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53화 (53/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53)

주연 씨가 듣고 싶다던 .

나야 내가 참여했던 곡인 만큼 잘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가사조차 모르는 이은지한테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음, 한, 5분 정도면 될 거 같아.”

“5분으로 충분하다고?”

“어. 한 곡 들어 보고 가사는 보면서 따라가면 되니까.”

“……그래.”

이게 타고난 재능이라고 해야 할까.

난 이은지가 'Co-Sign'을 감상하는 동안, 막간을 이용해서 댓글을 통해 짧은 Q&A 시간을 가졌다.

첫 질문은…….

“은지 언니랑 은호 오빠 얼굴이 굉장히 닮았어요! 알고 계시죠?”

옆을 돌아봤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고 있는 이은지.

“음.”

“뭘 봐.”

계속 빤히 보고 있었더니 거슬렸는지 이은지가 미간을 구기면서 이쪽을 노려봤다.

얘랑 내가 닮았다니.

“인정하고 싶진 않네요. 저희가 닮았나요?”

―네!!!

솔직한 심정과 함께 관객들의 대답에 맡기려고 했는데, 원하지 않던 확신 가득한 대답만 돌아왔다.

“헐. 이 우럭, 아니, 오빠가 어딜 봐서 저랑 닮았어요?”

억울한 건 마찬가지였는지, 이은지가 홧김에 이어폰을 뽑아내며 마이크를 쥐었다.

―얼굴! 분위기요! 키요!

관객들의 대답에 이은지 표정이 구겨졌다.

지금 내 표정도 아마 비슷하려나. 서로 아니꼽긴 마찬가지니까.

“말은 바로 해야지. 내가 원조고 넌 짝퉁이잖아.”

“니가 국밥이세요? 원조를 따지게?”

―하하하.

진심으로 싸우고 있는 건데 관객들 틈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웃음 타이밍은 여전히 전혀 모르겠지만.

“보시다시피 닮은 건 서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하.”

어찌 됐건 싸우는 건 데뷔 날에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상황을 마무리하고 이은지한텐 하던 거나 마저 하라고 했다.

“들으면서 말한 거거든.”

“아, 예. 집중하셔.”

이은지는 투덜거리긴 했지만 금방 받아들였다.

댓글을 읽으며 대답을 하다 보니 5분은 빠르게 흘러갔다.

“다 했어?”

“어.”

막간을 이용해서 했던 Q&A 시간이 끝나고, 우린 짧게 다음 곡을 위해 회의 시간을 가졌다.

“기타를 쓰는 만큼 좀 발라드 느낌으로 가자.”

“파트는?”

“오빠가 하던 대로 들어가고, B까지 맡고 싸비는 같이.”

“치고 들어올 거면 신호 줘. 막무가내로 들어오지 말고.”

“어.”

회의라기엔 대충 ‘느낌 아니까’ 정도였지만 충분했다.

원래라면 스네어가 장난스럽게 튀는 익숙한 인트로에 베이스 드럼 리듬이 얹어져야 한다.

하지만 오늘 악기는 이은지가 연주하는 기타가 고작.

퉁퉁.

비어 있는 기타를 두드리며 은지가 박자를 만들었다.

‘건반…… 배워 둘걸.’

원곡보다 허전한 연주를 들으며 이은지처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없는 게 아쉬워졌다.

안무 연습을 할 때만 해도 매일 들었던 지예찬 선배의 ‘Co-Sign’.

화려한 색소폰 사운드가 등장해야 하는 타이밍에 대신 이은지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시작됐다.

‘3, 2, 1.’

나는 조용히 속으로 숫자를 세며 마이크를 들었다.

내 느낌이 경고해 아직 네가 오기 전인데

테이블 위 한 송이가 오늘따라 붉어 보여

조금 더 힘을 주고 부르던 원곡과 다르게 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맞춰 힘을 풀었다.

이은지가 요구했던 R&B 발라드 같은 느낌을 위해서였다.

오늘부터 착하게, 아니

아직은 아니니까

우린 평소처럼, 그래

평소처럼

째깍, 짤깍.

원곡에는 후렴으로 넘어가기 전에 시계가 째깍대는 소리와 총을 장전하는 듯한 사운드가 나온다.

‘그걸 기타로 어떻게 살릴까.’

연주는 은지한테 완전히 일임하기로 이야기를 했었다.

물론 그래서 이은지한테 곡 선택을 다 맡긴 거기도 했다.

‘참여를 할 수는 있지만…….’

솔직히 이은지 변덕을 맞춰 줄 자신이 없다.

우리 팀에 작곡과 편곡은 모두 이은지가 담당하고 있다.

나는 작사를 맡았고, 종종 의견을 주는 정도만 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은지의 작업 스타일은 대부분 즉흥적으로 나오는 게 결과물이 더 좋을 때가 많았다.

‘항상 왠지 모르게 각 잡고 준비하면 너무 과한 느낌이었지…….’

그런 이은지 작업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가족이니까 그래서 다 맡겼다.

츠칵, 츠칵.

마침 궁금했던 그때.

은지는 가볍게 줄을 쳐 뮤트 음으로 ‘째깍, 째깍’의 또 다른 해석을 선보였다.

원곡의 긴장감 있는 느낌과는 전혀 달랐지만, 이거 나름대로 부드러운 매력이 있었다.

무슨 소리 이건 사인

내 마지막 사인, 날 떠나지 말라는 기도

츠칵, 뜨응―.

“억.”

다시 한 번 나오는 ‘째깍, 째깍’ 부분에서 손에 힘을 많이 줬는지 예상치 못한 소리가 흘렀다.

이은지도 괴상한 소리에 당황한 듯 잠시 멈칫거렸다.

tell me baby, 시계가 시끄러워

고개를 돌리지 마 um, um

다행히 철판 까는 건 잘해서 금방 뻔뻔히 아무 일도 없던 척 노래를 이었다.

실수를 무마해 보려는 듯 웬만해선 기교를 부리지 않는 이은지가 웬일로 비브라토를 곁들였다.

‘2절은 내가 시작할 거야.’

시선이 마주쳤을 때, 은지가 고개를 까닥거리며 신호를 보냈다.

난 마음대로 하라며 마이크를 멀리 떨어뜨리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웃고 떠들고 싶은데

내 숨이 틀어막혀 내 느낌이 경고해, 그래

네가 말하려는 그거

(네가 말하려는 그거)

슬쩍 목소리를 얹자, 이은지는 마치 그러길 바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츠칵, 츠칵.

이번엔 실수 없이 뮤트 음을 잘 내더니 뿌듯한지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무슨 소리 (이건 사인)

내 마지막 사인 (날 떠나지 말라는 기도)

시계가 시끄러워 (고개를 돌리지 마)

후렴을 주고받으며 브리지로 넘어가는 그 순간.

은지가 갑자기 연주를 멈췄다.

거짓말이라고 해 줘

우리 아직 여전하잖아

큰 스피커에서 갑자기 내 목소리만 들려서 잠시 머뭇거릴 뻔했다.

‘아, 이래서…….’

아― 아아, 아. um―.

힘을 끌어 올리며 소리를 내면서 은지가 연주를 멈춘 이유를 이해했다.

조금 더 극적으로 이 부분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던 모양.

시간은 당장 치료제가 되지 못해

네가 아니면, 치료제가 되지 못해

아니나 다를까.

고음이 끝난 그 순간.

바닥이 무너져, 세상이 흔들려

은지는 첫 음을 강하게 잡으며 반주를 다시 이었다.

멎은 부분은 더 강하게 각인되고 이어지는 부분 또한 못지않게 맛깔스럽게 표현됐다.

Tell me, baby

시계가 시끄러워

고개를 돌리지 마

가장 좋은 파트를 넘겨 줬으니, 엔딩은 이은지한테 넘겼다.

이래야 나중에 따로 말이 안 나올 테니까.

Tell me baby

Don't Leave, baby

은지도 엔딩을 원하긴 했는지 제 강점을 살려 깊은 울림으로 스피커를 진동하게 했다.

* * *

쭈♥

(땅을 치며 오열하는 이모티콘)

쭈♥

(야광봉 흔드는 하트 눈 이모티콘)

쭈♥

(쓰러지면서 코피 쏟는 이모티콘)

화면 우측 아래.

갑자기 연속으로 떠오르는 이모티콘 세례에 슬기는 황당한 얼굴로 채팅창을 띄웠다.

[쭈♥ ― 오예! 도착!

― 전에 네가 말해 줬던 화보 입간판으로 세워져 있어!!!

(주먹 먹으면서 오열하는 이모티콘)]

혹시 놓친 이야기라도 있나 해서 위로 올려서 확인해 봤지만 그건 아니었다.

[나 ― 뭔 일?]

[쭈♥ ― 슬기야]

[나 ― ㅇㅇ?]

[쭈♥ ― 나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나 ― ?]

[쭈♥ ― (동영상)]

슬기는 노트북으로 영상을 받으려다 이미 한계인 노트북 용량을 떠올리며 대신 휴대폰을 꺼냈다.

주연이 왜 이러는지는 영상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코카인인지, 코사인인지.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강제로 수십 번은 들었던 그 곡이었다.

한 가지 다른 건…….

이번엔 내가 마음에 들었던 언니가 직접 연주하면서 새로운 스타일로 불러 줬다는 거?

[나 ― 좋다. 직접 찍은 거?]

[쭈♥ ― (주먹 먹으면서 오열하는 이모티콘) 엉 ㅠㅠㅠ 개좋아 ㅠㅠㅠㅠ]

[나 ― 지금도 하고 있어?]

[쭈♥ ― 지금은 다른 곡 하는 중인데 이것도 개좋아 ㅠㅠ]

[나 ― 직접 보는 거 부럽다 ㅠ... 성덕이네.]

[쭈♥ ― 성덕은 너지! 넌 2월호에 직접 기사까지 실었잖아!]

[나 ― 에이...]

― 실물은 보지도 못하고 자료 가지고 글만 썼는데 ㅠ 그게 뭐가 성덕이야 ㅠㅠ...]

[쭈♥ ― 혹시 몰]

…….

문장도 제대로 끝마치지 않은 채 주연의 깨톡이 애매하게 멈췄다.

[나 ― ?

― 쭈 뭐 해?]

기다리던 슬기는 갸웃거리며 답이 없는 주연을 불렀다.

[쭈♥ ― (사진)]

주연은 답을 하는 대신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은호와 은지가 노래하던 무대로 난입한 사진 하나를 보냈다.

주연은 사진을 보낸 이후로 또 한동안 답이 없었다.

* * *

이은지와 내가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해 부른 곡의 수는 총 5곡.

슬슬 에서 쥐어 짜낸 여파가 온다.

갈라질 것 같은 목을 적시려고 물 한 모금 마셨는데, 생수병에는 반 모금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물이 모자라는 게 티가 났는지 이은지는 무심하게 본인 생수병을 건넸다.

“자.”

“입 댄 건 안 마셔.”

“안 댔거든? 싫으면 말던가.”

안 댔으면 말이 다르지.

난 급하게 은지가 다시 가져가려는 생수병을 낚아챘다.

“넌.”

“나?”

“어.”

이미 다시 돌려줄 생각은 없지만 일단 물어보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물었다.

“나야, 고음 누구한테 몰빵해 놔서. 덕분에 나는 목 많이 안 쓰잖아.”

이야, 괜히 물었다.

어쩐지. 쎄하더라니.

까지는 내가 참여했던 곡이라고 하지만.

와 은 내가 참여한 곡이지만, 나머지 곡들은 즉석에서 부르게 된 곡임에도 유독 고음 부분에서 이은지가 빠져 내 독무대가 됐었다.

일부러 그랬다는 걸 알고 나니까 생수병으로 생긴 고마웠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야! 그걸 다 처먹냐!”

“일을 안 했다는 거잖아. 이 정도는 받아야지.”

“와, 치사.”

“치사는 니가 치사한 거고.”

속 시원하게 이은지가 준 생수를 빈 병으로 만들었다.

“조금만 물러나 주세요.”

“한 걸음만 뒤로 더 가 주세요!”

잠깐 이은지랑 투덕거리는 동안 주변이 분주했다.

관객들이 몰려 좁아진 무대와 관객석 사이를 언젠가부터 투입된 안전 요원들이 서서히 넓히고 있었다.

무대가 슬슬 오늘 본 목적을 위해 다듬어지는 중이었다.

‘목도 축였겠다.’

이은지랑 나도 슬슬 앉아 있던 자리를 정리하고 넓어진 앞으로 나왔다.

이걸 신호로 관객들 틈에 숨어 있던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하나둘씩 무대로 모여들었다.

모여든 사람은 총 8명.

“우리 이은 남매, 노래 잘하더라?”

“연습 끝나고 노래방 가자고 할 때마다 도망치더니.”

“하하하하.”

로아 누님과 에나―본명은 오별님― 누님의 대화에 다른 여섯 명이 웃었다.

검은 후드 사람들은 클라우드 댄스 팀이었다.

스포트라이트 하나 없는 조촐한 무대였지만 관객들의 시선에는 어느 때보다 기대감이 가득했다.

“잘하자.”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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