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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42화 (42/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42)

대표님은 오로지 우리의 재능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에게 정말 많은 것을 내줬다.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감사한 분.’, ‘꼭 잘 돼서 보답해야지!’ 이 정도 생각이 고작이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지원인데…….’

이은지와 같이 살아가면서 한 사람을 책임졌던 경험이 있는 만큼.

난 단순한 의식주에도 상당히 많은 돈이 든다는 걸 알고 있었다.

특히 어떤 교육이든 무언가를 제대로 배운다는 것에는 더더욱 큰돈이 든다.

나라의 도움으로 중학교를 다닐 때도 돈은 항상 부족했고 더 필요했다.

아주 사소하게는 스승의 날 반 파티라던가, 축제 날 반 티, 수업 중 준비물, 현장학습 비용 등.

친구를 사귀는 것조차 노래방 비용이나 분식 정도는 같이 사 먹고 놀 수 있는 돈이 있어야 했다.

넓게 보면 부끄럽지 않은 집까지도.

이 나라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주 사소한 것에도 돈, 돈, 돈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껏 봐 오길, 성인이 되기 전 여유로움은 대부분은 부모님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이은지와 난 당시에는 부모님도, 돈도, 무엇 하나 뛰어난 능력도 없었다.

심지어는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다.

‘그들’과 함께 칠판을 보고 공부했지만 어울릴 수는 없었다.

몸으로 오는 폭력은 없었지만, 꼭 신체가 닿아야만 ‘폭력’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는 걸 배우게 된 계기였다.

「“나 여기 동네 떠나고 싶어. 여기서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다 나 때문에, 나만 없어지면…….”」

시선과 소곤거림에 감정도 존재감도 서서히 말라 죽어 가던 나날 중.

언젠가 은지가 울면서 말했다.

혼자 보낼 수는 없었기에 난 은지 손을 잡고 그대로 떠났다.

‘지금까지도 어떻게든 됐으니까 앞으로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살아만 있으면 결국에는 답이 나온다는 생각으로 막무가내 상경길에 올랐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우리는 잃을 것도 없었으니까.

이미 낭떠러지 아래인 우리가 더 떨어질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쯤 은지가 권유했었다.

「“오빠, 여기까지 온 거 기왕이면 가수나 도전해 볼래? 옛날에 꿈이었잖아.”」

아는 노래가 없어.

내 대답에 은지는 돈을 버는 대로 악기를 빌려서 곡을 만들어 줬고, 난 그 곡으로 오디션에 도전했다.

나는 항상 떨어졌다.

그런데 오히려 그 쌓인 실패 덕분에 난 언제나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다.

이은지가 응원하고 있었고, 내가 하겠다고 한 이상 책임을 져야만 했으니까.

“거기.”

그러다가 만났다.

90년대쯤 입었을 것 같은, 시대에 뒤떨어진 정장.

얼굴은 이제 막 40대를 넘어가는 것 같은 중년 남자.

거듭되는 실패와는 무관하게, 우연히 만난 박창석 대표였다.

“몇 살이니?”

“저요? 17살인데요. 왜요?”

“아, 나는 이런 사람이란다.”

첫 만남은 대표님이 은지를 캐스팅하다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표님은 언제나 나랑 은지 사이에 딱히 차별을 두진 않으셨다.

잘하면 잘하는 만큼, 욕심을 부리면 부리는 만큼.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게 만든다면 그 실력을, 오기를 믿고 투자를 해 주셨다.

‘그 후에는 독촉보다 항상 결과를 기다려 주셨지.’

애초에 은지나 나나, 워낙 성격이 급해서 대표님이 독촉할 시간이 없기도 했었지만…….

‘그런데…….’

생각을 거듭하던 그때였다.

순간 등골이 싸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 우리 남매는 대표님께 도움을 받아 왔다.

그랬는데…….

‘우리는 박 대표님이 아닌, ‘박창석’에 대해선 아는 게 없어.‘

대표님의 집을 가 본 적도 없다.

가족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조차도 모른다.

심지어 대표님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회귀한 나조차도,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회사는 현재 직원이 없다.

대표님은 항상 제 손을 거쳐야 안심하시는 분인지라, 이건 이은지가 스타로 떴던 그때까지 여전했었다.

회귀 전에도 직원이라면 신사옥을 제대로 세우기 전에는 각자의 스타일리스트와 매니저 정도가 끝이었다.

회사의 수입이라고는 이은지의 활동과 광고 및 행사비가 끝이 아니었던가?

‘그럼 그 전에는?’

은호는 고개를 들어 박 대표를 바라봤다.

’적어도 억대는 족히 넘을 텐데……?‘

돈이 많은 재벌이라기엔 대표님은 항상 수수했다.

그렇다고 빚을 내서 우릴 키웠다기에는 조금 전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큰돈을 내걸었음에도 여유롭던 모습.

’아, 머리만 혼란스러워졌다.‘

홀로 생각에 빠진 동안.

박 대표는 다크오션과 진행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 건지.

그사이 고태서 감독과 구체적인 촬영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던 중이었다.

“제안이긴 하지만, 제 생각에는 세트장으로 진행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산이 충분하다고 하시니까…….”

“저는 우리 아티스트들 선택에 맡기겠습니다. 은지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저는 좋아요.”

“은호는?”

“……예?”

딴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탓에 조금 티 나게 놀라 버렸다.

“정신 차리고 있어야지, 이은호.”

“죄송합니다.”

박 대표는 미간을 굳히며 조용히 집중하라 경고했다.

조금 더 파고들어 봐야 할 문제 같지만, 일단 지금은 일에 집중할 시간이었다.

‘일에 방해되는 건 싫으니까.’

난 애써 잡생각을 흐트러뜨리며 다시 적극적으로 회의에 참여했다.

* * *

다크오션 프로덕션과 회의를 가진 뒤 일주일이 지나고.

고태서 감독은 제작한 콘티 및 촬영 장소, 그 외 촬영, 조명, 미술, 의상 등 세세한 타임 테이블까지 뮤직비디오 촬영 당일 필요한 모든 것을 합친 PPM(Pre-Production Meeting) 파일을 소속사로 보내 왔다.

“와…….”

고태서 감독의 영상은 몽환적인 분위기가 강한 것이 매력이었다.

그리고 그 매력은 콘티 단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은지가 원했던 장면, 내가 원했던 장면도 모든 것이 딱 적재적소에 들어가 있어서 이보다 최고일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간다?”

“네! 너무 좋아요!”

“마음에 드네요.”

이은지도 나도 이견은 없었다.

그렇게 결정이 내려진 며칠 뒤.

“화보요?”

“갑자기요?”

동시에 갑작스럽게 제안을 받은, CK 뮤직 라이프 매거진 화보 촬영까지 잡힌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뮤직비디오 촬영 날짜가 결정됐다.

* * *

촬영

“뜨흐, 추워…….”

벚나무와 높이 뜬 달.

푸른 잔디 위에서 춤을 추고 밤하늘에 어두워진 호수에서 잠이 드는 등 콘티로 볼 땐 정말 마음에 들었던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을 찍는 촬영장에 직접 섰을 때 느낀 점은…….

‘너무 현실적이다.’

도착한 실내 세트장에는 녹색으로 가득한 크로마키 벽면이 가장 먼저 눈길을 잡았다.

그래도 영상은 확실히 좋게 나올 것 같았다.

만들어진 벚나무는 만개한 디테일을 가지고 있었고, 바닥은 감독의 고집으로 인조 잔디가 아니라 실제 잔디로 세팅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외에 주변으로 보이는 또 다른 세트장들까지.

이 정도로 장면이 다양하게 나오는 뮤직비디오는 처음인지라, 솔직히 낯선 기분이 컸다.

“오…….”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훑고 있을 때였다.

옆으로 웬 이불 덩어리가 뒤뚱거리며 다가왔다.

“춥다…….”

익숙한 목소리에 얼굴을 확인하자 이불 덩어리는 이은지였다.

메이크업과 잘 손질해 둔 헤어가 헝클어질까.

얼굴만 드러낸 채 꽁꽁 싸매고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거 따뜻해 보인다.”

“아까 스태프분이 추워 보인다고 둘러 주셨어…….”

“나는.”

“닌 바지 입었잖아.”

“이게 바지냐?”

“그럼 그게 팬티냐?”

“누가 팬티래? 그냥 얇다는 말이잖아.”

“늬가 풴틔래?”

얄밉게 말을 따라 하는 이은지를 가만히 보면서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들끓었다.

이은지만큼은 아니지만 꽉 쥐고 있는 도톰한 담요만 아니었으면 무조건 그랬을 것이다.

촬영장은 정말 완벽했다.

날씨만 따뜻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오늘은 눈 오는 날보다 춥다는 영하 기온의 아주 맑은 날이었다.

아직 찬 바람이 떠나지 않은 1월은 시렸다.

‘실제로 아침부터 기숙사 2층 수도관이 동파되기도 했고…….’

덕분에 오늘 이은지랑 난 온수기가 설치된 1층 회사에서 샤워를 하고 왔다.

고로 상체를 싸맨 이 담요는 오늘 나를 지켜 줄 생명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이 날씨에 얇은 흰 와이셔츠와 검은 슬랙스 차림.

거기에 맨발로 버티기는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절대 와이셔츠와 반바지 하나만 입고 나댈 만한 그런 날씨가 아니라는 말.

‘근데 지금 우리가 그 미친 짓을 하고 있지.’

거기다 여성 댄서 4명, 남성 댄서 4명.

이은지가 와이셔츠를 이야기한 순간, 의상 콘셉트는 블랙&화이트로 고정되어 버린 듯 댄서들도 따라서 첫 의상은 검은 셔츠와 검은 슬랙스, 맨발로 결정됐다.

“뜨, 흐, 추워…….”

물론, 이 의상이 결정된 가장 큰 요인이었던 이은지는 여기서 가장 추운 차림새로 벌벌 떨고 있었다.

커다란 와이셔츠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도 않는 짧은 검은 바지.

그리고 맨발.

그런 은지보다야 다들 천 조각 하나라도 더 걸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들 이 한겨울에 올바른 차림새는 아니라는 거.

“은지야, 은호야, 얘들아! 여기 난로 있어. 이리 와!”

“어디요?”

“어디요!”

클라우드 댄스팀, 로아 누님의 부름에 난 먼저 난로 앞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온기를 확실하게 쬘 수 있는 명당이었다.

“끙.”

묵직한 이불 탓에 종종걸음으로 겨우 다가온 이은지는 늦은 만큼 난로 빛을 쬘 수 없었다.

그걸 놀려 주려던 찰나.

“아…….”

“감사합니다!”

착한 댄스팀원들이 이은지를 내 옆자리로 밀었다.

“따시다…….”

“그러게…….”

이은지가 노곤함에 취해 말을 흘리자, 클라우드 댄스 팀 인혁 형님이 이제 좀 살겠다는 듯 푹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난로 앞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일찍 준비를 마친 스태프들까지 옹기종기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두툼한 검은 패딩을 입고 모여 있어서 그런가.

왠지 펭귄 무리가 떠오르는 그런 풍경이었다.

그런데 이건 나만 그런 걸까.

이은지가 난로의 온기를 즐기고 있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속에서 뭔가가 들끓으며 언짢아졌다.

“아, 뭐 해!”

사실 생각을 했을 때쯤엔 이미 행동이 나간 후였다.

난 이은지한테 가는 온기를 몸으로 막아 섰다.

“비켜! 이은호! 미쳤나 봐!”

당연한 순서로 은지는 힘을 써 가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싫은데. 니가 와이셔츠만 입고 싶다 했잖아.”

“아니, 날씨가 이렇게 추운 줄 몰랐지! 그리고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

되지도 않은 핑계였지만, 뭔들 어때.

목적은 난로를 막아 버리는 거고 그건 이미 성공했는걸.

“아, 뜨뜻하다…….”

“이은호 이 X……!”

은지는 버릇처럼 욕을 뱉으려다 주변을 둘러보고 어금니를 꽉 물었다.

박 대표가 촬영장에 가서는 제발 입, 입, 그놈의 입 좀 조심하라며, 어제저녁 내내 은지를 4시간 동안 붙잡고 설교를 한 효과였다.

“비켜 주시겠어요, 오라버니?”

은지는 눈꼬리까지 휘며 착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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