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41화 (41/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41)

박 대표가 오튜브에 영상 업로드를 시작한 이후, 정작 이 채널의 주인공들은 오튜브 댓글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찾아보려면 언제든 볼 수 있기야 했었지만, 은호는 정말 성격이 바뀌기라도 한 건지 오튜브 영상을 올리자며 제안한 건 은호였는데 정작 오튜브 채널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최근 스케줄이 워낙 바쁘다 보니 그것도 무관심에 한몫하긴 했다.

‘은지는 원래부터 관심은 있지만, 딱히 먼저 나서서 궁금해하는 타입은 아니고.’

박 대표는 당장이라도 세상 사람들이 너희에게 이렇게 관심이 많다며 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구독자 1만 명 또는 그 전에 혹시나, 정말 혹여나.

은호와 은지가 지칠 적에 힘내라며 보여 주기 위해 보물 상자처럼 고이고이 이 소식을 아꼈다.

박 대표는 오튜브 채널에서 겨우 시선을 돌리며 다시 영상 편집에 들어갔다.

은지가 촬영하고 박 대표가 편집한 콘셉트 비디오 위에 은지의 내래이션을 또 한 번 입히는 작업이었다.

* * *

―저는 이 곡을 쓴 E-UNG 팀의 이은지입니다.

―그리고 이 영상은 저희 신곡이 될 듀오의 콘셉트 비디오입니다.

다크오션 프로덕션 미팅 날.

미팅은 다크오션 프로덕션의 건물 내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흰 벽에는 빔 프로젝터로 이은지가 준비한 콘셉트 비디오가 재생되고 있다.

E-UNG이 어떤 가수인지, 어떤 곡을 쓰는지, 이번 듀오는 어떤 콘셉트로 제작된 곡인지 등 많은 이야기를 최대한 짧고 굵게 전달하기 위해 이은지와 대표님이 정성스레 준비해 온 영상이었다.

―그런 생각 다들 한 번쯤 하게 되지 않나요?

―어릴 땐 마치 닫힌 문 너머에 괴물이 있을 것 같다거나, 어른이 된 이후에는 ‘오늘 가스를 껐던가?’ 같은, 소소하지만 크다면 클 불안들요.

영상에는 은지가 곡을 작업하며 셀프로 찍은 장면과 녹음 당시 은호가 덤덤하게 몰입한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뭐 찍냐?”

―“비밀.”

미친.

난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작게 한숨을 뱉었다.

삽입된 영상은 안무 연습이 끝난 이후에 내가 연습실 구석에 앉아 중얼거리며 가사를 외는 모습이었다.

‘저걸 왜 저기다가 넣어!’

차마 회의 중이라 큰 소리를 입 밖으로 내진 못 하겠어서, 대신 이은지를 강하게 쏘아봤다.

“저 장면을 저기 넣으면, 그래도 회의 자리인데……!”

영상 시청에 방해될까, 이은지와 대표님에게 속삭이며 물었다.

―이은호. 이 사람은 제 오빠죠.

이은지와 대표님은 당당히 ‘V’ 손 모양을 하며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였다.

차분히 붙은 이은지의 사설에 더 속이 울컥거렸다.

―오빠는 저에게, 아, 이 이은지에게!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이었고 남매였고 지금은 음…….

―“아, 이런 거에 카메라 들지 말라고!”

풋.

옆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엔 이은지의 웃음소리였다.

―그냥 바보?

하하하.

이따 회의 끝나고 따로 끌고 나가서 진지한 회의에 무슨 영상을 가지고 온 거냐고 타박할 생각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비디오를 보며 괜한 민망함을 느끼는 건 나뿐인 듯 이번 장면에서 회의실의 굳어 있던 분위기가 조금 풀어졌다.

이런 분위기를 노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좋아진 분위기에 타박하기는 힘들게 됐다.

‘분위기가 좋아진다면야…….’

긍정적인 결과라면 내 이미지를 이용하는 편이 나쁘진 않았다.

―저는 앞으로도 제 모든 감정과 저한테 일어나는 모든 이야기를 가지고 곡을 쓸 거예요.

영상 속 이은지는 다시 진지하게 내래이션을 이어 갔다.

진중한 목소리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내용에 귀를 열었다.

‘모든 감정과 이야기.’

회귀 전, 이은지가 냈던 앨범들을 들으면 그 당시, 그 무렵.

이은지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있는지가 훤히 보였다.

그래서 종종 꽤 격한 디스 곡이 순위권에 오른 일도 있었다.

―그래서 일단 첫 싱글에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제 친오빠, 이은호의 불안을 담아 봤어요.

―이은호와 저는 가족이자 가장 가까운 사이이지만, 가장 서로를 이해할 수 없기도 하거든요.

어깨의 힘이 탁 풀어졌다.

기분 탓은 아니고, 그냥.

나도 모르게 긴장이라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저희를 보고 거울처럼 닮았다고 해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이은지의 내래이션 그대로, 사람들은 우릴 보고 성별만 다른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다고 자주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 세세하게 다른 면이 정말 많았다.

―오빠는 최근 계속 이상한 꿈을 꿨어요. 제가 사라지는 악몽이었다고 해요.

며칠 전.

현우 형님과 같이 떡국을 먹던 날이었다.

“이은호.”

“뭐.”

“나 콘셉트 비디오에 듀오 가사 이야기 왜 쓰게 됐는지 그 이유 있잖아.”

“어. 뭐, 내 악몽?”

“응. 그거 영상에 그대로 넣어도 돼?”

“넣어. 니가 쓴 곡인데 그걸 나한테 왜 물어봐?”

“그냥, 니 이야기니까.”

“마음대로 해. 작업에 필요한 거 아니야?”

“그렇지.”

“일에 필요한 거잖아.”

“응…….”

“일할 때 쓴 건 뭘 쓰든 뭐라 안 해. 결과가 좋을 자신만 있으면 뭐든 갖다 써.”

“진짜지?”

“어.”

아마 그래서 바보라던가 그런 헛소리랑 같이 연습하던 모습을 찍어 올린 것 같다.

결국은 회의 분위기도 좋아졌으니 불만은 없다.

‘게다가…….’

지금껏 무관심한 시선으로 화면을 보던 고태서 감독의 눈빛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화면에는 은지의 방문이 나오고 있었다.

―매일 밤, 오빠는 제 방문을 노크해요.

―그리고 말해요.

―“아, 있네. 있구나.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그런 오빠를 보면서 조금 슬픈 상상을 해 봤었어요.

―오빠와 전 평생을 같이 붙어 다녔거든요.

화면에는 크게 흘림체로 D가 쓰였다.

―그래서 생각해 봤어요.

―혹시 오빠가 꾸는 악몽이 우리 둘 중 하나가 사라진 악몽은 아닐까.

이어서 화면에는 U와 O가 연결해서 쓰였다.

거칠지만 안정적인 글씨였다.

―그렇게 이 DUO를 만들었어요.

―앞으로 저희 남매를 지켜봐 주세요.

―같지만 다른 저희는 이은호, 이은지.

―E-! U.N.G 이응입니다!

짝짝짝짝.

활기찬 이은지의 인사를 끝으로 짧은 영상이 마무리됐을 때, 스태프들과 고태서 감독은 함께 박수를 보냈다.

은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은지야, 일어나서 인사해.’

박 대표가 소리 없이 팔꿈치질로 건넨 지시를 따른 행동이었다.

“제작 기간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심의 포함해서 적어도 2월 8일에는 무조건 나와야 합니다.”

고태서 감독의 질문에 박 대표가 말했다.

유통사에 배급되기 위해 심의 단계는 짧으면 3일에서 약 일주일 정도가 걸리곤 했다.

즉, 시간이 그리 여유롭지는 않다는 말이었다.

“노래는 오늘 들어 볼 수 있습니까?”

“예.”

박 대표는 챙겨온 블루투스 스피커를 꺼내며 웃었다.

고태서 감독과 스태프들은 집중하며 DUO의 가이드 버전을 들었다.

“곧 마스터링 들어갈 가이드라 후에 큰 차이도 없을 겁니다.”

보컬과 기본적인 멜로디는 완성 단계에 가까웠다.

거기다 콘셉트에 대해서도 비디오를 통해 충분히 설명한 덕분인지, 이에 관한 조율은 편안하게 이야기가 됐다.

“원하시는 의상이라던가 장면, 뜻 같은 건 더 없으십니까?”

고태서 감독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우리한테 물었다.

“벚나무에 기대서 잠드는 장면을 넣고 싶습니다.”

“잠드는 장면이라…….”

감독은 이것저것 조각을 짜 맞추듯 고민을 거듭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봐 온 바로 ‘나쁘지 않네요’라는 의미의 끄덕임인 것 같았다.

“저…….”

그때 은지가 조용히 손을 들며 소리를 냈다.

“네. 은지 씨,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저, 원하는 의상이 하나 있는데요…….”

은지가 평소와 다르게 소심하게 눈치까지 보며 말을 이었다.

“제 무릎 절반쯤 오는 큰 와이셔츠를 입고 맨발로 춤을 추는 장면이 있었으면 해요…….”

의외로 소심하게 입을 연 것치고는 확실한 고집이 있는 장면 예시였다.

나한테도 이야기한 적 없던 내용인지라 처음엔 의문이 먼저 들었다.

특히, 어째서 큰 와이셔츠인 건지…….

“왜 와이셔츠야?”

“내 키가 몇인지 알아?”

“몇인데?”

“174cm”

오.

“너 그렇게 컸었냐?”

“어.”

상당히 큰 키였다.

하긴 이은지랑 같이 어디 동네를 걸으면 눈높이가 안 맞는 경우가 많았지.

특히 구두.

그것도 킬 힐을 좋아하는 은지의 취향 덕에, 바깥에선 180이 넘는 나조차 이은지를 올려다보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했다.

“아무튼 그래서 키랑 와이셔츠가 무슨 상관인데?”

“나 어깨도 좀 있잖아. 그래서 오빠 옷 입어도 여유롭게 박스 티 느낌으로 걸쳐지거든.”

음.

하긴 남매는 남매인지 이은지는 내 어깨만큼이나 상당히 굵은 골격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넓은 어깨 덕분인 건지 긴 하체가 더 도드라져 보이며 머리가 작아 보이는 착시 현상.

흔히 ‘옷발’을 많이 받았다.

‘잠깐만.’

근데 생각해 보니까 ‘오빠 옷을 입어도’라는 건…….

“야, 너 내 옷은 또 언제 꺼내 입―.”

“여튼 좀 다물고 들어 봐. 내 로망이라고! 막 큰 옷 입었을 때 딱 매력적으로 가려지고 그런 거!”

자기한테 난감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은지는 말을 끊으며 이야기를 마저 이었다.

“그래. 와이셔츠는 그렇다 치고, 그럼 맨발은 굳이 왜?”

“그렇게 큰 와이셔츠 입었으면 당연히 발은 맨발이 포인트잖아.”

“뭐야, 그게.”

“취향이야. 존경해.”

“‘존중해’겠지. 춤은 왜?”

“그건 그냥 예쁠 거 같아서 넣고 싶었는데?”

“아, 그래.”

취향이라고 하니 딱히 할 말이 없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양하니까.’

우리가 잠시 소곤거리던 그사이.

대표님과 고태서 감독은 촬영 일정은 물론, 정확한 액수까지 오가며 계약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허?’

난 스쳐 가며 그 액수만 들었는데.

좀, 놀랐다.

박 대표가 제시한 금액은 이 시장을 알고 있던 나조차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후한 금액이었다.

질 높은 뮤직비디오를 원한다는 부탁이 덧붙은 값이긴 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금액인 건 분명했다.

이쯤 되니 과거에는 생각 없이 살던 시절이라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우리는 학생 때부터 대표님의 손에서 길러졌다.

찜질방을 전전하며 살던 우리에게 집과 먹을 것 심지어 교육까지.

TaKa 엔터테인먼트 사옥 앞에서 마주친 그날부터 지금까지.

‘근데 나, 왜 대표님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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