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44)
“뭐 하는 짓이야! 하하핰!”
하하하핰.
재부팅하자며 은호가 어디서 난 건지 모를 빗 2개로 관자놀이를 꾹 누른 그 순간.
신경질적으로 은호의 손을 치우긴 했지만, 아픈 것은 둘째 치고 웃겨서 긴장이 훅 풀어졌다.
은지는 겨우 웃음을 멈추며 말했다.
“아, 진짜, 미쳤나 봐. 하……."
공격적인 어투였지만, 실상은 ‘너 때문에 못 살겠다’ 정도의 농담에 가까운 반어법이었다.
그래도 그런 은호의 야매(?) 시술이 진짜 통한 건지 다음 촬영에는 같은 실수 없이 깔끔하게 ‘OK’가 떨어졌다.
“이제 문으로 갈게요.”
이후엔 촬영 장소를 옮겼다.
새까맣게 칠해진 검은 문 앞이었다.
이번 촬영은 열리는 문 너머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며 가사를 읊는 장면이었다.
촬영 예상 시간이 가장 짧은 장면이기도 했다.
“드디어.”
은지의 개인 장면 촬영이 끝날 때쯤.
클라우드 댄스 팀은 하나둘씩 담요를 걷어 내며 몸을 풀었다.
이다음이 와이셔츠 차림으로 찍는 안무 차례이기 때문이었다.
“아, 따뜻했는데.”
은호도 클라우드 팀을 따라 두르고 있던 담요를 걷어 내며 카메라 앞으로 향했다.
촬영 세팅은 중앙에 놓여 있던 문만 치우면 되는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거대한 초록색 크로마키 벽 앞.
감독의 고집으로 깔린 진짜 잔디를 밟아 보니 오랜만에 닿아 보는 차가운 흙의 느낌은 의외로 개운했다.
“방금 구간에서는 조금 원 크기를 좁혀서 갈까요?”
“그게 좋겠다. 대형 제대로 펼치기에는 좁으니까.”
“그리고 여기서 저랑 은지랑 턴 하고…….”
클라우드와 은호, 은지는 대형을 확인하기 위해 간단히 안무를 연습해 보며 균형을 맞춰 나갔다.
“은지 양, 은호 군.”
고 감독은 안무 연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좋은 생각이 들었는지 두 사람을 불렀다.
<듀오>의 안무 중에서 은호가 은지 등 뒤 가까이 붙어 있다가 서로 스텝을 맞춰 돌며 위치를 바꾸는 안무가 있다.
“그때 여기서 은지 양 얼굴에 클로즈업했다가, 자리 체인지 후에는 은호 씨가 정확히 카메라에 시선을 맞춰 주세요.”
“네.”
“그리고 안무 따라가시다가 ‘꿈인 줄 알았는데’ 훅 가사가 나오기 전에 이렇게 카메라를 밀어 주시면.”
고 감독은 허공을 밀며 손발 짓이 더해진 설명을 덧붙였다.
“이렇게요?”
“예. 아주 좋아요.”
은호가 똑같이 따라 하며 묻자 고 감독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가 봅시다.”
“네!”
“실수하면 다시 찍으면 되니까 긴장하지 말고.”
원 테이크로 진행되는 장면.
감독은 괜찮다며 거듭 말을 덧붙였지만, 은호와 은지는 조용히 시선을 마주쳤다.
‘실수하지 마라.’
‘너나.’
둘은 자존심 때문이라도 실수는 금물이었다.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기 전.
은호와 은지는 마지막으로 가볍게 발을 맞췄다.
“이번엔 스텝 실수하지 말고 잘해라.”
“아까는 시작을 내가 맡아서 기, 긴장해서 그런 거거든.”
“아, 예. 그러셨군요.”
“너나 잘해!”
대화는 거칠었지만 의외로 연습하며 맞춰 보는 스텝은 거울처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클라우드 팀원들은 두 사람을 보며 보기 좋은 웃음을 띠었다.
“자, 레디!”
카메라 앞이다.
이건 조금 긴장되는 마법의 단어 같기도 했다.
‘연습실에서 안무 영상을 찍을 때하고 이건, 완전히 다른 거니까.’
가벼운 차림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제대로 차려입고서 카메라 앞에서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은호도 은지도 조금 들뜬 얼굴이었다.
“액션!”
하지만 감독의 신호가 떨어진 그 순간.
둘은 그간 연습해 온 진지한 표정을 관리하며 익숙한 리듬에 몸을 맡겼다.
족히 수백 번은 춰 온 춤이라 그런가.
이젠 머리보다 몸이 먼저 비트에 맞춰 반응했다.
“와.”
“쉿.”
촬영은 카메라 뒤에서 지켜보던 스태프 중 하나는 실수로 감탄을 입 밖으로 소리 냈다.
곁에 있던 동료가 주는 주의를 주자 그는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고 덕분에 NG는 피할 수 있었다.
‘남매…….’
메이크업으로 크게 달라지긴 했다지만 은호와 은지의 비슷한 본판의 분위기는 메이크업조차도 덮지 못했다.
동작이 크지만 과하지 않은 안무와 딱 떨어지는 가사도 좋았다.
하지만 그가 감탄을 흘린 이유는 은호와 은지의 시원시원한 호흡 때문이었다.
‘연예인은 연예인이다.’
댄스 팀과의 의상도 특별히 다른 색을 쓴 것도 아니고 화이트 블랙의 대비만 줬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스태프는 은호와 은지에게만 시선을 빼앗겨 있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아도, 우린 항상 함께였어
그때.
은지가 장난스레 웃으며 은호의 손을 잡고 폴짝 가볍게 뛰어올랐다.
은지의 스텝이 바뀔 때면 하얀 와이셔츠 아래, 단추를 일부러 덜 잠갔던 부분이 마치 드레스 자락처럼 펄럭였다.
손을 맞잡고, 죽음에 맞서 왔어
은호는 한 손으로는 은지의 손을 잡고 반대 손은 댄스 팀이 모여 있는 방향으로 팔을 뻗었다.
은호의 손끝과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검은 옷을 입은 클라우드 댄스 팀이 커다란 덩어리를 이룬 채 수많은 팔을 뻗어 왔다.
‘와.’
놀라우리만큼 악몽을 잘 형상화한 모습이었다.
은호는 무심하게 팔을 저으며 악몽을 흐트러뜨렸다.
은호 손짓에 클라우드 댄스팀은 언제 뭉쳐 있었냐는 듯 차분히 대형을 갖췄다.
그런데 오늘 넌 왜 말이 없어
노래를 부르며 은호가 무심하게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자 클라우드 안무팀도 은호의 손을 따라 좌우로 흔들렸다.
그들을 조종하는 은호의 모습은 마치 인형술사처럼 느껴질 정도로 섬세했다.
아 이런, 현실이 닥쳐 와
거기다, 바뀐 비트와 동시에 지금껏 장난스레 웃고 있던 은지의 무표정이 오싹한 기분을 더했다.
‘얼마나 연습했을까…….’
은호는 댄스 팀과 완벽한 호흡을 자랑했다.
‘실이 연결된 건가?’
안무를 직접 보고 있는 스태프들은 모두 맞춘 안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의심을 할 정도로 안무가 잘 맞았다.
어느새 은지는 외로운 눈빛을 장착한 채 앞으로 나와 쓸쓸하게 속삭였다.
은지는 머리를 기울이며 한 손을 들어 제 눈을 가렸다.
‘여기다.’
고 감독이 특별히 추가했던 그 장면이었다.
고 감독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간 듯, 쥐고 있던 콘티 용지를 구겼다.
은지가 발을 돌린 순간.
은호는 숨 쉬듯 가볍게 은지의 신호에 맞추며 자연스레 위치를 바꿨다.
은지의 뒤에 서 있는 은호는 은지와 거울처럼 맞닿는 팔로 같은 안무를 하고 있었다.
덕분에 같은 자리에 선 은호는 몸을 돌리기 전의 은지와 똑같은 손으로 눈을 가린 자세였다.
은호는 감독의 요구대로 눈을 가리고 있던 손가락 사이로 카메라를 노려보며 덤덤한 깊은 갈색 눈동자를 드러냈다.
찾은 방 안이 비어 있네
은호는 속삭이며 가사를 읊은 후, 감독의 요구대로 카메라를 밀어냈다.
감독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오케이! 컷! 아주 좋아! 그거지!”
감독이 앉아 있던 의자가 넘어졌다.
의자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지 감독은 손뼉까지 치며 좋은 장면을 얻은 기쁨을 표했다.
긴장한 티가 난다거나 박자를 저는 그런 아주 작은 실수 한 번 없었다.
표정 관리, 손끝과 시선 처리까지 모든 게 완벽한 장면이었다.
‘마음에 드는 애들이네.’
퇴근을 제시간에 할 수 있게 해 주는 사람을 어떻게 싫어할 수 있을까.
원 테이크인 만큼 부족한 시간에 얼마나 NG가 날지 몰라 조마조마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아, 같이 덮자고! 추워!”
“싫어! 더러워!”
“더럽기는, 안 씻는 건 니가 더 안 씻으면서 X소리 하지 마!”
촬영하는 동안 스태프가 은호의 담요를 치워 버린 건지.
은호와 은지는 모니터 앞에서 이불을 두고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있었다.
“아, 이은호, 니꺼 덮으면 되잖아!”
“내 담요 없어졌다고!”
“X쳐! 알아서 찾아!”
“그따위로 나올 거면 거기 내가 붙여 둔 핫팩 다 뜯어내!”
“싫어!”
은호는 화를 내도 소곤거리며 말했지만 은지는 욱하는 마음에 종종 소리가 커졌다.
“모니터링하는 동안만 같이 덮고 있어 줘요…….”
의외로 둘의 싸움을 중재한 건 현우였다.
“내가 금방 찾아올게. 미안해. 내가 제대로 안 보고 있어서…….”
“형님…….”
현우가 사과하는 모습은 강아지가 꼬리를 말며 시무룩해하는 모습과 굉장히 비슷했다.
은호는 괜찮다며 사과하는 현우를 일으켜 세우다 은지를 돌아봤다.
어떻게 좀 해 보라는 신호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런 상대를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은지의 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방법 중 하나였다.
“윽, 가, 같이 덮고 있을게요…….”
아니나 다를까.
은지는 순순히 이불 반쪽을 내주며 한숨을 쉬었다.
“매니저 오빠가 찾아오면 그거 덮어.”
“그러지 말래도 그럴 거거든.”
사이좋게(?) 이불을 나눠 덮긴 했지만 둘 사이에는 성인 남성 한 명이 더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빈 공간이 남아 돌았다.
그래도 둘은 이불을 두른 이후엔 다시 본업에 충실했다.
살짝 벌어진 입술과 모니터에 고정된 집중하는 눈빛.
거리를 둔 건 여전했지만, 모니터링을 하는 둘의 표정은 마치 거울처럼 똑같았다.
고태서 감독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희미한 웃음을 띠었다.
“자자, 의상 체인지합시다!”
모니터링을 끝낸 고태서 감독이 손뼉을 치며 외쳤다.
집중한 덕분에 잊고 있던 추위와 함께 희열로 돌아왔다.
‘드디어! 추위 탈출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준비된 다음 의상은 적어도 지금 옷보다는 따뜻한 차림새였으니까.
“은호 군 개인 촬영하는 그동안 다른 분들이…….”
고태서 감독이 뒷말을 이어 하기 전까지는 은호도 탈출인 줄 알고 있었다.
‘아.’
은호는 입만 웃은 이상한 표정이었다.
‘하긴.’
나는 아직 개인 촬영을 안 했었구나.
다 미리 전달받았던 순서였는데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새까맣게.
* * *
댄스 팀원들과 은지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은호는 벚나무 앞에서 잠드는 장면을 촬영했다.
그리고 하나둘씩 멤버들이 돌아올 때쯤에는 ‘입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럼 잘 부탁해요, 은호 군.”
“예…….”
난 왜 콘티를 읽을 때 이 장면을 CG로 처리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예전에 내 뮤직비디오에는 이렇게까지 화려한 화면 구성이 없었다.
물론 이렇게 입수하는 장면은 더더욱 없었다.
“물 온도는 최대한 따뜻하게 만들어 놨어요. 날이 추워서 빨리 식을 것 같긴 하지만…….”
이 추위에 입수해야 하는 내가 안쓰러웠던 걸까.
옆에서 색소를 막대로 흩트리던 스태프가 말했다.
‘그냥 물이어도 이 추위에는 멈칫하게 될 텐데…….’
눈앞에 보이는, 내가 곧 입수해야 할 얕은 수영장에는 먹물이라도 쏟은 듯 새까만 물로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