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39)
드문드문 켜져 있는 가로등을 지나치며 이은호는 나를 업은 채 하염없이 걸었다.
절대 그 집 근처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듯 철저하게 방향을 확인하며 이동했다.
한참을 걸어, 주변을 둘러보던 이은호는 터널형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터를 찾았다.
이은호는 나를 업고 끙끙거리며 미끄럼틀을 올라가더니, 위에서도 몇 번을 더 정말 안전한 곳인지 확인한 후에서야 편하게 자리에 앉았다.
난 그제야 내 다리가 웬 머리통만큼이나 부어 있다는 걸 뒤늦게 확인했다.
“왜 아무나 믿고 따라가! 이 멍청아!”
어쩌다 그 아줌마를 따라갔는지 이야기를 들은 이은호는 화를 냈다.
“오쁘허어어어엉.”
이은호의 좁은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펑펑 울었다.
오빠가 화내는 목소리를 듣자, 난 그제야 ‘아, 내가 죽을 뻔했구나’.
하지만 살아있구나.
거기서 탈출했구나.
하나씩 실감이 났다.
이은호는 날 끌어안고 말없이 등만 토닥였다.
지금 생각하니 아마 이은호도 울었던 것 같다.
그날 내 등이 꼭 비라도 맞은 것처럼 젖어서 차가웠으니까.
“끅, 오빠는, 나 어떻게 찾은 거야?”
“동네를 다 뒤지다가 그 아줌마가 어떤 아저씨랑 이야기 나누는 걸 들었어.”
“그 여자가 내 이야기하고 있었어?”
“아니. 어린 애 하나 잡아 놨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왠지 너인 거 같아서.”
“헤헤. 도박이었네.”
“웃음이 나냐? 확 그냥…….”
“헤헤…….”
이은호는 나를 찾기 위해 잠도 자지 않고 돌아다녔다고 했다.
온 동네를.
그 동네에 없는 것 같아서 옆 동네로 넘어가고, 이후에는 그 옆 동네까지.
일주일 전 새 신발 같다며 주워 신은 신발 밑창이 다 닳아 있었다.
바쁘게 다녔다는 게 눈에 보였다.
“오빠, 발…….”
“아.”
신발을 벗은 이은호의 발에는 물집이 가득했다.
손은 문을 따다가 다친 건지, 눌어붙은 피딱지와 함께 내 다리만큼이나 퉁퉁 부어 있었다.
“아파?”
“별로.”
별로라고 말할 상처가 아닌데.
식은땀을 흘리는 양 또한 나만큼이나 이은호도 마찬가지였다.
“……왜 신고 안 했어? 우리 지금이라도 신고하러 가자. 나쁜 놈들이잖아.”
이은호는 나한테 나쁜 일이 생기면 꼭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라고 했었다.
그랬던 본인은 왜 안 그런 건지.
궁금해서 물었는데, 이은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경찰서, 당연히 찾아갔었지.”
“아저씨들이 나 있는 곳에 데려다준 거야?”
“아니.”
그 동네가 나빴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사람 만나는 운이 더럽게 나빴던 것일 수도 있겠지.
“쫓겨났어. 더럽다고.”
분명한 건.
그 이야기를 하던 이은호의 눈은. 지금 생각하면 아이의 눈빛이라기엔 희망이 죽어 버린 눈이었다.
* * *
Same day, Same time
Same day, other crime
나서야 했던 새벽길에
걸어야 했던 새벽길을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날, 다른 죄악.
이은지를 찾던 일주일.
그동안 겪었던 좌절과 희망은 내 삶의 신조를 뒤바꿨다.
‘우리를 비록 평소에는 내버려 두고 무시해도 위험한 순간에는 지켜 주겠지.’
나는 당시 어른들을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저…….”
단 한 글자를 뱉었다는 이유로 수많은 욕을 먹었다.
자주 듣던 욕이었는데 이은지가 없어서였을까.
나는 아무것도 없는 꼬맹이가 되었다.
이은지를 되찾은 날.
나는 퉁퉁 부어 있던 내 손보다도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더 아팠다.
그 시절 미련했던 서로가
거칠었던 어린 숨과 흔적뿐인 가치가
Same day, Same time
몸뚱이에 난 상처는 괜찮았다.
그래도 그건 내 몸 한정이지 이은지 발목은 아니었다.
경찰서에서 쫓겨난 그 기억 때문에 차마 병원으로 갈 순 없었다.
나는 괜찮지만 아직 어린 이은지는 그런 일을 안 겪길 바랐다.
그래서 대신 약국에 갔다.
가진 돈을 다 털어 약을 사기 위해서였다.
들어서기 전에도 혹여나 또 쫓겨날까.
일부러 옷과 머리도 더 탈탈 털었다.
“여기, 이건 붓기에 쓰는 약이고 이건 파스.”
손끝에도 안 닿으려 노력하는 약사님의 떨리는 손.
더러운 내 모습이 미안해서 일부러 봉투 아래를 받아 들었던 게 기억난다.
꿈만 꿨던 prime 부족했던 cash
그럼에도 놓지 못한 여전한 wish
그때 경험 때문일까.
성인이 될 때까지도 나는 항상 마음에 가시를 두른 채였다.
동시에 이중적으로 난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었다.
TV 속에 비치는 예쁘고 잘생긴 외모.
좋은 옷들, 응원과 함성, 도움을 청하면 바로 손길을 뻗어 주는 사람들.
그래서 나는 아이돌을 꿈꿨다.
노래는 나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나는 몰라도 이은지는 노래를 잘 만드는 천재니까.
하지만 세상에 천재는 생각보다 흔했고, 나는 천재가 아니었다.
―그런 생각 다들 한 번쯤 하게 되지 않나요?
―어릴 땐 마치 닫힌 문 너머에 괴물이 있을 것 같다거나, 어른이 된 이후에는 ‘오늘 가스를 껐던가?’ 같은, 소소하지만 크다면 클 불안들요.
다크오션 프로덕션과 뮤직비디오 콘셉트 회의 당시.
은지와 대표님은 언제 준비한 건지 콘셉트 비디오를 따로 준비해 왔었다.
그때 이은지는 나레이션을 통해 그런 말을 했다.
―저는 앞으로도 제 모든 감정과 이야기를 가지고 곡을 쓸 거예요.
―그래서 일단 첫 싱글에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오빠, 이은호의 불안을 담아 봤어요.
―이은호와 저는 가족이자 가장 가까운 사이이지만 가장 서로를 이해할 수 없기도 하거든요.
회귀 전에는 어떻게든 같은 시작점에서 먼저 정상에 가 버린 이은지를 이겨 보겠다고 온갖 발악을 했었다.
하지만 이은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
이은지의 환상에 근 1년을 시달리며, 이젠 ‘네가 낫네’, ‘내가 낫네’ 같은 타령은 지긋지긋해졌다.
덕분에 지금 과거로 돌아온 나는 이 상황을 그냥 즐기는 중이다.
이은지가 일기장에만 남겨 뒀던 같이 무대를 하는 소원이 현실이 되도록.
Same day, Same time
Same day, Same Dream
나서야 했던 새벽길에
걸어야 했던 새벽길을
* * *
이은호 12살.
나 이은지 10살.
꼬맹이에 불과한 그 시절.
그날의 우리는 퉁퉁 부은 눈을 한 채 걷고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익숙한 동네가 나오질 않던 그때.
한참이 지나서야 우리는 낯선 버스 정류장에서 지도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제야 이상한 곳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사 가자, 이은지.”
이은호는 대뜸 퉁퉁 부은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가진 게 없던 우리를 묶어 둘 것은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만큼 어디든 갈 수 있는 게 우리였다.
난 이은호한테 업힌 채 목을 꽉 끌어안았다.
이번엔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게.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고.
Good night
다음 날, 우리가 다시 웃으며 만날 수 있게
다시는 못 들을 것 같던 말이었는데.
이걸 이렇게 다시 듣네.
“내일도 웃으면서 보자. 잘 자라, 이은지.”
딱 일주일 한정이었지만, 그날 이후.
이은호는 내가 잠들 때면 그렇게 인사했다.
이젠 오그라들 정도로 낯간지러운 인사가 되어 버렸지만…….
* * *
Good night
한 트랙을 멈추지 않고 달린 은호에게 배진수가 손뼉까지 치며 감탄하는 그때.
은지는 그동안 앉아 있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은호가 부스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 이 우럭 대가리야!”
“왜 나오자마자 X랄이…….”
은호가 밖으로 나온 그 순간.
은지는 멱살까지 쥐어 채며 소리쳤다.
“가사 X나 잘 쓰네!”
“뭐? 뭔, 아, 하하하하.”
한마디 하려던 은호는 당황하며 되물었다.
그것도 잠시, 은지의 퉁퉁 부은 눈을 본 순간.
모든 상황을 이해한 듯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부스 안에 있었던 터라 전혀 몰랐는데 바깥은 분위기가 참 희한했다.
이은지는 퉁퉁 부은 눈으로 투덜거리고 있고, 작곡가님은 묵묵히 손뼉을 쳤다.
와중에 스튜디오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현우 형님은 그런 상황이 여러모로 혼란스러워 보였다.
이런 상황에도 박 대표가 현우에게 쥐여 준 카메라는 계속 모든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 * *
은호와 은지가 스튜디오를 떠난 뒤.
저녁이 지나 뒤늦게 스튜디오를 찾아온 박 대표는 배진수가 다듬고 있던 가이드를 들었다.
“이게 은호가 쓴 가사라고?”
“한 시간도 안 걸렸어.”
“이걸?”
배진수는 박 대표가 주문한 저녁 메뉴를 테이블에 세팅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어떻게 부를지도 다 정해 뒀더라.”
“은호가? 은지가 아니라?”
“응, 은호 씨가 쓰자마자 녹음 바로 들어간 게 이거야.”
박 대표는 뒤통수를 여러 대 얻어맞은 얼굴이었다.
믿기지 않는지 녹음된 가이드를 이후로도 여러 차례 더 재생했다.
“이게 바로 들어간 거라고……?”
“남매는 남매인가 보더라. 은지랑은 또 다르게 타고난 재능이 남달라.”
처음엔 어떤 느낌인지.
두 번째에는 준비 중인 다음 앨범과 잘 어울리는 분위기인지.
마지막 세 번째에는 그냥 믿기지 않아서 한 번 더 들었다.
박 대표는 식어 가는 볶음밥을 두고서 손가락으로 테이블만 톡톡 두드려 댔다.
“이거…….”
후루룩.
박 대표가 조용히 입을 열자 배진수는 박 대표가 손대지 않은 짬뽕 국물을 들이켜려다 멈췄다.
“타이틀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수록곡으로는 최고다.”
“그래?”
“이번 싱글이랑 주제도 통하는 것 같고.”
“픽스한다는 거지?”
“어.”
배진수는 한결 후련한 마음으로 국물 한 모금을 들이켠 후 웃었다.
“싱글 준비는 잘 되고 있어?”
“내일모레부터 촬영 들어가. 시간이 없어서 얼른 해야 돼.”
“어디에 맡겼는데?”
“다크오션.”
툭.
“나흘 전부터 티저랑 콘셉트 비디오 같은 건 먼저 보일 거지만…….”
박 대표가 이야기를 이어 가는 와중, 짜장면을 입으로 가져가던 배진수는 젓가락까지 놓으며 다시 물었다.
“다, 다크오션에?”
“응.”
“너 진짜 그 애들한테 진심이구나.”
“내가 끌고 왔으니까, 제대로 빛 보게 해 줘야지.”
* * *
Concept Video
띵―.
띵―.
한창 일하던 주연의 휴대폰이 연달아 울렸다.
“누구야? 누가 일할 때 알람 켜 놨어?”
“죄송합니다!”
주연은 황급히 알람을 끄려던 그때.
화면을 본 순간 손을 멈칫했다.
“X친!”
알람을 확인한 그 순간.
회사인 것도 잊고 주연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주연 씨!”
“죄송합니다!”
상사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을 떨었다.
죄송한 건 죄송한 건데!
상사보다 더 강하게 주연의 본능을 건드리는, 상단에 뜬 영상 제목 때문이었다.
[E-UNG ― DUO(듀오) Concept 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