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38)
악몽조차 되지 못한 기억이 더는 널 시리게 하지 않게
두 번 놓지 않을게
다신 잃지 않을게
하이라이트에서 지른 천장이 없는 고음은 조금 전 잔잔함과 대비돼서 소름마저 돋게 했다.
“씨X 진짜…….”
망할 이은호.
노래는 또 왜 이렇게 잘 불러서.
욕을 뱉은 은지의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다.
* * *
너무 오래 지나 버린 일이라 흔적만 남아 버린 기억이었다.
사실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며 그렇게 믿고 싶었던 기억이기도 했다.
두 아이가 있었다.
낡은 폐가에서 주워 온 나무판자를 벽에 덧대 살아가던, 더러운 두 어린아이가 있었다.
평범한 학교생활조차 꿈이었던 두 아이.
“손 잡아. 넘어져.”
“싫어! 나 안 넘어져! 놔!”
늦은 저녁, 눈앞의 길조차 잘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이었다.
이은호가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그 손을 거칠게 쳐 내며 소리쳤다.
그날 너무 먹고 싶었던 100원짜리 사탕을 안 사 줬다고 부리던 투정이었다.
‘바보같이.’
그때의 난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였다.
날 돌보는 이은호도 같은 꼬맹이라는 것도 몰랐을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다.
그리고 그날은 평소보다도 어두운 밤이었다.
밤새워 놀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하하하. 이 X친 새끼가!”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밖에 들리지 않던 폐가의 앞마당이건만…….
그날은 평소 들어 본 적 없던 낯선 말소리가 들렸다.
우린 거기에 들어가선 안 됐다.
그때 도망쳤어야 했다.
“누구야!”
꼬맹이 둘이 독기만 품으면 다 될 줄 알았던, 겁 없던 그 시절.
한 번의 판단이 지옥을 불러 왔다.
잡으라던 손을 잡지 않고 고집 부렸던 게 문제였다.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남자에게 나는 짐짝처럼 붙들렸다.
이은호는 뒤늦게 손을 뻗어 봤지만, 짧은 팔이 닿기엔 남자의 키가 너무 높았다.
“제발, 제…… 동생이에요.”
오빠가 빌었다.
“차라리 절 데려가세요.”
“흐어어엉…….”
“제 동생, 제발, 제발 놓아 주세요. 형님들, 제발.”
날 손쉽게 집어 든, 이은호보다 훨씬 큰 남자들.
그들이 무서웠다.
겉모습도 소름 끼치는 그 웃음소리도 모든 게 두려웠다.
“으윽…….”
이은호가 매달리듯 붙든 발목이 뽑힐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발목이 빠지는 한이 있어도 괜찮았다.
이 무서운 사람들한테 끌려가지 않도록 이은호가 제발 날 놓지 않길 바랐다.
“놔줬으면 좋겠어?”
“제발요, 형님.”
“누가 니 형님이야. 거지새끼가.”
“죄, 죄송합니다.”
“하하하하. 죄송하면 머리라도 처박고 말해야지.”
남자의 동료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이은호는 놈들의 명령에 흙바닥에 머리를 파묻었다.
‘이 사람들이 뭐라고.’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속이 쓰렸다.
이은호 손을 그냥 잡고 있을걸.
나는 계속, 계속 후회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우는 것과 후회하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뭐든 할 테니까……. 제 동생만 놓아 주세요. 제발요…….”
“오, 뭐든지?”
“네! 뭐든지…….”
이은호는 덜덜 떨면서도 악을 지르며 대답했다.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너, 이 동네에서 유명한 거지새끼잖아.”
“모, 몸을 쓰는 거든, 뭐든. 뭐든지 할 테니까…….”
“하하하! X랄. 동생 놓아 주면 너희 어디로 갈 건데?”
“여, 여기 살아요, 저희. 여, 여기가 집이에요.”
“더럽잖아?”
“그, 그럼 깨, 깨끗한 곳으로 갈게요.”
“그러기엔 너희가 너무 더럽잖아.”
하하하하!
놈들이 웃었다.
마치 놓아 줄 듯 말듯.
그놈들은 이은호한테 의미 모를 질문만 계속 던져 댔다.
그런데 왜 그땐 그게 희망처럼 느껴졌을까.
꼭 조건만 맞추면 놓아 줄 수 있다는 듯 말하는 그 남자의 다정한 목소리가 문제였다.
퍽!
결과적으로 은호한테 돌아간 건 은지가 아니라 놈들의 발길질이었다.
“오빠!!!”
“안 X치면 니 거지 오빠 여기서 죽여 버린다!”
악을 지르자, 잡고 있던 놈은 내 입을 틀어막으며 속삭였다.
이은호는 놈에게 잘못 맞은 건지 눈이 풀렸다.
흰자가 보이는 와중에도 날 잡아 보려 짧은 팔을 뻗고 있었다.
하지만 잡힐 리 없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누구라도 우리를 도와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수준을 알았다.
우린 놈들의 말대로 더러웠고 유명한 거지 남매였으니까.
쓰레기 취급하는 눈길은 익숙했고 도와주는 손길 같은 건 사치였다.
이은호보다도 작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오빠가 더 다치지 않기만 바라며 눈물만 줄줄 흘리는 것뿐이었다.
“X나 웃겨. 하하하하.”
낄낄거리며 웃던 놈들은 그 폐가에 기절한 이은호만 남겨 둔 채 나를 짐짝처럼 들고 나왔다.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 쭉 함께 붙어 지냈던 우리 남매는 그날 생애 처음으로 멀어졌다.
내내 생각했다.
‘내가 고집부리지 않았다면, 오빠 말 듣고 손만 잘 잡고 있었어도…….’
부웅.
놈들은 중국집 이름이 붙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른 동네로 왔다.
나는 공사 중인지 철거 중인지 모를, 철골뿐인 건물 아래로 끌려갔다.
놈들은 단순히 악질적인 장난을 친 건지 나를 거기에 버리고 사라졌다.
근처에 있는 거라고는 허허벌판에 가까운 도로뿐.
주변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서웠다.
혼자 남은 것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그냥 모든 게 걱정이었다.
“꼬마야, 여기서 뭐 하는 거니?”
그래서였다.
“아줌마…….”
동네 시장에서 흔히 보이는, 머리를 볶은 푸짐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검은 봉고차에서 내리며 물었다.
“아이구, 몸 차가운 것 봐.”
“오빠, 흐어어어엉. 우리 오빠 찾아 줘요. 흐어어엉.”
“오빠가 있어? 이런, 아줌마가 찾아 줄게. 얼른 타렴, 아가.”
이은호는 자주 경고했었다.
대놓고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조심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게 친절하게 접근하는 어른이라고.
난 경고를 잊은 채, 아줌마를 따라 검은 봉고차에 올랐다.
“꼬마야, 밥은 먹었어?”
“밥…… 아니요.”
“어머, 아저씨, 혹시 가지고 있는 주스 없어요?”
그때.
아줌마가 부른 ‘아저씨’라는 호칭에 난 당황하며 고개를 들었다.
예상하지 못했지만, 어찌 보면 당연했던 거였다.
아줌마는 뒷좌석에서 내렸었으니까.
그럼 차를 운전한 운전사가 있겠지.
하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난 얼어붙었다.
앞에는 운전사뿐만 아니라 조수석에도 한 사람.
아줌마가 부른 아저씨는 총 둘이었다.
“이거라도 먹을래? 조금 전에 사 온 거라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머, 춥니?”
“아, 네. 좀…….”
아줌마의 손에서 오렌지 주스를 받아 드는 손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막상 주스 병을 받아 보니 위 뚜껑에는 따기 전 비닐이 그대로 감겨 있는 새 제품이었다.
거기다 ‘따각’거리는 소리까지.
새 주스 병을 땄을 때 나는 소리였다.
난 의심을 완전히 걷어 내고 주스를 입으로 가져갔다.
“잘 먹겠습니다.”
주스의 맛은 내가 알던 그 맛이었다.
하지만 나를 보는 아줌마의 표정이 이상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생각했다.
‘X됐네.’
……라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아니나 다를까.
어딘지도 모를 곳에 목줄과 함께 손이 묶여 있었다.
그래도 눈을 다시 뜰 수 있다는 것에 안심하며 주변을 돌아봤다.
커튼을 친 창문 틈으로 파란색 벽.
방에는 고리와 내 목에 연결된 쇠사슬밖에 없는 텅텅 빈 곳이었다.
물을 못 마셔서 그런가.
눈물도 나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땐 그저 이은호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했다.
‘하나, 둘, 셋…….’
시간은 내 바람도 모르고 계속 흘렀다.
창밖으로 해가 뜨고 사라지는 것만 일곱 번을 셌다.
그리고 여덟 번째 해가 떠오르기 전 새벽이었다.
달칵.
그간 벌레와 쥐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던 집 안에 사람 발소리가 들렸다.
“꼬마야.”
“아줌마…….”
며칠 만에 다시 본 아줌마가 방문을 열며 나를 불렀다.
고리에서 날 묶어 둔 쇠사슬을 빼내려는지, 아줌마는 팔을 뻗으며 말하고 있었다.
다가오는 손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대로 죽기엔…….’
너무 억울하다고.
일주일을 굶었지만 죽을 힘을 다하면 뭔들 못할까.
난 그 여자가 가까이 다가온 순간, 한 마리의 맹견처럼 팔을 물어뜯었다.
살가죽을 뚫고 이가 박혀 가는 느낌이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 잇몸에서 터진 피인지 그 아줌마의 피인지 모를 비린 맛이 났다.
오롯이 독기밖에 남지 않은 몸부림이었다.
“이 쪼끄만 X이!”
“아아아악!”
아줌마는 나를 내치며 동시에 내 다리를 내려찍었다.
숨이 턱 막히는 통증이었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줌마는 내 몸 위로 올라타 피가 흐르고 있는 팔로 목을 졸랐다.
“커……헉!”
다리에서 올라오는 통증도 잊고서 이를 악물며 아줌마를 밀어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이대로 죽는다.
진짜 죽어.
이은호!
오빠!
살려 줘, 제발.
나, 나 죽어! 죽는다고!
머리에 피가 몰리며 내 의지와 다르게 눈이 감기던 그때였다.
“X같은 X새끼야!”
익숙한 악에 받친 목소리에 떠나가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죽을 때가 되니 꿈이라도 꾸는 건가 싶었다.
‘오빠.’
쿵쿵거리며 달려오던 이은호는 그대로 아줌마에게 제 몸을 날렸다.
이후에는 급하게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으며 날 둘러업었다.
정신없이 그 집을 빠져나와 며칠간 보지 못했던 빛을 다시 만났다.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한 새벽이었다.
커튼 틈새로 보이던 파란 벽이 내가 갇혀 있던 이 전원주택의 대문 색이라는 걸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리 와! 이 X같은 꼬맹이 놈들이!”
아줌마는 비틀거리며 나를 업은 이은호를 무섭게 쫓아왔다.
“허억…….”
멀리 도망치지는 못했다.
대신 이은호는 언제 미리 봐 둔 건지, 대문이 없는 한 주택 뒤편에서 커다란 김장용 빨간 대야를 들추며 말했다.
“여기 숨자.”
바닥엔 이끼인지 곰팡이인지 모를 것들이 잔뜩 퍼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보다 나은 은신처가 없었다.
축축한 대야 속에 몸을 숨긴 뒤.
잠시 후 골목 앞뒤 곳곳에서 외국어를 하는 남자들과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젠장!”
“거기 없어?”
“없어! 넌 왜 그걸 놓쳐서!”
이은호가 입을 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쉿.’
신호를 알아듣고, 난 거친 숨도 최대한 천천히 내쉬려고 노력했다.
탁탁탁탁.
바쁜 발소리들이 주변에 울렸지만 다행히 그들은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대야에서 빠져나왔을 때는 날이 다 어두워진 시간이었다.
―컹! 컹!
숨을 적에는 산책하러 나갔던 건지, 대야를 나오자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우렁차게 짖었다.
“누구냐!”
집주인으로 보이는 한 할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은호는 재빠르게 나를 업고 그 집을 달려 나왔다.
적어도 늦은 밤까지 우리를 찾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 아줌마를 떨쳐 낸 건 확실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