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70)
“전혀 몰랐어요?”
의외였는지, 이번엔 김 PD가 물었다.
조금 늦은 뒷북이었지만 은지는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몰랐을 수밖에…….’
빌라에 들어서기 전에는 주택가와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폐가 같은 곳이라 경계심이 컸다.
이후에는 반전 가득한 내부를 보고 당황했고, 그다음에는 솔직히 도시락에 정신이 팔려서…….
“그럼 두 사람은 여기 건물이 박 대표님 거라는 것도 몰랐겠다.”
“이 건물이…… 우리 대표님 거라고요?”
은지가 동그랗게 뜬 눈을 한 채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쐐기를 박듯 김 PD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박 대표님 부동산 부자잖아요.”
“……예?”
은호는 박 대표가 가진 재산이 절대 ‘적지 않다’라는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후에 세워졌던 신사옥의 건물 위치를 생각하면…….
‘아, 설마.’
은호가 겨우 기둥 하나.
은지가 층을 세울 정도로 벌었지만, 그 비싸다는 강남의 한가운데의 땅값은 오롯이 박 대표의 능력이었던 건가.
‘그럼 돈도 많으면서 왜 거기를 사옥으로 쓰는 거지?’
김 PD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남매는 동시에 같은 의문이 들었다.
대표님은 돈이 없어서 현재 구사옥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었으니까.
은지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은호와 눈을 마주쳤다.
‘알고 있었어?’
은지가 시선으로 묻자, 은호는 좌우로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알고 있었을 리가.’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할 사실은 아니었다.
‘다 큰 애들 둘을 몇 년간 돌보는 데 든 생활비와 교육비, 레슨비.
거기다 뮤직비디오 촬영 당시에도 흔쾌히 그 큰 값을 턱턱 제안했었지…….’
왠지 거듭 생각하다 보니 눈치채지 못한 게 더 바보 같아졌다.
그건 이은지도 마찬가지였는지 얼굴에 수많은 물음표가 눈에 보였다.
“그렇게 돈이 많으면 왜 지금 그 낡은 건물을 고쳐서 쓰고 있는 걸까요?”
“사옥에 들일 돈을 두 사람이 더 좋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쓰려는 거겠죠.”
은호와 다르게 은지는 궁금증을 삼키지 않고 입 밖에 내뱉었다.
김 PD는 은지의 질문에 흔쾌히 답을 했다.
“…….”
김 PD의 대답을 예상하지 못한 듯, 은지는 감동했다는 뭉클함이 눈빛에 훤히 드러났다.
그런 은지를 보며 김 PD는 옅은 웃음을 터뜨리다 말을 이었다.
“뭐, 본심은 본인한테 들어 봐야 정확하지만 적어도 제가 봐 온 박 대표님이라면 그런 것 같다는 말이었어요.”
김 PD의 대답을 가만히 듣던 은호는 의문을 띠며 물었다.
“PD님은 저희 대표님이랑 오래 알고 지내신 건가요?”
“톡신 데뷔하고 홈마할 때부터였으니까, 그러게요. 상당히 오래 알았네요.”
“홈마요?”
홈마란, 연예인을 위해 만든 홈페이지의 운영자를 칭한다.
김 PD의 그 이상으로 경우에는 본인이 직접 촬영한 고화질의 사진을 업로드 및 판매했던 그 ‘홈마’였다.
은호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고민하며 뻣뻣하게 굳어 있자, 김 PD는 웃으며 이야기를 덧붙였다.
“내가 예찬이랑 동창이라서 용돈벌이 겸 홍보차 돕기 위해서 따라다녔던 거든요.”
“…….”
“아, 이건 비밀이니까. 쉿.”
김 PD가 검지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은호는 여전히 놀란 채였고 은지는 동창이라는 이야기에 더 눈빛이 번뜩였다.
“설마, 써―읍.”
왠지 이럴 것 같았는지 은호는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은지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이미 질문의 의미를 알아 버린 듯 김 PD는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전혀 아니에요. 굳이 따지자면 악어와 악어새쯤일까.”
악어와 악어새…….
공생 관계라는 의미였다.
“이 자리에 온 게 그 야비한 놈 덕분이긴 하니까.”
“선배님이 야비하다고요……?”
은호가 갸웃거리며 중얼대자, 김 PD는 방금은 정말 말실수였는지 급히 미소를 지으며 주제를 돌렸다.
“지예찬은 됐고, 음, 대표님에 대해서 또 궁금한 거 있어요?”
“저…….”
박 대표님에 대해선 그다지 궁금한 건 없었다.
그보다 굉장히 뜬금없는 궁금증에 은호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혹시 영희 형님도 아시나요?”
“영희라면, 설마 조영희요?”
은호는 흠칫 놀라며 몸을 세웠다.
“알죠. 걔는 예찬이보다 더 예전부터 알고 지낸 놈이에요.”
“아…….”
“내 이름이 아버지가 철학관에서 돈 주고 지은 이름이거든요.”
갑자기 왜 철학관 이야기가 나오는지 묻고 싶었지만, 은호는 입을 닫고 미소를 유지했다.
허공을 주시하며 과거를 떠올리는 듯한 김 PD의 눈빛이 너무 살벌한 탓에 입을 열기 어려웠다.
“근데 우리 아버지랑 조영희 걔네 집이랑 친하거든. 근데 조영희네 아저씨가 우리 아빠랑 같은 철학관에 가더니 영희라는 이름으로 지은 거야!”
순간 은지는 내내 멋있던 언니 김 PD가 친구처럼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은지도 눈치는 있는지, 은호와 같은 이유로 말을 아꼈다.
“영희라고 아저씨가 지어 놓고는 나보고 걔랑 인연이니 뭐니 하는데, 얼마나 짜증 났는지 몰라.”
“그, 그랬군요.”
“그, 그랬겠네요.”
“내가 그래서 학교 다닐 때 조영희랑 같은 학교 가면 놀림 받는 거 싫어서 다른 데 다녔는데, 세상에, 거긴 또 싸가지는 밥 말아 먹은 거 같은 지예찬이 있더라니까.”
푹.
김 PD가 쥔 숟가락이 살벌하게 계란말이를 반 토막을 냈다.
“아, 하하하, 내가 무슨 말을…….”
은호와 은지는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지?’라며 큰 눈을 끔뻑거렸다.
‘예찬 선배님이 싸가지를 밥 말아 먹었다니…….’
지예찬을 실제로 마주해 본 은호는 더 혼란스러워 보였다.
김 PD는 빤히 바라보는 두 쌍의 갈색 눈동자에 뒤늦게 정신을 찾은 듯.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끝에는 고개를 숙였다.
“이거, 예찬이한테 꼭 비밀로 해 줘요…….”
“네…….”
은호와 은지는 당황스러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 *
결과
촬영이 끝나고 김 PD와의 이별이 찾아왔다.
김 PD는 떠나보내기 아쉬웠는지 직접 남매를 배웅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봐요.”
“오늘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PD님!”
“그래요. 약속한 건, 쉿. 알죠?”
“하하. 네. 이만 가 보겠습니다.”
“고생해요.”
은호가 꾸벅 고개를 숙이자, 은지도 눈치를 보다 따라서 꾸벅 허리를 숙였다.
김 PD는 손을 흔들며 은호와 은지가 탄 차가 완전히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현우가 찍은 내비게이션은 다음 스케줄 위치를 안내했다.
쭉 뻗은 곡선 끝에 도착지는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도착까지는 또 한참 걸릴 듯 보였다.
든든하게 밥을 챙겨 먹은 덕인지 따뜻하게 데워진 의자에 앉자 졸음까지 몰려왔다.
“흠, 음음 뚜릇뜨 쉬 쉣 셋 뜻 뜨르릇 뜻.”
졸리지만 자고 싶은 건 아니었는지 은지는 휴대폰을 꺼내 떠오르는 멜로디를 녹음했다.
은지를 따라 은호도 어느새 노트를 들고 가사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은지는 음악에 있어서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확고한 기준이 있다.
‘귀가 즐겁지 않아.’
뻔하든 뻔하지 않든, 적어도 계속 듣고 싶은 멜로디여야 한다는 게 첫 번째 조건.
‘이건 쓰레기야. 아무 느낌도 안 담겨 있으니까.’
두 번째 조건은 느낌이었다.
은지의 기분과 자신이 이 곡을 만들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느껴져야 했다.
[녹음 파일을 저장할까요?]
[취소│저장 안 함│저장]
옆에서 은지의 녹음을 흘려듣던 은호는 그 멜로디가 마음에 들었지만 은지는 아쉬움 없이 ‘저장 안 함’을 택했다.
‘정리가 잘 안 되네.’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는 멜로디는 항상 많았다.
하지만 조건에 맞는지를 보면 대부분 그렇지 못했다.
어딘가 죄다 모자란 느낌.
고민에 잠겨 있던 은지의 눈길이 문득 은호가 끼고 있던 노트에 닿았다.
은호가 쓰고 있는 것 외에도 은호는 이전에 쓴 노트 하나를 항상 같이 들고 다녔다.
은지가 무겁지 않냐며 물었을 때.
「“그래서 차에 놓고 다니잖아.”」
은호는 무심한 얼굴로 그렇게 답을 했었다.
“오빠.”
“갑자기 뭘 또 뭐 부탁하시려고.”
은호는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서 펜을 돌리며 은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그런 은호를 은지는 놀라 커다래진 눈으로 바라봤다.
“소름, 어떻게 알았어?”
“이럴 때만 호칭을 안 팔아 드시니까.”
은지의 반응에 은호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내가?”
“어.”
* * *
노트에 고정되어 있던 이은호가 이쪽을 쳐다봤다.
눈이 맞자 괜히 민망해졌다.
내가 그랬나.
「“야, 이은호!”」
「“뭐야, 이은호.”」
「“야!”」
「“이은호!”」
음, 생각해 보니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불렀으면 말을 해.”
“아니, 음, 그 가사 노트.”
“이거?”
이은호가 받침대처럼 사용하던 노트를 흔들며 물었다.
“어 그거.”
“이거 왜.”
“궁금해서.”
솔직히 안 보여 줄 줄 알았다.
난 이은호가 내 실패작을 모아 둔 ‘쓰레기’ 폴더나, 잘 만든 걸 모아 둔 ‘퍼펙트’ 폴더를 보여 달라고 한다면 보여 주기 싫으니까.
“자.”
“어? 엉? 봐도 돼?”
“어.”
예상과 달리 이은호는 흔쾌히 노트를 넘겼다.
오히려 내 질문이 이상하다는 듯 이은호는 눈썹을 들썩이면서 아니꼬운 표정까지 지어 댔다.
노트를 받아들자, 이은호는 원래 보던 노트에 다시 집중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붙들고 써 댔는지 노트가 알려 주는 것처럼, 노트의 페이지 한 장 한 장이 죄다 우글우글 떠 있는 모양새였다.
첫 장을 넘겼을 땐 대부분 이상한 기호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어서 오히려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자 앞서 같은 내용인 듯한 글씨와 조금 줄어든 기호들.
또 다음 페이지를 넘기자 슬슬 기호들은 더 줄어들고 가사가 눈에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다섯 장은 더 넘기고서야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글씨 X나 못 써.’
내가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 날아다니는 글씨보단 잘 쓴다.
‘……아마도.’
양심에 찔리는 생각은 접어 두고서 가사를 읽었다.
다른 곡들도 많았지만 영어가 섞이지 않은 것이 이것뿐이라 가장 먼저 눈길이 갔다.
「내게 매일 말했어. (호)
너에게 항상 말했어. (지)」
호와 지는 이은‘호’, 이은‘지’의 끝을 딴 메모인 것 같았다.
내가 부를 땐 이렇게, 이은호가 부를 땐 이렇게 부르자는 의미인 걸까.
옆에 붙은 [교체]라는 표식을 보니, 이것 역시 완성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나저나 가사만 읽으니 어떤 멜로디인지 몰라서 연결되지 않는 시를 읽는 기분이었다.
“이은호.”
“얻을 거 다 얻었다 이거냐.”
휴대폰을 꺼내며 이은호를 부르자, 이은호는 이쪽을 아니꼽게 쏘아봤다.
“……오빠.”
“어.”
왜 진 거 같지?
꼴 받네.
“……X발.”
“이젠 니가 욕하는 거 들으라고 불러?”
은호는 황당한 눈으로 은지를 돌아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