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49)
해가 겨우 끄트머리에 보일락 말락 떠 있는 새벽.
갈색 알루미늄 문 앞에서 현우는 가만히 손목에 걸린 전자시계만 바라보고 있다.
[6:30AM]
정확히 숫자 2가 3으로 바뀐 그때, 현우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이만하면 준비는 끝났겠거니, 예의상 기다린 시간이었다.
‘똑똑’을 유도하고 두드렸건만, 얇은 알루미늄 문은 시끄러운 쇳소리를 내며 동네에 울렸다.
“네, 나가요!”
시끄러운 소리 때문일까.
내부에서는 ‘아악’ 같은 짧은 비명 이후 문이 열렸다.
“형님, 좋은 새벽입니다.”
매일 아침 그래 왔듯 오늘도 문을 연 사람은 은호였다.
“항상 은호 씨는 잘 깨어 있네요.”
“저야 몸에 익었으니까요.”
“부지런하시네요.”
“형님만 할까요.”
“하하.”
은호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반복되는 시간이라 은호에게 아침 기상은 이미 몸에 밴 일상이었다.
오히려 은호에게 6시 기상은 수면 시간이 후한 편이었다.
회귀 전을 생각하면, 일에 미쳐 지내던 그 당시에는 바쁠 땐 며칠 동안 못 잤던 기억이 수두룩했으니까.
‘은지 씨는 매일 발전하고 있긴 하지만…….’
현우는 은호 너머 뒤를 돌아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몽롱하게 풀린 눈과 패대기쳐진 미역처럼 퍼져 있는 은지.
특별한 날이라고 해서 일관성 있는 은지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현우는 소박하게도 은지가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준비라도 마치고 퍼져 있는 것에 내심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사이 은호는 먼저 집 밖으로 나섰다.
“자, 늦기 전에 얼른 가죠.”
은지는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기 힘든지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집을 나왔다.
“한 시간…… 흐아―, 이직 추바하는데흐엄?”
1층으로 내려가면서 은지는 현우에게 하품인지 질문인지 모를 이야기를 건넸다.
‘뭐라는 거야?’
남매인 은호조차 알아들을 수 없던 말이었다.
그러나 현우는 어떻게 알아들은 건지, 평소와 다름없이 친절하게 은지에게 대답했다.
“한 시간 남았는데 왜 이렇게 일찍 출발하느냐는 거죠? 대표님께서 그러라 하셨습니다.”
은지는 눈을 비비적거리던 손을 멈추고 의외로 얌전히 차에 올랐다.
“은지 씨는 긴장되지 않으세요?”
차가 도로에 들어선 후, 현우는 여전히 몽롱한 은지를 신기한 시선으로 보며 물었다.
‘나라면 이런 날을 앞두고 긴장돼서 잠도 못 잤을 것 같은데.’
그때, 차가운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은지는 반쯤 뜬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자기한테 물은 말이냐며 검지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네.”
현우가 웃으며 대답하자, 은지는 기지개를 켜며 감겨 있던 눈을 똑바로 뜨며 대답했다.
“음, 기다렸던 무대기도 하고 연습도 많이 했으니까요…….”
은지의 시선은 창밖을 향했지만, 풍경을 보고 있는 눈은 아니었다.
기지개를 켰던 손을 풀며 은지는 차분히 말을 덧붙였다.
“저는 제가 잘할 거라고 믿어서요.”
은지가 조용히 흘린 대답을 들은 은호는 노트 위에서 바쁘게 놀리던 펜을 떼고 은지를 바라봤다.
잠시 은지에게 머물던 은호의 시선은 다시 글자들로 빽빽한 노트에 돌아갔다.
* * *
「“긴장할 게 뭐 있어.”」
회귀 전에도 곧 데뷔를 앞둔 이은지의 반응은 비슷했다.
‘이런 건 여기서도 여전하구나.’
그땐 그저 연습으로 만들어진 평온함인 줄 알았는데, 이은지는 그냥 자기 자신을 믿는 것뿐이었다니.
무대에 선다는 상상만으로도 긴장하던 나랑은 남매인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존경스럽고 놀라운 마인드였다.
충분한 끼를 가지고 있어도 무대에 올라섰을 때, 카메라 앞에 섰을 때 똑바로 해야 한다는 강박과 찰나의 긴장 때문에 가진 끼를 다 펼치지 못하고 지는 별들이 수두룩했다.
‘여긴 그런 시장이었지.’
이 바닥에서 자기의 강단이 있다는 건 상당한 장점이었다.
창작의 영역에서는 더더욱 주위의 한마디가 창작자의 줏대를 흔드는 경우도 허다하니까.
‘그 한마디가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정작 의견을 듣느라 시작 자체를 못 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랬지.’
사실 이건 다 내 이야기였다.
그 시작을 못 하게 된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까.
‘첫 무대.’
끔찍했던 내 첫 무대.
너무 긴장한 나머지 똑바로 해야 한다는 강박에 과한 바이브레이션을 얹었고 그러다 음 이탈 사고가 났다.
거기에 당황한 나머지 연계된 안무 실수까지.
한 무대에 실수도 참 가지가지로 저질렀다.
‘그것도 데뷔 무대에…….’
대표님은 그날, 의외로 큰 소리 한 번 치지 않으셨다.
나를 내치지도 않으셨다.
그저 조용히 ‘조금 더 기초를 다지자’라며 연습에 집중하도록 이끌었다.
외부 행사나 방송으로는 나보단 더 좋은 결과를 보인 은지에게 집중했다.
그땐 그 결정이 원망스러웠는데…….
‘솔직히 지금 생각하면 대표님은 보살이 아닐까.’
그 무렵이었다.
당시 은지가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한 시기.
지금보다는 비록 늦은 시작이었지만, 당시 은지는 더 빠른 성장세를 보였었다.
솔로 활동을 하면서 쌓아 둔 경험치가 영감이 되어 준 덕분이었다.
‘그리고 나도 작곡을 시작했었지.’
당시 난 기본적인 감도 못 잡은 주제에 이은지처럼 할 수 있다고 대표님께 보여 주려고 했다.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이은지처럼 되려 애를 쓰다 보니 정신을 차렸을 때.
난 은지가 만들었던 곡을 빼다 박은 듯이 표절을 하고 있었다.
‘이은지가 만든 곡을 나노 단위로 뜯고 해부하고 그대로 만들었으니까…….’
같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은지는 매번 다른 스타일의 곡을 냈다.
실험적이었지만, 이은지이기에 가능한 그런 곡들이었다.
은지가 미니 앨범 2집을 발표할 때, 난 그때가 되어서야 나랑 이은지는 다르다는 걸 인정했다.
‘그거 하나 인정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전엔 ‘내가 어르고 달래고 키워 온 동생이 나보다 뛰어나다’는 걸 인정하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그걸 인정하는 것에만 자존심을 굽히는 것도 족히 몇 년은 걸렸을 만큼.
우스운 일이었다.
이은지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 난 그제야 진짜 내 방식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 번 무대에 섰다.
은지처럼 시작부터 크게 뜨진 못했지만 난 내 나름대로 차분히 단계를 밟아 나가며 성장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날 방송은 ‘바이올렛 애플’이라는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던 아이돌 그룹과 내 노래가 1위를 다투던 날이었다.
‘이제야 당당히 이은지를 마주할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던 그날, 은지가 세상을 떠났다.
이은지가 세상을 떠난 직후에는 난 작곡이 아닌 작사로 눈을 돌렸다.
어떤 작사가도 내 마음을 그대로 담아내지는 못하기에 직접 쓰게 됐었다.
물론 ‘감성팔이 한다’라는 보기 힘든 댓글들도 많았다.
하지만 진심이기에 대중에게도 통했던 걸까.
신곡 성적은 마치 이은지의 빈자리를 메꾸듯 항상 TOP 10 순위에 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좋은 성적에 짓눌려서 죄책감에 잠을 잘 수 없던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그때의 잔재주가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지만…….’
씁쓸한 웃음을 띠며, 은호는 빼곡하게 적은 노트 페이지를 깨끗한 면으로 넘겼다.
* * *
“이쪽으로 오세요.”
메이크업과 의상을 갈아입기 위해 예약된 청담동의 셀라스 숍에 도착했다.
‘무섭네.’
‘무섭다.’
굉장히 낯선, 으리으리한 분위기의 고급스러운 숍이었다.
간판부터 부티가 넘쳐 나는 숍 내부에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잔잔히 흘렀다.
디자이너 선생님과 스태프분들도 하나같이 한 성격 하실 것 같은, 강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혹시 신인이에요?”
“아, 네! 맞아요.”
자리에 앉은 후, 5분쯤 지났을 때였다.
머리를 만지고 있던 스태프가 묻자 은지가 답했다.
그러자 스태프는 이내 싱긋 웃으며 ‘잠시만요.’라고 말한 후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 그의 손에는 샌드위치 두 조각이 올라간 접시가 함께였다.
“배고프죠? 편하게 들어요.”
스태프가 샌드위치를 건넨 그때.
낯선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기죽어 있던 은호와 은지의 눈이 크게 뜨였다.
곧 있을 쇼케이스 데뷔 공연 생각에 잊고 있던 배고픔이 강하게 몰려왔다.
‘맛있는 거 주는 사람=좋은 사람.’
‘먹을 거 주는 곳=좋은 곳.’
무섭다던 첫 이미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샌드위치 하나로 역전됐다.
박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 역시 그 공식에 따른 결과였다.
“맛있나요?”
“엄청요!”
“다행이네요.”
숍에서 챙겨 준 샌드위치는 순식간에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샌드위치가 소화될 즘엔 두 사람 모두 대부분의 세팅이 끝나 있었다.
은지는 거울을 보며 제 모습을 살폈다.
강한 인상을 눌러 주기 위해서인 듯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아이섀도와 아래로 쳐진 아이라인.
그런 약한 눈 화장과 대비되는 버건디색이 섞인, 그러데이션된 립.
검은 민소매 위 단추를 많이 풀어 헤친 와이셔츠와 검은 가죽 치마.
거기에 세 보이는 익숙한 굽 높은 워커까지.
어디선가 본 적 있던 은지의 의상은 뮤직비디오 촬영 때 입었던 두 번째 의상이었다.
“와.”
“이쁘지.”
은지의 손톱에는 일상생활은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화려하고 긴 네일 팁이 붙어 있었다.
옆에서 구경하던 내가 말도 안 되게 긴 길이의 손톱에 놀라자, 은지는 손가락을 유연하게 놀리며 제 손톱을 자랑스레 선보였다.
“보석 달린 울X린 같다.”
“울X린……?”
놀림 반, 진심 반으로 흘린 짧은 감상에 은지의 고개가 삐딱해졌다.
잠시 후 이은지는 뒤늦게 근육질 몸에 칼날이 달린 손을 가진 캐릭터를 떠올린 듯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 갔다.
“울X린은 나처럼 손톱이 아니라 손 사이에 칼날이 달려 있던 것 같은데…….”
왠지 중얼거리는 폼이 영 불안하던 그때였다.
“잘 때 기대해, 오빠.”
평소 ‘이은호’를 남발하던 애가 갑자기 오빠라고 하니까 오히려 흠칫했다.
“왜?”
“내가 울X린처럼 진짜 칼날 끼고 밤새 그 우럭 대가리를 심해어로 진화시켜 줄 테니까.”
은지는 태연하게 평소보다 과할 정도로 친절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응, 난 너 호박파이로 만들어 줄게.’라느니 받아쳤을 텐데, 지금 이은지는 내 손바닥 위다.
“기왕이면 나도 그렇게 반짝거리게 해 줘.”
난 은지를 따라 평온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참 그리고 기왕이면 내일모레에 해 줘.”
“왜?”
예상치 못한 부탁이었는지 은지가 질겁하며 물었다.
“가요뱅크 무대에서 화면발 잘 받잖아.”
“아, 뭔 소린가 했네.”
은지는 눈을 까뒤집으며 목덜미를 짚었다.
“짜증 나, 이은호.”
후에는 상대하기를 포기한 듯, 은지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등을 돌렸다.
“은호 씨?”
“아, 네.”
“이쪽에 의상 준비되어 있으니까 입고 나오시면 돼요.”
“네.”
그동안 난 한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탈의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