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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62화 (62/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62)

무대 위에서 이은호는 평소보다 차분한 분위기였다.

오늘 처음으로 수많은 카메라 앞에 섰으면서.

‘혹시 지예찬 선배님과 쇼케이스 날 하루 함께했던 것 때문일까.’

하지만 그렇다기엔 이은호는 무대에서 노래를 연습할 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짙게 표현해 냈다.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치 수십 또는 수백 번 같은 무대를 서 본 선배님들처럼 이은호한테도 그들과 같은 여유로움이 보였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그 ‘프로’의 모습이, 이은호한테 보였다고.’

똑같은 연습 기간을 거쳤던 이은호가 갖기엔 말도 안 되는데.

내가 지금 내 의심에 너무 잠식당해 버린 걸까.

이은호가 내가 교통사고로 죽었던 그 악몽…….

‘그러니까 미래에서 왔다는…….’

심호흡을 깊게 내쉬며 잡생각을 흩트렸다.

몇 번을 생각해도 내가 미친 것 같다.

하지만 한 번 꽂혀 버린 생각은 방향이 고정돼서 자꾸만 그쪽으로만 흘러간다.

‘적어도 내가 우리 팀에 방해가 되면 안 되는데.’

일단 적어도 모니터링을 하면서 한 가지는 확실했다.

‘X발.’

지금 굳이 이은호한테 이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거.

리허설 땐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니터링을 하니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리 열심히 했다고 한들 카메라는 정직했다.

내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아주 훤히 드러나 보였다.

나는 모니터링을 하던 화면에서 거울로 눈을 돌렸다.

거울 속에는 무대 메이크업을 받아 여느 때보다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는 내가 있었다.

본 무대에서는 이은호한테 끌려가지 않게…….

‘프로답게 해야지.’

거울 속 내 눈에 맑은 빛이 들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 의심보다도 곧 해내야 할 생방송이니까.

* * *

“쭈, 방송 보고 있지?”

“헉, 맞다!”

“팬 카페 회장님이 나보다 더 안 챙기시는 거 같은데?”

주연은 한숨을 내쉬며 무언가를 끄적이던 노트를 덮었다.

노트에는 빼곡히 듀오의 가사와 장면에 대한 주연 나름의 해석이 쓰여 있었다.

이 해석에 푹 빠져 있었던 탓에 정작 중요한 방송을 놓칠 뻔했다니.

―이번 주 가요뱅크 라인 업! 얼른 소개해 볼까요?

다행히 늦지는 않은 듯 채널을 켠 순간 MC들의 짧은 소개가 이어졌다.

쟁쟁한 가수들 틈에서 주연은 기다리던 이들의 이름이 들리자 활짝 웃으며 화면에 빠져들었다.

―그림 같이 화려한 남매 ‘듀오’!

―꿈인 줄 알았는데, 꿈이길 바랐는데에, E, UNG의 ‘듀오’ 잠시 후에 만나요!

MC는 어색하게 듀오의 훅 부분을 따라부르며 E-UNG를 소개했다.

‘E에서 조금 더 길게 끌어 줘야 하는데!’

처음엔 어색하다고 생각했던 이름도 계속 듣고 불렀기 때문도 있지만, 좋아하는 은호와 은지가 직접 지었다는 걸 듣고 마음에 쏙 들게 됐다.

줄줄이 이어지는 다른 가수들의 소개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라인 업 소개가 끝난 뒤, 낯선 가수의 무대 하나가 끝났다.

쏴아―

익숙한 파도 소리에 주연은 꾸벅꾸벅 졸고 있던 고개를 퍼뜩 들었다.

이어지는 베이스 리듬에 맞춰 주연의 심장도 두근거렸다.

Same day, same time

same other……

보라색의 강렬한 레이저를 뚫고 나오며, 이은호가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속삭였다.

“미쳤어, 미쳤어! 목소리 X나 섹시해……!”

주연은 애꿎은 고래 모양의 베개를 쥐어뜯으며 중얼거렸다.

반면, 주연과 같은 시각 같은 장면을 보고 있던 슬기의 표정은 퉁명스럽기만 했다.

치지직―

그때, 노이즈 사운드와 동시에 덤덤하던 슬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와.”

슬기는 짧은 감탄을 터뜨리며 입을 닫을 새도 없이 화면에 빨려 들어갈 듯 TV 앞으로 다가갔다.

또각또각.

은지의 신발은 굽이 있는 워커였다.

노이즈 소리가 멎은 뒤, 은지의 구두 소리가 크게 잡히며 긴장감이 높아졌다.

다가온 은지는 레이저를 뚫고 선 은호의 곁에 섰다.

아, 이런

은지가 입을 연 그때, 무대의 보랏빛 조명이 눈 깜짝할 사이에 붉게 바뀌었다.

현실이 닥쳐와

화면이 검게 변했다.

이어서 화면이 돌아왔을 땐, 희고 검은 문들로 가득한 무대 위.

날카로운 눈으로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는 은호와 은지가 있었다.

장난스러운 시작과 다르게 음악이 잔잔해지자 은지는 그제야 스텝을 밟으며 노래를 시작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아도, 우린 항상 함께였어

손을 맞잡고, 죽음에 맞서 왔어

은지가 장난스럽게 웃자, 화면에 빠져 있던 슬기의 입에도 실실 미소가 피어났다.

멋있는 춤에 천진난만한 그 얼굴이 잘 어울려서였다.

‘여기인가?’

화려한 안무를 펼쳐 가던 그때.

슬기는 쇼케이스 영상이나 뮤직비디오 안에서 인상적으로 본 장면이 있었는지 기대감이 어린 눈빛을 띠었다.

아 이런, 현실이 닥쳐와

노래의 멜로디가 바뀐 그 순간, 은지의 오싹한 표정이 클로즈업됐다.

그 틈을 타, 은호와 은지의 위치가 바뀌었다.

그리고 화면이 서서히 멀어졌을 때, 지금껏 멀쩡했던 무대 배경의 문들이 하나같이 부서진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은지와 은호의 와이셔츠 역시 어느새 하얀색에서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풀어헤치고 있던 흰 와이셔츠와 달리 깔끔한 차림의 검은 와이셔츠 차림.

은호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던 슬기조차 살짝 머뭇거릴 정도로 눈길을 사로잡는 모습이었다.

이마를 덮던 은호의 손이 눈을 가렸고 곧 은호는 손가락을 가르며 덤덤한 붉은 눈을 드러냈다.

렌즈겠지만 꼭 원래 본인의 눈처럼 잘 어울리는 색이었다.

‘난리 났겠네.’

슬기의 예상대로 주연의 집에는 잠깐 큰 비명이 울려 퍼졌다.

냉소적이기만 하던 슬기의 시선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곧 은호의 뒤에서 나온 은지를 봐 버렸기 때문이다.

‘아…….’

살면서 딱히 연예인에게 관심 한 번 가져 본 적 없는 슬기로서는 낯선 감정이었다.

‘최애’라는 단어를 처음 알려 줬던 주연이의 말이 떠올랐다.

「“최애는, 음…….”」

「“어떤 모습이든지 최대한 눈에 담아 두고 싶고 알고 싶은, 그런 음…….”」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던 주연은 곧 손뼉을 치며 말했다.

「“일종의 사랑이지 않을까? 나는 오빠가 좋은 무대에서 계속 노래해 줬으면 좋겠거든.”」

톡신을 볼 수 있다면 어디든 쫓아가고…….

앨범, 굿즈 등 톡신과 관련된 무언가가 나왔다 하면 손에 쥐고 싶어 아르바이트해서라도 사 모으던 주연이.

항상 그 감정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처음으로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그리고 그 이해는 후회로 돌아왔다.

「“방청권 신청해 봐. 혹시 모르잖아!”」

주연이는 신청을 했음에도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굳이 거기까지 가서 봐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마음에 신청조차 하지 않았었다.

‘직접 보고 싶다…….’

신청이나 해 볼걸.

그때가 후회됐다.

다시 화면에 비친 은지는 몸보다 훨씬 큰 흰 와이셔츠를 입고 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은호와 똑같은 붉은 눈.

비슷한 검은 슬랙스 안으로 깔끔하게 넣은 검은 와이셔츠.

소매를 살짝 걷은 팔은 차가운 조명 색 탓인지 흰 피부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꿈인 줄 알았는데, 꿈이길 바랐는데

이 문 너머의 넌, 왜 대답이 없을까

꼭 가사가 내 마음 같았다.

「“안녕하세요. 언니들! 무슨 일이에요?”」

투웨니스 라이브 바 앞에서 처음으로 두 사람을 마주쳤던 순간이 꿈만 같다.

연예인인 줄도 모르고 있었던 그때조차 한눈에 봐도 가진 아우라가 나 같은 ‘일반인’은 아니겠거니 싶었다.

「“이 귀걸이 어때요?”」

내 선물에 기뻐하면서 무대에서 자랑해 줬던 그 사람과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이 맞는 걸까.

그래도 그땐 적어도 선물이라도 줄 수 있던 가까운 무대에서 공연했었는데, 지금 은지는 닿을 수 없는 TV 너머에서 노래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귓가에 닿은 노래는 차원이 달랐다.

‘아쉬워.’

처음엔 날카로운 외모와 정반대되는 밝은 첫인상이 귀여웠다.

두 번째엔 투웨니스 라이브 바 무대에서 내가 선물한 귀걸이를 자랑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정작 팬이 된 건 그녀의 노래 때문이었다.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며 외치던 Last Day”」

차분한 음색으로 가사 한 줄 한 줄에 푹 빠져서 부른다는 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임한 노래가 마음을 울렸다.

TV를 거쳐서 나온 노래는 여전히 좋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들을 때의 만족감에 비하면 발끝조차 미치지 못했다.

쿵쿵

드럼에 맞춰 클로즈업된 화면에는 어느새 다시 하얀 와이셔츠 차림의 은호와 은지가 있었다.

노래가 나오고 하루 종일 족히 수십 번은 들은 곡이었지만 무대를 보면서 듣는 노래는 새롭게 느껴졌다.

동시에 꼭 다음 방송 때에는 가서 직접 듣고 보고야 말겠다고 다짐을 이어 갔다.

찬 바람 부는 옥탑방

여기 홀로 달을 바라봐

네가 오기를 바라서, 꿈을 꾸기를 바라며

예쁘다.

은지를 칭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은호를 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두 사람이 만들어 낸 춤 선을 말하는 단어이기도 했고, 댄서들과 함께 만든 결과물에 대한 말이기도 했다.

거기 그대로

여기 그대로

TV 속 은호와 은지는 격한 안무에 가슴을 들썩이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은지는 은호의 어깨에 손을 건 채 온전히 등을 받친 손에만 지탱하고 있으면서도 여유로운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노래 내내 집중하던 표정도, 노래가 끝났음에도 한동안 더 이어졌다.

‘이래서…….’

새삼스럽지만 학창 시절, 당시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였던 사진을 모으던 주연이가 떠올랐다.

「“다 똑같은 사진 같은데?”」

「“아니야! 미세한 각도 차이가 있어. 이건 조금 아래에서 위로 보고 있고, 이건 살짝 측면에서 오빠 옆 모습이 잘 찍혔어.”」

주연이가 재차 설명을 해 줬지만, 다시 봐도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같은 사진들이었다.

그땐 이런 비슷한 사진을 왜 돈까지 줘 가며 여러 장 사 모으나 싶었는데 참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이유를 알았다.

그냥, 다 좋아서였다.

고작 사진 한 장으로는 그 만족이 채워지지 않으니까.

그때의 주연이처럼 내 마음이 지금 딱 그랬다.

카메라가 은지를 잡는 이 순간순간을 다 개인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나는 왜 방청권 신청을 하지 않았던 건가.’

후회는 물론 덤이었다.

* * *

‘다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무대가 모두 끝나고 생방송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대가 끝난 뒤부터 이은지가 이상해졌다.

“야.”

“잠깐만 말 걸지 말아 봐.”

“허……?”

잠깐만이라기엔 긴 시간이었다.

PD님께 인사를 위해 줄 서 있는 동안에도, 심지어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이은지는 계속 말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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