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64)
인연
미래 이야기를 마친 뒤 방 안의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지이잉, 지이잉.
그때, 때마침 방 안에 휴대폰 진동 소리가 울렸다.
타이밍이 좋았다.
“네, 여보세요.”
침묵을 견디기 힘들어서 고민 없이 이어폰을 다시 귀에 꽂으며 전화를 받았다.
이은지도 어색한 분위기를 깰 무언가가 필요했던 건지 내 통화를 반기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는지 이은지는 통화를 시작했음에도 내 방에서 나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은호야, 나다.”
익숙한 목소리에 뒤늦게 휴대폰을 확인하자 대표님이었다.
“바쁘냐?”
“아뇨. 바쁘지는 않습니다.”
“그, 은호 네가 추천했던 것들이 다 결과가 괜찮았거든.”
“어떤 거요?”
“오튜브 브이로그 영상을 올려 보자거나, 즉석으로 Q&A를 진행해 보자거나…….”
예시로 이야기한 것들을 들으니 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걸 눈치껏 알았다.
“이번엔 어떤 건데요?”
곧장 본론을 묻자, 대표님은 잠시 멈칫하시더니 이내 희미하게 웃음소리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가요뱅크 나갔을 때 무대에서 무슨 생각했니.”
“무대요…….”
무대…….
솔직히 무대 위에 올라간 그 순간부터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그저 열심히 했다는 느낌과 직접적으로 떠오른 기억이라곤 밝은 조명에 눈이 시렸다는 것 정도뿐이었다.
“이번에 그룹 ‘다트’ 팬들이 많아서 관객석에 파란 불빛이 빼곡하던데, 그거 보면서 우리 E.G 팬들도 많이 왔으면 좋았을 것 같더라고.”
“E.G, 어감 괜찮네요.”
“네가 랩 하는 거 듣고 난 뒤로 왠지 입에 붙더라. 아무튼 그래서 알아봤는데-.”
대표님의 설명은 단순했다.
NRY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는 대표님 혼자 운영하는 식이다 보니 공지나 소식이 느린 편에 속했다.
애초에 홈페이지 자체도 아직 모바일 연동이 되지 않은 탓에 밖에선 노트북이 없다면 공지는커녕 확인조차 불가능했다.
그 탓일까, E-UNG의 팬클럽은 몸집을 키울 곳이 없었다.
거기다 인원이 적은 카페만 몰려 있으니 팬들끼리도 소통이 잘 안 된 모양이었다.
“결론은, 팬들과 소통 창구로 어떤 방식을 하는 게 좋을지 추천하는 게 있냐는 거죠?”
“그래. 아주 정확해.”
“음…….”
소통 창구라…….
이은지는 내가 통화하는 동안 인디 밴드를 소개하는 어플을 뒤적이고 있었다.
“어플……?”
“어플?”
무의식적으로 흘린 단어에 대표님이 한 번 더 되물었다.
“네. 어플. 어플 괜찮지 않아요?”
“어떤 식으로?”
“잠시만요.”
별생각 없이 흘린 말이었는데 생각보다 좋은 아이디어를 흘린 것 같았다.
다만 확신을 위해선 약간의 선례가 필요했다.
통화를 끊지 않고 화면 바깥으로 나가 검색창에 ‘팬 카페 어플’을 검색해 봤다.
때마침 기사들을 뒤적이다 보니 최근만 해도 반년 전에 한 유명 아이돌의 팬클럽은 어플로 운영되고 있다는 글이 있었다.
“저희 곧 앨범 나오잖아요?”
“그렇지?”
“나중에……이긴 하지만 저희가 정말 잘된다면, 굿즈 같은 것도 내실 테고요.”
“하하, 그렇지.”
꿈같은 이야기였지만, 막연한 꿈은 아니었다.
회귀 전 이은지는 데뷔 후 1년 사이에 굿즈는 물론, 콘서트까지 한 번 개최할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그때 당시, 이은지가 팬들이 고생이 많다며 투덜거렸던 부분이 하나 있었다.
“앨범이나 굿즈에 시리얼 번호를 넣어 어플로 인증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으면 공방(공개방송) 때 입장이 편하지 않을까요.”
“입장할 때?”
“네. 그때 앨범이나 팬인 거 인증해야 해서 앨범이나 이것저것 가지고 오시는 분들 많잖아요?”
정확한 예시를 들자, 대표님은 어떤 상황을 뜻하는지 이해한 듯 ‘아’ 소리를 흘렸다.
“멀리서 오셔서 땡볕 아래에서 몇 시간씩 안 기다리셔도 되고, 입장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도 미리 알 수 있고,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바로 인증도 되는 그런 어플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내가 말한 것들이 생각지도 못한 분야였는지 대표님의 반응은 꽤 긍정적이었다.
팬들과 회사가 직접 소통하면서 우리의 소식을 가장 빠르게 접하는 공간.
때로는 오튜브에 올라가기엔 아쉬운 짧은 영상을 서비스 형식으로 공개해도 좋을 것 같다는 등.
기사의 내용을 덧붙여 가며 여러 아이디어를 대표님한테 설명했다.
말을 하다 보니 처음에 간단하게 이야기하려던 것과 다르게, 차츰 욕심이 많아져서 원하는 기능이 배로 늘어나 버리긴 했는데…….
“어때요?”
당연히 여기까지는 무리겠지.
거절당할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묻자 대표님이 근심 어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괜찮지만, 한번, 구현되는지를 먼저 알아봐야겠구나.”
“엑?”
“하핰.”
이런 대답은 오히려 내가 예상치 못했다.
덕분에 목소리에서 삑사리까지 터졌다.
이은지는 내 삑사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눈앞에서 킬킬거려 댔다.
“역시 너한테 물어보길 잘했구나. 작업한다고 밤새우지 말고, 내일은 일정 두 개 있으니까 일찍 자고.”
“네.”
“난 이것저것 알아봐야 할 게 많은 것 같으니 먼저 끊으마.”
“네, 들어가십시오!”
“그래.”
뚝.
폭풍처럼 몰아친 대표님과 긴 통화가 끝나자, 이은지가 눌러앉은 방 안에 다시 불편한 어색함이 맴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이은지의 호기심 덕분에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이은호, 아까 대표님한테 이야기했던 어플 있잖아.”
“응? 아, 어.”
“그거 음, 그러니까…….”
이은지는 민망한지 내 눈을 피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 미래에 있는 뭐, 그런 기술……이야?”
별로 창피할 만한 질문도 아닌데 이은지는 ‘미래’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는 게 부끄러운지 시뻘게진 얼굴로 소심하게 물었다.
“머리통 익겠다.”
“안 익거든. 대답이나 해!”
“말해 주면 믿기는 하냐?”
“그, 와, 완전히는 힘들지만…… 이은호, 넌 웬만하면 구라 잘 안 치잖아.”
이건 조금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었다.
짜식.
그래도 가족이라고 믿어 주는 건가.
“거짓말할 대가리가 없는 거지만.”
그럼 그렇지, 상대는 이은지였다.
“어쨌든. 믿긴 믿어.”
“퍽이나.”
“아무튼!”
이은지는 통화가 끝난 뒤까지도 계속 내 방에 죽치고 있을 것처럼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미래를 알고 있으면 혹시 로또 번호라든가! 누가 돈 묻어 둔 곳이라든가! 그런 거 없어?”
아주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난 이은지 기대에 1%도 부응해 줄 수가 없었다.
“몰라.”
“왜 몰라?”
“노래만 했으니까.”
이은지 표정에 대놓고 실망감이 깃들었다.
“쓸데없긴.”
“개너무하네.”
덤덤하게 받아치자 이은지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는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다시 날 돌아봤다.
“다른 건 뭐 없어?”
“뭐.”
“돈 많이 벌리는 뭐, 그런 거 있잖아.”
돈 많이 버는 거…….
2020년대 초반, 떠오르는 거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비트코인……?”
“비트……, 그건 뭐야?”
“나도 잘 몰라. 당시에 형들 말로는 제대로 해 볼 거 아니면 그냥 모르는 채로 살라고 그러던데.”
“그래서 모르는 채로 살았어?”
“어.”
이은지는 한심하단 눈으로 나를 빤히 봤다.
“그거 말고는?”
“이쯤 되면 포기할 만하지 않아?”
“아, 혹시 모르잖아.”
“음…….”
마지막으로 아는 거라고는 하나뿐이었다.
“서울에 아파트 꼭 하나 사 두라는 거?”
“그건 돈이 없잖아. 그거 말고!”
“주식…….”
“주식은 안 해! 뭔 죄다 돈 넣고 돈 먹기야?”
원래 인생이 그런 거지.
……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랬다간 이은지가 내 멱살을 쥘 것 같아서 말을 아꼈다.
“미래 알고 있으면서 도움이 되는 게 없냐.”
“너무하네. 이러나저러나 넌 돈을 벌어도 작곡만 할 거잖아.”
“그건…… 그럴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돈은 많으면 좋잖아. 대표님도 좀 도와드리고.”
하하.
살짝 웃음이 터졌다.
“그런 거 안 해도 대표님은 돈 많이 벌어.”
어쩌면 이미 하고 계신 걸지도 모르겠다.
워낙 베일에 싸인 부분이 많으시니까.
“왜? 미래에서 우리 기획사 혹시 엄청나게 커져?”
“일단 강남에 신사옥 세울 정도로는 커졌었어.”
“강남!”
이은지 눈이 반짝였다.
“혹시 우리 완전 대박 나서 세운 사옥이야?”
“우리……는 아니고, 적어도 신사옥 기둥은 네가 다 세웠지.”
“헐, 나 인기 많았어?”
“어, 근데 그건 이야기 안 해 줄래.”
“아, 왜!”
“재수 없어서.”
말 안 해 준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이은지는 이미 입꼬리가 귀에 걸릴 것 같은 지경이었다.
‘괜히 말했다.’
* * *
다음 날 아침.
날이 밝고, 여느 때와 같이 이은지는 귀신 같은 꼴로 터덜터덜 거실에 드러누웠다.
‘오늘은 다행히 깨어 있구나.’
현우 형님은 이은지한테 기대가 그다지 크진 않았는지, 이은지가 당장 나갈 수 있는 상태인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숍으로 향하는 차 안.
“이은호.”
“뭐.”
“어제 있잖아.”
“응. 없어.”
이은지 표정에 확 짜증이 몰아치는 게 눈에 보였다.
“개자식.”
“오냐.”
평소와 다르게 반박 없이 조용히 받아들이자 이은지는 오히려 그런 내가 더 마음 안 드는지 구린 얼굴이 되었다.
“어제 나 유명하다고 했잖아.”
“내가 그랬나? 난 기억 안 나는데.”
“아, 했잖아!”
차 내부는 집처럼 넓지 않다.
게다가 이은지는 비록 한 칸 떨어져서 앉아 있긴 하지만 내 바로 옆자리다.
이은지가 버럭 소리치면 고막이 떨어지기엔 충분한 거리라는 소리다.
이명이 들리는 것 같은 귀를 붙든 채 신경질적으로 이은지를 돌아봤다.
“했잖아!”
“……왜 소리를 질러 대.”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알았어. 했어.”
더 모른 척하다간 진짜 한쪽 청력을 잃을 것 같았다.
장난은 이만하고, 난 양손을 들며 항복을 표했다.
“진작 고분고분하게 대답해 줬으면 편하잖아.”
“그 고분고분하게 대답하기 싫은 건 생각 안 하고?”
“성격 개더럽네.”
“입이 더러운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아, 이은호 말 한마디를 안 지려그래! X라 짜증 나!”
“아이고,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탁.
말에서 밀리자, 제 짜증에 못 이긴 은지는 손에 잡힌 작은 토끼 봉제 인형을 나한테 던졌다.
얼굴에 맞기 전에 붙잡은 덕에 이은지가 바란, 얼굴에 맞는 일 같은 건 없었다.
“뭐 말하고 싶은 건데?”
장난은 이쯤 했으면 다 즐겼으니까.
이젠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들어 줄 여유가 생겨서 물었다.
“나 그때도 작곡은 내가 했었는지 물어보려고 했지.”
“……어. 넌 데뷔 처음부터 끝까지 네가 작곡한 곡으로 활동했어.”
“와, 진짜?”
투덜거리는 것 같더니 금방 놀린 것도 잊은 채 이은지는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