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69)
이번에 촬영할 은호와 은지의 댄스 영상은 본래 클라우드 댄스 팀과 함께하기로 되어 있었다.
댄스 팀이 갖춰진 제대로 된 촬영은 내일모레로, 다른 스튜디오에 잡혀 있는 일정이다.
그 말인즉.
오늘은 편집될 영상에 약 30초가량 짧게 쓰일, 찰나를 위한 촬영이었다.
다만 영상이 짧다고 해서 촬영 시간까지 짧다는 것을 뜻하진 않을 때도 있다.
피사체가 NG를 내면 고작 10초.
아니, 반짝 등장하고 사라질 그 단 한 컷을 얻기 위해서 하루를 다 투자한 적도 허다했다.
남매를 처음 마주했을 때.
김 PD의 첫 마음은 주어진 짧은 두 시간 안에 다 촬영할 수 있기만을 빌었다.
하지만 촬영에 들어가고 여러 차례 ‘액션’, ‘컷’을 외치며 김철수의 생각은 서서히 변해 갔다.
같은 장면 다른 위치에서의 촬영이 계속되는 동안 오랜만에 정말 즐겁게 촬영을 이어 갔다.
‘요구하면 요구를 하는 대로, 모호하게 느낌대로라고 말해도 척척 잘 살리는 피사체라니.’
이렇게 열정적으로 촬영을 해 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지금.
어느 정도 필요한 장면은 모두 촬영했고, 이제 모니터링 후 문제가 없다면 마무리 촬영만 하면 끝난다.
김철수는 거울처럼 똑 닮은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는 두 사람을 보며 ‘풋’ 웃음을 터뜨렸다.
모니터링이 끝난 뒤.
촬영에는 이상이 없었는지 두 사람은 둘의 문제에 대해 회의―싸움인지 회의인지 헷갈리는―를 이어 갔다.
“표정 관리 좀 해라. 왜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절반만 감았다가 떠? 똥 씹은 표정 말고는 지을 줄 아는 표정이 없어?”
“똥 씹었다니, 난 엄연히 네 표정 따라 한 건데.”
“저게? 허, 내가 저렇게 표정 짓는다고? 퍽이나.”
“거울 보고 표정 해 보시든지.”
“안 봐도 저 우럭 대가리보단 낫거든.”
우……럭?
“뉘예뉘예. 아이고, 호박이 말을 다 하네.”
호……박?
저 남매가 사는 동네에는 우럭이랑 호박에 금칠이라도 되어 있는 건가?
김철수 PD의 처지에선 최근 몇 년간의 촬영을 다 합쳐도 어느 때보다 완벽한 촬영이었건만…….
김철수는 이번에도 할 말을 잃었다.
촬영할 때 감탄하던 그때와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아이고, 아무리 그래도 생선 대가리보다는 채소가 낫지 않겠냐?”
“채소? 야채가 아니고?”
“뭐……?”
멈칫.
예상치 못한 태클이었다.
“그, 그거나 그거나!”
“그거나 그거나? 뭐. 같다고?”
은지는 다시 반박하며 뻔뻔하게 넘어가려 했지만 마음과 달리 시작부터 목소리가 떨려 버렸다.
“그, 그러니까―.”
은지가 해답을 찾으며 시간을 끄는 그동안.
은호는 마치 은지가 제 손바닥 위에 있는 양 여유롭게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은지의 눈동자가 바쁘게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시간은 흐르는데 입술은 열릴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와―. 이은지 너, 설마 채소랑 야채 차이 아직도 몰라?”
“아, 알거든! 그, 그때 니가―.”
“응, 내가 알려 줬지. 그래서 뭐.”
“그, 그러니까!”
은지가 버럭 소리치자 촬영장 곳곳에서 웅성거리듯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삼자의 처지에서 봤을 땐 아무리 봐도 이미 싸움은 이미 은호가 승리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은지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괜히 버럭 소리를 치며 등을 돌렸다.
은지가 소리치는 그 순간, 김철수를 포함한 스태프들은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모르는구나.’
김철수는 위협하는 고양이 같은 은지를 보며 왠지 오이에 놀라고 성질내는 제집 주인이 떠올랐다.
“하하, 크흠흠, 자자, 잘 나오기만 했는데 왜들 싸워요.”
한참 웃던 김 PD는 미소를 가다듬으며 남매를 말렸다.
은지는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반짝거리는 눈으로 김 PD를 돌아봤다.
그 모습에 김 PD는 다시 터질 뻔한 웃음을 겨우 속으로 삼켰다.
“크흠, 문제없으면 다음으로 이어 갈까 하는데, 얼른 촬영 끝나고 식사하셔야죠.”
“네!”
다시 언급된 도시락 이야기에 은지는 방금까지 불만 가득했던 것도 잊고서 씩씩하게 대답했다.
“단순하기는―.”
“뭐?”
“아니야. 아무것도.”
그런 은지를 보며 은호는 티 나지 않게 키득거리다 다시 카메라 앞으로 향했다.
모니터링 중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 본 촬영은 문제없이 계속됐다.
“레디, 액션!”
다시 촬영에 돌입하자, 방금까지의 투덕거리는 남매는 어디 간 걸까.
‘대단해.’
스피커에서 다시 ‘듀오’가 재생되자 은호와 은지는 다시 촬영에 집중했다.
누가 이들이 조금 전까지 투덕거렸던 사이로 알까.
실시간으로 비치는 모니터 속 은호와 은지는 서로를 보고 웃고 또 동시에 그리운 존재를 만난 듯 눈물을 글썽였다.
“좋아! 컷!”
김 PD는 감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고생하셨습니다!”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주어진 촬영 시간은 두 시간.
하지만 현재 시간은 11시 40분.
준비된 촬영 대본은 30분 안에 모두 끝났고, 남은 10분은 추가로 떠오른 아이디어와 서비스 컷을 촬영한 시간이었다.
“은호 씨, 은지 씨, 이리 와요.”
퇴근을 앞당겨 준 사람을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 결과물 또한 굉장히 마음에 드는 퀄리티라면…….
김철수 PD가 남매를 바라보는 시선에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얼른 와서 들어요.”
김 PD가 직접 도시락까지 챙기며 둘을 부르자, 평소에는 이런 적이 없는 사람이었는지 주변 스태프들은 하나같이 신기한 눈으로 그를 봤다.
얼떨결에 은호와 은지는 김 PD와 함께 같은 자리에서 밥을 먹게 됐다.
둘은 PD와 함께 먹게 된 건 전혀 신경 쓸 만한 문제가 아니었는지, 제 밥에 집중한 표정들이었다.
주문한 지 한참 지난 탓에 차게 식어 버린 콩나물국.
하지만 시원한 쪽이 더 취향이었는지 한 숟갈 떠먹은 은호의 표정에 개운함이 피어났다.
―메시지 왔어요!
한참 식사에 빠져 있던 그때였다.
알람에 놀란 은지는 바쁘게 움직이던 젓가락질을 잠시 멈췄다.
알람이 울린 휴대폰의 주인은 김철수 PD였다.
평소라면 다른 사람의 휴대폰에 굳이 관심을 두지 않는 타입이었지만 오늘따라 은지의 눈길은 본능적으로 김 PD의 휴대폰으로 향했다
김 PD 휴대폰 잠금 화면 때문이었다.
얼룩덜룩한 세 가지 색이 예쁘게 섞인 삼색 고양이만으로도 강력하건만.
그 고양이가 입을 마름모(◇) 모양으로 벌린 채 하품 중인데 어떻게 눈이 안 갈까.
“……이 고양이 PD님 고양이에요?”
“귀엽죠? 저희 집 바둑이에요.”
“이름도 귀여워. 세상에…….”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은지가 묻자, 김 PD는 뿌듯한 미소를 띠며 답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김 PD는 재빠르게 휴대폰의 잠금을 풀었다.
방금 도착한 메시지는 이미 잊어 버린 듯 김 PD의 검지는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사진첩 속 비밀 창고를 열었다.
“꺅.”
은지의 눈이 빛났다.
김 PD가 은지에게 건넨 휴대폰 속 비밀 창고에는 바둑이―삼색 고양이―가 다양한 자세와 표정으로 찍혀 있었다.
“어떡해.”
“예쁘죠.”
“네……! 어디서 만난 애기에요?”
“후후, 예전에 박 대표님이 새끼 고양이 네 마리였나……. 여러 마리를 구조했는데 바둑이랑 다른 한 마리만 무리랑 어울리지 못해서 나한테 임시 보호를 부탁했었거든요.”
“바둑이라는 이름은 문양 따라 지으신 거예요?”
“아뇨. 내 이름이 조금 특별하잖아요?”
“으음,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요. 하하…….”
은지가 솔직하게 말하자 그런 면이 마음에 드는 듯 김 PD도 호탕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박 대표님이 장난인지 진짜인지 모르겠는데, 처음에 데리고 오는 날 이름을 물으니까 바둑이라고 말했었거든요.”
“대표님이요?”
이번 질문은 은지가 아니라 은호였다.
“촬영 전에 지예찬 선배님 소개로 알게 됐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코를 박다시피 콩나물국에 집중하던 은호는 뜬금없이 등장한 박 대표 이야기에 관심이 생긴 듯 갸웃거리며 물었다.
「“박 대표님이 촬영 도와줄 사람이 있는지 예찬이한테 물었고, 예찬이가 날 추천해서, 짠. 내가 지금 여기 있답니다.”」
실제로 김 PD가 그렇게 말을 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때였다.
은호가 의문을 띠며 묻자, 김 PD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은호에게 되려 질문을 던졌다.
“음~. 내가 ‘언제’라고는 이야기를 안 하지 않았던가요?”
은호는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듯 김 PD를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후후, 시기가 톡신 뮤직비디오 촬영 때였거든요. 놀려서 미안해요.”
놀린 건 이제 문제가 아니었다.
은호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김 PD에게 물었다.
“……톡신 선배님 뮤직비디오요?”
“네. 톡신이요. 걔들 뮤직비디오 본 적 있으면 이 배경 꽤 익숙할 텐데?”
“배경이 익숙하다니…….”
은호가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은지는 김 PD의 휴대폰 속 바둑이에게 푹 빠져 “어떡해. 미치겠다. 너무 귀여워.”라며 중얼거렸다.
가만히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던 은호는 고민했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것도 같은데…….’
벽을 메운 고풍스러운 성채 같은 북유럽풍의 입체적인 벽면.
이야기를 듣고 나서일까.
톡신이 히트했던 시기.
그때의 톡신은 간첩조차 알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로 유명한 그룹이었다.
당시 그 인기는 뻗어 나가서 세계 투어까지 돌았었으니, 가히 최고나 다름없었다.
고민하는 은호가 안되어 보였는지 김 PD는 힌트 한 가지를 보탰다.
“외쳐.”
“……샤우트, 목이 갈 때까지?”
은호는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가사를 이으며 화들짝 놀랐다.
“설마 샤우트(shout)를 여기서 촬영한 겁니까?”
“비밀이지만 그 외에도 다양하게 굴렸죠. 세트장 만든 본전은 확실하게 뽑았을 정도니까.”
은호는 짧은 감탄을 흘리며 다시 촬영장을 둘러봤다.
그동안 은지는 김 PD가 열어 준 비밀 창고 속 바둑이에게 푹 빠져 있었는지, 뒷북을 시원하게 두드리며 물었다.
“갑자기 샤우트는 왜?”
“몰라?”
“아니, 샤우트는 당연히 알지. 샤우트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왔냐고.”
은지는 혼자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게 억울했는지 투덜거리며 물었다.
평소 같았으면 바보라느니 놀렸을 텐데.
또래 뮤지션에게 역사적인 장소와 같은 샤우트 촬영지라는 말 때문인지, 은호는 웬일로 은지에게 차분히 설명을 해 줬다.
“샤우트가 누구 곡인지는 알지?”
“그럼, 톡신 선배님들 첫 히트곡이잖아.”
“그 샤우트 뮤직비디오를 여기서 촬영했었대.”
“오, 잠깐…… 뭐?”
웃던 은지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하나둘씩 이해가 되고 머리에 입력이 될수록 은지는 표정은 서서히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여기서?”
“어.”
“진짜?”
“어.”
“누가?”
“철수 PD님이 방금 말씀해 주셨어.”
“미친, 대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