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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63화 (63/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63)

집에 도착해서 2층 옥탑방 계단을 오른 그때, 말 걸지 말라던 부탁 이후로 이은지는 그제야 다시 입을 열었다.

“고양이 자기 집으로 돌아갔나 보네.”

“어?”

갑자기 웬?

뒤늦게 반갑지 않았던 검은 손님이 떠올랐다.

‘아, 고양이.’

출근 전에 이은지가 밖에 내어 둔 상자 집에는 고양이의 검은 털 흔적만 잔뜩 남아 있었다.

이은지 말대로 고양이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창백한 이은지 환각이 보였던 고양이인지라 반갑지는 않았지만…….

소리 없이 사라지니 왠지 조금 찝찝한 기분이다.

‘뭐, 일단 고양이는 내가 지금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니까…….’

그냥 한 집구석에서 지내는 가족이라면 대화가 없어도 별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은지랑 난 지금 가족이자 동료였다.

게다가 오늘은 우리 E-UNG 팀의 첫 공개방송.

평소였다면 이미 많은 경험을 해 왔기 때문에 괜찮았을 텐데…….

드문드문 무대만 섰다 하면 ‘뚝’ 잘려 버린 기억들.

그것 때문에 말 없는 이은지가 마음에 걸렸다.

“이은지.”

“어.”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먼저 들어간 이은지를 불렀다.

이은지는 대충 대답하면서 내가 있는 현관문을 돌아봤다.

“왜, 말해.”

“나 오늘 뭐 실수라도 했어?”

“……아니.”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이렇게 늦게 대답해?

한 박자 늦은 대답 속도에 미간에 힘이 실렸다.

“불만이나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일에 방해는 안 돼야지.”

방해라는 단어에 은지는 눈썹을 움찔거리다 그대로 휙 고개를 돌렸다.

“불만은 아니야. 그냥.”

“그냥, 뭐.”

“아니야. 나중에 정리 좀 되면 이야기할게.”

“야, 이은―.”

쾅.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이은지 방문이 닫혔다.

닫힌 문은 곧 짤깍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잠기기까지.

“왜…… 저러는 거야?”

갑자기 저러는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내가 리허설 때 실수라도 했나?

하지만 클라우드 형, 누님들 말로는 평소 이상으로 더 잘 해냈다고 들었다.

그래서 괜찮겠거니 했는데…….

‘아, 몰라. 일단은 정리되면 알아서 이야기한다고 했으니까.’

난 내 할 일이나 해야겠다 싶어서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

잘 안 씻기는 스프레이 때문에 세 번이나 더 머리를 감았다.

겨우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집 안이 왠지 평소보다 더 쌀쌀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평소에 매일 뚱땅거리던 이은지 건반이 조용해서 그런가.

다른 걸 하고 있겠거니, 일부러 신경 쓰지 않으려고 난 가사 노트를 들고 잠자리인 매트 위에 자리를 잡았다.

“앞으로 몇 곡 안 남았으니까, 이번에는…….”

이어폰을 귀에 꽂기도 전에 이은지가 만든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대기실에서 연속 재생을 켜 두고 쓰던 걸 종료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흠, 흠흠…….”

이미 외워 버린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써 놓은 가사들을 맞춰 봤다.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고, 이제 새 곡의 가사를 쓰기 위해 노트의 새 페이지를 펼쳤다.

‘이번 곡도 어디 한번 붙잡고 씨름해 보자…….’

각오를 다지며 펜을 든 그때였다.

“이은호.”

타이밍도 참 대단해.

방문을 벽처럼 두고서 너머로 이은지가 물었다.

“들어가도 돼?”

“왜.”

“뭐 하나 물어볼 거 있어서.”

어울리지 않게 허락은 무슨, 평소에는 매일 멋대로 벌컥벌컥 열어 젖혀 댔으면서.

왜 저래…….

“들어와.”

허락을 하자, 이은지는 대답을 듣고도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오늘 진짜 이은지가 정말로 어디가 이상해진 게 맞는 것 같다.

왠지 평소랑 다른 소름 돋는 동생의 조심스러움에 괜히 근질거리는 팔뚝을 긁어 대며 물었다.

“물어보려는 게 뭔데.”

이은지는 매트 옆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답했다.

“나 혹시 죽은 적 있어?”

* * *

“흐으음.”

은호와 은지를 기숙사로 보내고 난 뒤.

박 대표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핸들에 머리를 기댔다.

다른 아이돌 팬들로 가득했던, E-UNG을 응원하는 사람이 많이 없던 무대.

은호와 은지는 잘 해줬지만, 사실 무대 밖의 관객석에서의 반응은 예상보다 좋지 못했다.

아무래도 방청객의 대부분은 다른 타 팬들이었다.

그들이 좋아하는 특정 그룹이 아닌 이상 그들에게서 이목을 끌어오기는 절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오늘 두 사람이 바깥 분위기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정도로 무대에 최선을 다해 열중했다는 게 다행이었다.

박 대표는 부러운 시선으로 하나같이 똑같은 봉을 들고 있는 팬들을 눈에 담았다.

팬들이 모여 있는 자리를 보고 있자니 보라색 포션 병 모양의 봉을 열심히 흔들던 톡신의 팬들이 떠올라 아쉬운 한숨을 흘렸다.

그것도 이젠 내가 TaKa의 사람이 아니니까.

과거의 영광일 뿐이었다.

‘E-UNG도 쉽게 한곳에서 소통하고 모이면 좋을 텐데…….’

길거리에서였지만 환호하던 오튜브 팬들이 떠올랐다.

오튜브는 데뷔 전 은지와 은호를 특별하게 알리기 괜찮은 방법이었다.

다만 소통을 제대로 하기엔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팬 카페 같은 방법도 있지만, 뭔가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 외에도 브이로그처럼 일상도 종종 공개하고요.”」

그러고 보니 오튜브 제안도 그렇고 즉석 Q&A도 모두 은호의 제안이었지.

박 대표는 핸들에서 머리를 떼고 팔짱을 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번에도 그냥 은호한테 물어볼까?”

박 대표는 호기롭게 입꼬리를 늘리며 고민 없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 * *

“나 혹시 죽은 적 있어?”

“……뭐?”

순간 이명이 너무 크게 들려서 절로 한쪽 눈이 찌푸려졌다.

내가 뭘 들은 거지?

잘못 들었나?

“내가 미친 X처럼 보일 거 뻔히 아는데, 나 진지하게 하는 소리거든. 맞으면 맞는다 아니면 아니다 확실하게 대답해 줘.”

“무슨…….”

“얼른! 솔직하게 대답하겠다고 해.”

“아까는 확실하게 대답하라며.”

“솔직하게도 하고 확실하게도 하라고, 알겠지.”

“어…… 아, 알겠어.”

강압적으로 뻔뻔하게 밀어붙이니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은호, 혹시…….”

이은지는 말을 꺼낼 듯 말 듯 하며 한참을 고민했다.

난 조용히 이은지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그…… 내가 교통사고로 죽었고, 넌 그 사고가 벌어지기 전인 이 시간으로 돌아온 거야?”

이은지가 던진 뜬금없는 질문에 머릿속에 수십 개의 물음표가 수백 개에서 수천 개로 불어나는 게 느껴졌다.

이게 무슨 말이지?

그러니까 본인이 죽은 적이 있냐고 이은지가 물었…… 허?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했는데 시작부터 말이 안 된다.

“하하.”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말을 뱉는 건 포기했다.

이은지는 가끔 앞뒤를 쳐 내고 본론만 던지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건 남매인 나 역시도 마찬가지라고는 하지만 이은지는 그 정도가 더 심한 축에 속했다.

‘혹시나’라도 내가 회귀했다는 걸 눈치챘다고 하더라도…….

물론 말도 안 되지만 ‘혹시나’ 그렇다고 해도 어쨌든 지금 바로 인정하면서 이야기를 하기엔 너무 일렀다.

“무슨 개소리야?”

일단 이야기를 더 들어 봐야 한다.

여기서 농담이었다거나, ‘장난인데 뭘 그렇게 진지하게 반응하냐’라든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으니까.

솔직히 이은지 성격이라면 그렇게 넘기고도 남았다.

하지만 이은지는 오히려 한숨을 흘리며 더 꼿꼿이 고개를 들었다.

이은지는 어쩌다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는지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몇 개월 전에, 눈 뜨자마자 나더러 ‘네가 왜 여기 있어?’라고 했었잖아. 이상하다고 느낀 건 그때부터였어.”

“……어.”

“당시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아니고, 짚어 보다 보니까 거기까지 돌아가게 되더라고.”

생각지 못했던 그때가 시작이라는 말에 좀 놀랐다.

어, 조금 많이 놀랐다.

“네가 악몽을 꾸기 시작했던 것도 그때부터였으니까.”

그때 난 불안한 마음에 스스로 더 잊으려던 것도 있었다.

당시에 저녁에 잠이 들고 나면 다음 날 눈을 뜨기가 싫었다.

차라리 은지가 살아 있는 이 평화로운 생활을 되찾지 않았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고 있던 평온한 일상을 생생하게 경험해 버렸다.

이 평화를 잃기가 끔찍이도 싫었다.

다시 그 창백한 이은지를 마주하기도 싫었고 이상한 악몽에 시달리기도 싫었다.

가장 두려웠던 건, 혹시라도 ‘와! 다 꿈이었네?’ 같은 가장 끔찍한 허무한 끝이 될까 봐.

이은지도 이후로 딱히 그날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말이 없었으니, 난 당연히 ‘그냥 잠결에 던진 말로 지나쳤구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아니었던 건가.

얘는 중요한 문제는 잘 잊으면서 쓸데없는 부분에 촉을 세우는 건 여전했다.

“끝?”

“아니, 그거 때문만은 아니야.”

고작 그 일 하나로만 결론을 냈다기엔 이은지가 지금 말하는 상황은 너무 세밀한 구석이 있었다.

교통사고라던가, 콕 집어 언급한 회귀까지.

“이야기가 좀 길어질 거 같은데, 괜찮지?”

“어.”

난 여전히 꽂혀 있던 이어폰을 뽑아내면서 대답했다.

어디 한번 들어 보자.

어쩌다가 그런 결론으로 났는지.

이은지는 찬찬히 내가 돌아온 순간부터 위화감을 느낀 당시를 아주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제안, 조언, 영어.

착한 오빠 노릇 대작전은 진심이었는데.

‘그게 의심을 받을 줄이야…….’

그 외 늘 쓰던 사물함 비밀번호를 잊은 일.

“그리고 너, 내 일기장 봤지.”

“어……?”

갑자기 들이닥친 이은지의 신경질 어린 질문에 말문이 턱 틀어막혔다.

할 말이 없었다.

맞는 말이니까.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라고는 안 하네?”

슬쩍 이은지 눈을 피하자, 이은지는 사납게 쏘아보다가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은호, 넌 거짓말을 잘 안 하더라.”

“갑자기?”

“그냥. 방금도 그렇고, 대충 거짓말로 넘어가도 될 만한 것도 꼭 솔직하게 다 털어 놓고 ‘나는 말했으니까, 네가 다 알아서 판단해라~’라는 듯이 던지잖아.”

“아깐 솔직하게 말하라며.”

“진짜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 줄 줄은 몰랐지.”

이은지는 웃었다.

진심으로 즐거워서 짓는 미소는 아니었다.

생각이 많은 눈빛 때문인지 도리어 씁쓸하게마저 느껴졌다.

말을 할까.

하지 말까.

내가 이걸 숨겨야 할 이유가 있나?

이걸 밝혔을 때, 우리 팀에 오는 이득이 어떤 게 있지?

이은지가 생각에 잠긴 동안, 나도 더 물러설 곳이 없어서 진지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맞아.”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이은지가 먼저 물었고, 이 이야기를 밝혔을 때.

내 모든 이야기를 이은지가 진심으로 믿어 준다면, 내가 가진 이 정보들을 ‘같이’ 이용할 수 있다.

“뭐? 뭐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내 대답에 오히려 이은지는 당황하며 되물었다.

“처음에 네가 물은 거, 다, 전부 아주 정확하게 맞다고.”

“……뭐?”

웃긴 녀석일세.

‘맞다’라고 원하는 대로 대답하니 이은지는 도리어 못 믿는 눈치였다.

“넌 교통사고로, 음, 뭐, 그렇게 됐었던 것도 맞고.”

죽었다.

그 말을 입에 담기가 힘들어서 대충 얼버무리며 말했다.

“내가 지금 회귀해서 여기로 온 것도 맞다고.”

원래 비밀은 지키는 것보다 털어 버리는 게 더 쉽다.

이야기를 시작하니까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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