들 봐?”
박 대표는 오늘따라 뜨뜻미지근한 은호와 은지의 눈빛이 신경이 쓰였는지 참다못해 물었다.
“이제 보니까 대표님은 나이에 비해 실루엣이 좋으시구나 싶어서요.”
“이제 보니까 대표님은 수수하긴 해도 항상 깔끔하게 차려입으셨구나 싶어서요.”
“……너희 뭐 사고 쳤니?”
크흠.
박 대표는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헛기침으로 풀어내며 본론을 꺼내 들었다.
“드디어 완성됐다.”
“뭐가요?”
“은호가 제안했던 어플.”
“제가 어플을, 제안했던가요……?”
“은호, 네가 전에 통화로 말해 준 거 말이야.”
“제가 통화로……?”
“기억 안 나?”
“아.”
대표님의 물음에 순간 이은지와 회귀에 대해 얘기했을 때가 떠올랐다.
맞다.
그때 통화하며 간단히 떠올랐던 아이디어를 마구잡이로 툭툭 던져 댔던 것 같은데.
솔직히 스쳐 가며 했던 통화였던 터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걸 만드셨어요?”
분명 굉장히 다양하게 기능을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당황하는 나를 보시더니 대표님은 일단 먼저 보라는 듯 ‘허허’ 웃으며 조용히 휴대폰 하나를 내밀었다.
“몇 가지는 아직 구현해 보려고 잡고 있긴 하지만, 일단 할 수 있는 대로 기능을 넣어 두긴 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감탄보다 먼저 든 생각은 ‘이걸 제작할 돈이 어디서 났을까’가 궁금했다.
물론 그 의문은 김철수 PD님께 미리 이야기 덕분에 아주 빠른 속도로 '아, 부자라고 하셨었지'라는 해답과 함께 증발했다.
[E-FAN]
검은 배경에 은색으로 빛나는 익숙한 우리 E-UNG의 마크.
이은지랑 엄청난 설전 끝에 선택된 그 마크였다.
어플의 이름은 ‘E-FAN’으로 지어진 모양이다.
혹여나 예전처럼 구린 타이거 시리즈가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대표님이 ‘타이거 어쩌구’에 핑계를 댈 때.
‘그땐 너희가 얼른 결정하기 위해서였다’라고는 말은 했었지만…….
이게 정말이었던 걸까.
이번 어플 이름은 팬클럽 이름이라기엔 모자랐지만, 어플의 이름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어플을 켜자, E와 G를 형상화한 마크가 동전처럼 떨어지며 회전하다 중심에 자리를 잡았다.
마크 아래에는 빛가루가 펼쳐지며 깔끔한 E-UNG 팀 로고가 나타났다.
어플이 켜지자 내부는 눈이 시린 걸 방지하기 위함인지 회색에 가까운 검은 바탕의 ‘다크 모드’와 하얀 바탕인 ‘라이트 모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오. 자―.”
잘 만들어져 있네요.
……라고 말을 하려던 그때였다.
고개를 든 순간.
언제 다가온 건지 현우 형님이 카메라를 들고 이은지와 내 반응을 촬영 중이었다.
“와! 미쳤다! 대박! 야, 야야! 이은호! 이거 봐! 얼른!”
퍽, 퍽퍽퍽, 퍽퍽퍽퍽.
“아, 아아, 아! 아프다고!”
진심 팔 떨어지는 줄 알았다.
대답할 기회도 안 주고 이은지는 휴대폰에 눈을 둔 채 내 팔을 부술 듯 때려 댔다.
게다가 얘는 아직 카메라가 켜져 있는 줄도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이은지는 기능도 아니고 단순히 화면이 뜰 때마다 ‘와! 우와!’를 남발해 댔다.
오튜브는 역시 아무나 하는 건 아닌 건가.
이은지의 리액션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대단했다.
“어떠냐.”
“신경 쓰신 것 같아서 좋네요.”
“우와! 이은호, 이거 봐 봐.”
솔직히 난 이은지가 휴대폰을 붙들고 있는 통에 별로 보지도 못했다.
“아, 아퍼. 왜, 아! 쫌! 말로 해! 니 혼자만 보는데 내가 어떻게 보냐!”
얘는 뭐 손바닥에 근육이 달렸나, 무슨 주먹만큼이나 아팠다.
자존심이 있으니까 최대한 버텨 봤지만 끝까지 견디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충격이 누적될수록 통증은 굵고 길었으니까.
망할.
“봐!”
이은지가 자랑하듯 밀어 준 휴대폰을 보자, 뒤늦은 확인이긴 했지만 이건 나 또한 감탄이 나올 정도로 상당히 괜찮은 어플이었다.
대표님이 얼마나 많은 신경을 쏟아부었는지는 어플의 깔끔하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UI만 보아도 느낄 수 있었다.
“이거…… 팬 어플 맞아요?”
놀랐다.
공지 사항이나 달력 외에도 공개방송 활동을 표시한 달력과 굿즈 쇼핑 칸이야 그렇다 치자.
이 어플에는 그 외에도 이은지와 내가 사진과 영상을 업로드도 할 수 있는 데다, 예고이긴 하나 생방송도 가능한 것 같았다.
마치 회귀 전에 있던 W 앱. 아니. 적어도 우리 팬들에게는 그 이상의 애플리케이션인 것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건 팬과 직접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
조금이라도 SNS를 하는 이은지와 다르게, SNS는 아이디조차 만들지 않았던 나한테는 굉장히 반가운 기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