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46)
“더, 더 높이 들어!”
“이, 이렇게요?”
촬영 중간.
이은지는 전명훈 포토그래퍼의 학 다리를 더 높이 들라는 요구에 따르던 그때였다.
“악!”
높은 굽은 이은지가 조금 삐끗하자 쉽게 균형이 무너졌다.
덕분에 이은지는 발목이 나갈 뻔했다.
곧 데뷔를 앞두고…….
“조심해.”
“작가님이 자꾸 높이 들라잖아…….”
난 한 손으로 이은지 등을 받쳐 들었다.
최근 데뷔를 코앞에 두고 빡빡하게 관리를 한 덕분일까.
은지는 회귀 전 술에 취해서 업었던 그 당시보다 훨씬 가벼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손으로 버틸 만한 무게는 아니었다.
난 문을 붙잡고 있던 다른 손을 놓고 이은지 팔을 대충 당겼다.
‘이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데뷔 말아먹으려고 하나.’
나도 모르게 전명훈 포토그래퍼에게 욱하는 감정을 드러낼 뻔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일부러라도 이은지를 쳐다보며 시선을 돌리고 욱한 감정을 추스르며 속을 달랬다.
그때였다.
“지금이다! 좋아! 그대로 있어!”
전명훈 포토그래퍼가 갑자기 흥분하더니 셔터를 마구 눌러 댔다.
감독이 A 컷이라며 띄운 화면은 그 순간에 찍혔던 한 컷인 듯.
전명훈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 셔터를 터뜨린 것 같았다.
‘우리가 저런 자세로 있었어?’
전혀 몰랐다.
내가 금방이라도 이은지를 끌어안을 것 같은,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두 눈 뜨고 보기 힘든 자세였으니까.
‘이건 좀 에반데.’
이건 절대 싫다고 말해 볼까.
찰나였지만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기회가 없었다.
전명훈은 정말 바쁜 건지, 촬영이 끝나자 그 즉시 장비를 정리하며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거기다 고태서 감독도 시계를 확인하더니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자자, 구경은 그만! 시간 없으니까. 어서 마저 촬영 준비해야지!”
전명훈 포토그래퍼가 떠나고 뮤직비디오 촬영이 다시 시작됐다.
의상 체인지는 촬영하는 동안 총 4번을 더 반복해야 했고 안무해야 하는 장면이 있어서 댄스 팀 의상 역시 세 벌씩이나 준비되어 있었다.
* * *
“고생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긴 촬영이 끝났음을 깨달았을 땐, 바깥은 이미 완전히 컴컴해진 시각이었다.
‘해가 쨍쨍할 시각에 촬영을 시작했는데…….’
감독님도, 스태프분들도, 클라우드 팀원들도, 이은지도, 현우 형님도 모두 고생이 많았던 날이었다.
그래도 드디어 끝났다는 사실에 마냥 기뻤다.
그렇게 이제 집에 간다는 들뜬 마음으로 차에 오르던 그때.
“어? 오빠, 뒷자리에 앉게?”
“어. 왜?”
“어?”
“앉으면 안 돼?”
“아니, 평소에는 조수석에 앉으니까.”
“아…….”
하긴.
평소에는 아무리 지쳤어도 형님의 말동무가 되어 드리려고 조수석에 앉아서 갔었다.
긴 운전이 피곤하다는 건 과거에 같이했던 매니저 형한테 많이 들은 불만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오늘은 말동무는커녕…….’
솔직히 지금 상태는 등만 붙이면 잠들 것처럼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상태다.
“죄송합니다, 형님.”
“응? 아니에요. 뭐가 죄송해. 편하게 눈 붙이면서 가요.”
형님이 너무 선하게 웃으며 말씀하셔서 난 괜스레 더 머쓱한 기분으로 뒷좌석에 올랐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도로 위.
우리가 탄 차는 수많은 가로등을 지나 컴컴한 길을 뚫어 나갔다.
처음엔 곧장 잠들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의외로 난 약 한 시간을 내내 말똥한 눈으로 창밖만 바라봤다.
‘이럴 거면 그냥 평소처럼 조수석에 앉을 걸 그랬네.’
피곤하긴 한데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잠이 안 온다.
이은지도 차에 탈 때만 해도 반쯤 눈이 감겨 있던 것 같았는데.
막상 등을 대니 나처럼 잠이 안 왔던 건지 창밖을 보고 있다.
그때였다.
“오빠, 자?”
“아니.”
“좀 아쉽지 않아?”
은지는 창에 비친 은호를 보며 물었다.
‘아쉽다라…….’
아쉬울 게…… 있나?
초반에는 NG가 조금 많긴 했었지만 이건 긴장을 풀기 전이라 그랬다.
게다가 처음치고는 잘한 편이었다.
거기다 원 테이크로 촬영 땐, 오히려 실수 한 번 안 하고 성공적으로 촬영했다.
스태프분들도 감독님도 좋은 분들이 많아서 촬영장은 내내 훈훈한 분위기를 띠었다.
촉박한 시간에 예민할 만도 할 텐데 말이다.
화보 촬영 때는 힘들긴 했지만, 결과물은…….
‘어쨌든 나쁘지는 않았다고 하니까.’
다 좋았다.
오히려 너무 좋아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그러게.”
왜일까.
그냥 잘해 놓고도 아쉬운 기분이 남았다.
‘뭐랄까.’
조금 더 많은 걸 시도해 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시간에 쫒긴 것이 아쉬웠다.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경험을 살리지 못한 것도 조금 아니, 많이 아쉬웠다.
적어도 은지는 진짜 처음이지만 나는 처음이 아니니까.
“오빠.”
“어.”
“다음 곡은 더 잘 만들자. 뮤직비디오 찍는 것도 회의 날에 더 많이 아이디어 내고…….”
다음.
듣기 좋은 단어였다.
“그래. 다음에 더 잘하자.”
우린 이야기를 마치고 마저 각자 창밖이나 바라봤다.
꿈인 줄 알았는데
꿈이길 바랐는데
방문 너머의 넌 왜 대답이 없을까
난 오늘 온종일 들은 탓인지, 귀에 맴도는 <듀오>를 흥얼거렸다.
“흠, 흠흠…….”
그때, 은지가 조용히 내 노래에 허밍으로 코러스를 쌓았다.
찬 바람 부는 옥탑방
여기 홀로 달을 바라봐
정면을 주시하던 현우는 갑자기 들린 노랫소리에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확인했다.
서로 창밖을 보며 노래하는 은호와 은지를 보더니 현우가 조용히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네가 오기를 바라서―
꿈을 꾸길 바라며
희미해지는 은호 목소리를 메꾸듯 은지는 멎은 가사를 마저 이었다.
작은 목소리는 여전했지만 잘 이어진 노래는 듣기가 편했다.
현우는 가볍게 박수라도 쳐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은 손을 놓을 수는 없으니 응원하는 마음으로만 대신했다.
노래가 끝나자 차 안은 고요해졌다.
“푸흡.”
“하하하.”
그 조용한 시간이 민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스워서.
은지와 은호는 자지러지며 어색한 공기를 흐트러뜨렸다.
* * *
“명후니후니.”
한 손은 주머니에, 다른 한 손은 전명훈 포토그래퍼에게 흔들며 다가온 한 남자.
“민 팀장님이 여기까지 왜 내려오십니까?”
“왜긴, 볼일 있으니까 왔지.”
CK 그룹 빌딩 내 CK E&M 스튜디오와 CK 뮤직 라이프 매거진은 같은 건물 안에서 서로 다른 층에 상주하고 있다.
고로 민 팀장은 E-UNG이 <그는 1+1=1> OST로 참여할 때 두 사람을 선택했던 책임자였던, CK E&M 스튜디오의 그 민기호 팀장이었다.
“E-UNG 팀에 촬영 나간 거 너라며?”
“예.”
“너 바쁘다며?”
“바쁘죠. 더럽게 바쁘죠.”
민 팀장은 전명훈 어깨에 팔을 두르며 능글맞게 물었다.
거기에 사연이라도 있는지, 전명훈은 미간을 험악하게 구기며 답했다.
“그래? 근데 왜 네가 갔어?”
“원래 맡은 놈이 갑자기 퇴사해 버렸으니 어쩌겠어요. 제가 걔 담당이었으니까 제가 치워야죠.”
“오. 책임~ 전명훈이 다시 보이네?”
“갑자기 소름 돋게 왜 이래요? 이상한 수작 부리지 말고 얼른 본론이나 말씀하십쇼, 제발.”
민 팀장은 ‘왜’라는 말을 기다렸다는 듯 눈을 휘며 입을 열었다.
“E-UNG 오늘 촬영한 사진 좀 보여 주라.”
“뜬금없게. 걔들은 갑자기 왜요?”
“내가 개인적으로 걔들 팬이거든.”
허?
전명훈은 황당한 숨을 토해 내며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하지 마요. 데뷔도 안 한 연습생을…….”
“너 여전히 게시판에 걸려 있는 진행된 프로젝트 보고서 안 읽는구나.”
“……예.”
민 팀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휴대폰을 뒤적이며 은호와 은지가 투웨니스 라이브 바에서 공연한 영상을 켰다.
“이게 뭔데요?”
잘 들어 보라는 듯 전명훈 눈앞에 들이밀었다.
하지만 잡음이 잔뜩 섞인 영상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는 소음뿐인 음질이었다.
전명훈이 흥미를 보이지 않자, 민 팀장은 휴대폰을 다시 집어넣으며 마저 말을 이었다.
“우리 팀이랑 같이 작업한 곡 공연한 거. 내가 나중에 좋은 걸로 다시 보내줄게. 들어 봐.”
“됐어요. 관심 없어요.”
단호한 전명훈 반응에 민 팀장은 혀를 차며 마저 본론을 이어 갔다.
“쯧. 그래서 E-UNG 촬영 때 분위기는 어땠고?”
“뭔 분위기요.”
“그냥 촬영장 분위기 같은, 그런 거 있잖아.”
“어떻긴요. 신인들이 뭐 다 똑같지. 아.”
그때, 전명훈은 무언가 떠오른 듯 갑자기 말을 멈췄다.
“뭔데? 무슨 일 있었는데?”
“아, 음.”
민 팀장은 그에 눈을 더 빛내며 전명훈을 물고 늘어졌다.
“일단 복도에서 이러지 말고 자리로 가서 이야기합시다.”
“나야 좋지.”
민 팀장은 얼른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 전명훈을 카트처럼 밀다시피 자리로 끌고 가서 앉혔다.
강제로 앉혀진 전명훈은 한숨을 내쉬며 마우스에 손을 올렸다.
“솔직히 가기 전에는 데뷔도 안 한 연습생이라고만 들어서 찍는 맛이 안 날 것 같았거든요.”
“응.”
“근데 직접 보니까 비율들이 길쭉하니 좋더라고요.”
“맞아, 은지 씨나 은호 씨 둘 다 평균보다 큰 키였지.”
“긴장만 딱 풀면 좋겠다 싶었는데, 제가 두 사람이 남매라는 걸 급하게 파악하고 가느라 확인을 못 했어요.”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 아니고?”
“아무튼요.”
평소 민 팀장이었다면 일에 집중해야 한다며 약 오르게 꼭 한마디를 덧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웬일로 조용한 분위기에, 전명훈은 고개를 들어 힐끔 그를 봤다.
민 팀장은 전명훈의 말에는 관심이 없는지 USB 속 파일을 뒤적이는 마우스에만 시선이 고정된 채였다.
전명훈은 푹 한숨을 내쉬며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둘이 남매인 걸 촬영 중간에 알았거든요.”
“그래?”
“어쩐지 내내 붙어 있는 자세가 찍기가 싫을 정도로 끔찍하게 어설펐는데, 이게, 딱 한 번 긴장이 풀어졌을 때가 있었어요.”
“언제?”
로딩이 느린 듯 뒤늦게 주르륵 뜨는 사진들 사이, 전명훈은 당시 고태서 감독이 화면에 띄웠던 A 컷 사진을 크게 키웠다.
“이때요.”
“오…….”
“이은지였나? 여동생이 넘어지려고 하니까 딱 각이 잡히더라고요.”
“오오…….”
민 팀장은 감탄하며 사진을 훑었다.
둘의 남매라는 관계가 드러나 보이는, 가깝긴 하지만 거리감은 있는 멱살잡이.
은지는 넘어질 뻔하면서 급하게 은호를 붙잡았다.
그러면서 잡은 곳이 하필이면 멱살이었는데, 정작 멱살이 쥐인 본인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듯.
카메라를 노려보는 은호의 눈빛이 화라도 난 듯 강렬했다.
거기에 대비되는 차분하고 처연한 은지의 표정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