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50)
탈의실 안에는 화려한 은지의 의상과 달리 검은 줄로 포인트를 준 흰 와이셔츠와 검은 청바지만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손끝까지 화려했던 은지와 반대로 내 의상은 굉장히 단출한 느낌이 컸다.
아무래도 은지가 화려한 만큼 이쪽을 단순하게 죽인 것 같았다.
‘흠.’
처음엔 의아했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화려한 걸 선호하는 타입도 아니라 이편이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다.
* * *
셀라스 숍에서 준비를 끝마친 뒤, 우린 현우 형님과 같이 홍대로 향했다.
곧 있을 쇼케이스를 위해서였다.
“대표님!”
“오, 이렇게 꾸민 모습 보니 실감이 나는구나. 현우도 아침부터 고생 많았다.”
미리 홍대에 있던 박 대표는 현우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현우는 희미하게 웃으며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오튜브 말이야.”
대표님과 함께 오늘 쇼케이스가 열릴 장소로 향하던 그때, 오랜만에 나온 오튜브 소식이었다.
“너희랑 현우가 종종 찍었던 일상 영상들 그동안 업로드해 왔던 건 알고 있지?”
“오, 그거 아직 하고 있었구나.”
은지가 감탄하며 혼잣말을 흘리자 대표님은 한숨을 흘렸다.
“댓글이나 사람들 반응이라던가, 안 궁금해?”
“좀 바빴어야죠.”
“하긴.”
은지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하자 박 대표도 이견은 없다는 듯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지가 오튜브 영상을 볼 땐 주로 동물 영상이나 노래를 들을 때다.
‘그 외 시간에는 연습 또는 숙면, 작곡 또는 편곡.’
은지는 취미도, 일도, 상상도 모든 게 음악.
즉,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박 대표의 시선에선 데뷔 전부터 과할 만큼 숨 막히게 바쁜 일정이었다.
은호 또한 숨 쉬듯 곡을 찍어 대는 은지 탓에 쓸 가사가 산더미였으니…….
박 대표는 ‘이놈들이 관심을 가질 리 없다’라고 판단한 듯 체념한 숨을 뱉어 냈다.
“본론만 말하자면, 오늘 오튜브 채널 구독자분들도 많이 오실 거다.”
“구독분들이 몇 분이나 되는데요?”
“몇천 명 돼요?”
은호와 은지가 무심하게 묻자, 이 질문만을 기다렸는지 박 대표의 입꼬리가 만족스럽게 길어졌다.
“만 명 넘었지.”
만 명이 넘으면 알리겠다던 박 대표 계획의 조건은 며칠 전에 달성됐다.
‘조금 예상치 못한 성적이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 하루 수십 명 정도씩 증가하던 그때.
1월 1일에 촬영해서 올렸던 그 영상 하나가 뜬금없이 ‘떡국’ 알고리즘에 걸려들었고.
그날 이후 하루 구독자가 수백 명씩 몰린다 싶더니 금세 만 명을 넘겼다.
말 그대로 ‘떡상’을 하게 됐다.
“대표님.”
“응?”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공연 시작하기 전에 지금 올라와 있는 마지막 영상에 저희에 대해 궁금한 것들 댓글 달아 달라고 해도 돼요?”
“왜?”
“왜?”
은지와 대표님이 순수하게 궁금한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어떻게 보면 이건 팬 미팅이기도 하니까. 댓글 읽기 하면서 Q&A 형식으로도 진행해 보면 좋을 것 같거든.”
“오…….”
제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박 대표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너무 좋다! 은호야! 이야, 이런 생각은 어떻게 했대?”
대표님의 질문엔 말을 아꼈다.
사실 이건 회귀 전에 이은지가 공연 중간에 자주 하던 일이기도 했다.
“안 그래도 너희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천 명 아래일 때도 댓글 창은 활발했거든.”
팬분들이라는 말에 은지의 눈이 반짝였다.
이은지의 팬 사랑은 이전에도 유명했다.
이런 것마저도 여전한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괜찮죠?”
“괜찮다마다! 안 그래도 오튜브 홍보 겸 이것도 챙겨 왔는데 잘됐네.”
다시 한 번 확인차 묻자, 대표님은 웃으며 패널 하나를 건넸다.
“자, 이제 어서 가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
먼저 앞서 나가던 대표님의 뒤를 우리는 어미 닭을 따르는 병아리처럼 졸졸 쫓아갔다.
꼬리의 끝에는 현우 형님이 뒤따랐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투웨니스 라이브 바.
……가 근처에 있는 홍대 놀이터였다.
단순하게 생긴 의자와 스피커, 그 위에 놓인 어쿠스틱 기타 하나.
우리가 오늘 쇼케이스를 열 무대는 바로 여기였다.
「 E-UNG
Busking!
2015. 2. 8
일요일 5:00PM 」
단출한 무대 앞에 세워진 입간판은 곧 있을 공연을 알렸다.
그리고 옆을 돌아봤을 때였다.
반대쪽 옆에 놓인 입간판에는 CK 뮤직 라이프 매거진 화보 촬영 때 사진이 커다랗게 프린팅되어 있었다.
‘저걸 여기서 사용하면…….’
은지가 넘어질 뻔했을 때 촬영된 민망한 자세의 그 사진이었다.
은지도 자리로 향하다가 뒤늦게 사진을 발견한 듯 입간판 앞에서 잠시 멈칫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일’이라는 생각으로 정리했는지 가뿐히 무시하며 자리를 향해 걸음을 마저 옮겼다.
일에 있어선 확실히 이은지는 멋있는 녀석이긴 했다.
‘그나저나 기분이 묘하네.’
오늘 무대를 몇 걸음 멀리서 빤히 지켜보고 있으니 옛 생각이 떠오른다.
경험이 없었다면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을까.
전과 같은 화려한 데뷔 무대는 바라지도 않았다.
애초에 이미 한 번 망쳐 본 입장에서―아무리 회귀 전이라고 하더라도― 난 말을 꺼낼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은지는 달랐다.
나랑은 시작부터 끝까지 전혀 반대로, 정상에만 섰던 이은지의 화려한 데뷔 무대.
그걸 알기에 마음이 복잡했다.
은지는 자리에 놓인 어쿠스틱 기타를 조율하고 있었다.
기억 속 이은지의 쇼케이스와 다르게 화려한 조명도, 스포트라이트도, 배경이 되어 줄 거대한 스크린도 없는 무대였다.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쇼케이스 전의 평온한 이은지를 지켜보고 있으려니 낯선 기분이 더더욱 커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때와 비교해서 관객 수는 밀리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구독자 만 명이 빈말은 아닌가 보네.’
주변을 돌아보자 대표님의 말대로 아직 시간이 남았음에도 벌써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저기!”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던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순간.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노란 꽃들이 시선에 가득 메워졌다.
코끝으로는 훅 진한 꽃향기가 밀려왔다.
“서, 선물이에요!”
얼떨떨한 기분으로 한 여성분이 건넨 샛노란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시작을 응원한다는 의미에서, 프리지아예요!”
꽃다발.
바스락거리는 투명한 비닐과 얇은 종이 질감이 나쁘지 않았다.
하얀 안개꽃 중심에 여러 송이의 노란 꽃이 여성분이 말한 프리지아 꽃인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든 그때.
뒤늦게 확인한 그녀의 얼굴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아, 생각났다.’
투웨니스 라이브 바 공연 전에 본…….
“성함이, 주연 씨?”
“미친.”
하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지 그녀는 곧 튀어나올 것 같은 큰 눈을 하며 놀랐다.
놀라면 ‘미친’이라는 말이 버릇처럼 나오는 듯 그녀는 이미 새어 나온 감탄사에 뒤늦게나마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전에도 옷 선물 주셨죠?”
“네. 맞아요.”
“감사합니다. 그땐 바로 공연이 있어서 인사를 못 전드렸는데…….”
“아뇨! 무대에서 말씀해 주신 거 들었어요!”
주연은 입가를 가렸던 손을 이번엔 바쁘게 흔들며 소리쳤다.
“보고 계셨다니 다행이네요. 오늘도 친구분하고 같이 오셨어요?”
“아, 슬기는 일 때문에……. 오고 싶어 했는데 CK…….”
CK?
“이은호, 안 오고 뭐 해?”
익숙한 기업명에 호기심이 생길 무렵, 자리에 앉아 있던 은지가 인상을 구기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 꽃다발은 뭐, 어?”
은지의 시선이 노란 꽃다발에 머물다 주연의 얼굴로 옮겨졌다.
“전에 봤던 언니!”
“주연 씨셔.”
은지가 실수하기 전에 짧게 주연 씨의 이름을 먼저 알렸다.
“오, 맞아! 이주연 언니였죠! 언니, 오늘도 오빠 보러 왔어요?”
“아뇨. 오늘은 오튜브 보고 여기서 쇼케이스 하신다고 그래서…….”
“으음. 그래서 노래하는 오빠 보러 오셨다는 거죠?”
은지는 장난 섞인 투정을 추가하며 물었다.
“아, 하하.”
주연은 은지가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지 눈치챈 듯 옅은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에이, 당연히 E-UNG이 함께 데뷔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 온 거죠.”
“와! 진짜요?”
“네!”
이번엔 주연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은지는 오랜만에 진심으로 활짝 핀 미소를 띠었다.
“기분이다! 언니 듣고 싶은 노래 있어요?”
“듣고 싶은 노래요?”
“네! 오빠랑 저랑 데뷔곡 전에 한 시간 정도 공연할 거거든요.”
“그럼 곡 다 정해 오신 거 아닌가요?”
이번 버스킹 곡과 관련해선 대부분 이은지 의견에 맞췄다.
나로선 연주자, 편곡자 모두 이은지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기도 했다.
불만은 없었다.
이런 쪽으로는 감이 좋은 녀석이니까.
“헤헤, 몇 곡은 정했는데 몇 곡은 즉석에서 선정해 연주하려고 안 정했어요.”
즈, 즉석?
당황하며 이은지를 돌아보자 이은지는 일부러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원하는 거 있어요?”
“아, 저, 그럼…….”
주연은 은지가 빤히 보며 묻자, 곁눈질로 은호를 살피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Co-Sign. 가능할까요?”
“지예찬 선배님 곡이요?”
“네. 맞아요.”
흐음.
은지는 잠시 눈을 감은 채 노래를 떠올려 보고 있는지 익숙한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이, 오빠도 콜이지?”
분명 이은호라고 부르려던 것 같은데.
일단 다행히 주연 씨가 고른 ‘Co-Sign’은 첫 피처링으로 참여했던 만큼 잊을 수 없는 노래라 문제는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OK 신호로 알아들었는지 은지가 웃으며 주연을 돌아봤다.
“좋아요. Co-Sign. 그럼 이따 언니를 위해서 한 곡 할게요.”
“와! 네!”
“저희는 이제 준비해야 해서. 미안해요, 언니.”
“아, 아뇨!”
주연은 진심으로 흥분되다 못해 심장이 떨리는지 셔츠가 구겨질 정도로 가슴을 강하게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기, 기대할게요!”
* * *
응원을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준비를 마치고 고개를 들었을 때, 주변을 둘러보다 보니 새삼스럽지만 ‘많은 눈이 여기를 보고 있구나’ 실감이 났다.
버스킹 외에도 쇼케이스라는 본 목적이 있는 공연이니까.
둘러싼 무대에는 관객으로 보이는 사람들 외에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좋은 자리 잡기에 혈안이 된, 척 봐도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현우 형님과 대표님은 미리 준비해 둔 음료수를 지인분들께 건네며 인사를 했다.
마이크 연결을 확인한 이은지랑 나는 가볍게 목을 풀며 외쳤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희는 E-! U.N.G 이응입니다!”
이은지와 지난 며칠간 연습했던 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