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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66화 (66/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66)

숍 문 앞에 섰을 때 에쉬 카키라고 불리는 옥빛 섞인 회색 머리칼을 휘날리는 한 여자가 보였다.

「“다 같은 희끄무레한 색 같은데…….”」

「“눈이 뒤통수에 달렸냐? 잘 봐. 여기에는 살짝 옥빛이 돌면서! 어? 이게 에쉬 카키! 여기에는 파란기가 돌지? 블루! 여기는 핑크핑크한 느낌이 돌잖아! 이게 에쉬 핑크라고! 알았냐!”」

「“……전혀 모르겠는데.”」

「“이리 와. 이은호, 눈깔 딱 대.”」

에쉬 카키, 에쉬 블루, 에쉬 핑크.

회귀 전, 이은지가 차이를 모르겠다던 날 붙잡고 약 1시간가량 정말 눈에 ‘박은’ 색들이었다.

낯설지 않은, PTSD가 몰려오는 색상에 순간 부르르 몸이 떨렸다.

‘그나저나 저 사람 저러다가 부딪칠 것 같은데…….’

에쉬 카키색 머리의 한 그녀는 원장님과 대화를 나누는 듯 자꾸 뒤를 돌아본 채 유리문 앞으로 다가왔다.

왠지 위험할 것 같다 싶던 그때.

그녀는 더듬거리는 손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문제는 셀라스 숍은 입구 바로 앞에 높이가 매우 가파른 5단 계단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꺄악!”

“…….”

문이 열린 순간, 여자는 그대로 계단을 구를 뻔했다.

최소 얼굴에 긁힌 상처, 심했다면 목이 꺾이든 머리를 박든 위험이 확정인 자세였다.

이은지가 왼팔을 붙잡고 내가 오른팔을 붙잡지 않았다면 말이다.

“괜찮으세요?”

“아, 고, 고마워요.”

은지는 여인의 상태를 살피며 물었다.

똑같은 질문을 하는 건 이상해서 난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기만 했다.

“어디 삐끗하거나 다치신 곳은 없어요?”

“네, 덕분에…….”

지금까진 내려진 여인의 앞머리 때문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정확하게 얼굴을 확인한 건 그녀가 인사를 위해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매우 익숙한 얼굴이었다.

차에서 이은지한테 불러 줬던 ‘RED CARD’의 주인공이자, 나랑도 많은 일이 있었던…….

“에이슬?”

“아…….”

익숙한 얼굴에 놀라 나도 모르게 여자의 이름을 입에 올려 버렸다.

본인을 알아볼 줄은 몰랐는지, 에이슬은 곧 튀어나올 것 같은 눈을 하며 나를 돌아봤다.

당황한 에이슬의 표정을 보면서 난 뒤늦게 이상할 걸 알면서도 어색하게 말을 덧붙였다.

“씨……? 맞죠?”

“하하. 네, 맞아요.”

에이슬은 어색한 내 실수에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직 명성을 얻기 전인 걸까.

에이슬은 자신을 알아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슬아!”

“아, 언니. 저, 감사했습니다.”

에이슬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뒤에는 그녀의 매니저인 듯 30대 초반의 반듯한 정장 차림의 단발머리 여인에게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넘어질 뻔했어.”

“넌 곧 데뷔할 애가!”

화내는 매니저의 목청이 컸다.

이쪽을 쏘아보는 매니저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은지나 나나 눈매가 험한 분위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쁜 놈은 아닌데…….

아직은, 아니니까.

“다친 곳은?”

“없어. 헤헤. 저기 두 분이 잡아 주셨거든.”

“잡아 줬다고…….”

에이슬의 설명을 듣자 매니저의 경계가 느슨해진 게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매니저가 다가와서 인사했다.

에이슬은 곧 스케줄이 있는지 한 걸음 멀리서 고갯짓으로 인사를 한 뒤 셀라스 숍 앞마당을 떠났다.

“뭐야, 이은호?”

“뭐.”

문제는 에이슬이 떠난 뒤였다.

“여자 연예인한테 관심 없다며?”

“어, 없는데.”

그런데 내가 얘한테 그런 말을 한 적 있던가?

잊힌 시간 중에 한 적 있겠거니 생각하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없다는 사람이 저 언니 이름은 어떻게 알아?”

이쪽을 보는 이은지 시선에 거슬리는 흥미가 묻어났다.

‘아까 불렀던 ‘RED CARD’는 원래 방금 지나간 에이슬을 디스하려고 만든 곡이고, 넌 저 사람 욕을 내 앞에서 엄청나게 해 댔었거든.’

……라고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이 이야기는 말을 아끼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빨리 안 들어오고 뭐 해? 할 일이 산더미인데! 얼른! 어서!”

“워, 원장님…….”

때마침 달려온 원장님 덕분에 굳이 핑계를 대지 않고도 눈치껏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게다가 평소 기품 있는 분위기의 원장님은 어디로 간 건지, 원장님은 오늘따라 낯설 만큼 흥분한 모습이었다.

어지간했으면 천하의 이은지조차 주춤할까.

‘무슨 일이야?’

‘내가 아냐?’

우린 시선을 맞추며 이유를 찾아봤지만 알 길이 없었다.

* * *

벌써 이십 년이 넘는 강미주 원장의 경력만큼이나 셀라스 숍에는 많은 연예인과 재벌들의 예약이 흔했다.

‘처음 ‘톡신‘을 맡았을 때가 벌써 몇 년이 지났구나.’

신인이면서도 어딘가 독기 가득한 그 녀석들은 지루했던 일상에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흔히들 말하는 뮤즈가 이런 것일까.

다시 누군가를 꾸며 주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꼬맹이들이 TV에 서고, 서서히 이름을 알리더니 그 독기 가득하던 녀석들은 처음 느꼈던 대로 어느새 탑이 되었다.

하지만 더는 그 아이들에게서 그때만큼의 독기와 열정이 보이지 않은 것이 아쉬워서였을까.

강미주 원장의 흥미는 다시 잔잔해졌다.

오랜 경력의 그녀에게 이제 신인 연예인들의 등장은 그저 귀여운 병아리들일 뿐이었다.

언제 사라질지 모름에도 그저 날아올라 보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는 어린 병아리들.

‘E-UNG이라고 했나?’

톡신을 키운 박창석 대표.

내 오랜 친구인 그가 다시 업계에 돌아왔다 들었을 땐 조금 흥미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급하게 예약을 부탁했을 땐 일부러 시간을 조금 앞당겨서 받아 주는 혜택도 주었다.

그 ‘E-UNG’이라는 병아리들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담겨 있던 호의였다.

강미주는 의식하지 못했었지만, 기대가 컸었다.

그때처럼 ‘톡신’처럼 그녀에게 또 한 번 뮤즈가 되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꼬맹이들.’

첫 만남은 솔직히 아쉬움만 가득했다.

낯선 곳에서 주눅 들지 않는 그 성격은 칭찬할 만하다만, 둘 다 예전의 톡신 멤버들만큼의 독기나 진지함은 없어 보였다.

몇 번의 무대를 봤을 때 또한 소감은 여전했다.

‘음, 연습생들이 잘하네.’

그 이상도, 이하도 못됐다.

길거리에서 쇼케이스를 열었다던 며칠 전 영상을 가게에서 일하는 아이의 소개로 보게 됐을 때도 그랬다.

‘신인치고는 나쁘지 않네.’

딱, 그 정도였다.

우연히 틀어 둔 가요뱅크에서 제대로 된 카메라와 조명을 받은 두 사람의 무대를 보기 전까진 그랬다.

“우리 이쁜이! 빨리 앉아! 얘들아, 준비해!”

강미주 원장의 손뼉 한 번에 주변 스태프들의 움직임이 더 바빠졌다.

은호와 은지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훑으며 그녀에게 이끌려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오늘은 사각 파츠로 은지 양 눈빛이 더 주목받을 수 있게 하면서, 여우 요괴 같은 느낌으로 붉은 기가 많이 섞인 갈색으로 눈매를 살리고―.”

강미주 원장은 들뜬 목소리로 오늘 콘셉트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갔다.

하지만 정작 이야기를 들을 은지는 얼굴에 쏟아지는 수많은 손에 정신이 혼미했다.

“은호 군도 은지 양이랑 맞추되 대비되는 느낌의 짙은 남색으로―.”

정신이 없는 건 은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은지, 넌 손끝을 잘 살리더라. 얘들아! 시간 없어, 얼른!”

처음엔 서비스 느낌으로 해 줬던 네일 팁이었다.

하지만 강미주 원장은 어제의 무대를 떠올리며 확신했다.

‘이 아이는 해 주는 맛이 있어……!’

오늘따라 열정적인 강미주 원장의 명령에 맞춰 머리칼과 얼굴 거기다 손톱까지.

콧김 한 번 뿜기 민망할 만큼 은지 주변에만 총 다섯 명이 붙어 분주하게 움직였다.

‘……숨 막히겠다.’

일찍 준비를 마친 은호는 먼저 의상을 갈아입은 뒤, 숍에서 서비스로 내어 주신 샌드위치를 물어뜯으며 은지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다행히 힘들었던 시간의 결과물은 확실했다.

“와.”

검은 바탕 위 붉은 보석이 포인트가 되는 손톱.

은지는 정신없이 의상을 갈아입고 나온 뒤에서야 겨우 제 모습을 찬찬히 뜯어 볼 여유가 생겼다.

“미쳤다. 나 대박 예뻐.”

졸고 있던 은호가 은지의 감탄에 본능적으로 눈을 떴다.

“이은호 너도, 오올. 오늘은 쫌 하네?”

“……하긴 뭘 해.”

한숨을 흘리며 무심한 대답과는 다르게 오늘은 확실히 은호도 은지도 의상과 메이크업까지 콘셉트가 잘 맞아떨어졌다.

은지는 붉게, 은호는 푸른색으로 각자의 포인트를 살리면서 의상에 검은색이 곳곳에 섞여 둘의 중간 지점을 찾았다.

“어제 무대에서 너희 정말 아름다웠어.”

의상을 갈아입으면서 조금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고정하던 그때.

강미주 원장은 왜 오늘 그토록 흥분했는지 이유를 말했다.

‘아름답다.’

이게 흔히 들을 칭찬은 아니기 때문일까.

은호와 은지는 조금 민망한 시선으로 서로를 보다, 다시 강미주 원장을 바라봤다.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의 너희를 내가 꾸몄다는 게 자랑스럽더라.”

치이익―.

이어지는 지독한 스프레이 세례에 숨을 참아야 했던 탓에 차마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인사를 바라고 한 이야기도 아니었는지 강미주 원장은 세팅을 끝마치자마자 스프레이 연기가 바닥에 가라앉기도 전에 자리를 떠났다.

* * *

이제 슬슬 출발해야 할 시간에 다다랐을 때.

다른 할 일이 있었는지 잠시 자리를 비웠던 현우 형님이 셀라스로 돌아왔다.

“준비는 끝났―.”

“준비됐어요! 얼른 가요.”

“네……네. 가, 가야죠.”

이은지의 대답에 이은지와 눈이 마주친 형님은 잠시 화들짝 놀란 얼굴이었다.

형님이 놀란 이유는 차에 올라타고 난 뒤에 들을 수 있었다.

“아침에만 해도 후줄근하다가 멋있게 차려입으니까 낯서네요.”

이은지는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적어도 나는 알 것 같았다.

어깨를 시원하게 드러낸 검은 프릴 블라우스 나시에 딱 붙은 짙은 청 스키니진. 그리고 무릎 위로 올라온 검은 천 질감의 부츠.

나 역시 형님처럼 옆에 다리까지 꼬고선 앉아 있는 이 동생이 아침마다 보는 귀신 같은 산발에 시체처럼 퍼져 있는 애가 맞나 싶었으니까.

이은지의 캐주얼한 차림과 다르게 내 쪽은 전체적으로 검은 정장이었다.

굳이 특징을 꼽자면 셔츠가 짙은 남색에 명치 부근부터 단추가 없다는 정도.

처음엔 민망한 기분에 여며 볼까 했지만…….

「“손대지 말아요. 절대! 그게 포인트니까!”」

의상을 도와주던 스태프가 눈을 무섭게 부릅뜨며 했던 말이 떠올라서 그대로 뒀다.

“오늘 일정 뭐, 여러 개 있다고 했었죠?”

“응.”

현우 형님은 신호에 차가 멈춰 서고 나서야 품을 뒤적이며 작은 수첩을 꺼내서 뒷자리로 넘겼다.

“여기 있는 거 보면 돼요?”

“응. 거기 2월 오늘 날짜 보면 돼.”

형님의 대답을 따라 2월 페이지에서 오늘 날짜를 찾았다.

[11:00-13:00 홍보용 댄스 영상 촬영]

홍보용 댄스 영상?

어쩐지 의상과 메이크업에 공이 많이 들었다 싶더니, 이것 때문이었구나.

“오우.”

아래로 줄줄이 적힌 일정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먼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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