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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57화 (57/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57)

끼이이익―.

쾅.

큰 소리가 들리고 잠시 눈앞이 희게 질렸다.

고무가 타는 냄새, 눈을 덮은 축축한 비린내.

익숙하지 않은 냄새에 속이 울렁거린다.

「은지야!」

매니저 오빠다.

어라, 나 매니저님한테 오빠라고 잘 안 하는데……?

그러고 보니 얼굴도 현우 매니저님이 아니야.

근데 난 왜 이 사람이 매니저라고 알고 있는 거지?

그보다, 여긴 어디야?

주변을 둘러보니 익숙한 차 안이다.

그런데 평소 타던 밴이랑은 달랐다.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은지…….」

악몽을 꿨던 것 같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이은호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건 정확하게 들렸다.

이은호.

“오빠…….”

평소엔 오빠라고 죽어도 부르기 싫었는데.

왠지 이 순간이 아니면 끝일 거 같아서 불러 봤다.

아니나 다를까.

이게 내 마지막 기운이었는지 졸음이 몰아친다.

「야, 눈 떠. 눈 뜨라고!」

「일어나라고! 이은지! 야!!!」

이은호, 노래해야 하는 인간이 저렇게 소리 지르면 목 다 쉴 텐데…….

하지만 눈을 뜨기엔 머리가, 어깨가, 목이, 등이, 허리가 곳곳의 뼈와 근육들이 비명을 질러 댔다.

그래서 너무 힘들어서, 그냥 쉬고 싶어졌다.

심장이 모래에 파묻히는 것처럼 서서히 숨이 멎어 간다.

「일어나라고!!! 야!!!」

“야, 일어나라고.”

꿈속에서 외치는 비명과 실제로 귀를 때리는 소리가 동시에 겹쳐진 순간.

번쩍 눈이 뜨였다.

이은호가 짜증 가득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뭐야…….”

“잘 잤나 보다? 목은 다 잠겨서.”

“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이 익숙하다.

고깃집에서 순간 이동이라도 한 건지 사옥이 위치한 골목길 인근이었다.

대표님과 로아 언니, 정민 오빠, 영국 오빠는 이미 집에 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현지 언니, 시간도 늦었는데 우리 집에서 자고 가요.”

“그럴까?”

늦은 시간인 탓에 현지 언니는 미은이에게 하룻밤 신세 지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편, 많이 취해 보이는 별님이 언니와 인혁 오빠는…….

“별아, 데려다줄게.”

“돼―써허. 오빠도 술 마셨자나.”

“그래서 걸어서 데려다주려고…….”

“야, 오달!”

“에휴.”

별님이 언니는 인혁 오빠를 무시하고 달님이에게 소리쳤다.

취한 언니를 보며 인혁 오빠는 땅이 꺼질 것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업어! 쉐끼야!”

“저게 돌았나.”

“저게? 너어 이 쉐끼, 꼬맹이 때 끅, 이 누나가 어? 업어서 정글짐에도 올려 주고 했는데!”

“X친, 본인 좋을 대로 기억 조작하지 마! 그거 내가 무섭다고 울었더니 누나가 재미있다면서 억지로 올려놨던 거잖아!”

“흐음, 좋아서 비명 지르던 거 같았눈데?”

“X랄, 무서웠던 거거든! 내가 그쪽 때문에 아직도 높은 데를 못 가요!”

정신없는 상황에서 고개를 돌리자, 이은호가 득도한 얼굴로 같이 언니를 보고 있었다.

“언제 도착했던 거야?”

“방금. 술 안 먹은 사람이 현우 형님뿐이라서 형님이 두 번 나눠서 데려다주셨어.”

“고깃집에서 여기까지?”

“어. 많이 피곤해 보이셔서 형님은 먼저 들어가시라고 했어. 내일 일찍 나오셔야 하니까.”

“그건 잘했네.”

피곤할 만도 했다.

고깃집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그렇게 가까운 것도 아니니까.

“그럼 인혁 오빠 차는?”

“대리 불러서 옮겨 놨지.”

“아하.”

이은호와 이야기를 하는 그동안, 현지 언니와 미은이는 이야기가 끝난 모양이었다.

“저희는 먼저 들어가 볼게요, 오빠.”

“어, 조심히 들어가.”

아직 성인도 안 된 댄스 팀 막내의 인사에 이은호가 친절한 얼굴을 꾸며 내며 인사했다.

그때, 은지는 진심으로 기겁한 표정을 지으며 벌레를 바라보듯 은호를 쏘아보고 있었다.

“헐.”

어울리지 않는 친절한 이은호 모습에 순간 팔에 소름이 다 돋아났다.

“……역겨워.”

“역겹…… 저게 진짜.”

“가식 극혐!”

“이건 가식이 아니라 친절이거든, 멍청아.”

“지가 언제부터 친절했다고.”

“호칭 말아먹는 동생 새끼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한테는 다 친절하단다.”

“니 동생한테 먼저 친절하게 했어야지.”

“그래, 동생아. 이러면 되겠니?”

시비 걸던 은지는 입을 닫았다.

사르르 눈꼬리까지 접으면서 웃는 이은호 얼굴에 당장이라고 주먹을 갈기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기 위해서였다.

“X나 정색하네.”

은호가 황당하게 말을 흘리자 은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 방금 인내심 좀 오졌다.”

“오졌…… 야, 제발 말 좀, 이것아. 곱게 하라니까.”

“너나 먼저 모범을 보이세요, 우럭 대가리.”

“우럭 좀 그만 우려먹어라. 살 다 떨어지겠다, 호박 대가리야.”

“지는. 이은호 멍청해서 야채는 호박밖에 모른대요!”

“야채는 들에서 나는 나물이고 호박은 채소거든, 빠가사리야.”

“어……? 둘이 다른 거였어?”

은지가 한 방 맞은 얼빠진 얼굴로 묻자 은호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답했다.

“사실 나도 잘 몰라. 니가 뻔뻔하게 말하길래.”

“아, 씨, 저 X자식이 또…….”

“그만, 그만!”

투덕거리는 남매를 가만히 지켜보던 정현지는 참다 못해서 둘 사이를 직접 막아섰다.

“언니! 방금 봤죠! 이은호가―.”

“은지도 그만 시비 걸고, 오빠도 좀 참아요.”

“맞아, 좀 참아!”

은지가 제 편이 생겼다고 기세등등하게 나오자 은호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것도 잠시.

“은지도 그만하라고 했어.”

현지는 은지의 편도 아니었다.

은지가 쭈그러지자, 이번엔 은호가 다시 어깨를 펴며 웃었다.

현지는 그런 은호를 돌아보며 한숨을 흘렸다.

“평소에는 침착한 사람이, 왜 은지랑 붙었다 하면 쌈닭도 아니고 매일 한 번은 꼭 싸우는 거예요?”

“저거 말하는 거 들어 봐. 안 싸우게 생겼나.”

“오빠도 재미로 시비 자주 거는 거 알거든요?”

“그건…….”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었는지, 은호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재밌잖아.”

현지는 황당한 숨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됐고, 저희 가고 나서 싸우지 말고 바로 들어가기나 해요. 내일 봐요.”

“알겠어. 오늘 미은이 집으로 간다고?”

“네. 막차도 곧 끊기고, 일찍 나가야 하니까요.”

“그래. 조심히 들어가.”

“야아―.”

이제 겨우 상황이 정리된 것 같았지만 아직 일이 남았다.

“이으노오?”

김인혁은 뛰쳐나가는 별님이의 힘을 못 이기고 휘청거렸다.

그사이 뛰쳐나온 별님은 은호 어깨에 팔을 두르며 소리쳤다.

“너어! 나한테는 웨 인사 안 해 주냐아?”

“누님, 컥.”

인사를 하려고 해도 목에 헤드록이 걸려서 할 수가 없었다.

은호는 살려 달라는 신호로 목을 감은 별님이의 팔을 계속 쳤다.

“웨 인사 안 해 줘어!”

하지만 별님이는.

그건 모르겠고 인사나 하라는 듯 헤드록을 풀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별님아, 은호 숨 못 쉰다.”

은호는 잠시 후 급하게 달려온 인혁이 별님의 손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을 때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괜찮냐, 은호야.”

“콜록, 예…… 누님도, 콜록,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그으러치! 그래야지!”

은호는 별님이가 또 달려올까 봐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조심은 현지 누나랑 미은이만 하면 돼. 저건 덤비는 쪽이 더 위험할걸.”

이제 좀 끝나는 건가 싶었는데, 오달님이 중얼거린 한마디에 섬뜩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야, 오달.”

“…….”

술에 절던 발음은 어디 갔는지, 서늘한 별님이의 목소리에 달님의 어깨가 흠칫 들렸다.

“널 위험하게 만드는 수가 있다.”

“뭔…….”

“목이 귀하면 아가리 곱게 여물자.”

“……네.”

달님은 입에 투명한 지퍼를 채웠다.

다른 맴버들은 ‘저럴 줄 알았다’며 애잔한 시선으로 달님이를 바라봤다.

하나둘 제각각 집으로 향하고 시끌시끌하던 골목이 조용해졌다.

저벅저벅.

집으로 가는 길.

대화 한마디 없이 가로등이 고장 난 골목에는 두 사람의 발소리만 울렸다.

은지는 어두운 골목 구석에서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에 주변을 바쁘게 두리번거렸다.

“가게 나왔을 때 왜 안 깨웠어?”

섬뜩한 기분을 못 이겼는지, 은지는 은호와 거리를 좁히며 먼저 아무 이야기나 꺼내 들었다.

은호는 힐끗 은지를 바라보다 금방 다시 정면을 보며 말했다.

“발 밟았는데도 안 깨던 애를 어떻게 깨우냐.”

“망할. 어쩐지.”

이야기를 듣고 나자 뒤늦게 발등에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너무하네. 발을 왜 밟냐?”

“내가 일부러 밟은 건 아니었다? 니가 내 갈 길 막아서면서 뻗어 있던 게 잘못이지.”

“그렇다고 사람을 밟아?”

“실수라니까. 누가 그러게 거기 뻗어 있으래?”

“졸린 걸 어쩌라고.”

“옮기기엔 니가 너무 무거운 걸 어쩌라고.”

“X자식.”

“X자식?”

은지의 도발에 은호는 장난기가 만연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응. 먼저 가서 문 잠가 버릴 거.”

“아! 미친 X아!”

은호는 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걸어서 3분이면 도착할 짧은 거리였지만 긴 다리로 휙휙 달리다 보니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2층 계단이 보였다.

은지도 골목이 무섭다는 건 잊은 지 오래인 듯 은호를 따라 바쁘게 달렸다.

“헉, X나 빠르네. 허억, 미친.”

은호가 계단을 4칸씩 휙휙 올라가 버리는 모습을 보자 은지는 황망한 얼굴로 어이없는 숨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럴 시간이 없었다.

이은호라면 진짜 문을 잠그고도 남을 놈이었으니까.

“으아아아.”

터질 것 같은 폐를 부여잡으며 2층에 다 오른 그때였다.

“X발.”

“뭐야? 왜 갑자기 욕을 하고 X랄이…….”

나한테 욕을 하는 건가 싶어서 울컥하는 마음에 쏘아붙인 그 순간.

“어?”

이은호는 멍청한 얼굴로 내가 아닌 현관 옆을 빤히 보고 있었다.

“뭐, 거기 바퀴벌레라도 있어?”

으, 그건 좀 싫은데.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더러워져서 내가 말해 놓고도 부르르 몸이 떨렸다.

다행히 바퀴벌레는 아닌지 이은호는 금방 침착해져선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대체 뭐길래…….”

호기심에 목을 빼고 이은호가 가린 문제의 ‘그것’을 봤다.

“꺄악!”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이건 본능을 따라 저절로 튀어나온 비명이었다.

“귀여워!”

“뭐?”

그때.

이은호는 무슨 미친 X을 보듯 나를 봤다.

“넌 눈이 삐었냐? 저게 귀엽다고?”

“어? 왜? 완전 귀여운데?”

“저게?”

저 인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알레르기라도 생긴 건가?

난 이은호가 가리고 있던 녀석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우쭈쭈, 애기야, 어디서 왔어?”

내 친절에 기겁한 건지 이은호는 진심으로 질겁하며 팔을 털어 댔다.

쾅!

그러고는 곧장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어서 방문이 닫힌 듯 쾅 하는 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왜 저래?”

은지는 황당한 눈으로 은호가 들어간 현관문을 바라봤다.

“어머.”

그것도 잠시, 은지는 다리 아래 느껴지는 부드러움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돌렸다.

“너, 내가 좋아?”

“냐―.”

은지의 물음에 샛노란 눈을 가진 까만 털 뭉치가 대답이라도 하듯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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