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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58화 (58/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58)

“…….”

방으로 들어온 은호는 충격에 빠져 있었다.

고깃집에서 환영이 사라지길 바라면서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바람대로 놈은 사라진 상태였다.

다행이라 생각하고 잊고 있었는데, 사옥 2층에 올라온 순간.

난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서 있던 창백한 이은지를 다시 만났다.

진심으로 비명이라도 질러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은지가 세상을 떠난 뒤, 환각이 보이던 1년 내내 물건도 던져 보고, 소리도 질러 보고, 교회도 가 보고, 절도 가 보고, 심지어 굿도 해 봤다.

온갖 것들을 다 해 봤지만 놈에게 영향을 주는 건 오로지 내가 무시하는 그 행동 하나뿐이었다.

꼭 관심을 받고 싶은 아이처럼 놈을 나를 끊임없이 쫓아왔다.

미쳐 버릴 것 같던 그 시간이 떠오르자 치가 떨렸다.

「“우쭈쭈, 애기야, 어디서 왔어?”」

옥탑방에 올라온 순간, 그땐 분명히 환자복을 입은 그 시체 같은 얼굴이 보였었다.

하지만 눈을 깜빡이자 그건 그냥 검은 고양이로 바뀌어 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고양이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고양이의 노란 눈동자를 마주했을 때 난 소름이 돋았다.

‘뭔가.’

께름칙한 기분이, 불쾌한 느낌이 지워지질 않는다.

* * *

‘자야 하는데.’

머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몸은 잘 따라 주지 않았다.

무대나 반갑지 않은 고양이인지 귀신인지 모를 불편한 손님부터 신곡에 넣을 가사들까지.

이것저것 신경 쏟을 것들이 많아서 그런지 졸린 데 잠이 안 온다.

솔직히 그냥 자기엔 시간이 아까운 탓이 제일 컸다.

♩♪♪♪

사정은 달라도 잠이 오지 않는 건 이은지도 마찬가지였던 걸까.

이은지의 방에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

집 밖으로는 샐 만큼 큰 소리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 방문까지는 넘어올 만큼 작지는 않은 정도.

덕분에 집 안엔 새벽 내내 이름 모를 현악기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가득했다.

그래도 생각이 많은 것치고는 오늘 하루 일이 많아서 그런지 평소 막혔던 가사가 술술 쓰였다.

“다 썼다.”

이제 멜로디랑 맞춰 봐야 하는데, 창밖을 보니 곧 해가 떠오를 것 같았다.

적어도 두 시간은 눈을 붙여 둬야 할 것 같아서 잠을 청했다.

이은지 방에서 들리던 건반 사운드와 멜로디를 맞추기 위해 흥얼거리는 소리도 한 시간 정도 더 이어지다 멎었다.

눈을 다시 떴을 땐 아침 해가 이제 막 오르고 있을 때였다.

콱콱, 콱.

바람인가?

조금만 건들여도 소리가 나는 얇은 알루미늄 문은 바람에 날아온 물건 때문인지 큰 소리가 났다.

“아…… 네 시 넘었네…….”

휴대폰 액정에 시간을 띄우며 목소리를 낸 순간, 차마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쇳소리가 났다.

워낙 정신이 없었던 하루의 여파인지 평소랑 다르게 30분 더 늦잠을 자 버렸다.

“큼.”

난 머리맡에 놔둔 물을 들이켠 후, 목을 가다듬기 위해 괜히 헛기침을 하며 방문을 열었다.

“으, 으아악!”

그때였다.

비명을 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옆에서 쾅 소리가 들렸다.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X랄이야. 놀랐잖아.”

“저, 저게 왜 여기 있어!”

“뭐가! 아?”

이은지는 방금 일어난 건지 한쪽 눈을 여전히 반만 감은 채 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새끼잖아.”

“뭔 새끼?”

“고양이 새끼! 밖에 추운데 하루라도 따뜻하게 자고 가라고 들였어.”

“뭐?”

내가 방금 잘못 들었나.

현관을 다시 돌아보자 창백한 안색에 병원복을 입고 있는 이은지가…….

분명 쭈그려 앉은 이은지가 있었는데, 다시 보니 검은 고양이가 있다.

어제 본 그 고양이였다.

“공연하다가 머리에 나사라도 빠졌나 어제부터 왜 그래?”

쾅쾅.

혼이라도 빠진 것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던 그때, 형님이 도착했는지 알루미늄 문소리가 시끄럽게 방을 울렸다.

이은지는 한숨을 쉬며 현관문으로 향했다.

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꺼림칙한 검은 고양이의 노란 눈이 감정 없는 시선으로 이은지를 빤히 바라봤다.

“좋은, 어?”

현관문이 열리고.

형님은 평소처럼 인사를 건네다 이은지의 맞이를 생각지도 못했었는지 놀란 눈이 됐다.

현우 형님의 시선은 그대로 아래로 향했다.

“고양이네? 와, 귀엽다.”

현우 형님의 한마디로 확실해졌다.

저 고양이는 정상적인 그냥 고양이였다.

놀라서 쿵쿵거리던 심장이 제 속도를 되찾아 갔다.

내 눈에만 종종 이상한 환각으로 보이고 있다는 게 명확해졌다.

‘내가 또 미쳐 있구나.’

흔하지 않은 일이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흔한 일이다.

처음 발현했을 때는 이은지가 세상에 없을 때였지만, 어쨌거나…….

이미 한 번 겪어 본 일이다.

‘멀쩡하지 못하면서 멀쩡한 척 연기하는 건 많이 연습했던 일이니까.’

내 눈엔 보이고 남 눈에는 안 보이던 그때보다야 지금이 낫다.

그래, 그런 거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제 2층에 올라와서 추워하길래 안에 들였어요.”

“근데 기숙사에서 키우기는 힘들지 않겠어? 돈 문제도 있고.”

“아무래도 그렇죠? 일단 어제는 밖이 쌀쌀하길래 잘 곳만 만들어 줬고 물 정도만 챙겨 줬어요. 제가 동물을 돌봐 줘 본 적이 없어서…….”

“그건 대표님한테 여쭤보면 될 거 같은데, 고양이 키우신다고 들었던 거 같거든. 오튜브 영상에 종종 넣던 고양이 사진들이 대표님 고양이라고―.”

내가 진정하는 동안 이은지와 현우 형님은 고양이의 처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마무리된 후에는 형님이 주제를 바꾸기 위해 약하게 손뼉을 치며 관심을 모았다.

“얼른 준비하고 내려가자. 대표님 기다리고 계셔.”

“어? 대표님 오늘 일찍 출근하셨어요?”

“‘애들을 전장에 보내는데 아버지가 마중도 못 하면 쓰냐’라던데, 오늘 일정 따라오실 거래.”

이은지는 형님이 전한 말이 듣기 좋았는지 히죽거리며 웃었다.

보통은 대표님이 따라다닌다고 한다면 부담스러울지 몰라도, 우리에겐 대표님은 아버지나 다름없는 사람이라 큰 의지가 됐다.

정신없는 아침이었던 덕분에 굳어 있던 어깨가 풀어졌다.

“늦지 않게 준비하고 내려와.”

“네.”

“네!”

현우 형님은 이야기를 전하고 1층으로 떠났다.

“내가 먼저 씻는다.”

찬물이 절실해서 먼저 욕실에 들어왔다.

머리에 얼음장 같은 물을 쏟아붓고 나니 정신이 든다.

‘아.’

생각해 보니까 머리는 샵에서 또 감아야 하는데.

이미 다 적시고 난 뒤에는 늦었다.

젖은 이상 감는 쪽으로 하고 세수까지 멀끔히 한 뒤 밖으로 나왔다.

“뭐야, 머리 감았어?”

“어.”

“냉수 맞고 정신 차리려고?”

이은지가 킬킬거리며 장난을 걸어왔다.

평소라면 티격태격하고 넘어갈 일이었지만, 오늘은 정신이 없어서 그런가.

그럴 기운이 없었다.

자꾸 떠오르는 잡생각을 잊기 위해서라도 빨리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난 먼저 내려간다.”

“그래라~.”

먼저 옷을 챙겨 입고 1층으로 향했다.

현관문 옆에 있는 고양이는 나를 빤히 노려보더니, 은지가 욕실 문을 닫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괜찮겠지.’

* * *

다짐

<신인 맞아? 외모도 노래도 실력파! “저희는 E-UNG입니다!”>

<‘TOXIN’을 키운 박창석 대표의 홀로서기, 첫 데뷔 그룹 ‘E-UNG’의 ‘듀오’ 발표!>

<가식 없는 현실 남매, E-UNG!>

1층 대표실에 들어서자 대표님은 웃으며 수많은 기사를 보여 줬다.

하나같이 우리에 대한 좋은 이야기로 가득한 기사였다.

대표님이 일부러 더 특별히 좋은 것만 추렸다는 건 찬사에 가까운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반응 괜찮은가 보네요.”

“괜찮다마다! 아주 좋아! 도전에 가까웠는데 다행히 잘 먹힌 것 같더구나. 참, 이것도 있어.”

대표님은 서랍을 뒤적이다 「CK 뮤직 라이프 [2월호]」 월간지와 둘둘 말려 있는 잘 코팅된 정체 모를 종이 뭉치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건 일정이 밀리면서 이번 버스킹 내용은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잘 나왔더라고.”

“그건 뭐예요?”

“이거?”

월간지는 우리 기사가 실려 있다는 말에 이해했다.

남은 건 옆에 있는 종이 뭉치였는데, 정체를 질문에 대표님의 표정이 의미심장해졌다.

“짠!”

대표님은 돌돌 말린 종이를 풀며 외쳤다.

그리고 나는 굳었다.

“이런 미친, 그 끔찍한 건 뭐예요!”

마침 1층에 내려온 이은지가 나 대신 대표님이 들고 있는 브로마이드를 보고 소리쳤다.

대표님은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고 있었는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어떠냐, 잘 나왔지?”

“아니요. 전혀요. 너무 끔찍한데요.”

“하하하하.”

이은지는 분명 진심으로 한 말이었지만 대표님한테는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았다.

화질이 잘 나왔다거나 그런 거라면 그래, 잘 나온 거 인정이었다.

하지만 사진이…….

“왜 하필 이거예요? 다른 사진도 수천 장 찍었는데.”

내 질문에 대표님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거 말고는 죄다 니들 얼굴이 똥 씹은 표정이던데?”

아이고, 머리야.

고양이 문제보다 이게 더 머리가 당긴다.

예상했겠지만 뮤직비디오 촬영 당시 급한 일정에 치여 가면서 촬영했던 그 사진이었다.

이은지가 포즈 잡다가 삐끗해서 넘어지려던 거 잡아 줄 때.

그런데 사진을 크게 봐서 그런가.

왠지 어제 이은지가 실수하면서 내 멱살을 쥐었던 쇼케이스에서의 마무리 자세와 닮은 것 같다.

‘이거 상습범이었네.’

괜스레 노랗게 멍든 쇄골을 문지르고 있을 때.

대표님은 생각에 잠긴 눈으로 2월호 잡지에 손을 올렸다.

“CK 뮤직 라이프는 5월이 마지막 호야.”

“왜…….”

“우리처럼 소박한 곳이 아니잖냐, 거긴.”

대표님은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닫았다.

CK E&M은 작은 회사가 아니다.

‘아, 작은 회사가 아니다…….’

그것만으로 상황은 맞춰졌다.

CK에는 뮤직 라이프 잡지 외에도 두 종의 잡지가 더 있었다.

창간된 지 오래되긴 했지만, 구독자가 적은 잡지는 아무래도 회사 처지에선 이득이 되지 않았던 모양.

“씁쓸하긴 하지만, 그래서 이야기가 빨랐어. 날 같이 끼워 팔았거든.”

“대표님을요?”

“내가 이야깃거리가 많잖니.”

대표님은 농담처럼 웃었지만 대표님의 과거는 확실히 화려했다.

하지만 과거가 아무리 뒷받침된다고 한들, 우리 회사는 아직 신생 기획사였다.

아직 패를 까 보기 전인 신인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여러 페이지를 희생해 가며 실어 줄 곳은 적다.

“그래서 급했었나 보네요.”

“음, 뭐, 하하. 그렇지.”

뮤직비디오 촬영이 잡힌 뒤.

끝나고 들어가는 것도 아닌 데다, 따로 인터뷰 시간을 가지지도 못했었다.

급했던 촬영 같은 것도 일정이 이상하다 싶긴 했는데, 이유를 알고 나니 이해는 됐다.

“다행히 에디터가 너희를 좋게 봤는지 아주 세심하게 써 줬더라고. 혹시 몰라, 팬일지도.”

“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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