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40)
연속으로 잡힌 미팅에 이리저리 불려 다니기 며칠 전.
새해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잉.
현우는 이젠 한결 익숙하게 카메라를 다루며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의 2층으로 향했다.
은호와 은지가 기숙사로 사용하고 있는 층이었다.
현우는 스케줄이 없는 날에도 이틀에 한 번꼴로 은호와 은지의 일상을 기록했다.
그건 1월 1일, 새해를 맞이하는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전 본가도 없고, 집에 가도 어차피 혼자라서…….”
“그, 그래?”
박 대표는 재차 그래도 쉴 때는 쉬고 오라고 말했지만 그걸 거절한 건 현우 본인이었다.
“저한테는 은호 씨랑 은지 씨가 새해 선물인걸요.”
“……현우 씨는 그, 그런 근질거리는 말을 되게 서슴없이 잘하네.”
“네?”
박 대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와중에 현우는 박 대표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애들만 두는 게 아니니까 걱정은 조금 덜었네.”
“걱정을 더실 만큼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수당은 톡톡히 챙겨 줄 테니까 잘 부탁할게, 현우 씨.”
“네!”
씩씩한 대답에 박 대표는 현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함께 대표실을 나섰다.
“그럼 난 이만 퇴근해 볼게요. 새해 복 많이 받아, 현우 씨.”
“대표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 세요!”
“응?”
“아, 말이 헛나와서…… 마, 많이 받으세요!”
“하하. 그래요.”
연말에 박 대표는 본가에 내려가야 한다며 평소와 달리 이른 시간에 퇴근했다.
그리고 다시 1월 1일.
2층에 올라온 현우는 불투명한 유리창이 달린 갈색 알루미늄 문 앞에 섰다.
똑똑.
끽―.
현우의 노크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귀 아픈 소리를 내며 열렸다.
“어, 형님, 오늘 쉬는 날 아니셨어요?”
“반납했어요, 촬영 겸.”
은호가 화들짝 놀라며 묻자 현우는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오튜브에 홍보용 영상 업로드를 위해서이기는 했지만 새해 선물이라는 말이 빈말은 아닌 듯 인사를 하는 현우의 표정이 굉장히 밝았다.
“오, 식사는 하셨어요?”
“아직이긴 한데…….”
2층 문이 열리면서 진한 육수 향기가 퍼져 나왔다.
“새해고 해서 떡국 좀 끓였는데, 같이 드실래요?”
“은호 씨가 직접 끓이셨습니까?”
“혼자 지내면서 이래저래 해 먹다 보니까…….”
현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 대표에게 은호는 항상 은지와 함께였다고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 그, 그러니까 이은지가 없을 때 한 번씩 몰래 해 먹었다는 뭐, 그런…….”
“아.”
은호는 뒤늦게 변명을 덧붙였다.
현우는 잠시 의아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더니 이내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 켜도 될까요?”
현우가 묻자 은호는 은지의 방을 힐끗 보더니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가 카메라를 켜는 동안.
“야, 이은지! 일어나서 밥 먹어!”
쾅쾅쾅.
은호는 떡국 세 그릇을 세팅 후 은지의 방문을 거칠게 두드리며 소리쳤다.
거친 주먹질이 횟수로 열 번을 넘길 무렵.
그제야 방문 너머로 은지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쾅, 쿵, 빠각.
뭔가에 부딪쳐 떨어지고 잘못 밟아서 박살 난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은지의 방문이 천천히 열리며 웬 산발을 한 귀신이 문을 열었다.
“갑자기 웬 아침이야…….”
“떡국 먹으라고.”
“웬 떡국?”
“오늘 1월 1일이잖아.”
“1월 1일이 뭔데?”
“아직 잠 덜 깼네.”
“이, 씨…… 빗 부러졌어…….”
은지는 발에 붙은 플라스틱 조각을 대충 털어 내며 거실로 나왔다.
벽에 부딪힌 건지 붙은 건지 모를 그때.
스르르륵.
아래로 흘러내린 은지는 거실에 누워 다시 잠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야, 이은지.”
“응…….”
“앞에 형님 계셔. 촬영 중이고.”
“응…….”
“얼른 정신 차려.”
“응…… 어? 무슨 형…….”
잠에 취해 있던 은지의 눈이 번뜩 뜨였다.
이걸 찍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현우는 고민이 가득한 얼굴로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X……발…….”
은지는 아직 반쯤 남은 잠결에 저도 모르게 버릇처럼 욕을 흘리며 눈을 까뒤집었다.
은지의 동공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을 땐 은호를 날카롭게 쏘아보고 있었다.
“방에서 나오기 전에 이야기해야 할 거 아니야, X친 새끼야…….”
“하하.”
은지는 은호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이며 말했다.
은호는 보기 좋게 비웃음을 띠며 답했다.
“내가 왜? 늦게 일어난 니가 잘못이지.”
“와, 두고 봐라.”
“밥이나 처먹어.”
“갑자기 무슨 밥…….”
은지는 투덜거림도 멈추고 놀란 눈으로 상에 놓인, 고명까지 예쁘게 올라간 정갈한 떡국을 바라봤다.
“뭐야?”
“뭐가.”
“오늘 무슨 날이야?”
“새해라고, 멍청아.”
“이거 오빠가 끓이신 거예요?”
은지는 감동이라도 받은 얼굴로 현우를 바라봤다.
“네? 아뇨. 아뇨. 저기.”
현우는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검지 끝으로 은호를 가리키며 입을 닫았다.
“내가 했다, 새끼야.”
“이은호, 죽을 때 됐어……?”
악!
은호가 숟가락으로 은지의 정수리를 때리자 은지의 비명이 집을 울렸다.
“아주 그냥 넌 해 줘도 X랄이지.”
“아니…….”
은지는 숟가락으로 맞은 정수리가 아픈 듯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눈을 질끈 감았다.
어지간히 얼얼한 듯 눈가에는 살짝 눈물마저 맺혀 있었다.
“한동안 안 그러더니 갑자기 또 미친 건가 싶어서 그랬지.”
은지가 이전보다 한결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때.”
상대가 원하지 않는 친절은 민폐라고 했던가.
언제를 이야기하는지 알 것 같았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왜 그러느냐, 동생아. 무엇이 너를 그토록 화가 나게 했느냐?”」
「“너요. 너 새끼요! 이은호 X자식아! 불만이 있으면 차라리 대놓고 욕을 해! 이딴 X 같은 수작질 부려서 사람 기분 잡치게 만들지 말고!”」
회귀한 것이 믿기지 않던 당시에 꿈이라고 생각하고 벌였던 ‘착한 오빠 프로젝트’를 말하는 모양.
“안 미쳤고, 내가 먹고 싶어서 하다가 양이 많아져서 차린 거니까 그냥 조용히 먹어라.”
“예, 잘 먹겠습니다.”
푸흡.
반박하지 않는 은지의 반응을 예상치 못한 듯.
현우는 조용히 떡국을 후후 불다 터진 웃음 때문에 힘 조절에 실패했다.
다행히 숟가락에 떠진 떡이랑 국물이 튀기지는 않았다.
이후에는 조용한 집 안에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치는 맑은 소리만 이어졌다.
“아, 곧 있을 미팅 말이야.”
얼마 남지 않은 떡국을 떠먹던 은호가 입을 열었다.
떡을 입으로 가져가던 은지는 일단 마저 먹은 후 한 박자 늦게 그에 대답했다.
“무슨 미팅?”
“대표님이 조만간 다크오션 프로덕션 감독님이랑 미팅 있다고 했었잖아.”
“아, 응. 그랬었지.”
은지는 이번엔 조각낸 만두를 주시하며 말했다.
“소개는 네가 알아서 준비한다고 했었고.”
“후―, 후―. 아, 그거. 응, 콘셉트 비디오로 준비했어. 오튜브에도 올릴 거라고 대표님이 편집 중이셔.”
대답 후 빤히 바라보던 만두는 곧장 은지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그럼 그건 됐고. 그다음이, 뮤직비디오 컨셉이나 원하는 장면 같은 거, 우리끼리 상의해서 이야기해 달라고 하셨잖아.”
“그랬나?”
“어. 생각해 둔 거 있음?”
“음.”
은지는 눈을 질끈 감더니 잠시 후 맑게 눈을 뜨며 대답했다.
“없는데?”
“제발 그따위로 대답할 거면 고민하는 척은 안 하면 안 되냐.”
“언제는 고민하는 척이라도 하라며!”
“진짜 척을 하라는 말이 아니잖…… 에휴. 됐다.”
“근데 진짜 떠오르는 게 없는걸.”
은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은지는 최근 작업 속도에 불이 붙어 한 곡을 작업할 때 짧으면 20분, 길어도 고작 하루 정도의 시간만 걸린다.
이후에는 뽑아낸 곡 중 본격적으로 편집할 곡과 들려줄 것들을 선별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소요했다.
그 속도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게 없다.’라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 곡은 무시무시하게 뽑아내잖아.”
“곡이랑 이건 다르지.”
“왜 달라? 창작의 영역인 건 같잖아.”
“그러니까 그…… 아, 이걸 뭐라고 설명하지?”
은지는 숟가락을 입에 문 채 팔 하나에 의지한 채 몸을 뒤로 눕혔다.
그러고는 무심하게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숟가락을 문 입을 비죽였다.
대답을 할 땐 어떻게 하려나 싶어 가만히 보고 있자 숟가락을 다시 손에 쥐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곡으로 찍으라고 하면 모르겠는데 이미지라든가 글로 쓰는 거라든가 그런 건 상상 자체가 안 된다고 해야 하나, 그냥 힘들어.”
“뭔 소리야. 너, 듀오 가사 니가 썼다며?”
“그래서 듀오 쓸 때도 머리 폭발하는 줄 알았지.”
은호는 한숨을 내쉬다 멈췄다.
‘아?’
문득 은지의 작곡에 대한 천재성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깨달았다.
‘그건 몰랐는데.’
그런 거였구나.
회귀 전에는 같은 팀으로 활동하지 않았고 작곡으로는 재주도 없어서 의견을 내는 정도의 지식만 있었을 뿐이라…….
은지가 만든 음악에 관해서는 ‘좋다’, ‘어느 부분이 강하면 좋겠다’ 등 결과물의 감상문을 들려주는 대화만 했었다.
‘음악적인 상상이라…….’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래, 곡 뽑았으면 다 한 거지 뭐. 밥이나 마저 먹어. 그거 생각은 내가 할 테니까.”
“오케이.”
은지는 은호의 결정이 마음에 든 건지 씨익 입꼬리를 늘이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후에는 어느새 입술에 대고 있던 숟가락을 다시 떡국으로 옮겨 갔다.
‘뮤직비디오…… 어떤 콘셉트가 좋으려나.’
* * *
그날 찍은 영상은 아빠 미소를 띤 박 대표의 손에서, 욕설과 은지의 초췌한 모습만 편집되어 오튜브에 그대로 업로드됐다.
[이거 분명히 그냥 일상 브이로그인데 왜 저기만 그림체가 다른 거 같냐.]
└ [공감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 뭔 말인지 알겠다.]
└ [그림쳌ㅋㅋㅋㅋ 표현 미쳤네ㅋㅋㅋㅋ]
[3:22 여기 쌩얼 존예.]
지예찬의 쇼케이스와 OST, 야외 공연 등.
어느새 차곡차곡 쌓인 영상과 그동안의 활동.
……에도 불구하고 오튜브의 구독자는 이제 막 천 명을 겨우 넘어가고 있었다.
[뭔데. ‘밥이나 먹어라’ 뭔데! 이은호 표정 뭔데! 얼굴 뭔데!!! 웃는 거 뭔데!!!!!!]
[해 줘도 X랄이라면서 숟가락 놔주는 거 X나 심쿵.]
[오빠 여기 서류에 도장 한번 찍어 볼래? 응? 무슨 서류냐고? 혼인 신고서라고 별건 아니야.]
다만 앞으로 공인이 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은호와 은지의 거친 말투.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강렬한 티키타카 탓인지, 모호한 구독자 수에도 불구하고 댓글 창은 항상 열정적이었다.
박 대표는 은호와 은지의 칭찬에는 흐뭇함을, 악의적인 댓글에는 조용히 삭제를 누르며 오튜브 관리를 취미처럼 즐겼다.
“얼른 보여 주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