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52화 (52/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52)

“어, 있다.”

“무슨 영상인데?”

“그냥 검은 화면인데?”

버스킹이 시작되기 전.

홍대 놀이터로 향하며 은호가 댓글로 Q&A를 제안했을 때.

박 대표는 1분짜리 아무것도 없는 새까만 영상 하나를 오튜브 채널에 업로드했다.

“방금 업로드된 영상에 여러분들께서 저희에게 궁금한 점이나 불렀으면 하는 노래 등등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댓글로 남겨 주세요.”

오튜브를 모르는 관객들은 무슨 채널인가 싶어서 두리번거렸고.

오튜브를 보고 온 관객들은 댓글을 남길 생각인지 들뜬 얼굴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럼 댓글을 달아 주시는 그동안 다음 곡은…….”

은호가 마이크를 쥐고 이야기하는 동안, 은지의 입꼬리가 보기 좋게 길어졌다.

* * *

며칠 전.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 2층, 기숙사.

“이은호!”

쾅!

은지가 은호의 방문을 열어젖히자, 은호는 놀란 나머지 들고 있던 볼펜을 떨어뜨렸다.

“아, 깜짝아. 문짝 안 부서졌냐?”

“안 부서졌거든!”

은호는 서랍장에 등을 기댄 채 한창 가사를 쓰던 중인 듯 노트를 들고 있었다.

“그래서, 왜.”

“뭐가?”

“……내 방에 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아, 참.”

은호가 한숨을 쉬며 묻자, 은지는 뒤늦게 신경 쓰였는지 눈치 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쇼케이스 하는 날, 버스킹하고 후반에 듀오 공개하잖아.”

“어.”

“그때 ‘뱅뱅’ 부르자.”

“뱅뱅? 몇 번째에?”

“두 번째?”

은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리아나 그런데랑 케시 케이랑 부른 그 뱅뱅 말하는 거 아니지?”

“맞는데? 처음엔 오빠가 소개 겸 ‘Last Day’ 하자고 했잖아.”

“……순서가 문제가 아니라. 야, 너 뱅뱅 그거 가사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제안하냐?”

“아니? 뭔데?”

은지가 말똥거리는 눈을 깜빡이자 은호의 한숨이 짙어졌다.

예전이었다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가사.

애초에 모를 땐 잘만 부르던 노래였다.

‘지키.’

‘Co-Sign’의 의미를 알려 줬던 해외 아티스트.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키와 같이 한국 여행 겸 노래방에 함께 갔을 때.

지키는 내가 <뱅뱅> 노래를 끝내고 자리에 앉자 한참을 히죽거리며 웃었다.

뒤늦게 제목과 가사의 의미를 들었을 땐 낯이 뜨거워서 미치는 줄 알았다.

“싫어. 그거 말고 다른 거 해.”

“아, 왜!”

“모르겠으면 가사 보고 와.”

은호가 회귀 전 지키와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젓자, 은지가 반발했다.

은지는 투덜거리며 가사를 확인하더니 흠칫했다.

상당히 높은 음역은 둘째칠 수 있을 정도로 섹슈얼한 가사.

“가, 가사가 문제면 니가 바꾸면 되잖아.”

쉽게 포기하기엔 아쉬운지 은지는 수정하는 방향으로 다시 한 번 을 밀었다.

“호칭 자꾸 팔아먹지 마라, 호박아. 그리고 난, 니가 숨 쉬듯이 곡 뽑는 것처럼 가사가 술술 나오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그리고 뒤에 데뷔 무대 남기고 앞부터 너무 기운 빼 버리면 감당할 수는 있냐?”

무대의 균형을 신경 쓴 이야기였다.

앞에서 너무 강하게 띄워 버리면 뒤에서 힘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

“앞부터 너무 기운을 빼 버리면 안 돼. 뒤가 시시해지잖아.”

“와, 그래서 이은호는 이 노래를 못 한다는 거지?”

안 하려고 했다.

파워풀한 가창력이 뒷받침되어야만 ‘좋게’ 들리는 데다 여러모로 부담이 큰 곡이기도 하니까.

“난 이은호면 원키로 막 빡! 하고 시원하게 캬하! 하며 뚫어 줄 줄 알았는데.”

“뭔 말이야.”

“아니, 뭐. ‘그’ 이은호 씨가 못 하신다니까―.”

은지는 뒤틀린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비죽여 댔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 ‘이은호’도 ‘못’ 한다는데.”

은지가 ‘못 한다’는 말을 강조할 때마다 내 미간이 자동으로 움찔거렸다.

“그럼 뱅뱅도 ‘못’ 부르는 우리 ‘이은호’를 위해서 ‘아―주’ 건전하고 ‘아―주’ 느린 곡으로다가 다시 골라 봐야겠네.”

“말하는 꼬라지 봐라.”

“왜? 팩트잖아.”

은지는 보기 좋게 눈을 휘더니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해, X발.”

싸구려 도발에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

이건 그 결과였다.

“다음 곡은 아리아나 그런데, 케시 케이, 미키 니나즈가 부른 입니다.”

* * *

‘오호라.’

첫 곡이 끝난 후, 처음의 무심하던 기자의 눈빛이 달라졌다.

연예부에서 굴러오며 봐 온 신인들.

스쳐 가며 사라진 녀석들 틈에서 이 남매는 상당히 가능성이 보이는 녀석들이었다.

무대 경험이 적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즐긴다는 분위기까지.

역시 박창석 대표라고 해야 할까.

‘꽤 괜찮네?’

기자가 를 들으며 은지를 본 첫인상 점수는 높았다.

기대는 자연스레 은호에게도 연결됐다.

하지만 너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일까.

‘실력은 좋은데 여자애랑 놓고 보면 그냥 평범하네.’

실력이 좋다는 건 척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다만 매력이랄까.

동생과 타고나야 하는 영역에서의 차이가 안타까웠다.

닮은 얼굴만큼 목소리도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비주얼 하나는 훌륭한데 말이지.’

기자는 아쉬운 혀를 차며 셔터를 터뜨렸다.

기자들은 오튜브 홍보에는 관심이 없었다.

질문이야 따로 연락해서 답을 받으면 되니까.

“다음 곡은 아리아나 그런데, 케시 케이, 미키 니나즈가 부른 입니다!”

익숙한 의 짧은 인트로에 기자의 고개가 들렸다.

에 참여한 케시 케이는 폭발적인 성량과 3옥타브 중반의 고음을 찍으면서도 흔들림 없는 라이브 실력을 뽐내는 유명 팝 가수다.

‘두 키 정도는 내리겠지.’

여자도 하기 힘든데 하물며 남자가…….

기자는 메모장을 꺼내 기사에 써 넣을 문장을 끼적였다.

[이은지 깊은 매력이 있음. 이은호 비교적 아쉬운, 발전 가능성은 있어 보이는]

그 순간.

조 기자의 펜 끝이 ‘ㄴ’ 끝에 멈춰 섰다.

She got a …… hourglass

깨끗하고 시원한 고음이 기자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쳤다.

but I can …… all the time

원키였다.

그것도 쥐어 짜낸 고음이 아니라 아직 더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하듯 여유 넘치는.

기자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은호를 바라봤다.

고음이 있는 노래가 무조건 좋은 노래는 아니다.

고음을 잘한다고 해서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좋은 노래를 만드는 중요한 기술 중 하나이긴 했다.

답답했던 속을 뻥 뚫어 주는 해소하는 역할.

서서히 고조시키고 절정에 터지는 시원함.

팝 시장에서의 고음은 중요하다.

취향 따라 선호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그만큼 고음이 터지는 클라이맥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까.

케시 케이의 파트는 이은호가.

아리아나 그런데의 파트는 동생인 이은지가 맡은 듯.

이은지는 속삭이듯 유혹적인 음색으로 이은호에게 바통을 넘겨받았다.

You’ve been …… swing your bat

다시 노래를 이어받은 이은호가 원곡의 케시 케이만큼이나 화려한 기교를 자랑했다.

See …… be bad to you

You need a …… blow your mind, yeah―――

떨어지는 음을 따라 자연스럽게 섞여 든 바이브레이션과 차지게 씹히는 발음.

두 가지가 적절하게 섞여 드니 목소리가 아니라 악기라도 다루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Bang bang!

Open the door!

두 사람이 함께하는 훅은 말 따라, 갈고리라도 걸린 것처럼 쉽게 빠져나갈 수 없었다.

반복되는 훅이 두 차례 돌아왔을 때, 관객들과 어느새 다 같이 “뱅뱅”을 소리치며 합을 맞췄다.

이쯤 되니 기자는 슬슬 기대감이 차올랐다.

‘미키 니나즈의 랩 파트는 누가 부를까.’

호기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은호가 두 번째 훅에서 전보다 더 화려한 기교를 어필하고 있던 그때였다.

우리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미키 니나즈의 랩 파트의 시작은 어색할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이은지의 목소리가 잘 녹아들었다.

날카로운 눈매를 내리깔며 타고난 깊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이은지의 모습은 몽마인 서큐버스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저런 형상이지 않을까.

기자는 순간 스쳐 간 위험한 상상을 흩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동생 쪽이 미키 니나즈의 랩 파트를 하나 보네.’

기자가 확정을 지은 순간.

It's ‘E.G’ full throttle, It’s oh, oh

의외로 시작을 맡은 건 은호였다.

첫 시작은 원곡과 다르지 않았다.

원래 ‘Micki’가 나와야 할 부분에 E-UNG를 줄인 E.G가 나오기 전까진.

King E.G dominant, prominent

We're 은지 and 은호

We'll make it ourselves

원곡의 야릇한 가사 대신 이은호는 새로운 가사로 차분한 매력이 있는 랩을 선보였다.

이후에는 브리지와 익숙한 훅이 다시 한 번 돌아오고, 노래는 경쾌한 브라스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와아아아!!!

뱅뱅이 끝난 뒤 반응은 뜨거웠다.

* * *

첫 랩인 만큼 노래가 끝난 뒤 몰려든 민망한 기분은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었다.

“이야, 이은호 랩 잘하네!”

뜨거운 귀를 식히려고 찬 손을 귓가에 대고 있을 때, 이은지가 약 오르게 소리쳤다.

“여러분! 이거 랩 가사 우리 이은호가 썼어요!”

“이은지, 제발 닥, 조용해…….”

닥치고 있으라고 말하고 싶은데 차마 마이크에 욕을 담을 수는 없어서 순화했다.

작사를 배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랩을 배워 본 적도 없다.

나름 공부랍시고 열심히 해 본 거긴 하지만…….

“왜! 잘했는데.”

창피하다.

민망하다.

쪽팔리다.

“처음 랩 해 본 거고 써 본 거래요. 하하. 어땠어요, 여러분?”

이은지는 말을 들을 생각은 추호도 없는지, 여전히 시끌시끌한 관객들에게 물었다.

말만 들으면 ‘우리 오빠 잘했죠?’ 하는 질문 같지만 내 눈엔 히죽거리는 이은지 표정만 봐도 지금 놀리고 있다는 게 훤히 보였다.

이런 와중에도 몰린 인파 틈에서 큰 목소리들이 웅성거림을 뚫고 전해졌다.

―좋아요!

쓰면서도 ‘이게 과연 맞을까’ 불안한 마음이 컸는데, 이번에 부르면서 급하게 끼워 맞추려고 발음을 절어 버린 부분도 적잖았다.

실수를 티 안 나게 잘 넘기긴 했지만 실수인 걸 너무 잘 아는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어서 더 부끄러웠다.

―잘했어요! 진짜로! 멋있었어요!

몇몇 목청 큰 관객분들의 확신 어린 대답이 들렸다.

아마 오늘 이분들의 대답을 못 들었다면 난 랩 쪽으로는 평생 눈길도 안 주고 살지 않았을까.

난 겨우 민망함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다시 고개를 숙이자 관객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왠지 가슴이 뭉클거리는 기분이었다.

“It's E―G! 하하하!”

옆에서 이은지가 내가 했던 랩 파트 부분을 오버하면서 따라 하기 전까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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