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60)
황당해하는 이은지 표정이 전혀 안 보이는 건지 아니면 안 보이는 척하는 건지.
난 죽은 척이라도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도 은지처럼 이런 잘생긴 오빠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언니, 원하신다면 언제든 데려가세요.”
“정말? 후후, 없으면 아쉬워할 거면서―.”
장난기 많은 스태프가 살살 이은지 속을 긁었다.
이은지 표정은 더 구겨질 것도 없어 보였는데, 사람의 근육은 대단한지 아주 보기 좋게 구겨졌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이은지의 속마음이 표정으로 아주 훤히 드러났다.
반면, 스태프는 일부러 그런 이은지의 반응을 즐기는 듯 보였다.
“은지야, 너희 오빠 봐. 부끄러워한다. 후후.”
어우, 귀가 근질거려서 더는 못 견디겠다.
“잠시…….”
은지보다 그분 한마디 한마디에 오히려 내가 미칠 것 같아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호 씨, 와이셔―.”
“입고 오겠습니다!”
급하게 할 일을 찾던 그때, 때마침 다른 스태프가 외쳤다.
와이셔츠라는 단어가 채 끝나기 전에 후다닥 그분께 달려갔다.
탈의실 안은 좁고 조용했다.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소음조차 희미할 정도로 막힌 공간이었다.
“은지 씨는 이상형이 어떻게 돼? 은지 씨 오빠 같은 사람?”
“설마요…….”
“어머, 아니야?”
“당연히 아니죠.”
스태프는 이은지 반응이 재미있어서 놀리려고 했던 게 맞는지 내가 사라지자 오히려 이은지한테만 질문을 퍼부으셨다.
흰 와이셔츠를 걸치고 밖으로 나왔을 땐 이은지는 스태프의 장난 가득했던 이야기는 이미 말끔히 잊은 듯 해맑은 얼굴로 제 손을 뚫어지라 보고 있었다.
“머리 다 했냐.”
“어, 어어. 야, 야.”
“사람들 앞에서만큼이라도 호칭 좀 챙겨.”
“아이, 알았어. 아무튼 오빠 이거 봐 봐.”
이은지는 손가락을 거미 다리처럼 까딱거리며 내 얼굴에 들이밀었다.
“뭐. 손이 뭐 어쨌는데.”
“이거!”
“뭘 보라는…….”
아무 차이도 없는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까 달라진 부분이 있긴 했다.
보석 달린 울X린이 달라졌다.
이번엔 적당한 길이의 단순히 새까만 손톱이었다.
왠지 부드러워 보이는 무광이 특징인 것 같았다.
“어때?”
“뭐가.”
“네일 말이야.”
기존 것보다 전혀 화려하지 않은데…….
보석 달린 울X린보다는 지금 손톱이 이은지 이미지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긴 했다.
“아무리 배고파도 춘장을 손으로 찍어 먹으면 안 돼, 은지야.”
“……X새끼.”
“어허, 대표님이 밖에서 욕하지 말라던 거 기억 안 나냐.”
“안 나, X자식아.”
잘 어울린다는 건 진심이었다.
그건 그거고, 딱히 그 생각을 입밖에 뱉는 건 싫었다.
칭찬 한 번 했다간 온종일 저 검은 손톱을 들이밀 테니까.
그리고 인생의 낙과 같은, 이 이은지의 화난 표정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뒤통수에 느껴지는 따끔거림이 이은지가 날 얼마나 강렬하게 노려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난 순간의 작은 승리를 만끽하며 마저 치장을 마무리했다.
* * *
차에 올라타자, 미리 예열을 마쳐 둔 현우 형님은 기다렸다는 듯 재빠르게 골목을 빠져나갔다.
절대 늦어선 안 된다고 특별히 경고한 대표님의 경고 때문인지, 형님은 평소보다도 더 빠릿빠릿하게 속도를 내는 것 같았다.
밟은 덕분인지 지각은커녕 30분 이상 일찍 도착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꼬르르륵―.
꾸룩―.
문제는 배가 시끄러웠다.
시간을 보자 딱 점심때라 이런 소리가 날 만도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먹은 거라곤 숍에서 받은 커피 한 잔 마신 게 전부니까…….’
대기실에 도착한 뒤, 이은지는 괜찮은가 싶어서 돌아본 그때였다.
그럼 그렇지.
적어도 내가 상태가 더 좋다는 건 확실했다.
그도 그럴 것이, 좁은 소파에 웬 좀비 한 마리가 뻗어 있었으니까.
‘와중에 숍에서 받은 머리 모양은 지키겠다고 철저하게 바른 자세로 앉아 있네…….’
배가 고파서 힘든 와중에도 저렇게 버티는 걸 보니 회귀 전 프로다움을 시도 때도 없이 강조하던 이은지가 떠올랐다.
끄르르르륵―.
이은지 배 속에서 기이한 소리가 우렁차게 대기실을 울렸다.
안쓰러운 마음을 느끼긴 했다.
꼬르르륵―.
물론, 그 안쓰러움은 나한테도 마찬가지였지만.
생각을 하기엔 배가 너무 고팠다.
“일찍 도착했네?”
“대표님…….”
“오셨어요…….”
우리가 힘없이 인사하자, 대표님은 조용히 카메라 하나를 건넸다.
“이건, 뭐죠.”
“모르겠어?”
대표님이 되묻는 질문에 조금 남은 에너지를 끌어서 뇌에 전달하자 결과적으로 오튜브가 떠올랐다.
“아…….”
난 카메라를 힘없이 쥐어 들고 이은지를 비췄다.
“이대로 찍으면 안 될 것 같지 않나요…….”
카메라에 담긴 이은지를 심각하게 살피다가 난 조심스럽게 대표님께 되물었다.
대표님은 ‘왜?’라고 물으려다 뒤늦게 이은지의 몰골을 확인한 듯, ‘아.’ 하고 짧은 탄식을 흘렸다.
“촬영은…….”
대표님은 입을 열다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너희 상태 보니까 적어도 밥을 먹고 찍든지 해야겠구나. 현우가 김밥 곧 사 올 거니까 조금만 버텨. 특히 은지.”
김밥.
이 단 두 글자에 배터리라도 내장되어 있는지 이은지도 나도 갑자기 몸속의 혈액들이 바쁘게 돌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똑똑.
하지만 아쉽게도 김밥은 조금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노크 소리에 문 앞에 있던 대표님이 대기실 문을 열었다.
“EUNG 팀, 카메라 리허설 준비해 주세요!”
“네.”
방송국 스태프는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며 대표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스태프가 떠나고, 대표님은 미안한 얼굴로 어깨를 들썩였다.
“아무래도 지금은 힘들겠어. 김밥은 다녀와서 바로 먹을 수 있게 현우한테 세팅해 두라고 하마.”
“네.”
아쉽지만 일이 더 중요하니까, 내가 대답하자 이은지는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올라가야 하는데, 인사 잘하고, 무대도 눈도장 찍어야 할 때니까 리허설이라도 항상 긴장하고 있고.”
“네!”
“그렇다고 생방에 쓸 기운까지 다 쓰면 안 돼. 알지?”
“네.”
“물가에 꼬맹이들 풀어 두는 기분이다. 아휴.”
“…….”
걱정 섞인 잔소리가 긴 거 같다 싶더니, 대표님도 많이 긴장되나 보다.
“내가 방송국에 독을 푸는 건 아닌지 무섭다, 얘들아.”
하하.
반쯤은 진심이지만 반은 농담으로 던진 대표님의 이야기에 이은지랑 난 조용히 웃었다.
이은지는 단순히 대표님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웃은 것 같았는데, 나는 조금 이유가 달랐다.
「“됐다. 됐어. 내가 차라리 방송국에 독을 풀지.”」
회귀 전, 대표님이 우리한테 남매 데뷔를 제안했지만 우리가 게거품을 물며 난리를 쳤던 그때.
대표님이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한 농담이 떠올랐다.
과거를 돌아보니 문득 많은 것이 달라진 게 실감 난다.
“그냥 어제만큼만 잘하고 오라는 말이니까 부담가지진 말고.”
“네. 잘하고 올게요.”
“그래. 믿는다, 둘 다.”
대표님은 이름표를 묶어 주며 등을 토닥였다.
“가자. 가 보자.”
“네!”
대표님과 이은지와 클라우드 멤버들과 다 같이 복도를 나섰다.
한 걸음 한 걸음.
무대로 향하는 동안.
앞서 드라이리허설 때는 정신이 없어서 덤덤했던 걸까.
“E-UNG 왔습니다!”
대기실을 찾아왔던 스태프가 멀리서 우리를 발견하더니 소리쳤다.
“들어갈게요.”
스태프의 신호에 맞춰 무대에 오르자, 바닥과 벽을 메운 스크린 외에도 여러 하얀 문과 검은 문들이 기형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방송국에 온 게 처음도 아닌데.’
여전히 본방도 아니고 리허설일 뿐인데 갑자기 잊고 있던 긴장들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오튜브에 올라가는 영상도 물론 카메라로 찍고 있긴 하지만, 뭐랄까.
방송국 카메라가 은근히 이성을 압박해 오는 것 같았다.
3, 2, 1.
신호가 떨어지고, 눈에 익은 빨간불이 켜졌다.
동시에 나는 뒤늦게 몰려온 긴장으로 무대를 망치지 않기 위해 내 집중력에 불을 붙였다.
* * *
드라이리허설 때는 기분 탓인가 싶었는데, 이번 카메라 리허설을 진행하면서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은호가 이상하다.
이은호랑 같이하는 무대가 처음은 아니니까.
이전에 버스킹들, 홍대 투웨니스 그리고 바로 어제만 해도 버스킹 겸 깜짝 쇼케이스를 진행했었기에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당시의 이은호는 그냥 이은호였다.
하지만 드라이리허설 때도 그렇고, 카메라 리허설 때도 그렇고 오늘 이은호는 어딘가 조금, 솔직히 미친 소리 같지만 내가 알고 있는 이은호 같지 않았다.
너무, 뭐랄까.
차갑다.
쏴아―
왠지 뒤틀려 버린 내 기분과는 관계없이 듀오의 인트로 곡이 시작됐다.
시원한 파도 소리를 따라 베이스 드럼의 박자가 연결됐다.
Same day, same time
same other……
거기에 퇴폐적인 느린 재즈풍의 건반 연주가 더해질 즘, 이은호의 목소리가 얹어졌다.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는 덤덤한 목소리.
오히려 그래서 듣는 처지에선 가슴 한편이 씁쓸하게 아려 오는.
인정하기 싫지만, 이은호는 감정을 움직이는 노래를 부를 줄 알았다.
그리고 이건 분명 대단한 재주였다.
치지직―
듣기 좋았던 멜로디는 고장 난 오디오 노이즈와 함께 멈췄다.
잔 잡음이 흐려질 무렵 이번엔 내가 입을 열어야 할 때였다.
아, 이런
현실이 닥쳐와
손등으로 이마를 짚고 손을 뒤집어서 눈을 가렸다.
듀오의 상징이 되는 동작이었다.
원래 시작은 등을 맞닿고 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 방송에선 사전 녹화를 염두에 두고 퍼포먼스에 더 힘을 싣는 쪽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스텝을 밟으며 힐끗 이은호를 보자, 거울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철저하게 내 동작에 호흡을 맞추며 움직이고 있었다.
찾은 방 안이 비어 있네
손을 흐르듯 떨어뜨리며 노래를 불렀다.
쿵
곧이어 묵직한 무언가가 내려찍는 소리를 끝으로 인트로 곡이 끝났다.
“바로 이어 가겠습니다!”
“네!”
인트로 곡의 리허설이 끝나고 스태프인지 감독인지 모를 누군가의 외침에 맞춰 이은호와 클라우드 언니 오빠들은 재빠르게 대형을 다시 갖췄다.
나도 내 자리로 맞춰 가고 있던 그때였다.
“이은지.”
“어?”
조금 과하게 화들짝 놀라면서 이은호를 돌아보자, 이은호는 노래를 부를 때처럼 인간성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정확히 문제점만 꼬집었다.
“본 무대 때는 처음에 스타트 끊을 때부터 한 걸음 더 옆으로 가.”
“어?”
“넌 살짝 왼쪽으로 치우쳐지는 경향이 있으니까. 네가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반걸음 더 이동하면 정확하게 맞을 거야.”
“어…….”
이은호의 지적은 인정하기 싫지만 매우 정확했다.
왠지 기시감이 느껴지는 건 드라이리허설 때도 비슷하게 문제점을 꼽아 줬기 때문일까.
‘아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