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65화 (65/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65)

“불러 주면 안 돼?”

표정이 저절로 굳어졌다.

“여기서?”

“어.”

“너한테?”

“어.”

“싫은데.”

정색을 유지하면서 대답하자 이은지는 어렴풋이 내 기분을 눈치챈 듯 회유를 시도했다.

“설거지.”

대답 대신 난 조용히 중지를 치켜들었다.

까득.

은지는 이를 갈더니 잠시 고민하다 손가락 2개를 펼치며 제안을 추가했다.

“청소.”

본인 방이나 치우고 말하지.

난 언제 전화가 왔는지 운전과 같이 통화에 집중 중인 형님의 뒤통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 하나만 불러 주면 안 돼?”

“응. 안 돼.”

“X나 단호하네. 곡 만들 때 도움 되면 나한테만 좋은 게 아니라 이은호 너한테도 좋잖아!”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여전히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상대가 이은지인 이유가 컸다.

“그럼 한 소절만!”

한 소절이라…….

한 곡보다는 괜찮은 것 같은데.

“설거지, 청소 받고 한 소절?”

이은지는 질겁하는 것도 잠시, 어지간히 궁금했는지 결국 항복하며 OK 사인을 보였다.

‘한 소절…….’

어떤 곡을 부를까.

잠시 고민하던 그때, 멀뚱한 얼굴의 이은지를 보고 있으니 문득 떠오른 곡이 하나 있었다.

내가 여기로 회귀하기 전, 당시 방송에서는 화제의 인물인 이은지의 솔직한 성격을 굉장히 반겼다.

다듬어지지 않은 캐릭터는 예능의 원석이 되기 때문이었다.

다만 다듬어지지 않았기에 거친 면이 강조되면서 적 또한 적잖이 많았다.

그 무렵의 일이었다.

하루는 ‘에이슬’이라는 한 가수가 이은지를 향한 디스가 포함된 신곡을 발표했다.

떠돌던 Waste, 언니가 가르쳐 줄게

유리알이 비춰 주니 원 가치를 잊어 버린, WOW!

Look what you've done!

You're a weed, 난 널 위해 준비된 Weedkiller

칼 같이 뿌리까지 불태워 난 Fortune-teller

이은지는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일들 즉, 작은 일을 굳이 크게 만들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당연히 난 이은지가 이번에도 얌전하게 넘어갈 줄 알았다.

내가 이은지를 도와 악플러를 처리할 때도 그랬다.

이은지는 내가 정당하게 처리했음에도 과하다며 거리를 뒀으니까.

그래서 나는 당연히 ‘조용히 넘어가겠지’ 그렇게만 예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히 나흘 만에 보기 좋게 엎어졌다.

나흘 뒤.

은지는 본인의 오튜브 채널에 깜짝 신곡을 하나 발표했다.

노래로 들어온 도전이었기 때문일까.

이은지의 히트곡 중 하나이자, 에이슬을 향한 답가 .

이은지가 만든 노래 중 내 개인적인 기준 안에서도 TOP 5에 드는 명곡이었다.

그 노래가 좋았던 건 나뿐만은 아닌 듯, ‘RED CARD’는 발표 이후 오튜브에 수많은 커버곡으로 재제작되며 꽤 오랜 기간 인기를 끌어모았다.

그 결과.

은지는 연말에 시상식에서 수상까지 거머쥐게 됐다.

「“이건 온전히 에이슬 덕분에 받을 수 있는 상이었어요. 좋은 영감의 미끼를 던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은지는 당시에 에이슬을 겨냥하며 호쾌한 수상 소감을 밝혔다.

어떤 곡보다도 가장 솔직했던 ‘RED CARD’의 결과.

솔직한 노래와 좋은 결과는 은지의 이후 작곡 방향성을 잡는 데도 큰 영향을 끼쳤다.

‘비록 지금은 아직 그때 일을 겪지 않았지만…….’

이게 이은지한테 영감의 미끼가 돼서 우리 E-UNG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회귀 전에 귀에 익도록 들었던 거친 트랩 비트와 추억 속 멜로디를 떠올리며 오랜만에 ‘RED CARD’를 입에 올렸다.

이만하면 됐을 텐데 자 선물이야

두 장 받아 옐로카드

내 할 일은 내가 할게

내 선물이나 받아 가렴

OUT OUT 끝 알리는 레드카드

‘RED CARD’는 지금 이은지가 만들고 있는 곡과는 분위기부터가 크게 달랐다.

그때의 이은지는 시작부터 끝까지 혼자서 스스로 부딪치고 꺾이며 배워 왔다.

그러니까 이건 완성되기 직전의 이은지가 홧김에 만든 만큼 자기 자신을 강렬하게 드러낸 곡이라는 말이었다.

이게 네가 바란 대화 방식이니

Baby, Look what I did

You look great

비틀리게 올라간 그 입꼬리가 바짝 약 올라

비틀리는 내 맘도 저렴한 네 이해 따윈 바라지 않거든

이은지는 조금 전보다 더 반짝이는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은데, 난 저 눈빛에 약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이건 버릇이었다.

이만하면 끝났으니 자 선물이야

이런 이젠 줄 선물이 없어

OUT OUT

끝 알리는 레드카드

붉은 사이렌이 울리면 우리 사이는 여기까지일 테니까

배웅까진 나가지 않을게

안녕 Baby

어릴 때 콘서트 놀이를 할 때.

이은지가 만든 곡으로 오디션을 보러 다닐 때.

민망하거나 좌절감에 노래를 관두려고 할 때.

모든 순간 내내 내 관객은 이은지 하나였다.

이은지는 내가 노래할 때면 꼭 저런 눈빛으로 날 신기하다는 듯 봤고, 난 항상 이 한 명의 관객을 위해 노래했다.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소절만 부르기로 했던 곡은―2절부터이긴 했지만― 어느새 끝까지 다다라 있었다.

“대박…… 소름.”

“끝까지 불렀으니까 설거지 적어도 두 번 추가 해서 네 번 해.”

감탄하던 이은지 표정이 순식간에 구려졌다.

“와, 이은호, 분위기 족치는 거 쩐다.”

“족…… 너 자꾸 말버릇 관리 안 하면 대표님한테 이른다.”

“이르던가! 왜 네 번이야, 약속한 건 두 번이었잖아.”

“들었잖아.”

“뭘.”

이은지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니가 거래 건 건 한 소절. 맞지?”

“어.”

“내가 부른 건 2절 전부. 이해 OK?”

“미친 X아, 니가 불렀잖아!”

“그러게 왜 귀 안 막았냐?”

“저기요?”

어이가 없는지 이은지는 헛웃음까지 터뜨리며 황당한 얼굴로 이쪽을 빤히 노려봤다.

난 일부러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이러다 또 뭐 하나 날아오겠다 싶은 그 순간, 난 일부러 선수를 치며 이은지한테 먼저 물었다.

“그래서 소름 돋은 건 뭐가 소름 돋은 건데.”

“…….”

단세포 동생.

방금까지 화나 있던 것도 잊고서 이은지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 불러 준 곡에서 멜로디가 내가 만들다가 실패했던 곡에 되게 비슷한 부분이 있거든.”

비슷한 게 있다고……?

“일부러 이야기 안 했는데 그걸 불러서 신기한 것도 있고, 내가 그런 스타일 곡도 찍을 수 있구나 싶어서 놀랐던 것도 있고.”

‘RED CARD’와 같은 스타일의 곡 외에도 이은지의 작곡 범위는 스펀지와 같았다.

배울 땐 일단 최대치로 삼키고, 작업할 땐 필요한 것들만 남기며 쓸모없는 것들은 뱉어 낸다.

이후 다시 필요해진다면 뱉어 냈던 것을 다시 삼키기를 반복.

결국에는 모두 본인 것으로 만들어 낸다.

다만 지금 걸리는 건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 전에 버렸다던 그거, 왜 버렸는데?”

“어?”

신경이 쓰였다.

내 눈을 피하는 것 같은 이은지의 수상한 행동에 의심은 더 깊어졌다.

“뭔데, 말해.”

“그게…….”

나랑 연관된 문제였는지, 이은지는 한참을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가사 짜기가…… 힘든 곡인 거 같아서…….”

“뭐?”

은호의 미간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니가 그걸 왜 신경 써.”

은호는 금세 침착을 되찾으며 평소의 덤덤하고 나른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야 은호는 은지에게 물었다.

“뭐, 쓰, 쓸 수도 있지.”

“야, 이은지.”

은지는 장난처럼 넘기려고 했지만 은호의 목소리는 싸늘하기만 했다.

시선 또한 섬찟할 정도로 서늘한 건 마찬가지였다.

“작곡, 편곡은 네 영역이지.”

“어, 그렇지…….”

“난 너처럼 천재는 아니야.”

“나도 천재는 아닌―.”

“일단 들어라.”

“……옙.”

은호는 가볍게 심호흡을 한 번 뱉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작사를 나한테 맡기기로 했으면 내 영역이야.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재단을 해도 내가 한다고.”

“…….”

“곡이 X같아서 버리는 게 아닌 이상 네 멋대로 결론 내리고 작업 중단하지 말라는 소리다.”

영역의 침범.

제삼자의 시선에서야 유치해 보일 수 있는 싸움이겠지만, 책임을 진 만큼 화가 났다.

‘네가 뭔데 내 끝을 판단하고 포기하냐고.’

은지도 실수였다는 건 인정하는지 잠시 고개를 떨궜다.

“미안.”

소심하게 뱉은 사과에 은호는 무심하게 한숨을 흘렸다.

“알면 됐어. 적어도 들려주고 결정해도 안 늦으니까. 앞으로는 그러지 마.”

“알겠어.”

상황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 * *

“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네, 네.”

한편 그동안 곧 있을 방송 스태프의 체크를 위한 통화에 정신이 팔려 있던 현우는 뒤늦게 은호와 은지의 싸늘한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엔 통화에 집중하느라 새 신곡을 두고 투덕거리는 건가 싶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정작 중요한 부분은 없는 빈 대화였다.

하지만 잠시 후.

‘지금 작업 중인 신곡인 건가?’

은호가 낯선 노래를 불렀다.

가사는 그다지 공감하기가 힘들었지만, 멜로디의 흡입력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R&B 같기도 하고, 동시에 랩/힙합 장르를 담고 있는 것도 같고…….

이쪽에 무지한 현우도 느낄 수 있을 만큼 ‘맛있는’ 곡이었다.

중간중간 섞여 있는 싱잉 랩이 곡을 더 맛깔스럽게 만드는 조미료 역할을 했다.

가볍긴 했지만, 세부적인 완성도는 잘 살아 있는 그런 느낌.

‘재밌는 곡이네. 신곡으로 나오는 곡이면 좋겠다.’

은호가 노래를 끝마쳤을 때, 현우의 머릿속에는 앞서 들었던 호기심은 증발하듯 날아가고 오직 ‘한 번 더 듣고 싶다’라는 생각만 맴돌았다.

은호와 은지의 곡이기에 더 아쉬운 마음이 큰 것 같기도 했다.

둘은 워낙 중간에 버리는 곡들이 많아서 충분히 좋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니가 그걸 왜 신경 써.”

“뭐, 쓰, 쓸 수도 있지.”

“야, 이은지.”

잠시 후 이어진 은호와 은지의 싸움에 현우는 노래에 대한 생각도 금세 날아가 버렸다.

평소보다 장난기가 빠진 서늘한 분위기 탓이 컸다.

현우는 끼어들어야 하나 고민하며 백미러를 통해 두 사람의 상황을 계속 점검했다.

피 터지는 싸움이 아니라면 웬만해선 두 사람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두라던 박 대표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단 한 번도 싸워 본 적 없는 놈들이면 오히려 문제가 되겠지만, 두 사람은 자주 싸우는 만큼 어떻게 화해를 해야 할지 알고 있으니까 카메라 앞만 아니라면 내버려 둬.”」

가라앉기는커녕 점점 더 살벌해지는 분위기.

지금은 평소에 짓궂게 장난치고 싸우는 거랑은 다른 거 같은데, 괜찮을까…….

쉽게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 수 없던 제삼자라는 위치에 현우는 속이 갑갑했다.

“미안.”

“알면 됐어. 적어도 들려주고 결정해도 안 늦으니까. 앞으로는 그러지 마.”

“알겠어.”

천만다행이 박 대표가 봐 온 두 사람은 옳았다.

현우의 걱정을 알기라도 했는지 박 대표의 말대로 두 사람은 금방 화해했다.

은호와 은지는 조금 어색해지기는 했지만 숍에 도착할 무렵에는 평소의 두 사람으로 돌아와 있었다.

‘적어도 오늘은 한 번 싸웠으니까 조용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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