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36)
우리는 티 나지 않게 주먹을 쥐며 ‘아자!’ 하고 기쁨을 공유했다.
그리고 다시 춤에 미칠 시간이 돌아왔다.
그런데 몸이 각성이라도 한 걸까.
이전까지 힘들었던 건 온전히 모래주머니 때문이었는지, 이은지랑 난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쿵쿵! 옳지! 은호가 은지 잡아 주고! 무릎 좋아졌어!”
“거기서 턴! 문을 열어 주던, 다정한 네 손! 잘한다!”
선생님의 추임새와 구별이 안 되는 노래에 힘을 얻으며 이은지와 난 브리지를 넘기고 훅으로 향했다.
“거기, 그대로! 은호야! 은지 손 놓는 순간 다친다! 마지막 붙어!”
마지막 100번째 트랙의 끝에 다다른 순간.
“여기, 그대로!”
선생님의 흥분에 찬 노래를 끝으로, 이은지와 난 탱고의 마지막 동작인 탱고 자세를 잡은 채 가쁜 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끝났다.”
손바닥으로 받친 이은지의 등에서, 많이 힘든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쿵쾅거리는 심장박동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고생했다.”
“…….”
난 이은지를 똑바로 일으켜 세우려고 팔에 힘을 줬다.
“……드디어 떡볶이 먹을 수 있다.”
이은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그럼 그렇지.’
어이가 없어서.
놓는 순간 뒤통수가 깨질 것 같은 자세만 아니었으면 손을 놓을 뻔했다.
하긴 99번째 트랙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심장이 쿵쿵 뛰진 않았다.
탄수화물과 매운맛 중독인 이은지가 이런 것들을 끊은 지 며칠째였으니…….
오랜만에 먹을 떡볶이가 설렐 만하지.
“고생했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고했어!”
짝짝짝짝.
클라우드 팀도 선생님도 아낌없이 박수를 쏟아 내며 함께 고생한 하루를 서로 위로했다.
“……살 거 같다.”
시원한 물 한 모금.
딱딱한 바닥에 ‘앉는다’는 자체만으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다.
“떡볶이 주문했다!”
선생님이 연습실이 울릴 정도로 쩌렁하게 소리친 그때였다.
“우와아아아!!!”
이은지와 클라우드 댄스 팀 모두가 바닥에 뻗은 채 소리를 질렀다.
20분쯤 지난 후.
약속대로 선생님이 주문한 떡볶이가 연습실에 도착했다.
‘보기만 해도 더워 보여…….’
시원한 게 더 당겼던 나는 떡볶이가 도착했어도 딱히 손댈 생각이 없었다.
‘저걸 먹고 운동을 더 하느니…….’
덜 먹고 평소 하던 대로 운동하는 게 편하니까.
하지만 이은지는 내 생각과 전혀 다른 듯 클라우드 팀과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아, 뜨거운 입김을 뿜어 댔다.
“아, 살 거 같다.”
“이제?”
“응. 세상 다 얻은 거 같이 기분 째진다.”
이은지는 든든해진 배를 두드리며 뒤늦은 세상 타령을 했다.
“내일 운동 생각하면 다른 의미로 째질 거 같은데.”
“원래 먹을 땐 머리 비우고 먹어야 해.”
“네 머리가 아니라 그릇을 너무 비운 거 같은데.”
어느새 텅텅 비어 버린 떡볶이 통을 보며 말하자 이은지는 저도 찔리긴 하는지 내 눈을 피했다.
“그, 그런 거 신경 쓰면 인생에 낙이 없잖아, 낙이!”
“예, 예. 적어도 내일 근육 터지고 싶지 않으면 콜라나 사이다 대신 이거나 드셔.”
“앗, 차가!”
냉장고에서 막 꺼낸 이슬 맺힌 물을 이은지 뺨에 가져다 댔다.
“이…… 흠.”
잠깐 발끈하려던 이은지는 막상 물을 손에 쥐니 시원한 게 마음에 든 것 같았다.
* * *
“고생하셨습니다!”
“잘 먹었어요!”
“그래.”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은호랑 은지도 조심히 들어가!”
“네!”
뒷정리를 끝마친 후.
이은지랑 난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나와 정신없이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밖으로 나오자 뼈가 시린 찬바람이 강하게 훅 불어 왔다.
“어으, 추워.”
“시원하고 좋기만 한데?”
“넌 지방층이 더 두꺼우니까 그래.”
“응. 우럭 대가리.”
“뭐래, 호박이.”
“어머?”
이은지는 눈알을 양쪽으로 굴리며 괴상한 입 모양으로 과장된 손짓까지 더하며 말했다.
“내가 물고기 언어를 못 해서 미안. 뭐라는 건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와.”
평소에는 장난이랍시고 웃었을 텐데, 방금은 진심으로 표정이 굳어졌다.
“후회 안 하냐?”
“뭐, 뭔 후회?”
정색하며 말하자 이은지는 조금 멈칫하며 물러섰다.
“너, 아까 떡볶이 니가 제일 많이 먹은 거 봤는데 대표님한테 이르면…….”
“야, 치사하게……!”
“치사?”
돌아올 잔소리 폭탄과 동시에 해야 할 운동을 떠올리니 정신이 차려지는지, 은지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미안.”
“말이 짧다, 동생아.”
“죄송요.”
“아하, 저 가로등에 죄송하다고 하는 거지?”
“즈승함돠.”
똑바로 사과하는 건 죽어도 싫은지, 은지는 끝까지 이를 악물고 눈도 안 마주친 채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했다.
“X같은…….”
뒤에 작은 목소리로 따라온 욕이 들리긴 했지만 일부러 모른 척했다.
별거 아닌 걸로 투덕거리며, 우린 조용한 거리를 빠져나왔다.
“야, 은지야.”
“뉘예, 오라버니.”
또, 또.
눈을 뒤집어 까더니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한다.
이번엔 진짜 이은지의 등에 손바닥을 날릴 뻔했다.
하지만 지기 싫어하는 이은지 성격상 100% 유혈 사태가 날 걸 알기에 참았다.
피 보는 순간.
‘항상 더 어른이 돼서 그걸 못 참냐고 대표님한테 혼나는 건 나였지.’
회귀 전에 적어도 수십 번은 겪은 일이라 눈에 훤히 보였다.
“내일 일정 뭐였냐.”
“오빠가 정해 놓고 왜 몰라?”
“알고는 있지.”
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은지는 언제 장난을 쳤냐는 듯 진지한 태도로 대답했다.
“어떤 곡인지 제목이 기억 안 나서.”
“‘어린 손’이야.”
“어린 손? 전에 고양이 발걸음에서 나왔다던 그 곡이 그거야?”
“응.”
“두 번째 싱글?”
“응. 근데 대표님이 가사 다 보고 가이드 들어 본 후에 생각해 볼 거라고 하셨어. 그래서 EP 수록곡으로 갈지, 타이틀로 활동할지, 나가리일지 아직 몰라.”
<어린 손>
보통 한 앨범을 준비할 때 다음 앨범을 동시에 준비하는, 이런 방식의 일정은 대표님 타입은 아니었다.
주로 대표님은 하나에 제대로 집중해서 완벽하게 선보이시는 타입이니까.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즉, 데뷔 앨범에 들어가는 곡은 아니지만…….
「“저 이런 소리 막 하는 놈 아닌 거 아시잖아요. 믿고 밀어 주세요.”」
싱글 데뷔를 준비하면서 이후 앨범 곡을 준비하자.
이 빡빡한 일정은 내가 얼굴에 철판을 깔아 가며 대표님께 직접 제안했다.
“가사는 나왔대?”
“응, 어제. 선생님이 되게 기대하고 있어.”
“배진수 작가님이?”
“이거 초반에 멜로디만 내가 잡았지, 편곡은 선생님이 다 하셨거든.”
“아하.”
배진수 작곡가.
곡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이은지를 통해서만 들었다.
대표님의 소개로 그가 이은지의 스승이 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직접 만나는 건 내일이 처음이었다.
“어떤 분이셔.”
“선생님?”
“어.”
“음…….”
이은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인상을 구겼다가 폈다 하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대답했다.
“뭔가, 굉장히 감성적인…… 그런 분?”
* * *
어린 손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은호 씨 맞죠?”
“네. 저도 은지 통해서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요? 하하. 은지 성격에 욕만 안 했으면 다행이네요.”
“하하. 그럴 리가요. 좋은 분이라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다음 날, 이은지가 평소 작업하던 스튜디오로 처음 함께 가게 됐다.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할게요, 은호 씨.”
배진수 작곡가가 아주 찬찬히 날 뜯어 봤다.
웃으며 나누는 인사였지만, 솔직히 그와의 첫 만남은 최악까진 아니어도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은지랑 정말 많이 닮았네요.”
“하하, 이은지가 절 닮았죠. 제가 원조니까.”
“니가 국밥이냐? 원조를 따지게?”
곁에 서 있던 이은지가 투덜거리며 말을 얹었다.
“하하, 오빠한테 ‘니’라니. 그러면 안 돼, 은지야.”
“……네.”
이은지를 쏘아 본 그때. 배진수 작곡가가 내가 할 말을 대신하며 말했다.
의외의 곳에서 편을 들어 주자 놀라서 고개가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얌전히 답한 이은지의 반응 때문에 더 놀랐다.
은호는 조금 커진 눈으로 배진수 작곡가를 다시 봤다.
별로였던 첫인상은 내 편을 들어 주신 그때 내다 버렸다.
‘감성적인 분.’
대표님이 어째서 이은지의 스승으로 이분을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배진수 작곡가는 뻣뻣할 것 같은 겉모습과 달리 굉장히 부드러운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자리에 앉겠어요? 곡 먼저 듣고 이야기합시다.”
“네.”
배진수 작곡가의 안내를 따라 나와 은지는 소파에 기대 앉았다.
이후 그는 마우스를 몇 번 딸깍이더니 [냥냥이] 폴더에서 한 노래를 재생시켰다.
‘오…….’
예전에 들었던 고양이 발걸음은 회귀 전 이은지가 만들었던 곡에 비해서는 과한 감이 있었다.
고양이가 아니라 산신의 발걸음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배진수 작곡가의 손이 닿아 유연한 면이 섞이니, 곡은 마치 교태를 부리는 처세술 좋은 고양이가 떠올랐다.
깨끗한 피아노 연주와 부족한 리듬을 더하는 베이스 드럼과 스냅.
게다가 진한 이은지의 색채 덕분에 전체적으로 재즈팝풍의 분위기도 살짝 섞여 있어서 마치 Bar에서 나올 법한 상당히 매력적인 곡이었다.
“여기에 가사를 넣은 느낌은…….”
가사는 작사가에게 따로 맡긴 듯, 가사가 들어가자 곡은 또 다른 분위기를 냈다.
그런데 가사를 넣은 가이드를 듣는 내내 왠지 언짢은 구간이 몇 곳 있었다.
사랑을 구걸하는 듯한 애절함은 좋았다.
가사에서도 흔히 ‘예쁘다’라고 할 분위기는 충분히 풍겼다.
하지만 애절하고 간절한 사람의 경험이 없어서 그럴까.
‘우리’ 취향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이건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 듯 이은지도 노래가 끝나고 입을 열었다.
“가사요, 선생님.”
“응?”
“바꾸는 거 가능할까요?”
“왜? 좋지 않아?”
“좋긴 한데, 너무 사랑을 구걸하는 느낌이라 마음에 안 들어요.”
불만이 있는 건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사이인 건지 은지의 태클에 배진수 작곡가는 의외로 불편한 기색을 전혀 띠지 않았다.
이은지는 순수하게 의견을 물었다.
“이은호, 넌 어땠어?”
“나도 좀, 구걸하는 느낌이 불편한 건 있었어. 제발 놓지 말아 달라거나 그런 부분.”
콕 집어 불편했던 구석을 이야기하자, 이은지는 ‘그거지!’라며 확 밝아진 표정이 되었다.
배진수 작곡가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빈 종이 몇 장을 가지고 와서 건넸다.
“난 가수가 곡에 공감해야 좋은 곡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괜찮다면 두 사람이 직접 작사해 볼래요?”
“작사요?”
“어렵다면 느낌만이라도 좋아요. 작사가한테 그런 분위기로 써 달라고 이야기하면 되니까.”
“아…….”
종이를 건네자 조금 멈칫하는 은지와 다르게 나는 흔쾌히 종이를 받아 들었다.