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43)
“비켜 주시겠어요, 오라버니?”
“갑자기 소름 돋게 왠 오라버…….”
“난로에 짜부라진 버터구이 오징어로 만들어 버리기 전에 비키라고, XXX야.”
잠시 후.
은호가 당황하며 뒤를 돌아본 그때.
은지는 대화보다 협박하는 것으로 노선을 튼 듯 웃던 얼굴을 굳히며 은호한테만 들리도록 아주 작게 속삭였다.
‘해 보시던가.’
……라며 더 약 올리려고 했지만, 은지를 본 순간.
은호는 말을 멈추고 대신 은지의 부탁대로 막아서던 온기에서 물러났다.
“비, 비켰잖아!”
“아냐, 됐어. 그대로 서 있지 왜?”
돌아본 은지의 동공이 풀려 있었다.
거기다 언제부터였는지 둘둘 말고 있던 이불도 풀어 버리고 손까지 꺼낸 채.
그건 진짜 밀어 버릴 것 같은 섬뜩한 눈빛이었다.
“야, 너 춥다며!”
“괜찮아. 우럭은 구우면 무슨 맛 나는지가 더 궁금하거든.”
“야, 야, 야야야! 지, 진짜 데어!”
“와, 그거 정말 최곤데?”
“저, 미친.”
은지의 이성이 풀린 눈은 렌즈 때문인지 평소보다도 더 살벌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쟤는 진짜 밀어 버리고도 남을 것 같아서.
난 진심으로 은지가 무서워서 난로에서 멀찍이 물러났다.
장난의 대가로 받은 추위였지만 그래도 슬슬 사람들의 온기로 세트장 내부가 미지근한 온도를 찾아가고 있어서 괜찮았다.
‘으, 헉.’
잘 데워져 가던 세트장 내부, 잠시 열린 문틈으로 다시 바깥의 찬 바람이 불어오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고, 오늘 날이 많이 춥죠?”
잠시 자리를 비웠던 고태서 감독이 연 문이었다.
세트장에 다시 찬 바람이 몰아치자, 난로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다시 펭귄 무리처럼 간격을 좁히며 몸을 움츠렸다.
“오……오셨어요?”
“네! 무진장 추워요!”
고 감독의 인사에 은호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일단 예의상 인사를 먼저 건넸다.
반면 은지는 언제나 그랬듯 솔직하게 소리쳤다.
어느새 본능적으로 난로 앞에 돌아온 은호는 은지의 입을 급하게 틀어막았다.
하지만 은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태서 감독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 은지 양 말대로 날이 ‘무진장’ 추우니까, 후딱 촬영하고 의상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걸로 체인지합시다.”
이걸 은지 ‘덕’이라고 말을 해야 할까.
물론 이 추위엔 희소식이었다.
기쁜 건 우리뿐만은 아닌지 클라우드 댄스 팀과 스태프도 한 목소리로 크게 환호했다.
“자, 시간이 없으니 얼른 들어갑시다!”
세트장에 들인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던 탓일까.
촬영 시간은 그렇게까지 여유가 많지는 않았다.
거기다 의상을 갈아입은 이후에는 급하게 치고 빠질 CK 뮤직 라이프 매거진 화보 촬영까지.
“고민이 많은 느낌으로 저기까지 워킹만 해 주시면 됩니다.”
첫 촬영은 은지가 먼저였다.
은지는 여전히 이불을 돌돌 만 채로 감독에게 이번 장면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감독이 가리킨 곳에는 낡은 것처럼 잘 만들어진 넓은 판자가 있었다.
콘티 내용에 따르면 넓은 판자의 역할은 호수 위 끊어진 다리였다.
“들어갈게요!”
“네!”
한 스태프가 소리치자 이은지는 재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며 동시에 두르고 있던 이불을 풀어 헤쳤다.
나와 약 세 발자국 정도의 거리만 남았을 때.
“오빠, 이거 좀 맡아 줘.”
“어? 어헉.”
은지는 조금 전의 복수인지 이불을 평범하게 던져도 될 것을 일부러 강속구로 던지며 충격을 보탰다.
“은지 씨!”
“네, 가요!”
스태프가 외치자 이은지는 이불에 미련이 없다는 듯 눈을 떼고 카메라 앞으로 달려갔다.
‘뭐지?’
이상하리만큼 후끈한 이불 속을 보자 안에는 덕지덕지 붙은 핫팩들이 가득했다.
“오…….”
이은지가 쓰던 이불을 대신 덮고 있으니 얼었던 몸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이런 걸 뒤집어쓰고 있었으면 분명 지금은 뼈가 시릴 만큼 추울 텐데…….
“레디, 액션!”
준비가 끝난 듯 세트장에 감독의 외침이 울렸다.
그 신호를 시작으로 은지는 세트장 구석 낡은 다리 위로 차분하게 걸음을 옮겼다.
고 감독의 부탁대로 눈꺼풀을 깔아 내리며 고민에 잠긴 표정도 잘하고 있었다.
‘역시 이은지는 이은지네…….’
회귀 전에도 그랬듯 여기서도 할 땐 확실히 하는 성격은 여전하다.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이은지는 추운 티는커녕 완전히 장면에 몰입한 모습이었다.
“컷! 은지 양, 한 번만 더 갈게요!”
“네!”
“오케이, 컷! 좋습니다! 넘어갈게요!”
같은 장면을 총 세 차례 더 반복하고서야 감독은 첫 장면이 끝났음을 알렸다.
감독의 신호가 떨어지자 난 이은지가 건넸던 이불을 챙겨 들고 가까이 다가갔다.
“안 춥냐?”
“안 춥겠냐?”
뻔뻔하게 잘만 녹화하더니 컷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이은지는 물 맞은 생쥐처럼 몸을 바르르 떨어 댔다.
“형님, 은지 핫팩 조금만 더 가지고 와 주세요.”
“네.”
은지한테 이불을 둘러 주며 다가온 현우 형님에게 부탁했다.
형님은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어딘가로 후다닥 달려갔다.
“웬일이래, 이은호가.”
은지는 그런 친절한 은호를 낯선 시선으로 보며 물었다.
“너 감기 걸려서 활동 못 하면 내 손해잖아.”
“그럼 그렇지. 감기 안 걸리거든!”
“그래. 바보는 감기 안 걸린다더라.”
“말하는 꼬라지 봐.”
“너야말로, 오빠한테 ‘꼬라지’가 뭐냐, 꼬라지가.”
은지는 투덜거리다가도 고 감독이 부르자 다시 진지한 얼굴이 돼서 거기에 집중했다.
이은지가 멀어지고 나니 왠지 주변이 고요한 기분이 들었다.
‘참, 그랬었지.’
한 사람이 없어서였다.
회귀 전에는 내 뮤직비디오 촬영 날이면 항상 옆에 대표님이 있었다.
언젠가 한 번, 촬영장에서 정말 구경만 하시길래.
왜 왔느냐고 장난스럽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대표님은 ‘내 눈으로 봐야 속이 후련해서’라고 했었다.
그래서 난 오늘도 올 줄 알았다.
‘못 오신 거지만…….’
사실 이번에도 대표님은 오려고 하셨다.
하지만 당일 아침 급하게 방송국에 중요한 볼일이 있다며 그곳으로 가셨다.
‘곧 데뷔 날짜가 가까워지니까.’
페이스 미팅 때문에 간 거겠지만 대표님 성격이면 겸사겸사 아마 지인 PD님들한테 PR용 CD도 직접 돌리고 올 것이다.
그때도 그랬으니까.
“늦어서 미안해요!”
때마침 핫팩이 든 봉지를 들고 달려온 현우 형님을 보며 난 잡생각을 털어 냈다.
“여기, 핫팩 가져왔어요.”
“감사합니다, 형님.”
“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 주십시오.”
“하하. 네.”
그때였다.
“오빠, 오빠!”
“어?”
“은지 양, 준비하세요!”
“아, 네! 이불 잘 들고 있어!”
난 이은지가 정신없이 던지고 간 이불을 받아 들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두 번째 장면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난 형님이 가져온 핫팩을 내 담요랑 은지의 이불에 골고루 나눠 붙이는 가내수공업에 들어갔다.
* * *
“안 춥냐?”
“안 춥겠냐?”
은호와 은지가 구석에서 투덕거리던 모습을 보던 한 스태프.
“저기…….”
“네?”
그녀는 싸움이 크게 번지는 게 걱정된 듯 건너편 난로 앞에서 평화롭게 대기 중이던 클라우드 댄스 팀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저기 오늘 배우분들 지금 싸우고 계시는데,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배우요?”
배우라는 표현에 댄스 팀 중 한 명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스태프는 친절하게 손끝으로 은호와 은지를 정확히 찍어 가리켰다.
“말하는 꼬라지 봐.”
“너야말로, 오빠한테 ‘꼬라지’가 뭐냐, 꼬라지가.”
나란히 은호와 은지를 바라본 클라우드 댄스 팀의 여덟 명은 순간 일제히 같은 생각을 했다.
‘또 시작이네.’
그간 안무 연습 내내 클라우드는 매일 두 사람을 봐 왔다.
그래서 그런지 이젠 이 정도 투덕거림은 어느새 클라우드한테도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괜찮아요. 말투만 센 거지 싸우는 건 아니에요.”
“그, 그래요?”
한 명이 손을 저어 가며 아닌 것을 강조하자 옆에서 하나둘씩 말을 보탰다.
“진짜로요. 쟤들은 꼭 저러면서 서로 살뜰하게 챙기거든요.”
“아, 맞아, 맞아. 하하. 특히 은호는 다른 사람들한테는 엄청 무뚝뚝하면서 은지한테만 가면 꼬마애 같아지잖아.”
“둘이 표현하는 방식이 거칠어서 그렇지. 애들은 착해. 지난번에 나 생일이라고 케이크 선물해 주더라!”
“은호가?”
“아니, 둘이서 같이.”
“세상에, 귀엽네.”
“둘 다 표현하는 게 부끄러워서 저러지.”
하하하하.
클라우드 댄스 팀이 몰려 있는 곳에서 한바탕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그사이, 질문을 했던 스태프는 다시 은호가 있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그녀가 본 은호의 모습은 마침 제 담요에 핫팩을 다 붙이고 난 뒤 남은 핫팩을 은지 이불 안에 붙이고 있던 모습이었다.
「“진짜로요. 쟤들은 꼭 저러면서 서로 살뜰하게 챙기거든요.”」
조금 전 댄스 팀이 말한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는 듯 스태프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 * *
“액션!”
촬영에 들어간 은지는 큐 사인에 맞춰 안무 스텝을 시작했다.
지금껏 매일 연습해 온 덕분일까.
<듀오>의 묵직한 드럼이 들리자 본능에 가깝게 발이 먼저 스텝을 밟고 있었다.
그러다 인트로의 끝을 알리는 와글 베이스 연주가 들어서는 그 순간, 은지는 판자 끝에서 푹신한 매트리스를 등진 채 몸을 던졌다.
은지가 떨어지는 그 순간.
카메라는 은지와 반대로 초록색으로 가득한 크로마키 벽을 비췄다.
“컷! 좋아요!”
고 감독의 사인이 떨어지자 은호는 내내 가내수공업을 했던 이불을 들고 은지에게 다가갔다.
“야, 이불.”
“오, 땡큐.”
은지는 은호가 둘러 주는 이불을 차분하게 받아 두르며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조금 전 촬영한 장면이 잘 나왔는지 확인하는 중요한 과정 중 하나였다.
게다가 은지는 같은 장면을 수차례를 반복 중이었다.
조명이 따뜻하긴 했지만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워서 몸이 살짝 굳은 듯.
초반에는 안무를 유연하게 이어 가지 못해서 NG가 잦았다.
하지만 몸이 풀린 이후에도 같은 스텝에 다른 다양한 컷을 위해 촬영을 계속 반복했다.
그래서일까.
많이 예민해진 만큼 화면을 살피는 은지의 시선은 여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나 이번엔 안무 안 틀렸지?”
“어.”
은지가 모니터에 고정한 채 물었다.
은호는 무심하게 먼저 대답했지만 곧 뒤늦게서야 문제를 발견한 듯 눈썹을 들썩였다.
“이은지.”
“왜?”
“방금, 저기, 살짝 스텝 절었다.”
“어디?”
“인트로 시작하고 쿵, 쿵, 쿵 다음 때, 멈칫하던데.”
“아, 젠장. 큰일이네. 저기만 몇 번째인지…….”
은지는 버릇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려다 길었던 헤어 작업 시간을 떠올리며 공중에서 손을 멈췄다.
그때였다.
“자, 이은지, 안무 재부팅하자. 지―잉.”
은호는 어디서 난 건지 모를 빗 2개로 은지의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