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72)
“……깜짝이야. 얘 일어났으면 말을 해야지.”
“노래가 좋아서 방금 깼어.”
“노래? 아.”
한 박자 늦게 에이슬이 대답하자, 매니저는 에이슬을 한 번 힐끔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유명한 노래야?”
“이응인가, ‘Last Day’라고, ‘그는 1+1=1’ 드라마 OST야.”
“그래서 유명해?”
“평소에 게임 그만하고 순위권 노래는 들으라니까. 아무리 대표님이 삼촌이라도 너 이러는 거 알면―.”
“알았어. 알았어. 이거 이야기나 더 해 줘.”
“으이그, 음…… 이 곡은 유명하지.”
“곡만? 그럼 이응인가 하는 가수는?”
“애매하지. 잠깐 반짝하는 거 같더니 최근에 ‘일일가’ 예능도 있고, 신곡 들고 나온 폭탄 같은 그룹 많았잖아. 그래서 금방 묻힌 것 같던데?”
“신곡 언니도 들어 봤어?”
“나야, 순위권 곡만 듣잖아. 순위권에 없는 거 보면 내 취향은 아닌 거 같아서.”
에이슬은 어느새 잠이 달아났는지, E-UNG의 신곡에 호기심이 들어 휴대폰을 꺼냈다.
[이응]
검색창에 간단히 입력하자 화면에는 ‘이응 한글 자모의 여덟째 글자’라는 ‘ㅇ’의 설명 다음.
한참 아래에 E-UNG 프로필과 ‘듀오’의 뮤직비디오가 떴다.
아래에는 두 사람의 일상 영상인 듯, 에이슬에겐 낯선 브이로그 영상들도 있었다.
에이슬은 미미한 관심을 보이며 듀오의 뮤직비디오를 재생했다.
* * *
쏴아―
시원한 파도 소리.
에이슬이 재생한 뮤직비디오에 처음엔 주춤거리는 다리가 나왔다.
서서히 클로즈업되더니 그의 발은 천천히 리듬에 맞춰 스텝을 밟았다.
나무판자 길 위, 행복하게 웃으며 춤을 추는 한 여자.
휘날리는 검고 긴 머리칼 탓에 에이슬은 아직 은지의 얼굴을 보진 못했다.
Same day, Same time
Same day other……
왠지 조금 전에 들었던 곡과는 다른 멜로디의 노래.
‘목소리가 야릇해…….’
에이슬은 속삭이는 남자의 목소리에 얼굴이 조금 화끈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화면에는 어느새 거대한 달이 한가득 들어찼다.
화아악―
퇴폐적인 분위기의 건반을 따라 화려하게 날아오른 벚꽃잎은 추락하며 장미로 변하듯 붉게 물들었다.
그 틈에서 행복하게 춤을 추고 있는 은지의 형상은 기이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기묘한 매력이 있었다.
에이슬이 술이라도 마신 듯 뮤직비디오에 푹 빠진 채 감상하던 그때였다.
치지직―
깜짝이야.
비명만 안 질렀지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화면에 갑자기 고장 난 TV처럼 노이즈가 생긴 탓이었다.
연출이라는 걸 알았을 땐 에이슬은 조금 민망해진 기분으로 다시 화면을 주시했다.
혹여나 언제 또 뭔가 튀어나올까 무서웠는지 긴장을 완전히 풀지는 않은 채였다.
밝게 춤을 추던 은지가 가장 행복한 얼굴로 판자길 끝에 아슬아슬하게 섰다.
‘뭐 하려는 거지?’
에이슬이 의문을 띠었을 때, 은지는 제 눈을 가린 채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속삭였다.
아, 이런
현실이 닥쳐와
은지가 물속에 빠지며 화면이 검게 변했다.
동시에 이어지는 속삭임도 소리가 왠지 짙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찾은 방 안이 비어 있네
쿵.
에이슬은 검게 변한 화면에 속아, ‘휴대폰이 꺼진 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후 묵직한 베이스 드럼과 와글 베이스에 맞춰 검은 화면에 물결이 일었다.
다행히 에이슬이 걱정했던 화면이 꺼진 문제는 아닌 모양이었다.
나 꿈을 꿨는데 네가 사라진 꿈이었어
왠지 이상해 공간이 고요해
화면 속 은지는 어둠 속에서 길을 헤매며 울먹이다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했다.
아, 이런 현실이 닥쳐와
은지가 눈을 가리며 돌아간 화면 속에는 또 한 번 같은 밤하늘에 벚꽃잎이 휘날렸다.
벚꽃잎은 붉게 변하던 아까와는 다르게 검게 변했다.
그리고 이번엔 벚나무 아래 잠들어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지금껏 얼굴을 보지 못했던 에이슬은 어디서 본 적 있던 은호의 얼굴에 눈을 크게 떴다.
「“에이슬…… 씨 맞죠?”」
어?
이 사람…….
에이슬의 얼굴이 훅 붉게 달아올랐다.
벚나무 아래 누워 있던 은호는 천천히 눈을 뜨더니 곁을 돌아보며 속삭였다.
문득 돌아본 옆이 비어 있네
신발도 두 짝이 하나인데
하나로는 나가질 못해
날카로운 길 위로 걸음을 못 해
노래에 맞춰 화면에는 신발 두 짝이 나타났다.
노이즈가 일어나며 신발 한 짝이 사라졌다.
남은 신발 한 짝은 검은 물에 더럽혀지더니 이어서 무차별적인 가위질에 헤진 모습으로 바닥을 뒹굴었다.
이게 현실이라면 꿈이길 바랐어
신발은 은호의 손에 들렸다.
은호가 고개를 들자, 은호의 앞에는 어느새 새하얀 문 하나가 나타나 있었다.
꿈인 줄 알았는데
꿈이길 바랐는데
이 문 너머의 넌 왜 대답이 없을까
은호는 신발을 조심스럽게 내려 뒀다.
쾅쾅.
조금 전 신발을 대하던 움직임이 무색할 정도로 문을 두드리는 주먹질은 굉장히 거칠었다.
은호가 두드리던 문이 뒤집히고, 너머의 검은 문 앞.
은지는 힘없이 문에 기댄 채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 꿈을 꿨는데, 네가 사라진 꿈이었어
그래서 눈을 떴는데 왜 난 아직 꿈일까
은지의 시야인 듯 화면에는 아무것도 없는 삭막한 회색의 길이 들어찼다.
아 이런, 현실이 닥쳐와
끔뻑이는 눈꺼풀이 닫히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은지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어느새 새하얬던 와이셔츠는 검은색으로 바뀌고, 은지는 서럽게 울며 소리쳤다.
꿈이라면 깨게 해 줘
아니라면 꾸게 해 줘
바뀐 화면에는 은호와 은지가 함께였다.
꼭 과거를 비추듯 두 사람은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치직―
노이즈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순간순간 노이즈가 일어났을 때.
환하게 웃던 두 사람은 굳은 얼굴로 하얀 지금과 반대되는 검은 의상을 입은 채 안무를 맞췄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아도, 우린 항상 함께였어
은지는 장난스레 웃으며 은호의 손을 잡고 폴짝 뛰어올랐다.
은지의 넓은 블라우스가 넓은 치맛자락처럼 펄럭여 댔다.
한 폭의 그림처럼 예쁜 장면이었다.
‘그런데…….’
화면을 주시하던 에이슬은 그 모습을 마냥 아름답게 감상할 수가 없었다.
잦은 노이즈와 더불어 불안한 검은 그림자들이 두 사람을 따라 행동하고 있는 탓이었다.
때마침 ‘치직―’거리며 노이즈가 일자, 검은 그림자들과 남매의 색이 반전됐다.
찰나의 변화는 딱 화면에 노이즈가 일 때만 드러났다.
은호가 그들을 향해 팔을 뻗자, 검은 그림자들은 하나둘씩 모이며 덩치를 키워 갔다.
그 결과.
그들은 곧 은호를 집어삼킬 듯 커다랗게 변했다.
거기서 뻗어진 수많은 손은 화면 너머의 에이슬마저도 흠칫할 정도로 무서웠다.
그런데, 오늘 넌 왜 말이 없어
밤하늘 아래.
방금까지의 밝은 미소가 무색할 만큼 냉랭한 은호의 분위기.
은호가 팔을 들어 움직이자, 검은 그림자들이 그를 따라 흔들렸다.
천천히 검은 그림자들의 앞으로 걸어 나온 은지의 얼굴이 어두웠다.
지금껏 밝은 미소였던 만큼 그 무표정은 오싹한 기분마저 더했다.
아, 이런 현실이 닥쳐와
은지가 제 눈을 가리던 그때, 화면은 가려진 은지의 눈을 클로즈업했다.
잠시 후.
찾은 방 안이 비어 있네
갈라진 손가락 틈으로 밝은 갈색 눈동자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치직―
노이즈가 일은 순간.
갈색 눈동자는 마치 고양이의 눈처럼 샛노래졌다.
멀어지는 화면에는 어느새 은지의 자리에 은호가 있었다.
어느새 장면이 전환되고, 은호는 검은 호수 위를 부유하며 손을 뻗었다.
꿈인 줄 알았는데
꿈이길 바랐는데
뻗어진 은호의 손은 서서히 차오르는 검은 물에 잠겨 사라졌다.
가만히 은호가 잠겨 버린 호수를 바라보고 있던 은지는 마음을 다잡은 듯.
결의에 찬 걸음으로 검은 문 앞에 섰다.
이 문 너머의 넌, 왜 대답이 없을까
문을 벗어나자 강한 바람이 은지를 덮쳤다.
검은색이 바람에 날려 사라지듯 은지가 입은 와이셔츠 색이 자연스럽게 희게 물들었다.
찬 바람 부는 옥탑방
여기 홀로 달을 바라봐
은지는 처음에 마주했던 거대한 달을 보며 눈물이 일렁이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네가 오기를 바라서
꿈을 꾸기를 바라며
은지가 다시 눈을 뜨자 배경은 아까 은지가 울고 있었던 그 회색의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곳에 이번엔 검게 변한 은호가 검은 문 앞에 앉아 있다.
은지와 달리 편안하게 웃으며.
거기 그대로
은호가 눈을 감으며 속삭였다.
그때였다.
은호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화면에선 은호가 무엇을 보고 놀랐는지 보여 주지 않았다.
대신 그다음 장면에서.
여기 그대로
검은 문손잡이를 돌리며 은지가 노래를 끝마쳤다.
영상 속 은지는 아쉬운 듯 뒤를 돌아보더니 잠시 후 환하게 웃으며 검은 문 너머로 향했다.
검은 문은 스네어 드럼의 자작한 소리에 맞춰 천천히 닫혔다.
영상은 달칵거리는 문이 완전히 닫혔음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검게 변했다.
끝이었다.
* * *
에이슬은 망연하게 휴대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왜.”
“응?”
“왜 안 해 줬어?”
매니저는 호기심에 에이슬을 돌아봤다가 당황했다.
에이슬은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울먹이며 매니저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왜 그래?”
“언니!”
“으응?”
“알고 있었어?”
“뭘? 이응을?”
에이슬이 격하게 끄덕이자, 매니저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지만 일단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슬이 물은 그대로 ‘E-UNG’을 알고 있긴 했으니까.
하지만 에이슬의 질문은 방향이 조금 달랐다.
“그때! 숍에서 마주쳤던, 나 도와줬던 그 남매들! 왜 이 사람들이라고 왜 말 안 했어!”
“어―엉?”
매니저는 진심으로 당황했는지 입 밖으로 이상한 소리가 샜다.
“안 유명하다며…….”
“안 유명, 아니, 그, 조, 조금 덜 유명하지…….”
“왜 안 유명해!”
왜 이러는 걸까.
원래도 4차원인 녀석이긴 한데 오늘은 상태가 조금 심했다.
이건 답이 없겠구나 싶었는지 매니저는 어떻게든 대답을 하려다가 그냥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숍에서 도와줬던 남매라니, 언제를 말하는 거지?’
매니저는 대화하느라 떨어진 속도를 다시 올리며 그때를 떠올렸다.
‘아, 그때인가?’
에이슬의 식사인 샐러드를 사 오던 그날 아침.
셀라스 앞이 소란스럽기에 매니저는 급하게 그곳으로 달려갔었다.
에이슬에게 뭔 일이 있을까 하는 걱정보다는 얘가 또 무슨 사고를 친 건가 싶은 걱정에 발이 바빴다.
그리고 도착했을 때, 에이슬은 웬 사납게 생긴 키가 큰 쌍둥이에게 양팔을 붙들린 채 공중 부양을 당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발은 계단에 닿아 있었지만 두 사람이 손을 놓는 순간 에이슬이 크게 다칠 상황인 건 분명했다.
“이슬아!”
급하게 에이슬을 부르며 달려갔을 때.
다행히 두 사람이 다치게 하려던 건 아니었는지, 에이슬은 두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땐 혼란스러운 상황에 인사도 잊고서 출발해 버렸었는데.
두 사람이 워낙 인상이 강한 쌍둥이여서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