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67)
“빡빡하네요.”
“아무래도 일할 수 있을 때 일해야 하니까.”
형님은 아쉬운 웃음을 틔며 답했다.
댄스 영상 촬영이 끝난 뒤에는 점심시간이었지만, 어느 한 회사의 창립 5주년 기념 축하 공연이 잡혀 있었다.
‘적어도 서너 곡은 부르고 내려와야 하니까…….’
아무래도 점심은 그 후에나 먹을 수 있겠구나.
그리고 저녁에는 라디오.
라디오가 끝나고 난 뒤에는 신곡 녹음까지.
바쁜 건 오늘뿐만은 아닌 듯, 오히려 오늘이 가장 여유로운 날이었는지 페이지를 넘길수록 뒤는 더 빼곡한 일정들로 가득했다.
살짝은 발악에 가까울 정도의 일정이기도 했다.
“홍보용…….”
난 다시 한 번 오늘 첫 일정을 읽었다.
‘홍보…….’
마음에 걸리는 단어였다.
이은지한테 회귀에 대해 밝힌 저녁.
난 문득 신경 쓰지 않으려던 ‘듀오’의 결과가 궁금했다.
이은지의 현재 실력의 위치와 ‘우리’의 결과가 어떤 위치인지를 알고 싶었다.
다행히 처음 마주한 기사는 좋은 소식이었다.
‘듀오’가 한 음원 사이트에서 반짝 50위 안에 들었다는 기록.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음원 사이트에 ‘듀오’ 옆, 아래를 가리키는 푸른 화살표의 숫자는 처참했다.
‘듀오’는 고작 하루 이틀 만에 음원 사이트 대부분 TOP 100위 안에 겨우 들어 약간 발을 걸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부터 결과를 ‘고작’이라고 표현하고 싶진 않지만…….’
신곡이 ‘그는 1+1=1’의 OST였던 의 순위조차 못 넘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여기는 2015년.
내가 놓친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한들, 나는 사람인지라 모든 걸 기억할 수 없었다.
닥치고 나서야 ‘아, 이런 일이 있었지 참’이라며 뒤늦게 깨닫는 일도 허다했다.
한 달 전이었지만 유명 예능에서 진행한 과거의 향수를 불러오는 프로그램.
거기다 유명 아이돌의 신곡 발표가 겹쳤다.
눈길을 못 받았던 다른 아이돌의 상승세까지.
게다가 원래 일어날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일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이은지였다.
‘원래대로라면 이은지는 적어도 세 번째 싱글을 발표할 시기였나.’
회귀 전 이은지는 지금쯤 내는 족족 상위권에 자리 잡는 흔히 음원 괴수였다.
그랬던 애가 지금은 나와 같이 밑바닥에 있다.
‘나 때문이겠지.’
죄책감에 마음이 초조하다.
따라 하는 것으로는 이길 수 없는 감각적인 분야가 있다.
그때의 이은지가 그랬다.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따라 해서 따라갈 수 있었다면, 이미 난 그때 성공해야 했지.’
그 누구보다 그때의 이은지를 쫓아 노력하던 사람이 나였으니까.
하지만 난 결국 이은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살아 있던 이은지의 발끝에도 못 미쳤다.
그건 내가 따라 할 수 없는 타고난 감각의 영역.
오늘 아침 차 안에서 이은지가 본인이 만들었던 곡을 불러 달라 했을 때.
처음엔 거절했지만 끝내 2절까지 ‘RED CARD’를 다 불렀던 이유기도 했다.
‘그건 히트했으니까.’
이은지가 본인의 노래를 따라서 다시 만들기를 바란 건 절대 아니다.
그건 그 시절이니까.
그 시대의 노래니까.
지금 이은지가 만들어야 할 건 이 시절, 이 시대의 노래였다.
난 그저 ‘RED CARD’가 이은지한테 영감의 미끼가 되어 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불렀다.
그 미끼를 바탕으로 나온 곡이, 후에는 내가 써야 할 가사의 영감이 되어 줬으면 하는 바람도 없진 않았지만.
“흠, 흐음음, 우, 우우, 음음, 흐음―.”
옆자리에서 까딱거리는 느낌에 고개를 돌리자, 이은지는 낯선 리듬에 심취한 듯 눈을 감은 채 박자를 타고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만약 그때 자존심을 버리고 이은지한테 직접 배워 봤다면.
또는 대표님의 감각에 따라갔었다면.
‘뭔가 달라지진 않았을까.’
다 지나간 시간에 아쉬움이 남는 순간들이 떠올랐다.
스쳐 간 생각에 헛웃음이 터져서 턱을 괴는 척, 난 손바닥 안에 입을 감췄다.
‘나도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는 상태 창 같은 거라도 있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까…….’
회귀 전.
동료들까지도 빠져 있었던 한창 유행하던 웹툰이 하나 있었다.
거기선 흔히 등장하는 회귀자들은 별별 능력을 다 부여받는다던데…….
‘이것도 회귀인데 난 그런 거 없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회귀만으로도 만족할 일이었지만 난 헛된 생각인 걸 알면서도 괜히 손을 쥐었다 펼쳐 봤다.
물론 내 손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 * *
이은지
떠오르는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리다 백색소음 같은 바퀴 소리에 서서히 눈이 감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낮은 시선으로 훌쩍 담을 뛰어넘으며 난간을 아슬하게 걷고 있었다.
시선 끝에 닿은 건 새까만 털 뭉치의 손이었다.
‘꼭 고양이 손 같은 게…….’
내 손을 보고 있는데 이미 녹화된 영상을 보듯 의지가 전혀 담기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고개를 들자 시선엔 익숙한 건물이 담겼다.
오래된 가정집을 개조한 하얀 페인트칠이 된 외벽.
곧 다시 칠해야 할 듯 외벽은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지고 있었다.
시선은 계단으로 옮겨졌다.
검은 솜뭉치 같은 손발에 힘을 주어 폴짝 뛰어올랐다.
여러 번 폴짝거리며 계단을 오른 끝에 보인 건 우리 집.
이은호와 내가 지내는 기숙사였다.
검은 솜뭉치는 꼭 제집인 양, 문 앞에 놓아 뒀던 박스로 향했다.
박스 안에 펼쳐진 형광색 천.
고양이에게 깔아 줬던, 안 입게 된 내 옷이다.
고양이는 거기서 몸을 둥글게 말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잠든 고양이를 가만히 바라봤다.
‘잠깐만.’
바라봤다고?
방금까지의 낮은 시선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시야가 높아졌다.
눈을 감았다 뜨는 찰나,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그 교통사고 악몽이 이어지는 걸까.
처음엔 그 상황이 너무 무서웠는데 이은호가 해 준 이야기 때문인지 두렵지는 않았다.
이미 지나간 일이야.
또는 적어도 아직은 다가오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여러 번 나를 도닥이며 날카로워지는 신경을 차단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삑삑거리는 거슬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이번엔…….’
새하얀 천장, 꿈이라기엔 생생한 소독제의 알싸한 향기가 코끝에 짙게 맴돌았다.
‘병원이구나.’
팔에 치렁하게 달린 링거들을 보며 ‘내’가 생각했다.
호흡 한 번 하기가 너무 버거운 몸이었다.
겨우 뜬 눈이 서서히 감겨 갈 즘, 바깥에서부터 분주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머리가 욱신거린다.
무언가를 생각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생각이 완성되질 않는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천 근 같은 눈꺼풀을 겨우 떠서 그쪽을 바라봤다.
「이은지…….」
아, 왔구나.
이은호다.
이은호.
매일 그냥 이렇게 불렀는데, 지금 이 순간에는 어릴 때처럼 오빠를 불러 보고 싶었다.
「오빠…….」
이은호는 안도한 표정이었다.
곧 한숨을 흘리며 내가 누워 있는 곳 가까이 천천히 다가왔다.
하지만 평온한 이은호랑 달리 나는 힘들었다.
그냥 모든 게 힘들었다.
눈을 뜨고 있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잠이 몰려온다.
아주 서서히 심장을 죄며 다시는 깰 수 없을 것 같은, 불쾌하지만 편안한 졸음이었다.
「야, 이은지. 아, 뭐 해. 야, 눈 떠. 눈 뜨라고!」
미안, 이은호.
나 지금은 너무 졸려.
「이은지!!!」
「야!!!」
아주 멀리서 비명에 가까운 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래가진 않았다.
두툼한 이불이 온몸을 덮은 듯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너무 무겁다.
동시에 포근하다.
몸을 짓누르는 이불 같은 느낌은 아주 서서히 사라져 갔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눈을 떴을 때, 나는 익숙한 곳에 돌아와 있었다.
신사옥이 세워진 후, 연습실 겸 작업실 겸 기숙사로 쓰이는 ‘구사옥’이다.
이미 내 집이 있음에도 그냥 여기서 작업하는 게 좋아서 종종 찾아오곤 했던 ‘옛날 내 방’.
‘뭐지?’
주변을 둘러보자 조금 낡은 데다 구조가 바뀌긴 했지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방이었다.
‘구사옥, 옛날의 내 방? 옛날……?’
내 생각인데, 동시에 내 생각이 아닌 것 같은 기이한 상황.
손에 익은 건반에 손을 올리자, 이제야 옷을 알아챘다.
여전히 병실에서 입고 있던 그 차림이었다.
기숙사는 고요했다.
너무나.
항상 이은호랑 같이 지내서 그런가.
꼴 보기는 싫은데 안 보이는 옆 방에는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일었다.
‘사실 있으면 있는 대로 짜증 나긴 하지만…….’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이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
여기가 진짜 내 작업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도 있었고, 그냥 아무도 없는 집은 싫어서 나온 것도 있었다.
‘어, 이은호다.’
이은호가 보였다.
괜스레 공허한 집에 있다가 나와서 그런지 난 반가운 마음에 웃었다.
웃고 있는 마음과 달리 내 입꼬리는 내 것이 아닌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막 장례식을 다 치르고 돌아온 듯, 이은호는 검은 정장 차림이었다.
‘울었나?’
이은호의 눈두덩이가 생전 처음 본 정도로 부어 있었다.
여자 친구랑 헤어졌을 때도 저렇게는 안 울었던 것 같은데.
‘이은호한테 여자 친구가 있었어?’
‘나’는 죽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듯 그저 ‘왜 울지?’라는 의문만 품었다.
그때, 이은호가 고개를 들어서 나를 봤다.
얼마나 놀랐는지 항상 맹하게 반쯤 가려져 있던 이은호의 동공이 또렷하게 원형을 드러냈다.
그것도 잠시, 이은호는 툭 고개를 떨구고선 충격에 잠긴 표정이었다.
이은호는 건물로 들어갈 듯하더니 이내 몸을 돌려서 골목길을 떠났다.
‘어디 가는 거지?’
난 이은호를 쫓았다.
시간이 아주 빠르게 흘렀다.
눈으로 좇을 수도 없을 만큼 빠르게.
그리고 그 기억은 온전히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다시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양이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눈 떠!」
고양이가 외쳤다.
병실에 있을 때, 마지막 순간 이은호가 내질렀던 그 비명이었다.
* * *
퍼뜩, 눈이 떠졌다.
섬뜩했던 꿈 같지 않은 꿈 때문에 난 본능적으로 주변을 돌아봤다.
덜컹.
과속방지턱을 넘던 차는 속도를 줄였음에도 흔들림을 완전히 잡지는 못했다.
‘뭔 꿈이지?’
냄새마저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낯선 꿈이다.
꼭 실제로 겪은 일처럼…….
실제로…….
“추워요?”
괜히 서늘한 기분에 팔뚝을 쓸고 있자 매니저 오빠가 물었다.
“아, 아뇨. 그냥 조금, 쌀쌀해서…….”
잠결에 조금 잠긴 목소리로 대답하자 매니저 오빠는 백미러에서 다시 정면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옆에 생수 있어요. 잠은 잘 잤어요?”
“희한한 꿈을 꾸긴 했는데…….”
“어떤 꿈이요?”
내가 죽었던 그때 꿈이요.
……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