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59화 (59/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59)

검은 배경의 페이지에는 익숙한 화보와 함께 흰 글씨가 빼곡했다.

그 페이지에는 ‘E-UNG’, 즉, 나와 이은지가 해 왔던 모든 활동이 담겨 있었다.

「E-UNG의 시작은 멤버 중 ‘이은호’가 박창석 대표외 연이 있는 TOXIN의 리더, 지예찬의 솔로곡 피처링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CK E&M 스튜디오와 함께 작업한 E-UNG의 화제의 시리즈, <그는 1+1=1>의 OST 중 가장 좋은 곡 1위에 선정…(중략)」

혹시 몰라, 팬일지도.

그 말에 설마 그러겠냐며 대표님이 건넨 잡지를 받아 들고 별생각 없이 읽어 가던 그때였다.

―무대에서 팬 선물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며 팬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드러낸 E-UNG는…(중략)

글을 읽자, 이걸 쓴 에디터의 얼굴이 자연스레 떠오르면서 실실 웃음이 새 나왔다.

선물을 받고 그걸 무대에서 자랑했던 일…….

예전에 투웨니스 라이브 바에 직접 공연을 보러 오셨던 분이 쓰신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아, 슬기는 일 때문에 오고 싶어 했는데 CK…….”」

순간 버스킹 전에 주연 씨가 했던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와, 말도 안 돼.

낮에 혼자 온 주연 씨가 뜬금없이 ‘CK’를 이야기한다 싶었는데, 이걸 말씀하시려고 했던 걸까.

‘응?’

하하.

차분히 쓰인 글들을 읽어 가던 난, 무언가를 눈치챈 순간 웃음이 터졌다.

―날카로운 눈빛과 다르게 가슴을 울리는 깊은 그녀의 목소리는…(중략)

감상보다 결과적인 내용이 많이 실린 내 이야기와 반대로, 이은지는 내용의 절반이 마치 찬양에 가깝다.

그녀가 누구를 더 좋아하는지 뻔히 눈에 보이는 내용이었다.

물론 한눈에 봐도 보통 정성이 아닐 만큼 내 내용에도 부족함은 전혀 없었다.

옆을 돌아보자 이은지는 살짝 울먹거리기까지 하고 있다.

평소라면 ‘야, 우냐?’라면서 장난이라도 치는데, 음…….

회귀 전부터 이은지가 제 팬들을 얼마나 소중히 대하고 아꼈는지를 알고 있어서 그런가.

지금은 이은지 기분을 방해할 수 없었다.

“다음 장은 내 인터뷰야.”

대표님 말대로 다음 페이지에는 대표님 인터뷰 내용이 빼곡했다.

본인을 끼워 팔았다는 그 페이지인 것 같았다.

―‘TOXIN’의 아버지, 박창석.

―그가 ‘E-UNG’ 화제의 남매 그룹을 만들기까지…….

톡신의 아버지…….

이 단어가 왠지 입에서 걸리적거리는 느낌이다.

톡신은 2000년대부터 2010년대를 휩쓸었다.

톡신이 알려지면서 톡신의 깊은 사연과 함께 그들의 ‘아버지’라 불린 ‘박창석’도 대한민국에서 유명해졌다.

―과거 TOXIN이 되기 전, 6명의 멤버들은 흔히 좋지 못한 기획사에서 연습생 활동을…….

‘좋지 못한.’

언어를 최대한 순화해서 말했지만, 제대로 말하자면 과거 톡신의 회사는 조직폭력배가 운영 중이던 질이 나쁜 기획사였다.

질이 나쁘다.

‘멤버들의 좋은 실력을 두고도 그들의 반반한 외모를 어떤 스폰서에게 연결할지에 더 신경을 쏟던 그런 곳’이라고 대표님이 말했다.

톡신의 멤버들은 스폰 제안을 거절했다.

대화 대신 폭력이 돌아왔어도 계속 거절했다고 한다.

‘반드시 음악으로 성공할 것’이라는 한마음 같던 욕심 덕분이었다고.

이 역시 대표님이 말씀해 주셨던 이야기였다.

가수의 꿈을 꾸기 전.

이은지와 집처럼 머물던 찜질방 TV에선 한창 시상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톡신의 은인, 저희를 지옥에서 꺼내 세상에서 빛을 보게 해 주신 아버지 같은 존재. 박창석 형님에게 이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여섯 멤버가 단체로 깊이 허리를 숙이고, 연예인도 아닌 매니저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채워졌다.

정작 이은지와 난 ‘박창석 대표’가 그때 그 ‘매니저’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함께한 지 1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전 기획사는 어쩌다 나왔나?

> 총 10년이 넘는 경력이 쌓였다. 쉬지 않고 달려왔더니 쉬고 싶어져서 퇴사하겠다고 했다.

―반대가 심했을 것 같다.

> 심했다. 대표님이 눈이 뒤집히셔선 ‘월급 3배!’라고 소리치셨다. 하하.

―이후에는 어떻게?

> 고향에 내려가서 고양이 두 마리를 기르면서 농사를 지었다. 근데 결국엔 1년도 못 버티고 다시 서울로 상경했다. 요즘 데뷔하는 아티스트들을 보니 손이 근질근질해서 쉬지를 못하겠더라. (웃음)

―전 기획사에서 다시 돌아오라는 제의는 없었는지.

> 당연히 왔었다. (웃음) 하지만 거절하고 내 회사를 차린다고 했고, 전 회사 대표님한테는 정말 많은 조언을 받았었다. 정말 감사했다.

―지금 E-UNG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 회사 사옥을 정하고 인사차 전 회사에 잠시 방문했었다. 그때였다. 우연히 아이들을 만났다.

전 회사 대표님 조언이 특히 큰 도움이 됐다.

아마 내가 TaKa에 있을 때라면 두 사람은 인상이 너무 강렬하다는 이유로 키우는 걸 포기했을 것이다. (웃음)

하지만 전 회사 대표님이 조언하기로, 강렬한 친구를 선보이라고 하셨다.

물론, 맹수 같은 꼬맹이 둘을 사람처럼 키워 내기까지는 아무리 이 분야의 전문가인 나로서도 힘든 일이었지만……(중략).

맹수 둘이라니…….

인터뷰 내용을 읽어 내리는 동안, 그때의 일이 떠올라서 저절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E-UNG.’

우린 과거 성공 신화를 썼던 대표님이 홀로서기를 한 이후, 처음으로 세상에 내어 보이는 작품인 셈.

이은지와 잡지 하나를 붙들고 대표님의 인터뷰 내용을 다 읽어 가던 그때였다.

“대표님.”

“왜, 은지야.”

“톡신 선배님들이 좋아요, 저희가 좋아요?”

옆에서 던진 황당한 질문에 표정 관리도 잊고 그쪽을 돌아봤다.

이은지는 진심으로 물은 듯 입까지 비죽이면서 심술 가득한 표정이었다.

“하, 하하하하.”

대표님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 추억이야…… 아직은 톡신 애들이랑 많기야 하지.”

이은지 표정이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굳어졌다.

안 그래도 사나운 얼굴인 애가 정색까지 하니까 나까지 흠칫했다.

다행히 대표님은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이은지와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걔들은 TaKa 사람이고, 너희는 이제 내 애들이잖아. 당연히 너희가 더 소중하지.”

이은지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밝아졌다.

“진짜죠?”

“내가 결혼은 안 했지만, 은지 넌 나한테 딸이었고 은호는 아들인걸. 항상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식처럼 길렀어. 그럼 당연한 거 아니냐.”

자식…….

대표님이 입에 올린 낯간지러운 단어에 이은지와 난 잠시 굳어 버렸다.

‘이건, 뭐랄까.’

본능적인 감정이었다.

가슴이 무겁기도 하면서 좋기도 하면서, 하여간 복잡했다.

‘이은지는 어려서 기억 못 하겠지…….’

나는 희미하게 그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부모’라는 단어를 붙여 주기엔 너무 아까운 ‘그 사람들’.

“이건 너희를 보는 시선들이 이렇게 많다고 알려 주기 위해서 준비해 봤어. 오늘, 딱 어제처럼만 잘하고 오라고.”

이은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울면 카메라에 눈 부어서 나간다, 은지야.”

대표님이 장난처럼 말을 던지자, 이은지는 고개를 쳐들었다.

본인도 카메라를 생각하고 있었던 건지, 이은지는 눈가가 붉어진 채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는 얼굴이었다.

문제는 그 얼굴이 너무 웃겼다.

“하하하. 못생겼다.”

생각을 필터 없이 내뱉자, 이은지의 눈물은 일단 확실하게 멎었다.

표정이 괴물처럼 살벌하게 구겨졌으니까.

당장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던 그때였다.

“첫 방인데 아침부터 싸우지 마라.”

대표님 경고 어린 한마디에 괴수 같던 이은지 표정이 평소 좀 날카로운 정도로 돌아왔다.

“대표님도 같이 간다면서요?”

“같이 갈 거야. 방송국 가기 전에 먼저 들를 곳이 있어서. 조금 늦게 도착할 거다.”

“아하.”

이해했다는 대답과 다르게 이은지 표정은 어딘가 아쉬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선배님들한테 인사 바로바로 잘하고, 리허설 때 잘 체크하고, 알겠지?”

“네.”

“그래. 이제 가자. 전장에 나가려면 총이랑 갑옷을 똑바로 차려입어야지.”

대표님이 떠미는 손에 밀려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첫 방을 위해.

* * *

“어, 왔다.”

“은호야, 은지야! 여기, 여기!”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클라우드 팀원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클라우드 팀원들은 미리 넓은 공간에서 안무 간격에 대해 회의를 나누고 있는지 다들 분주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자연스레 그 틈에 섞여 곧 있을 드라이리허설을 위해 덜 풀린 몸을 풀며 컨디션을 조절했다.

“연습하고 있었네.”

“네. 몸 좀 깨울 겸…….”

잠시 후, 도착한 대표님이 한창 맹연습 중이던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가 걱정할까 봐 일부러 티를 안 내려고 하셨던 걸까.

차분히 대답하자 대표님 표정이 한결 가벼워진 게 눈에 보였다.

“Brrrrrrrr―.”

일찍 일어나서 준비했지만, 아무래도 아침이라 그런가.

역시 목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다.

물도 마시고 스트레칭을 계속 반복했다.

드라이리허설을 위해 이은지와 난 대표님이 미리 준비해 주신 이름표를 걸었다.

카메라는 없지만 우리를 조금이라도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항상 무대 위에선 최선을 다했던 몸의 기억을 따라서였을까.

‘뭐지.’

오랜만에 오른 무대는 많이 떨릴 것 같았는데 솔직히 예상했던 것보다는 덤덤했다.

아니, 오히려 눈을 감았다 뜨니 필름이 뚝 끊어진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드라이리허설이 끝나 있었으니까.

술이 아니라 일에 취하기라도 한 기분이었다.

“은호가 꼼꼼해.”

“아까 무대에서 위치 잡아 주는데 신인답지 않게 듬직하더라.”

“모니터링 때 내 실수 잡아 준 거…… 고맙다.”

그래도 특별히 사고를 친 건 아닌 듯 클라우드 멤버들도 그렇고 이은지 반응도 평소보단 부드러웠다.

* * *

드라이리허설을 마친 후에는 예약되어 있던 숍으로 향했다.

때 빼고 광 낸다.

그 말이 딱이었다.

“와, 미친.”

“와.”

이은지랑 나는 메이크업을 끝마친 서로의 얼굴을 보고 동시에 입을 열었다.

“넌 어떻게 화장을 해도 못생겼냐.”

“넌 어떻게 메이크업을 해도 우럭 같냐.”

“또…….”

그놈의 우럭.

이러다 우럭한테 정들겠다.

지금 입을 열어 봤자 욕만 튀어나올 것 같아서 주변의 보는 눈을 생각해 조용히 닫았다.

“친오빠라서 그런가? 은지는 항상 화가 난 것처럼 보였는데 오빠 앞에서 장난치는 건 또래 같고 귀엽네.”

“귀, 예?”

“은지는 이런 잘생긴 오빠 있어서 좋겠다.”

“……?”

의외로 오늘의 복병은 주변이었다.

이은지는 당황한 시선으로 스태프를 돌아봤다.

“매일 아침 오빠 얼굴 보면 기분 좋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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