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48)
예상치 못한 방 상태에 잠시 놀라기는 했지만, 사실 본론은 이게 아니었다.
“아, 이거.”
이은지는 기다렸다는 듯 방금 막 만들었다던 트랙을 재생했다.
요즘 은지는 각종 연습으로 바쁜 와중에도 작곡에 집중하고 있었다.
엔지니어 출신인 배진수 작곡가님 덕에 최근엔 편곡 쪽으로도 상당히 능력을 쌓아 가는 중이었다.
둥―, 둥둥.
둥―, 둥둥.
은지가 음악을 재생하자, 베이스와 베이스 드럼이 교차하며 중독적인 리듬을 만들어 냈다.
거기에 이리저리 장난스럽게 통통 튀는 건반 멜로디.
은지는 평소 실험적인 코드를 자주 사용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곡은 평소와는 다르게 단순한 C 메이저 코드로만 이뤄져 있었다.
‘오호.’
의문이 들긴 했지만 그게 나쁘지는 않았다.
단순하긴 했지만, 은근히 흘러나오는 쓸쓸한 분위기와 그 속에서 자연스레 녹아든 중독적인 베이스 리듬.
거기다 이어진 멜로디에서도 충분히 이은지 특유의 분위기가 잘 살아 있었다.
스트르렀어
는 했다, 말았다
땃따따라
음절도 미리 생각을 해 둔 듯 벌스에 들어서자 이은지의 목소리가 더해졌다.
구체적인 구상을 하면서 찍어 낸 곡인지 일찍부터 가이드를 떠 둔 것 같았다.
내용은 알아듣기 힘든 외계어였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음절이 구분되고 어떤 포인트가 있는지만 알 수 있다면 충분했으니까.
“어때?”
“좋네.”
너무 긴장한 얼굴로 묻길래, 긴장 좀 풀라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내 대답이 도움은 딱히 안 된 듯 이은지는 오히려 조금 전보다 더 걱정스럽게 물었다.
“너무 평범하진 않아?”
“평범한 게 뭐 어때서.”
“그게, 너무 흔한 느낌인 거 같아서.”
“그만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흔한 거지.”
“그런가?”
“어. 그리고 네가 만든 곡은 아무리 평범해도 너만의 분위기가 있어서 상관없어. 이것도 잘 녹여 냈고.”
“웬일로 칭찬을 다 해 준대?”
은지가 비꼬자 픽 입 밖으로 웃음소리가 샜다.
아무리 자주 싸우고 놀린다지만 나는 이은지가 만들어 내는 곡들은 항상 인정한다.
저렇게 곡을 내기까지 여러 노력이 있었을 거고, 그만큼 생각도 많았을 테니까.
은지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입술을 비죽거리며 다시 모니터에 집중했다.
화면에서 이것저것 건드리는 걸 보아하니 아직 완성된 곡은 아닌 것 같았다.
“끙.”
앓는 소리를 내는 은지는 트랙 속 녹색 바를 올렸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했다.
고민이 많아 보였다.
아무래도 아직 데뷔 전이라 <듀오>에 대한 반응이 어떨지 모르는 데다, 경험이 부족하니까.
대중의 귀와 본인만의 스타일 사이에서 많이 갈등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문제는 은지가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 할 문제라, 나는 말을 아끼는 쪽을 택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가사인데.’
페이옵 사건 이후.
우리는 현재 이름 있는 작곡가나 작사가를 구하기가 많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페이옵은 우리에겐 악마 같은 사람이었지만…….
적어도 발이 넓다던 게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우리를 ‘거르는’ 작가들이 많아졌다.
대표님은 감추고 싶었던 것 같지만, 좋지 않은 소문은 좋은 소문보다 퍼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이걸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지난번 제목이 으로 바뀌게 된, ‘어린 손’의 가사를 썼던 당시.
배진수 작곡가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 곧장 대표님에게 가이드를 전했더랬다.
대표님은 막막하던 와중에 빛이라도 찾은 것처럼 눈을 빛냈다.
‘그룹 내에서 ‘자체 생산’을 하면 솔직히 지출이 크게 줄어들기도 하니까.’
욕심이 나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서 지금 이은지와 난 연습과 함께 자체 생산도 하고 있다.
작곡, 편곡은 이은지가, 작사는 내가 맡았다.
‘젠장.’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은지는 길어도 3일, 짧을 땐 15분에서 20분이면 한 곡을 뽑아내는 괴물 같은 녀석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은지가 숨 쉬듯 뽑아내는 곡에 파묻혔다.
“전송했다!”
이번에 또 반짝 완성된 은지의 데모곡은 그대로 대표님한테 전달됐다.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이번 곡 확실히 정말 좋아. 익숙한 코드인 만큼 대중에게도 먹힐 것 같고…….’
노래는 좋다.
하지만 내가 가사를 써야 하는 곡이 이미 밀려 있는 것만 둘.
거기에 이번에 이렇게 반짝 쓴 것도 만약 통과된다면?
‘셋…….’
이은지가 반짝 만들어 낸 한 곡에 어울리는 가사를 쓰는 데에만 며칠은 족히 걸렸다.
이젠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이번에 만든 게 통과되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까이길 바라는 마음이 공존했다.
♬.
약 10분 정도 시간이 흐른 그때.
은지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액정에는 당연히 ‘우리 대표님’이 떠 있었다.
“대표님!”
은지는 태연하게 전화를 받으며 스피커를 켰다.
“얘들아.”
“네! 대표님 이번 곡 어때요?”
대표님은 뭔가 이야기를 하려다 은지한테 가로채였다.
일단 대답을 먼저 해야겠다고 판단했는지, 대표님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쁘진 않았어. 클라이맥스 부분만 좀 더 느낌 있게 다듬고 가사만 보면 될 거 같더라.”
“네!”
가사.
고작 두 글자 단어에 심장이 놀아났다.
‘와!’
세 곡 당첨을 알리는 말이었다.
기쁜데.
진짜 기쁜데.
마냥 기뻐할 수가 없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나흘 동안 이은지가 만들어 낸 곡은 총 열 곡.’
그중 대표님한테 통과돼서 이번 싱글 데뷔 이후 미니 앨범에 실을 걸로 확정된 건 두 곡이다.
그리고 난 이제 겨우 한 곡 가사를 다 써 가고 있었다.
하하, 머리가 쪼개질 것 같다.
그때였다.
“근데 지금 하지는 마.”
냉정한 대표님 목소리에, 나도 이은지도 당황하며 휴대폰으로 눈길이 모였다.
“왜요?”
은지가 묻자, 대표님은 깊이 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은지야, 지금 시간이 몇 시지?”
“아직 한 시밖에 안 됐어요!”
“한 시‘밖’에라니, 은지야. 내일은 6시에 일어나야 한다니까…….”
벌써 한 시라고?
연습을 끝내고 돌아오자마자 내내 방에 박혀서 가사 노트만 붙잡고 있어서 전혀 몰랐다.
놀란 마음에 휴대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했다.
‘진짜네.’
언제 이렇게 됐지?
“쉴 땐 쉬어라. 얘들아, 내일은 중요한 날이잖아.”
시간을 확인하고 나니 대표님의 애처로운 부탁이 이해됐다.
‘내일은 정말 중요한 날이니까.’
며칠째 우리는, 빠르면 새벽 3시, 늦을 땐 5시가 다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이젠 활동 컨디션을 맞추기 위해 언제 잠이 들든 아침 6시 기상은 무조건이었다.
“은지야, 너 내일도 늦잠 자면 이번엔 정말로 저녁 이후로 건반 압수야.”
“하지만…….”
“‘하지만’은 없어. 촬영하는 데 얼굴에 그늘 있으면 안 되잖아. 그렇지?”
“그건, 그렇죠. 네…….”
은지는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얌전히 대답했다.
“둘 다, 얼른 누워. 은호도 방으로 돌아가고.”
“네.”
“내일 현우가 갔을 때 또 늦게 준비했다는 이야기 들리면 너희 둘 다…….”
대표님은 이후 ‘일찍 자야 몇 시부터 어떤 성분이 어쩌구……’ 레퍼토리를 약 30분가량 반복했다.
‘앞으로는 일찍 자야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 시간이었다.
‘이렇게 두 시간 반이라니…….’
그 은지가 이렇게까지 방을 치운 이유가 새삼스럽지만, 이해됐다.
도망치듯 내 방으로 돌아온 후, 난 바닥에 널브러진 노트를 보자 생각이 많아졌다.
‘드디어 내일이다.’
곧 진짜 다시 시작이었다.
* * *
오튜브 채널은 현우가 살피기도 했지만 대부분 관리는 박 대표가 스스로 하고 있었다.
심지어 영상 편집마저도 박 대표의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박 대표는 은호와 은지만큼이나 E-UNG PR부터 미니 앨범 작업까지.
당장 채널을 관리하기엔 키우는 고양이님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정도로 일이 너무 많았다.
거기다 E-UNG이 최근, 연습과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촬영 횟수마저 자연히 줄게 됐다.
촬영을 하더라도 집중하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보니 편집거리도 부족했다.
2015년 2월 6일에서 7일을 넘어가던 오후 12시 정각.
최근 고요하기만 하던 NRY 엔터테인먼트 오튜브 채널에 한 영상이 업로드됐다.
* * *
지잉.
주연은 냉장고 문을 열다가 울리는 진동에 휴대폰을 찾았다.
“뭐지? 와, 오랜만에 이응 영상 올라왔…… 어?”
주연은 생각 없이 휴대폰에 손을 뻗어 화면에 떠오른 알람을 본 순간.
“허어억.”
숨넘어가는 줄 알았다.
[E-UNG ― ‘DUO(듀오)’ M/V Teaser]
곧 뮤직비디오가 나온다는 알림과 같은 티저 영상이었다.
주연은 소파에 바른 자세로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짧은 티저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화면을 가득 메운, 밝고 커다란 달빛이 주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끌려, 주연은 자연스레 화면에 몰입했다.
―풍덩.
묵직한 것이 물에 빠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 순간, 새까맣게 변한 화면에 진한 물결이 생기며 노래가 시작됐다.
베이스와 드럼뿐인 단순한 비트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세련된 분위기가 연출됐다.
주연은 비트에 고개를 까딱이다가 ‘이걸로만 끝난다면 조금 아쉬울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꿈인 줄 알았는데
꿈이길 바랐는데
주연이 그렇게 생각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때마침 고막을 녹일 것 같은 은호와 은지의 잘 어울리는 하모니가 이어졌다.
그동안 영상 속에는 검은 물결이 사라지고 새하얀 문이 나타났다.
‘문?’
하얀 문은 천천히 가까워질수록 검게 물들었다.
문손잡이는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저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문이 열리던 그때.
이 문 너머의 넌 왜 대답이 없을까
덤덤한 은호의 목소리.
왠지 젖어 있는 것 같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노래를 끝으로.
새까매진 화면 속에 새하얀 글씨가 사각거리는 깃펜 소리를 내며 글씨가 쓰여졌다.
[E-UNG]
[DUO]
[2015. 2. 10. 6:00PM (KST)]
끝인 건가?
주연은 더 봤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영상은 그대로 종료됐다.
‘끝? 아, 진짜?’
영상이 끝나자 오튜브는 E-UNG의 를 추천 영상으로 띄웠다.
이 화면을 떠나기엔 아쉬운 마음이 컸는지, 주연은 이후 몇 번이나 영상을 재차 재생했다.
족히 열 번은 넘게 영상을 보고 나니, 이제 화면 속 검은 물이 베이스 드럼에 맞춰 4번가량 물결친다는 걸 완벽히 알고 있는 수준이 됐다.
‘기대된다!’
주연은 뭔가 더 쓰여 있진 않을지 기대하며 화면을 내리던 그때였다.
[2015년 2월 8일 6:00PM, 남매 듀오 E-UNG의 쇼케이스에 여러분들을]
더보기
잘린 뒤 내용을 읽기 위해 당장 ‘더보기’를 눌렀다.
차분히 아래 내용을 읽어 가던 주연은 놀란 눈을 하며 급하게 노트북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