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47)
“오…….”
“자자, 인제 그만 보시고 얼른 민 팀장님 층으로 돌아가십쇼.”
“아, 조금만 더 보자.”
민 팀장의 애절한 부탁에도 전명훈은 냉정하게 [X]를 눌러 창을 꺼 버렸다.
“치사하기는, 애디터한테 얘들 얘기 잘 써 달라는 부탁이라도 전해 줘.”
“알았어요. 알겠으니까. 저 이제 편집해야 해요. 좀 가세요, 제발.”
“하하. 알겠어. 고생해, 명후니.”
전명훈은 대충 손을 휘휘 저으며 민 팀장에게 빨리 여기서 나가라며 손짓했다.
그렇게 민 팀장이 CK 뮤직 라이프 매거진 사무실에서 쫓겨나듯 나간 그때.
전명훈은 건너 자리 칸막이에 손을 걸며 자리에 앉아 있는 여사원에게 말했다.
“들었죠, 슬기 씨?.”
“그럼요.”
전명훈의 건너 자리.
칸막이 위로 고개를 빼꼼 내민 주슬기가 손가락으로 ‘OK’를 표현하며 밝게 웃어 보였다.
“너무너무 잘 들었답니다.”
전명훈은 그런 슬기가 어지간히 낯선지, 턱까지 빼내며 조심스레 물었다.
“이야, 나 슬기 씨 그렇게 웃는 거 몇 년 동안 일하면서 처음 본 거 같은데?”
“오, 그래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네.”
주슬기는 그런 전명훈을 잠시 보다가 제 모니터로 고개를 돌리며 장난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이번에 맡은 일이 마음에 들거든요.”
“의외네.”
“슬기 씨는 가수한테는 관심 없다더니…….”
“음, 전에는 그랬는데 사람은 바뀌니까요.”
“슬기 씨가 바뀌었으면 그건 그것대로 놀랍네.”
전명훈은 이미 다 식어 버린 막심 커피를 홀짝이며 의미 없는 대화를 이어 갔다.
그때 슬기는 마저 키보드를 두드리다 웃으며 답했다.
“저도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민 팀장님처럼 저도 E-UNG 팬인 거 아시면 더 놀라시겠네요.”
“풉, 뭐? 농담이지?”
책상에 튀어 버린 커피 자국을 망연하게 보던 전명훈은 황당한 눈으로 슬기를 쳐다봤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재차 묻기까지.
“진짜로요. 저 E-UNG 팬클럽 카페에서 관리자도 하고 있어요.”
“어이가 없네. 대체가…… 걔들이 뭐 하는 애들이길래 죄다 팬이래?”
전명훈의 격한 반응에 주슬기는 소리를 내 웃으며 말했다.
“뭐 하는 애들이라뇨. 노래 잘하지, 남매가 둘 다 잘생겼지, 팬들 잘 챙기지…….”
슬기는 투웨니스 공연 당시 귀걸이를 자랑하던 은지를 떠올리며 입꼬리를 말았다.
“게다가 거기 동생 쪽이 엄청 매력적이거든요.”
“동생 쪽이면…… 뭐야, 여자애 아니야?”
“맞아요.”
“걔를 왜?”
“왜긴요.”
전명훈이 갸웃거리며 묻자 슬기가 눈을 휘며 답했다.
“여자들도 예쁘고 멋있는 여자 좋아해요.”
* * *
듀오
뮤직비디오 촬영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난 날이었다.
“엣취!”
신발을 신다가 흠칫했다.
“야, 씨.”
딱히 뭔가가 튀었다는 느낌은 나지 않았지만, 그냥 찝찝했다.
“너는 왜 남의 엉덩이에다가 재채기해.”
“신발을 빨리 신던가 앉아서 신었어야지!”
“자리나 주고 말을 하던가.”
“그럼 벽 쪽으로 빵댕이 돌리고 신었으면 되잖아.”
아, 그렇네.
틀린 말은 아니라서 자세가 민망해졌다.
다시 묶으려던 긴 운동화 리본을 발등 쪽에 대충 끼워 넣고 급하게 몸을 세웠다.
“근데 갑자기 왜 재채기하냐?”
“하면 안 돼?”
“감기야?”
조금 예민하게 캐물었다.
곧 데뷔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대표님은 우리의 컨디션을 철저하게 관리하셨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큰 기획사보다는 훨씬, 아주 훨―씬 덜한 편이긴 하다.
다만 건강 관리 부분에 대해서는 큰 기획사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철저한 편이었다.
“아닐걸……?”
“아니면 아닌 거지 ‘아닐걸’은 뭐야.”
이은지는 대답을 얼버무리며 날 지나쳤다.
그렇게 먼저 계단으로 향한 이은지는 잠시 후.
“이은호 엉덩이 냄새나!”
“이은지, 너…….”
“하하핰.”
이은지를 불렀을 땐 이미 이은지는 1층에 내려가 버린 지 오래였다.
“빨리 와! 늦겠다!”
2층 문을 잠그고 나오자 1층에서 이은지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에휴.’
큰 목소리를 무시하고 1층으로 내려간 그때였다.
덜컹.
회사 현관문이 열렸다.
“밖에서 시끄럽게 굴지 말고 얼른 들어오기나 해!”
대표님이 나와서 소리쳤다.
거실에서 기다리시다가 밖에서 난 이은지 목소리가 시끄러워서 나오신 것 같았다.
우린 서로를 노려보다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얼른 들어와.”
“네.”
대표님은 우리가 완전히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손잡이를 놓지 않으셨다.
1층 안에 들어서자 먼저 도착한 현우 형님이 회의 테이블 자리에 먼저 앉아 있었다.
우린 꾸벅 고갯짓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뒤따라서 자리에 앉았다.
오늘 회의는 다크오션 프로덕션에서 도착한 컷 배치 작업이 마무리된 파일 때문에 소집되었다.
어찌 보자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마지막 하는 날이기도 했다.
“편집 끝났다고 전한 건 들었지?”
“네. 형님이 말씀주셨어요.”
“오늘 이후에는 의견을 내더라도 상황상 수정하기 힘든 것들이 더 많을 거야.”
“왜요?”
은지가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은지야.”
“네.”
“100층짜리 건물을 60층까지 지었어. 근데 그걸 1㎝만 옆으로 옮겨 달라고 하면 어떻겠니?”
“미친 소리죠.”
하.
태연하게 대표님 앞에서 욕하는 이은지를 보면서 난 이마를 짚었다.
“그래. 미친 소리인 건 맞는데, 밖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마라. 경고야.”
“아, 넵…….”
대표님 경고에 은지는 그제야 실수를 깨달으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튼 오늘 이후로 너희가 수정할 곳이 있다고 하면 그쪽에서는 방금 예시랑 다를 게 없는 상황인 거야. 알았지?”
“네.”
“자, 그럼 지금부터는 집중해.”
대표님은 다크오션에서 전송한 파일을 화면에 띄웠다.
화면에 집중하며 컷 순서를 살피던 우리는 제각각 의견을 내며 회의를 이어 갔다.
“다 좋은데요 이거 인트로 구간을 조금 수정하고 싶어요.”
“어떻게?”
“그러니까…… 으음.”
이은지는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듯 팔짱을 낀 채 앓는 소리를 냈다.
인트로…….
이은지가 말한 곳을 재차 점검해 보던 그때였다.
‘아, 이거 때문에…….’
가만히 살피다 보니, 이은지가 거슬렸다던 부분이 어디인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화면은 천천히 클로즈업이 되면서 느긋한 분위기를 띠는데 <듀오>의 인트로는 베이스 드럼이 주가 돼서 강하게 귀를 때린다.
즉, 화면과 음악이 박자가 안 맞는 상황이었다.
“저, 대표님.”
“응?”
은지의 대답만 기다리던 대표님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쪽을 돌아봤다.
“여기 있잖아요.”
난 화면을 인트로 구간으로 돌렸다.
거슬린다던 그 구간이었다.
“여기를 베이스 드럼에 맞춰서 점프 샷으로 가면 좋을 거 같아요. 늘어져서 화면이랑 저희 노래가 안 맞는 느낌이거든요.”
“그래! 그거야!”
내가 간단히 설명을 덧붙이자 이은지는 속이 후련한 듯 손뼉을 치다 척하니 엄지를 세웠다.
그것도 잠시, 이은지는 다시 갸웃거리며 물었다.
“근데, 점프 샷이 뭐야?”
“뭘 듣고 ‘그거야!’ 하고 소리친 거야……?”
“몰라도 감탄은 할 수 있잖아.”
하하.
이은지를 황당하게 보고 있자,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던 현우 형님이 터졌다.
난 화면을 비추며 은지한테 아주 쉽게 설명했다.
“말 그대로, 여기서 여기까지 화면이 천천히 쭉 가잖아.”
“어.”
“그러면 여기 연결된 구간을 중간마다 잘라 내면 순간 이동이라도 한 거처럼 장면이 훅, 훅 넘어가겠지?”
“오! 어!”
“그게 점프한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점프 샷이야. 대충 이렇게 이해해.”
“오호!”
하여간 감탄은 잘해.
이은지를 지그시 노려보고 있는 그때.
“그런데 은호야.”
“네?”
“넌 그런 건 어디서 배워 온 거냐?”
은지와 같이, 설명하던 화면을 빤히 보던 대표님이 갑자기 물었다.
“음, 그, 그냥 주워들은 거죠.”
“그래?”
회귀 전, 여러 곡을 작업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약간의 꼼수 같은 부분이었다.
하지만 당장 떠오른 핑계가 없어서 어색하게 대답해 버렸다.
“흠, 그렇구나.”
다행히 대표님은 더 깊이 캐묻지 않고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쁘지 않네. 이건 은호 의견으로 프로덕션 측에 내가 전달하마.”
“네.”
회의는 여기까지였다.
마음에 쏙 들 정도로 장면들이 잘 나와서 이후에는 의견을 낼 곳이 없었다.
대표님이 후하게 투자한 자본과 녹화 당시 고생한 보람이 충분히 있는, 그런 영상이었다.
“이대로 가자고 이야기한다!”
“네. 좋아요.”
* * *
OK를 던진 그날 이후.
대표님이 후에 전달한 바로는 뮤직비디오는 곧장 후 작업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은지와 난 정신없이 연습과 관리에 신경을 쏟았다.
이전에도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낮에는 보컬, 안무 연습을 이어 갔고 저녁에는 신곡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빨리 내 방 ㄱㄱ]
[왜]
[신곡]
다른 날보다 더 바쁘고 정신없었던 어느 날 저녁.
이은지는 새 곡을 찍었다며 까톡을 보냈다.
시답잖은 걸로 불렀다면 움직일 생각이 없었는데, 신곡이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노트들을 옆으로 치워 내며 녹초가 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방을 나와서 이은지 방문을 연 그때였다.
“뭐야.”
순간 ‘내가 집을 잘못 찾아왔나?’ 싶었다.
평소에는 널브러진 옷 때문에 어디가 바닥인지 어디가 침대인지 구분되지 않던 방 안.
오늘은 대충이긴 해도 옷걸이에 옷들이 제대로 걸려 있었다.
거기다 먹다 남은 에너지바 봉지와 빈 생수통도 없다.
닭가슴살을 담았던 널브러진 반찬통도 전혀 없다!
“너…… 이은지 아니지.”
“미친X.”
“이은지 방이 이렇게 깨끗할 리가 없는데?”
“또라인가, 진짜.”
소름 돋을 정도로, 오늘따라 이은지 방이 너무 깨끗했다.
난 반은 진심, 반은 놀릴 생각으로, 과장하며 깨끗한 쓰레기통을 보고 ‘헉!’, 잘 정리된 책상 위를 보고 ‘허억!’거렸다.
“아, 미친X아! 그만해!”
장난이 제대로 먹혀들었는지 은지는 손에 무기를 집어 들며 소리쳤다.
웬만한 물건이라면 계속 장난치려고 했는데, 하필 이은지가 손에 집어 든 건 전문가들이 들고 다닐 법한 단단한 메이크업 가방이었다.
그것도 꽤 큰 거.
“알았어. 알았어! 그만할게! 그, 그건 내려놓고 말하자, 미안해.”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며 소리쳤다.
잘못 맞으면 저건 분명히 어디가 찢어지겠구나 싶었으니까.
“잔소리…… 두 시간 반 동안 들었어.”
이은지는 차분히 가방을 내려두며 기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표님이 주말 전에 이은지만 따로 불러냈었는데, 아마 그날 방을 치우고 살라며 한 소리를 하신 모양이다.
“그래서 이번에 찍은 건 어떤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