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37)
느든 드드 드르라
다다따라 비리다가 드어워
따라따다 뜨 손
드든 들, 따라 스스
배진수는 모니터 앞으로 가서 허밍과 외계어로 가득한 데모곡을 재생시켰다.
이은호는 배진수 작곡가의 허밍에서 따올 수 있는 것은 따오고 더 잘 살릴 구간을 계산하며 음절을 나눴다.
음절을 나눈 이후에는 속사포처럼 가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사를 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어린 손>
이 제목에서만 우리 남매의 경험담에서 가사로 뽑아낼 거리가 넘쳤으니까.
“난 포기.”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이은지는 평소 곡을 만들 때와는 다르게, 절반이 여전히 비어 있는 종이를 테이블 위에 놓으며 한숨을 흘렸다.
반대로 내 쪽의 종이는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한 탓에 낙서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나는 지저분해진 종이를 테이블 위에 올리며 말했다.
“다 썼다.”
“어? 다 썼다고?”
이은지가 놀라며 되물었다.
놀란 얼굴인 건 배진수 작곡가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 볼래!”
“봐.”
무심하게 대답하며 은호는 은지 쪽으로 가사 종이를 밀어 줬다.
“어…….”
은지는 가사를 찬찬히 읽더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가사는 이은지가 큰 연관이 있으니 그럴 만한 반응이기도 했다.
‘내 행동을 보고, 이은지가 내 시점에서 풀어 나간 내 이야기를 담은 노래.’
이번 가사에 영감이 된 것은 이번 싱글 데뷔곡인 <듀오>가 컸다.
“어떤데? 선생님도 보자.”
배진수가 굳은 은지의 손에서 가사를 쓴 종이를 가져가며 물었다.
찬찬히 가사를 읽어 내려가던 배진수는 중얼거리며 말을 흘렸다.
“남매가 다…….”
가사 종이에는 가사뿐만이 아니라 노래할 때 어디를 죽이고 약하게 살릴지, 반대로 또 어디를 강하게 살릴지 등 마치 수학 문제를 풀듯 철저한 계산이 되어 있었다.
배진수의 눈길이 가사지를 떠나 은호에게로 향했다.
“저 뭐 묻었나요?”
은호는 배진수가 빤히 보던 곳을 슥슥 닦으며 물었다.
“은지가 자주 자기 오빠가 더 대단하다고 칭찬을…….”
“아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은지는 급하게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배진수의 입을 틀어막았다.
“STOOOOP! 쌤!”
“니가? 나를?”
하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입이 떡 벌어진 은호의 얼굴은 누가 봐도 이미 다 들어 버린 표정.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질 않아서 배진수를 다시 봤다.
와중에 그는 오히려 은지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게 더 당황스러운 듯한 얼굴이었다.
“왜 이러니.”
배진수 작곡가는 은지의 손을 풀어내며 진짜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답지 않게 여기서 내숭이라도 부려 왔던 건가.’
오늘따라 아니, 이은지는 정확히 이 스튜디오에 들어온 순간부터 이상하리만큼 얌전했다.
심지어는 민망하다는 듯 은지는 가사가 쓰인 A4 용지에 얼굴을 파묻었다.
‘왜 저래.’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갑자기 어떻게 된다거나 한다는데.
“하시려던 말씀은 어떤 건가요?”
은호는 애써 은지에게서 눈을 떼며 배진수에게 물었다.
“은지가 은호 씨의 어떤 걸 부러워하는지 알 것 같다고 말하려 했어요.”
배진수는 은지가 흐트러뜨린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얘가 절 부러워한다고요?”
다시 들어도 믿기지가 않는다.
신이 사람을 만들 때 음악에 대한 재능이란 재능은 다 때려 넣었을 것 같은 이은지가?
이젠 고음도 되면서 부러워할 게 뭐가 있다고?
나를?
왜?
“은호 씨는 굉장히 계산적으로 곡을 다루는 것 같은데, 맞나요?”
아.
계산적.
맞는 말이었다.
‘그거라면…….’
난 항상 곡을 볼 때 경험을 끌어와, 이 곡이 어떻게 불렀을 때 가장 듣기 좋은지를 고민한다.
이후에는 곡에 공식처럼 그걸 적용하는 식으로 녹음을 해 왔다.
“은지는 느낌으로 곡을 만드는 일이 많다 보니까 그때그때 다른 곡이 될 확률이 높죠.”
“아…….”
그거라면 이은지가 부러워했다는 말이 이해됐다.
이 공식 같은 답안지가 매번 정답은 아닐 때도 있긴 했다.
‘애초에 예술에서 정답을 찾는 것부터가 웃긴 거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런 고민을 해 보는 편이 작업 시간은 물론.
활동 중에도 격해진 분위기를 따라가다 노래를 망치는 상황을 줄일 수 있다.
‘노래를 망쳐도 그런 것이 인간적인 모습이라며 좋아하는 팬들도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건 내 기준에는 완벽한 무대는 아니었다.
특히 이 방식은 활동 중일 때 가장 많은 도움이 됐다.
“두 사람은 닮았지만 다른 면이 많네요.”
배진수는 보고 있던 가사 종이를 건네며 말했다.
종이에는 A4 용지 한가득 수상한 기호로 그득했다.
“은호 씨가 더 지능적이기도 하고…….”
“엑.”
이은지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치를 떨었지만, 내가 더 지능적인 것은 맞다.
우리 붕어 머리보다는 내가 똑똑하긴 하지.
하지만 그건 하나의 성향일 뿐 지능이 노래하는 능력의 차이를 뜻하진 않았다.
이건 처음에 받았던 가사 종이를 봐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펜 자국 하나 없이 깨끗한 이은지의 종이.
노래를 직접 부를 때 이은지는 이런 종이를 들고도 잘 해낼 녀석인 걸 난 알고 있다.
그리고 곳곳에 동그라미와 돼지 꼬리, X 표식 등.
기호들로 꼼꼼히 메워진 내 종이.
이은지한테 지기 싫어서 그동안 갈고닦으며 노력한 하나의 결과물이었다.
‘난 이은지처럼 단번에 리듬을 타고 그 곡을 해석해 내는 능력 같은 건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은지처럼 그렇게 보이도록.
이은지와 덜 비교당하도록.
이은지처럼 세상의 눈에 띄도록.
우습지만 오롯이 천재를 흉내 내기 위해서 노력한 부분들이었다.
이은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더더욱 이 기술에 매달려 노래해 왔다.
냉정하게 보자면, 사실 이건 내가 똑똑한 게 아니라 경험하며 배워 온 하나의 잔재주일 뿐이다.
“제가 그렇게 머리가 좋은 놈은 아니라서…… 하하.”
조금 씁쓸해진 기분을 담아 말을 입에 올린 그때였다.
은호의 중얼거림에 배진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뭐, 공부 머리만 머린가.”
“네?”
“잔머리도 머리고, 처세도 머리죠.”
괜히 민망해진 기분에 속으로 대답을 삼키며 시선을 이은지한테 옮겼다.
배진수는 그런 은호를 보며 차분히 남은 말을 이었다.
“개인적으로 전 노력도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노력, 그거 절대로 쉬운 거 아니거든요.”
노력도 재능이라, 재능을 이겨 보겠다며 생을 받쳐 발악해 온 나로선 듣기 좋은 말이었다.
“기왕 은호 씨가 쓰신 가사니까 이렇게 된 김에 오늘 가이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은호 씨가 한 곡 해석을 직접 한번 들어 보고 싶은데…….”
“물론이죠.”
이런 말까지 들어 놓고 빼기엔 섭섭하지.
나는 희미하게 웃음을 띠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부탁드립니다.”
배진수는 그런 은호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모니터 앞에 앉았다.
은호가 녹음 부스에 들어가자 배진수는 은호의 흥얼거리는 목소리를 BGM 삼아 복사해 둔 가사를 읽었다.
다시 읽어 봐도 은호가 쓴 가사는 기존에 작사가가 보내온 것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을 노래하는 작사가의 가사와는 다르게…….’
은호 씨의 가사는 해석하기 나름이랄까.
얕았던 곡의 깊이마저 다르게 만들어 냈다.
다만 이 가사를 쓰는 데 들어간 시간은 고작 1시간.
완성형으로 만들어 내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짧은 시간이라는 말이기도 했다.
‘직접 부르면서 가다듬을 곳이 많겠지.’
아무리 여유가 넘친들 이 아이들은 아직 데뷔조차 못 한 신인이니까.
녹음 부스에서 긴장을 푸는 시간 정도는 필요하려니, 배진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스타트 해 주시면 알아서 잘 들어가겠습니다!”
은호가 녹음 부스에서 헤드셋을 착용하며 말했다.
씩씩한 은호의 인사에 배진수는 잠시 멈칫했다.
시간 따위는 필요 없는 여유 있는 모습 때문이었다.
은호의 신호에 맞춰 배진수는 <어린 손>의 인트로를 재생시켰다.
♩♪♪
물결처럼 퍼져 가는 피아노 연주가 시작됐다.
여유 넘치는 대답처럼 은호의 얼굴에는 일말의 긴장조차 보이지 않았다.
‘3, 2, 1.’
박자를 맞추며 은호는 정확한 타이밍에 노래를 시작했다.
어둔 밤이 내려와
잡으라던 그 손
후회했던 그 손
놓치지만 않았다면, 달라졌을까
은호가 감정을 잡으며 쓸쓸하게 노래를 시작한 그 순간.
배진수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다른 사람처럼 뒤바뀐 은호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이게 어딜 봐서 신인이야?’
지금껏 수많은 가수를 맡았던 배진수는 신인과 베테랑의 차이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배진수의 기준에서 은호는 베테랑이었다.
제 노래가 아닌 것도 제 것으로 만드는 그런 존재들.
악몽조차 되지 못한 기억이 더는 널 시리게 하지 않게
두 번 놓지 않을게
다신 잃지 않을게
곤잠 깨우지 않게, 같이 가
혹 아니더라도 그렇게 커질 존재임이 분명했다.
“작곡가님, 한 트랙 다 보고 느낌 봐주실 수 있을까요?”
“알겠어요. 일단 지금까지는 너무 좋습니다.”
“그럼 바로 이어 갈게요. 신호 전에 끊지 말아 주세요.”
“네.”
벌스가 끝난 뒤.
노래를 위해 다시 입을 열었을 때, 은호는 눈을 감고 있었다.
배진수는 은호가 쓴 가사 종이를 살피며 공식처럼 남겨 둔 표식을 확인했다.
Same day, Same time
Same day other crime
나서야 했던 새벽길에
걸어야 했던 새벽길을
담백하고 덤덤한 목소리 틈으로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허락되지 않은 날
떨어졌던 그 손, 잃었었던 그 손
커져 버린 꼬맹이, 기억하니 그날을
의식하지 못한 어느 순간부터 배진수는 조용히 은호의 노래를 감상만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I would do the same again
고여 있는 마음이
놓으래도 않으니까
* * *
배진수가 감탄하며 은호의 노래를 감상하던 그때.
은지는 외투가 구겨질 정도로 강하게 주먹을 쥐고 있었다.
Same day, Same time
Same day, other crime
얼굴이 너무 뜨거웠다.
처음 가사를 읽었을 땐 ‘설마’라고 생각했다.
나서야 했던 새벽길에
걸어야 했던 새벽길을
하지만 이은호가 목소리에 힘을 실으며 가사에 영혼을 불어넣은 그때, 깨달았다.
“나쁜 놈…… 듀오에서 자기 이야기로 곡 썼다고 내…….”
화가 담긴 말투와 달리.
은지는 충혈된 눈을 감추려 고개를 숙였다.
그 시절 미련했던 서로가
거칠었던 어린 숨과 흔적뿐인 가치가
이은호의 가사는 경험을 바탕으로 쓴 가사였다.
그것도 우리 인생에 큰 사건을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Same day, Same time
꿈만 꿨던 prime 부족했던 cash
그럼에도 놓지 못한 여전한 wish
같은 날, 같은 시간, 죄악, 좋은 것, 돈, 소망 등 각 단어가 어떤 상황을, 어떤 뜻을 가리키는지 모두 알아듣고 있는 건 은지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