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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51화 (51/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51)

E-UNG

미리 초대를 받고 깜짝 쇼케이스 장소에 먼저 도착한 기자는 형편없는 무대를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길거리에서 하는 거야?”

이-응?

주변을 훑어보던 그는 입간판 속 신인 그룹 이름을 읽어 내렸다.

그뿐이었다.

TaKa를 나온 박창석 팀장이 세운 신생 기획사, NRY 엔터테인먼트.

박창석이 공들여 낸 첫 유닛이라는 소식만 아니었다면 홍대까지 직접 오지도 않았다.

“저기! 서, 선물이에요!”

기자는 소란스러운 옆을 돌아봤다.

작은 여자가 프리지아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받는 남자의 얼굴은 애매하게 입간판에 가려져 기자의 시선에선 남자의 뒷머리만 겨우 보였다.

“시작을 응원한다는 의미에서 프리지아예요!”

처음엔 공개 고백이라도 하는 건가 싶었는데.

이어진 ‘시작’이라는 단어가 귀에 걸렸다.

남자는 꽃을 건넨 작은 여자에게 친절하게 웃으며 무슨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여자는 남자의 이야기에 입을 가렸다가, 붉어졌다가 하는 등 연예인을 처음 본 것처럼 흥분한 모습이었다.

그때.

눈앞으로 검은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진한 비누 향이 페로몬처럼 주변으로 강렬하게 퍼져 나갔다.

“이은호, 안 오고 뭐 해?”

이은호?

오늘 기사에 실을 E-UNG 멤버 중 하나의 이름.

향기에 이끌려 고개를 돌린 순간, 조 기자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또 다른 오늘의 주인공인 이은지라는 건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배우나 모델 쪽으로 가도 충분히 잘될 것 같은 큰 키와 비주얼.

‘남매라고 했던가.’

남매뮤지션의 후발 주자인 애들치고 오래 버티는 놈들은 몇 없다 보니 그다지 큰 기대는 없다.

정확히는, 없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희는 E-! U.N.G 이응입니다!”

박창석이 만든 그룹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막 세워진 신생 기획사에서 키워 봐야 얼마나 크겠냐’라는 가벼운 시선도 몫을 더했다.

키릭.

흘러나오는 피아노 반주가 멎고 어쿠스틱 기타의 코드를 바꾸는 잡음 소리.

이은지가 먼저 차분히 눈을 내리깔며 연주와 함께 노래를 시작했다.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며 외치던 Last Day

소개 이후 첫 곡은 ‘그는 1+1=1’ 드라마 방영이 종료되면서 다시 한 번 주목받은 OST 였다.

‘소개를 노래로 대신 하는 건가?’

사람을 끌어모으기엔 나쁘지 않은 선곡이었다.

낯선 ‘E-UNG’이라는 그룹을 소개하기에도 충분했다.

“와, 라스트 데이 원곡이랑 목소리 완전 똑같아.”

“그 가수니까 같을 수밖에요.”

“와, 진짜요?”

기자는 무심하게 모인 관객들에게 대답했다.

“이 사람들 ‘그는 1+1=1’ 드라마 OST 부른 가수래.”

이야기는 개인을 타고 여럿에게 전달됐다.

찰칵.

기자는 노래에 집중한 신인 남매 그룹을 카메라에 담았다.

* * *

은호는 마이크를 만지작거리며 차례를 기다렸다.

“여자 쪽은 목소리가 귀에 때려 박히는 수준이지 않아?”

“그러게.”

길거리 공연인지라 관객들의 대화가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거리가 가까웠다.

옅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도 여리여리한 높고 귀여운 목소리 가지고 싶다.」

세상을 떠난 뒤 받았던 은지의 일기장 내용 중 일부였다.

이은지의 타고난 목소리가 좋은 건 나도 인정한다.

그런데 그 장점을, 이은지는 오랫동안 자신의 단점이라 생각해 왔다.

“남자는 목소리가 되게 평범하다.”

“무난하네. 그냥 노래만 잘한다는 그런 느낌?”

“어어, 맞아. 딱 그런 느낌.”

스피커 소리에 묻힐 법도 하건만 꼭 이런 이야기는 잘 들린다.

‘관객과 거리가 가깝다.’

그 말은 곧 소통이 잘되긴 하지만, 좋지 못한 이야기 역시 잘 들린다는 말이었다.

이은지랑 비교하면 난 특별한 목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

무난하기에 더 어떤 것이든지 시도하기 편하다.

이은지의 파트가 끝나고 나는 내 파트를 부르기 위해 마이크를 들었다.

아프게 하지 말아

위한다면 움직이지 말아

뭐든 좋아하고 잘하는 걸 하면 된다.

답은 없으니까.

그날을 기억해

우리가 처음 사랑을 속삭인 Last Day

뒤에서 수군거리던 목소리들이 조용해졌다.

내가 집중하면서 귀를 닫은 건지, 듣고 보니 나쁘지 않아서 조용해진 건지는 모르겠다.

나는 잔잔하게 감정을 절제하며 노래를 이어 갔다.

관객들 중에는 눈을 감고 감상에 빠진 사람도, 히트곡인 만큼 익숙한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미 우린, 서로의 섬에 갇혀 있어

숨 한 번 뱉기가 힘들어

조금 더 격렬해진 2절에서 이은지와 나는 서로 파트를 바꿨다.

이은지가 먼저 내 파트를 치고 들어오면서 즉석으로 변경하게 됐다.

이런 변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상대가 즉석으로 일 벌이기 좋아하는 이은지인 만큼 왠지 이럴 것 같아서 연습을 했는데…….

잘한 일이었다.

날 아프게 하지 말아

위한다면 움직이지 말아

나는 아무리 연습해도 지금 이은지처럼 우퍼를 집어삼키는 듯한, 타고난 깊은 울림은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비교하는 걸 멈춘 난 대신 내 장점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됐다.

내가 자신 있는 거.

부수려는 원망하는 숨소리에 숨이 막혀 와

부숴 버린 Last란 싫은 한마디

렐리를 이어 가자, 노래는 어느새 클라이맥스에 다다랐다.

나는 지금껏 억누르며 묶어 뒀던 감정을 풀어냈다.

내 심장은 가난해서 너 하나밖에 담을 수 없어

이게 유난이라는 건 알아

오늘은 컨디션이 좋다.

원하는 음까지 조금의 불안함도 없이 깔끔하게 터져 나왔다.

절제하며 달린 만큼 터뜨린 이 감정이 관객들에게 닿아 뒤흔들도록 몰입했다.

이은지도 예전처럼 고음에서 물러서지 않고 편안하게 화음을 맞추며 나를 뒤따랐다.

조난된 우린 서로에게 재난밖에 되지 않아

고음이 멎고 폭발한 감정의 잔여물들이 주변을 고요하게 만들었다.

슬쩍 옆을 돌아보자 노래에 몰입한 듯 눈을 감고 있는 은지의 눈꺼풀이 떨렸다.

알고 있잖아 Last Day

잊지 말아 Last Day

속삭이듯 끝에 다다른 가사를 입에 올리며 주변을 돌아봤다.

처음에 몰려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시선은 무관심에 가까웠다.

단순히 뭘 하는지 궁금한 호기심 정도.

하지만 어느새 노래를 듣고, 이들은 이제 우리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며 외치던 Last Day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며 외치던 그 Last Day

그 Last Day

은지의 손이 기타를 떠나자 울림통을 따라 퍼져 나간 소리를 끝으로 노래가 멎었다.

―와아아!

박수가 쏟아졌다.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은지도 주섬주섬 담요를 챙겨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소개 올리겠습니다.”

는 우리를 소개하기 위한 곡이었다.

백 마디를 나불거리는 것보다 노래 한 번 하는 게 편하기도 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런 마음으로 준비한 첫 곡이었다.

“저는 를 부른 남매 듀오 E-U.N.G의 첫째, 이은호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남매 듀오 E-U.N.G에서 미모를 담당 중인 이은지라고 합니다.”

……?

순간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이은지를 돌아보자 이은지는 곁눈질을 보내며 뻔뻔히 웃고 있다.

난 무의식적으로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미모’라는 단어가 바뀐 건가?”

“뭐요.”

“아니, 나한테 ‘이모’나 ‘탈모’를 담당 중인 동생은 있는데…… ‘미모’는 처음 들었거든.”

이은지는 정색하며 살벌한 도끼눈을 한 채 이쪽을 돌아봤다.

그래 봤자 이은지지.

‘어쩔.’

은지가 가장 싫어하는, 눈썹을 들썩이는 약 오르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답 대신 흐뭇할 정도로, 은지의 미간과 눈썹이 살벌하게 뒤틀렸다.

―하하하하.

은지와 나 사이에 흐르는 험악한 기류와는 정반대로 관객들 틈에선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탈모는 너님이시겠죠.’

‘응, 아니야. 호박아, 화장실 하수구에 틀어막힌 니 머리로 가발 하나 제작할 수 있겠던데.’

‘호박은 X랄. 호박엿이나 까 드세요, 우럭 대가리 새끼야.’

‘응, 너나 매운탕 끓여 드세요, 호박아.’

차마 듣는 귀가 많은 탓에 대놓고 욕을 할 수는 없는지, 대신 은지는 눈과 입이 매우 바빴다.

물론 나도 거기에 반박하느라 바쁜 건 마찬가지였다.

* * *

―하하하하.

눈빛과 입 모양으로만 오간 살벌한 대화는 다행히 관객들의 시선에선 잠깐의 만담처럼 보인 덕분에 큰 문제는 없었다.

“저놈들이 또…….”

하지만 둘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현우와 박창석 대표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흘렸다.

“대표님, 제가 다녀올까요?”

“그래, 현우야. 물 주면서 이렇게 전해.”

박 대표가 현우에게 속닥거리자 현우는 잠시 굳었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로 뛰어들었다.

“저기, 얘들아.”

현우가 다가오자 은호와 은지는 당황한 눈으로 현우를 바라봤다.

“대표님이 ‘회사 돌아가서 둘이 꼭 껴안고 ‘싸우지 않겠습니다’ 합창하기 싫으면 여기서 싸우지 마라.’……라고 전하래.”

은호와 은지는 경악하며 서로를 바라봤다.

다음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박 대표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박 대표는 차분하게 웃고 있었다.

입꼬리 끝만.

그 얼굴이 섬뜩할 정도로 무서웠다.

덕분에 둘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진행으로 관심을 돌렸다.

“다음 곡은 아, 참…….”

은지는 고개를 까딱이며 은호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아.”

은호는 신호를 알아들었는지 무대에 오르기 전에 박 대표가 건네준 오튜브 홍보용 패널을 들었다.

“다음 곡을 시작하기 전에! 혹시 이곳에 오튜브를 보고 오신 분!”

“손 한번 들어 주시겠어요?”

은지가 진행하고 은호가 묻자, 몰려 있는 관객들의 틈에서 하나둘씩 손들이 솟아올랐다.

생각보다 많은 수에 좀 놀랐다.

솔직히 오튜브 이야기를 꺼낸 건, 이은지가 채널을 운영하면서 얻은 홍보 효과가 좋아서였다.

박 대표에게 구독자 만 명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10,000’이라는 ‘숫자’에 단순하게 감탄했을 뿐이었다.

‘만 명.’

친구와 함께, 커플끼리 또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놀러 올 겸 찾아온 가족도 있었다.

손을 든 그 ‘만 명’ 중 하나인 사람들을 직접 본 그 순간.

은호에게 ‘만 명’이라는 수는 그저 단순한 숫자가 아닌, 지금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로 의미가 달라졌다.

“부족한 저희를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오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은호는 앞뒤 좌우를 돌아보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은지도 뒤따라 한 마음으로 인사했다.

마음 같아선 가까이 다가가서 한 분씩 다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오신 발걸음 후회 없으시도록 오늘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마음을 다잡았다.

본업을 잘해야, 팬 서비스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게 번쩍번쩍하게 돈을 때려 부은 무대든.

길거리 공연이든.

뭐든.

‘즐겁게 해야지.’

그게 우리가 잘하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니까.

“다음 곡을 하기 전에, 지금 오튜브에서 여기 채널로 가 보시면 영상 하나가 업로드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말하며 은호는 패널을 높이 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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