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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61화 (61/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61)

감(感)과 감(勘)

「“사랑 노래만 아니면?”」

그날 바로 하루 전만 해도 저녁에 방에서 나는 노랫소리가 너무 크다며 싸워 놓고서, 다음 날.

대표님의 남매 듀오 제안에 이은호는 하루아침에 다른 인간처럼 그런 소리를 했다.

「“아까 네가 흥얼거리던 멜로디가 뭔가, 고양이 발걸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었거든.”」

곡에 대한 조언이라고는 평생 단 한 번도 한 적 없던 사람이 조언이란 걸 해 줬다.

별것 아닌 그 한마디는 당시 막혀 있던 내 한계에 대한 벽을 단번에 깨트리기에 충분했었다.

「“너 왜 영어로 랩 할 수 있어?”」

팝송을 여유롭게 부르는 이은호한테 물었을 때, 당황하던 이은호는 갑자기 ‘공부했다’라며 소리쳤다.

되지도 않는 핑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땐 그냥 그러려니 넘어갔지만, 생각해 보니 같은 집에 살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머릿속 악기들이 제각각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을 낸다.

일단 지금은 첫 방송을 잘 해내는 게 중요하니까.

‘집중하자.’

카메라의 빨간 빛을 놓치지 않도록.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불협화음에게 지금 불러야 하는 듀오를 망치게 두고 싶지 않았다.

강제로 침착을 되찾자, 가라앉는 마음과 함께 머릿속 악기들은 정리되지 않은 연주를 멈추고 익숙한 듀오의 반주를 연주했다.

묵직한 베이스 드럼과 와글 베이스가 인트로를 알린 뒤 베이스와 드럼뿐인 깔끔한 반주로 이뤄진 벌스 A가 시작됐다.

나 꿈을 꿨는데, 네가 사라진 꿈이었어

왠지 이상해

공간이 고요해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하필 듀오이기 때문에 실패했다.

고양이 발걸음에서 도움을 받았으니까 한 번만 더 조언을 들어보자 싶어서 물어봤던, 달이 밝았던 그날 저녁.

이은호는 뜬금없이 이별이라는 주제를 꺼내며 이렇게 말했다.

「“넌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어떨 거 같냐?”」

그땐 앞서 연인 간의 이별로 착각했던 게 민망해서 장난처럼 속이 시원할 것 같다고 했었지만, 나는 그날 밤을 지새웠다.

끝내 잠들지 못하고 나는 그날 뜬 눈으로 일기를 썼다.

그리고 당시에 썼던 일기장의 내용이 지금 이 ‘듀오’의 가사에 발판이 됐다.

‘……연습을 많이 해서 다행이다.’

익숙한 박자에 맞춰 스텝을 밟고, 이은호가 내민 손을 잡고 거리를 가늠하며 안무를 이어 갔다.

반복적인 연습 덕분인 듯 머리는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몸은 스스로 제 일을 잘 해내고 있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아도, 우린 항상 함께였어

난 이은호의 손을 잡고 미소를 유지하며 폴짝 뛰어올랐다.

손을 맞잡고, 죽음에 맞서 왔어

이은호의 노래에 맞춰 클라우드 팀 언니 오빠들이 커다란 검은 덩어리를 이룬 채 팔을 뻗어 왔다.

이거, 악몽을 형상화했던 안무였던가.

‘처음 이 가사를 쓸 때만 해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던 우리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고 썼었는데…….’

쇼케이스를 마치고 그날 저녁, 고깃집에서 부른 배와 노곤한 바닥에 취해 잠들었을 때.

나는 기억에도 없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는 꿈을 아주 생생하게 꿨었다.

왜 하필이면 지금 그 교통사고가 떠오를까.

그저 꿈일 뿐인데, 단순한 악몽일 뿐인데.

「“왜 그러느냐, 동생아. 무엇이 너를 그토록 화가 나게 했어?”」

나한테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잘해 주던 모습.

한 번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자 그간 무시했던 이질감과 괴리감을 느꼈던 순간들이 나를 덮쳐 왔다.

「“야, 너 혹시 내 사물함 비밀번호 아냐?”」

매일 사용하던 사물함 비밀번호를 왜 나한테 물었지?

「“대표님! 요즘 이은호가 이상해요.”」

대표님한테 이야기했을 때, 대표님 역시 요즘 이은호가 갑자기 변한 것 같다며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말고 조심하기나 해.”」

「“징그럽게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남이야 죽든 말든.”」

안전벨트로 티격태격하던 그때.

‘죽든 말든.’

이 한마디에 이은호 표정이 살벌하게 변했었지.

예전 같았으면…….

아니.

그때로부터 약 두 달 전만 해도 ‘길 가다 뒈지든 말든’이라며 죽음을 가벼운 농담처럼 입에 올렸었다.

근데 왜 갑자기 화를 냈을까.

「“그냥 불러. 넌 프로니까.”」

내가 되고 싶어 하는 나의 궁극적인 목표.

발전하고 싶은 나의 욕망의 끝자락.

사랑 노래를 부르기 싫다며 투정 부리던 나한테 이은호는 콕 집어 ‘프로’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그리고 그다음은?

「“너 아마추어로 남기 싫잖아.”」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아마추어’로 남는 것까지.

이은호는 마치 내 일기장의 존재도 모르면서 그것을 몰래 훔쳐봤던 적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했다.

생각해 보면 OST 작업을 위해 CK E&M 빌딩에 방문한 날.

그날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날 우리는 어떤 놈에게 연습생이라는 이유로 가치를 무시당했다.

그때 이은호는 어떻게 대답했었지?

「“말씀대로 ‘제대로’ 부를 수 있게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이상하다.

많은 것들이 이상하다.

내가 알고 있는 이은호였다면, 이은호는 나보다 더 감정적으로 굴거나 화를 냈었을 텐데.

꼭 화를 내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렇게 점잖게 행동하는 놈은 분명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은호가 아니라고 하기엔, 이은호는 이은호였다.

평소에는 내가 아는 ‘이은호’의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까.

나랑 같이 있을 때면 농담도 하고 장난도 많이 치지만, 남들한테는 있어 보이는 척 착한 척 얌전한 척.

눈꼴시게 가식 떠는 모습도 여전했다.

게다가 유독 그 당시에만 이상했지.

시간이 갈수록 이은호는 익숙한 이은호로 돌아왔다.

‘불편해.’

굳이 꼽자면 감 때문이었다.

뭔가, 내가 꼭 알아야 할 것을 놓치고 있는 불쾌한 기분.

난 자꾸 유독 ‘그 시기’의 이은호가 자꾸, 거슬렸다.

그런데, 오늘 넌 왜 말이 없어

아, 이런, 현실이 닥쳐와

강제로 끌어 올렸던 입꼬리에 힘을 풀자, 기껏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가렸던 진짜 내 표정이 드러났다.

난 이은호와 등을 맞대고 수많은 연습을 거쳤던 거울 동작을 이어 갔다.

찾은 방 안이 비어 있네

꿈인 줄 알았는데, 꿈이길 바랐는데

이 문 너머의 넌, 왜 대답이 없을까

가사 때문인지 무대 배경으로 널린 문들에 잠시 눈길이 갔다.

‘문.’

쿵쿵.

내 심장 소리인지 스피커에서 퍼진 베이스 드럼 때문에 생긴 두근거림인지는 모르겠다.

몸은 본능처럼 동작을 바꾸고, 가사에 맞춰 몸에 익어 버린 동작을 하기 위해 팔다리를 움직였다.

「“너, 네가 왜 여기 있어?”」

혹시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그날.

그날 말이야.

매일 나랑 비슷하거나 더 늦게 일어나던 그 이은호가 갑자기 일찍 일어난, 그 하루 전날.

그때 이은호가, 아니.

내가 교통사고로 죽었던 그 악몽이 현실로 일어났던, 또는 일어날 일이라면?

‘그리고 이은호가 거기서…….’

그러니까 ‘그 일’이 벌어지기 전에 여기로 온 거라면…….

항상 돌아오던 ‘왜’라던 대답이 들리지 않아

슬퍼, 여기 조용히 비어 버린 방 안이 고요해

쿵쿵

문을 열어 주던 다정한 네 손이 보이질 않아

울어

항상 짝이던 우리 것이 하나만 남아서

이젠 베이스 드럼 때문에 심장이 뛰는 건지, 되지도 않는 내 상상 속 억측에 뛰어 대는 바보 같은 심장 소리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어쩌면 그냥, 힘든 안무에 숨이 겨워서 심장이 쿵쿵거리는 걸지도.

꿈인 줄 알았는데, 꿈이길 바랐는데

이 문 너머의 넌 왜 대답이 없을까

인제 와서 아무것도 모른 척 눈 가리고 아웅 하기엔 앞으로 내 억측이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깊어지기만 할 것 같은데…….

찬 바람 부는 옥탑방

여기 홀로 달을 바라봐

어느새 듀오의 한 트랙을 끝까지 달린 이은호와 난 정해진 엔딩을 위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네가 오기를 바라서

꿈을 꾸기를 바라며

난 돌려 말하거나 누구를 캐내는 짓은 잘 못한다.

그렇게 잘 돌려 말하는 재주도 없고. 그러니까.

어차피 미친 X 취급이야 이미 흔하게 받고 있잖아?

거기 그대로

그러니까 그냥 대놓고 물어봐야겠다.

여기 그대로

이은호.

멍청한 내 오빠 새끼와 대화라는 걸 한번 해 봐야 할 것 같다.

* * *

격한 안무에 숨을 들썩이며 마지막 엔딩 포즈를 취했다.

모니터링을 하는 동안에도 카메라 감독님께서 신경을 많이 써 주신 건지, 안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거나 등등.

흔히 일어나는 구도상의 문제 하나 없이 성공적인 무대였다.

이어서 사전 촬영을 진행하려고 했는데.

“이거, 금방 안될 거 같은데…….”

“EUNG 팀, 죄송한데 잠시만 대기실로…….”

무대 장비나 다른 어딘가에 문제가 생긴 걸까.

한 스태프가 대기실에 돌아가서 쉬고 있으라며 말을 전했다.

복잡한 마음에 단번에 일을 다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의상이랑 메이크업도 점검할 겸 우린 다 같이 스태프의 부탁대로 대기실로 향했다.

“은호는 무대만 올라가면 꼭 다른 사람처럼 날카로워지더라.”

“오, 맞아. 나만 느낀 줄 알았는데!”

익숙해진 복도를 다 같이 걸어가던 그때, 클라우드 팀 현지 언니와 영국 오빠가 말했다.

앞서 걷던 이은호는 놀라며 두 사람을 돌아봤다.

“제가요?”

“응. 너 잘하더라고. 참, 언니 어제 구름 쌤이 올리신 영상 봤어?”

현지 언니는 큰 의미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는지, 이은호 질문에 간단히 답한 후 금세 주제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

아무렇지 않은 현지 언니와 다르게 옆에서 본 이은호는 큰 충격이라도 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이것도 혹시 내가 의심하는 ‘그것’들이랑 엮인 문제일까.’

의심은 되지만 아직은 이야기를 꺼낼 때가 아니었다.

대기실에 도착한 뒤, 나는 곧장 방금 촬영된 리허설을 다시 점검했다.

생각은 복잡했지만 그래도 나도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무대였다.

리허설이긴 했지만, 혹여나 내가 놓치는 곳이 있을까.

문제점을 미리 발견해서 본방 때는 그런 부분 하나 없이 완벽하게 할 수 있도록 미리 제대로 확인하고 싶어서 열심히 했다.

‘…….’

모니터링을 하던 나는 굳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잠시 후에 있을 사전 녹화를 마친 후에 이은호한테 그 ‘악몽’과 관련된 의심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물어볼 생각이었다.

조금 전까지 충격받았던 이은호의 표정을 생각하면 더더욱 무언가 연관이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모니터링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은호는 무대에서 최고였다.

빈말이 아니라 사소한 박자도, 호흡도, 심지어 안무와 표정 관리까지.

내가 아무리 노력했다고 말한들, 나는 이은호의 실력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화면으로 명확하게 드러나 보였다.

굳이 말하자면 내가 이은호한테 끌려가는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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